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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신앙의 발란스를 유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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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2010-06-28

본문

(IHOP이 있는 캔자스시티는 신사도 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으로 인해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도시이다. 신사도 운동은 과거의 자유주의 신앙운동과 종교다원주의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교회에 끼치는 마귀의 운동이다.) 위의 글은 우리 아멘넷에 올라온 최신 칼럼 글 중의 일부이다.

(IHOP에서 조용하게 하나님과 개인이 함께 하는 분위기이며 그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wholistic encounter) 영적인 만남의 장이요,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이런 형태의 기도방(The Prayer Room, The House of Prayer)을 할 수 있으면 하는 생각과 비전을 가져본다.) 이 역시 우리 아멘넷에 올라온 다른 칼럼 글 중의 일부이다.

( “교회내 민주주의는 반성격적, 성경으로 돌아가야," 라는 거창한 제목과 함께, 목사에게만 교회 내의 치리권도 있고 주권, 목회권이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기사도 있다. 다른 한 편, 우리 게시판에는 ( “교회의 주인은 장로인가, 목사인가? 라는 제목과 함께 평신도가 교회의, 사회적 주인이기에, 교회는 민주주의가 타당하며 교회의 주인은 평신도인 성도들이다.) 라고 역설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모두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한다. 극과 극, 심각한 대립현상이다. 헷갈린다.

우리의 딜레마는 이 글을 쓴 필진들이 이단의 창시자도, 그들의 교주도 아니고 모두 우리(성도)가 믿고 신뢰하며 따라야 할 소위 정통교회 목사님들이시란 데 있다. 그분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강하고 높으며 집요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말, 어느 목사님의 말씀을 더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일까?  대단히 혼란스럽다. 우리 독자들은 혼란상태에서 어제까지 믿음의 동지로 서로 사랑하는 것 같았는데, 한순간에 서로 등을 돌리며 “내가 보기에 이 목사님의 말씀이 더 옳다. 다른 목사님을 지지하는 네가 틀렸다.” 서로 손가락질하며 다투기도 하는 가슴아픈 헤프닝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같은 성경을 두고 무엇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함께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목사님들이 자신의 신앙에 발란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고,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지만 말씀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그 말씀이 주는 참뜻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주견을 먼저 뼈대로 세워놓고, 그 주견에 맞은 말씀 성구만을 부분적으로 골라서 인용하는, 이헌령비헌령(耳懸鈴鼻懸鈴), 아전인수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자신의 주견을 앞세우기 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며 내 생각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 뜻을 우선순위에 둘 때 내 신앙에 무리가 오지 않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잘 유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기적이며 총체적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발란스가 필요한 부분과 그 해법
신앙의 발란스라고 하면, 넓게는 구원론에서부터 신론, 기도론까지 다양하고 복잡하겠으나, 아쉬운대로 좁은 의미로서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의 발란스는 어떤 것인가, 정립을 해보면,

a) 신사도 운동은 과연 성경적인가?

사도(Apostle)란 "보냄을 받은 자"란 그리스 원어의 뜻이 있다. 그렇다면, 보내는 자가 계시고, 보내시는 목적이 분명 있고서야 보냄을 받은 자가 있을 것이다. 사도를 따로 불러 세우시고 보내신 분은 그분(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엡 4: 11절 참조), 보내신 목적은: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붓으로 사용하시기 위함이다.

초대 교회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도 희귀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한데 묶어져 있지않은 때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 줄 사도들이 필요했었고, 이를 위해 주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친히 불러 사도로 세우셨고 그들,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벧후 1:20절 참조)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정경 신구약 66권이 우리 손에 들려져 있는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따로 직통계시로 받아 우리에게 전해줄 사도(Apostle)직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22:18-19절을 보면,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이 말씀 외에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고 되었기에, 그 대답은 분명 “No!”이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이 친히 우리들 속에 임재하셔서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데, 그런 우리에게 따로 선지자나 예언자가 특별히 필요한가? 그것도 역시 대답은, “ No!” 이다.
 
b)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가 잘 아는대로, 교회의 주인은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질적으로 모두 주님이 주인이시다. 주인 = "주"(Lord)는 히브리어로는 "아도나이 ", 헬라어로는 "큐리오스" 즉 "주인, 상전"이라는 의미다. 영어로는 Lord 이 역시 주 종과의 관계성에서 상전을 의미할 때 사용되어지는 뜻이다. 민주국가의 주인은 물론 국민이다. 그러나 교회는 민주주의로서 기능과 신권정치를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개인 교회건, 가시적 교회건 비가시적이요 우주적인 교회이건) 그 누구도, 예수님 외에는 주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주인’이란 단어보다는 '청지기'란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 용어가 가장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 피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산 성도들이 모인 단체인, 교회에서 마저 그분의 설 자리가 없고 통치권이 박탈당한다고 해서야 어디 말이되겠는가?

(주인의 것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충성된 종) 이것이 우리, 목회자건, 직분자건, 평신도이건...성도가 주님의 몸을 섬기는 태도가 되어야 하고, 이런 자세가 바로 발란스 잡힌 신앙인의 태도라고 본다.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

c)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마귀의 장난을 분별하는 방법

아래는 오래 전, 작자 미상으로 필자가 운영하는 이웃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서 도움을 받고 참조한 것이다.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비주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새롭게된 성도들의 삶 속에서 성령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바르게 깨달아야만 한다. 이것은 참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신비주의에 연루되지 않았던 크리스천들도 마귀들의 장난이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처럼 작용하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마귀의 장난을 성령님의 인도처럼 착각하여 잘못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자기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이런 실수의 대부분을 쉽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는 마귀의 장난과 매우 다르다." 다음은 성령님의 인도와 마귀의 장난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성령님은 무한한 능력과 지식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하나님의 속성을 모두 갖고 계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제한된 피조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지식과 지능이 인간에 비하면 훨씬 우수하다 할지라도 역시 제한된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개성을 존중하셔서 어떤 식으로든 개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려 하시지 않는다. 반면에 마귀들은 우리 인간을 미워한다! 그들은 개인의 인격을 강탈하여 자기의 인격으로 바꿔치려 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을 관리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지길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일하신다.(빌2:13) 반면에 마귀들은 완전한 통제를 원한다. 그들은 인간의 무의식 세계에 들어와서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용한다.

성령님은 온화한 분이시다. 그분께서 어떤 사람에게 들어오시면, 너무나 온화하시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의 내부를 들여다 볼 때 어떤 것이 성령님이고 어떤 것이 자신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반면에 마귀들은 매우 거칠다. 자신들이 점거한 사람들의 모든 것을 탈취하려는 마귀들의 욕망 때문에 누구나 마귀와 자기 자신과의 차이를 늘 인식할 수 있다. 비록 마귀들이 자신들의 잠재의식 일부의 어떤 "상담자" 같은 존재라고 그들이 생각할지라도 위의 진술은 사실이다. 마귀는 항상 피해자의 의식과 분리된, 또 다른 "하나의 실체"인 것이다.

성령님은 거룩하고 정결하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정결함을 가져오시며 또한 우리에게 죄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완전히 부정하며 사람들을 항상 죄 속으로 깊이 이끌어간다. 새 시대 운동(뉴에이지 운동)의 마귀들이 스스로를 선한 존재로 제시하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죄 가운데로 빠르게 이끌어 가는 존재들이다. 새 시대 운동에 속한 죄의 영역으로는 구체적으로 성적 부도덕,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들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영계와의 접촉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성령님은 항상 예수님을 높이고 찬미하여 자신이 내주하고 있는 사람의 삶 속에 겸손을 가져온다. 반면에 마귀들은 예수님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들은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게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사람에게로 돌리게 하며, 또 자기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찬미하도록 한다. 교만은 마귀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성령님은 결코 우리로 하여금 의식을 잃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각을 우리의 마음속에 넣어주시지만 결코 우리의 마음을 흐릿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항상 "모든 생각을 사로잡고"(고후10:5)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빌2:13)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또한 우리가 적극적으로 자신과 협력하기를 원하시며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텅 비울 필요가 없다. 즉 정신을 잃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매우 능력이 크시므로 우리의 의식이 활발할 때도 우리의 의식을 누르시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주실 수 있지만 이 때에도 깨끗하고 질서 있게 행하신다. 성령님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시거나 혹은 운행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신을 잃어야만 한다는 잘못된 속임수에 빠지는 크리스천들이 매우 많은데, 이것은 결코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니요, 증산도, 요가, 명상, 만트라 등의 뉴에이지 운동에 속한 기법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마귀들은 자주 사람의 의식을 잃게 한다. 그들은 사람이 제 정신을 잃고 피동적으로 되어 그를 쉽게 점령할 수 있을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것이야말로 동양적이며 신비주의적인 명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비우기 위해 긴장 이완의 기법을 도입하는 이유인 것이다. 사실 마귀들이 사람들의 능동적이며 강력한 의식을 무효화시키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심적으로 수동적 상태에 있으라고 격려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자각케 하시는 일은 결코 파괴적이 아니며, 그분께서는 항상 사람들을 회개, 용서, 구속 그리고 평화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행한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악을 정당화시키도록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용서나 구속에 대한 소망이 없는 파괴적이고 무서운 죄의식을 가져다준다. 마귀는 항상 "너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정죄와 심판의 메시지를 가져다준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모순이 되는 메시지를 주시지 않는다. 반면에 마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뒤틀고 변경하여 우리의 죄를 정당화시켜준다.

우리는 결코 성령님을 통제할 수 없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원하실 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종이며 그분께서는 우리의 주인이시다. 예를 들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임재를 알게 하실 때, 우리를 고치시거나 통찰력을 주실 때, 우리는 결코 성령님을 제어할 수 없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같은 일을 두 번 하시지 않는다. 또한 그분께서는 우리가 어떤 틀에 박힌 일이나 혹은 의식에 의존하는 것을 인정하시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습 방언과 같이 똑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결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다.

반면에 마귀들은 자기들이 내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속이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마귀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 뒤 이 마귀들은 그 사람이 부를 때마다 와서 그 사람이 원할 때 치료하는 일 을 행하곤 한다. 또한 마귀들은 의식과 예식 등을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영계를 많이 보여준다. 성령님의 은사를 마귀가 모방 할 때 그는 대개 이 일을 자기에게 사로잡힌 사람의 통제하에서 수행한다. 다시 말해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가 원할 때마다 병 고치고, 예언하고, "지식의 말씀" 을 갖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마귀를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궁극적으로 마귀의 통제를 받아 영원히 멸망 받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것이나 감정에 의지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환상이나 감정의 치솟음 등과 같은 일을 일상적으로 혹은 자주 주시지 않는다. 분명히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우리의 육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것'(sight)이 아니라 '보지 않고'(insight) 믿음으로 모든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계를 보여주시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원할 때마다 그 원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병을 고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병을 고칠 수 없으며, 방언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방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하시고자 할 때 기적이 일어나며 단지 우리는 주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아뢸 뿐이다. 그 결과는 주님께서 처리하시는 것이다.

반면에 마귀들은 인간의 감정을 교묘히 다루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의 극치 즉 황홀경을 줌으로써 그들을 통제한다. 마귀들은 빈번히 사람들로 하여금 영계를 보게 하며 그 결과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 자꾸 보게 되면 자연히 믿음이 필요 없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자주 환상을 보거나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에게 주신 한 권의 책, 즉 성경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그 안에 있는 대로 주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 바로 그것을 주님께서 요구하신다.

구원받은 우리도 의도적으로 성령님께 불순종함으로써 그분을 탄식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에, 그분께서는 단지 조용히 뒤로 물러나셔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지 않는다. 성령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자유의지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인형극에서 손가락으로 놀리는 인형이나 로보트를 원하시지 않는 것이다. 성령님으로 밥티스마(침례)를 받아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다. 즉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는 영원 불변하며, 단지 그가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가 즐겁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가 너무나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경우에는 그를 쳐서 죽게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마귀들은 자기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를 재빨리 징계한다. 그들은 항상 개인의 자유의지를 빼앗으려고 힘쓰며 그것을 점령하고 통제하기에 민첩하다. 마귀들은 인형이나 로보트들을 좋아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늘 우리를 하나님 앞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우리를 싫어하고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원한 파멸"로 인도한다.

예수님께서는 죄로부터 우리를 정화시키시기 위한 죄값을 친히 지불하사 우리를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셨고 우리를 대신해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 반면에 마귀들은 우리를 위해 자기들의 피를 단 한 방울도 흘린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 피를 흘릴 것을 요구해 왔으며, 자기들을 위해서그들이 정화되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 피흘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가르쳐 왔다.
 
또한 성도들을 향해 마귀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면 신자들 스스로 부과한 모든 종류의 얽어매는 규례와 엄격한 형식에 따른 율법 조항들을 지켜야만 한다고 가르쳐 왔으며, 이 경우에도 마치 이런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처럼 꾸며 크리스천들이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만들어 왔다. 다시 말해 마귀들은 "주일 성수, 십일조 준수 등을 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거나 혹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등의 거짓 가르침을 신자들에게 불어넣어 그들로 하여금 항상 위기의식이나 죄의식 등을 느끼게 만든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종교의 특징이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자유와 기쁨을 가져다준다. 또한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단 한번에 우리의 죄를 위한 대가를 지불하셨다.(벧전 3:18) 반면에 마귀들은 항상 점점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들은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성경을 읽고자 하는 갈망을 주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요 14:26) 반면에 마귀들은 혼란을 가져와서 사람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성도들의 모든 참된 기도를 방해한다.

성령님께서는 절대로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반면에 마귀들은 항상 자랑하길 좋아한다.

성령님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며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다 거짓말쟁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배우는데 능동적으로 활용하길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결코 우리 마음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지 우리의 정보 은행으로서 봉사하길 원치 않으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자기들이 내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정보 은행이 되어 주며, 그 결과 마귀에 들린 사람들은 자기 의지대로 정보나 지식을 배울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것을 쉽게 풀이하자면, 예수님을 영접했어도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귀들은 기도만 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기들이 노력하지 않는데도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 잘 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물론 마귀에게 사로잡히면 점 같은 것은 잘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언기도, 축복성회 등에 참석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두 세 살 먹은 아이들이 영어도 유창하게 하고 대학생이나 풀 수 있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서 신문에 보도가 되곤 했다. 성경적으로 보면, 바로 이런 경우의 대부분이 마귀에게 사로잡힌 경우이다. 하나남께서는 결코 정상적인 과정을 무시하신 적이 없다. 심지어 예수님도 아이로 태어나 지식이 자라고 영이 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동으로 불리던 아이들이 커서 잘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가? 일단 마귀가 떠나면, 그 아이의 삶은 완전히 망가지고 말며, 더 이상 정보나 지식 창고로 존재하던 마귀가 없으므로 그 아이는 사회의 폐인이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령님께서 일하심을 기억해야만 한다.

성령님께서 들어오시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능동적인 의식과 자신의 뜻이 연합되어 우리 가운데 선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길 원하신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기를 포기하면, 마귀가 우리 속으로 쉽게 우리를 다스리게 된다. 마귀들은 자기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점령하고 통제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결코 점쟁이가 아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예견력을 주시지 않는다.(마6:34) 반면에 마귀들의 가장 일반적인 속임수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간단한 예견에 불과한 "거짓 지식의 말들"을 주는 것이다. 마귀들은 또한 운수를 점치는 것에 불과한 많은 개인적인 "예언들"을 말해 준다. 성경의 예언은 대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며, 개인의 신상에 대한 것은 매우 드물다. 따라서 대학 진학, 배우자 선택, 직업 선택 등을 위해 소위 용하다는 예언기도를 받으러 가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큰 죄를 범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런 예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들처럼 보이나, 사실 이들은 대부분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믿어서도 안되지만, 부분적으로 이해하거나 부분적으로 인용 해석을 하려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부분적으로 치우치게되면 극단주의가 될 수도 있고, 더 심하면 이단사설로 빠져들 수도 있다. 그런고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 말씀 속에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로 간구하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는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앙 생활의 발란스를 유지하도록 힘쓰자!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힘써 연구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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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 
2010-09-23 18:14
 76.xxx.46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같이 무엇이 옳은지 알기 쉽지 않은 시대에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구구절절 아멘하며 읽었습니다. 사모님 글을 읽으면서, 제씨 펜 루이스 여사를 생각했습니다. 혹시 그 분의 저서를 읽어보셨는지요? 이 시대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시는 귀한 사역 하시길 기도하며 축복드립니다.
 
  장달윤 
2010-09-09 07:29
 218.xxx.251
 아멘넷 넓고 큰 강단을 통한 별님의 사역 너무도 놀랍습니다.
님의 영적 지적 박학다식에 경의를 표합니다.

깨어있어라 
2010-07-15 18:59
 173.xxx.158
 우리가 깨어있고 주님맞을 준비를 똑바로 할수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운내시고 계속적으로 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비둘기 
2010-07-17 09:18
 66.xxx.122
 선교사요 사모님이신 별똥별님.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쓸수없는  올려주시는 칼럼을 통하여  저같이 어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며  마음으로 받아드리며 깨달음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멈추지않고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양육하시는 말씀을 위한 주님의 도구로  크게 사용하심으로  우리 곁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도록  별똥별님이 계신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예수님께 바친 님의 모습과 삶이 글속에 향기로 풍겨나고 있는데  글을 읽는자들이  글을 쓰신 자의 마음을 바로 알지못하는  안타까움에 슬퍼지는 제 마음이 별똥별님을 위하여 댓글을 달게합니다      성령의 사랑과 위로로  모든 일들을 온유와 겸손으로 극복하게 하시는  십자가의 은혜가 마음에 가득하게 하시고  건강도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돕는은혜 
2010-07-15 18:18
 96.xxx.216
 국립묘지에 가면 무명용사탑이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싸웠지만 아무런 이름도 없이 생명을 바친 전사들입니다. 
그 곳에 가면 큰 비석이 있는 사람보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그들에게 더 많은 눈물과 애정이 듭니다. 

크리스쳔,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도 그곳에 이름을 주지 않았습니다.  크리스쳔에게 이름은 사치입니다.  그 이름에 아무런 영광의 흔적도 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그곳에 이름이 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기에 우리도 그렇게 살다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터넷 웹상에 흔적. 언젠가는 지워질 것입니다.  이곳에 이름남김이 무슨 득이 되겠습니까? 
별똥별님의 이름이 사치와 허영이었다면, 그것이 욕먹을 만하겠지만 언젠가 왔다가 사라지는 별이기에 더욱더 의미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요?

본명. 필명으로 책임 소재를 지려했던 바리새인들은 결국 구원자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렇죠.  책임을 지고 따지며 죄를 씌우려는 우리가 바로 그 바리새인 아닐까요?

Thetrue 

2010-07-15 14:17
 152.xxx.131
 Choi samonim,

 Do not worry, you are on His side.
 
 별똥별  감사해요...
성령님의 위로하심이라 여겨져서...
눈물이....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7/15 14:19
 66.xxx.176
 
     
 
 
 

이름아이콘 교회사랑 

2010-07-15 14:07
 71.xxx.104
 《Re》별똥별 사모님께 ,

그러셨군요,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어느 누구도 100% 완벽하실 수 없기 때문에 1%라도 변증이 필요하고 성경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의문되어지는 부분에 있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사모님의 글이 성경적으로 매우 균형잡혀 있고 많은 유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려운 내용의 주제를 쉽게 간결하게 담대하게 표현해 내는 달란트가 계십니다.  이는 각박한  목회현장과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선교현장 속에 주님을 향한  간절함속에서 얻어진 하나님의 훈장이요 성령님의 지혜라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사단은 자신이 공격할 대상에 대해서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모님의 성경적 견해는 완벽하다" 라는 사실을 이용해  공격해 올 것입니다.  즉 사모님에 대한 칭찬이 더해지면 더해 질 수록 사단은 이를 역 이용 할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틀린말 하는 사람들은 효과가 없습니다.  사모님의 글이 많은 독자들에게 호감을 얻고 성경적 지혜가 넘쳐 남으로,  1% 정도의  작은  실수, 작은 오류, 판단이 그다지 두각되지 않고  스치어 넘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사모님의 누구에게도 지려하지 않는 성격과 진리수호를 향한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결국  적아닌 동료들이 적과 같은 입장이 되어지고 사모님과 등지게 되기 쉬우며, 사모님께서  성경적으로 타당한 말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선입관때문에  사모님의 외침에 귀를 막게 할 수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이기시는 길은 겸손과 사랑입니다.  사모님의 글이 성경과 같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틀릴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온전하십니다.  사모님의 댓글을 보면,  이러한 사단의 계략을 익히 아시고 반대의견을 가지신 분들에게도 겸손과 사랑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모님 마음에도 생각나시는 몇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이 모든 것을 이기는 길은 주님 안에서의 평안과 여유인 줄 압니다.  주님께서 "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태복음 13:29)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가라지를 뽑는 일보다 곡식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사단은 우리를  가라지를 뽑는 일에 집중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는 일도 중하나 주님의 분부를 따라  곡식을 보호하는데 더욱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이합을 가라지로 정죄하면 상처받는 것은 아이합에 연결되어 있는 곡식과 같은 성도들입니다.  아이합을 다녀와 은혜 받고 기도하며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어린 영혼들,  기도에 흥미를 잃고 교회생활 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합을 업어쳐야 합니다.  아이합을 가라지로 정죄하기 보다 각 교회마다 더욱 기도하고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합에 가서 잘못될 까 두려워 말고 자신 있게 보낼 수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서 보고 오라고 할 수있는 영적 담대함과 권세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목사님들마다 더욱 기도하여 영적 분별력과 진리의 말씀으로 아이합을 업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한국교회들이 더욱 기도하고 말씀안에 서고 성령의 권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언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지 말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  성경적 예언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에 기록된 범위 내에서 말이지요.  사모님께서 나서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성경적 예언스쿨을  창립하시는게 어떤지요?  점쟁이식이 아닌 진정으로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는 가르침이 있는 곳 말입니다.

사모님 오해가 풀리셨는지요?  사모님을 향한 존경의 마음과 배움의 마음이 여전합니다.  아울러 사모님의 모든 글을 100% 받아 들이지 못함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사모님 뿐 아닌 모든 글을 대하는 저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저는 어느 글도 완벽하지 않고 어느 누구의 주장도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족하나마 사모님의 글을 계속  대하며 배울 것은 배우고 궁금하거나 의문점은 계속 질문하고자 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장 7)-8
 
 별똥별  여러 가지 좋은 충고와 조언...
감사히 받겠습니다.
계속되는 기도의 동역자가 되어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7/15 14:17
 66.xxx.176
 
 Humble  "사단은 사모님에게 (완벽함)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공격해 올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왜 그런지 마치 교회사랑님이 바로 이렇게 하고있는 느낌이드는군요.
그리고 불과 같은 성령의 역사를 "우리가" 일으키기 위해선 아이홉같은 비 신앙적인것도 가만 놔두는것이 좋다...상당히 특히한 극히 개인적인 견해 같군요. 7/15 16:16
 74.xxx.90
 
 TJ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성경을 보는 견해 차이로 서로 비난하는 것보다는 우리를 더욱 깊이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취하고 사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고 파쇄해야 할 것입니다.예수님께로 이끌지 않는 말씀은 우리를 종교주의자,바리새인으로 만들 것이고 예수님께로 이끌지 않는 영적체험은 우리를 신비주의자로 만들 것입니다.모두들 주님과 말씀을 사모하시는 그 열정을 사모합니다.  7/15 16:52
 72.xxx.21
 
 교회사랑  Humble님
뭔가 오해가 있으 신 것군요! 제가 사모님을 공격하다니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님께서 말씀하는 바를 존중하여 몇 줄 수정하였습니다. 그래도 또 그렇게 보이면 말씀 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7/16 10:59
 71.xxx.104
 
 Humble  "사모님께서 성경적으로 타당한 말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선입관때문에 사모님의 외침에 귀를 막게 할 수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messinger에게는 뒤의 계시는 주님만 의지하고 담대하게 성경적 진리의 말씀만 전하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알아서 책임지신다는 배짱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 합니다. 7/17 06:36
 74.xxx.90
 
 Humble  "저는 어느 글도 완벽하지 않고 어느 누구의 주장도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완벽한것은 사모님의 주장과 글이아니라 그글 안에 들어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7/17 07:10
 74.xxx.90
 
 교회사랑  맞습니다. 말씀만이 온전합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주장과 신학이 말씀을 앞서 나가거나 놓치지 않도록 보완하는 의미에서 저는 의문과 질문을 드립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7/17 08:59
 71.xxx.104
 
 Humble  바로 교리나 신학에 치우치지 않고 말씀에만 의지해 중심을 유지하는 모습이 이 글이 많이 잃혀지는 이유일것 입니다.
그리고 교회사랑님은 IHOP대한 이견을 단순한 신학적차이로 보고 기도와 성령운동을 위해선 간과해도 되는 근본적이 아닌것이라고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별똥별 

2010-07-12 13:04
 66.xxx.176
 《Re》엠에스 님 ,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엠에스 님, (쪽글로는 용량의 한계로 인해, 위에다 올립니다. 이점 양해를 바라구요. ^^)

안타깝게도 님께서는, 이와 같은 동영상을 보실 때, 혹은 어머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경험하신 영적 체험 등등, 그런 예언의 말을 들을 때, 제가 저기 아래 올려드린 성경 말씀, 예언분별 검증법과 비교를 해 보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가 권해드린 저의 지난 칼럼 글들 중, (에언에 대해, 방언에 대해)몇 편을 읽어보지 않으셨던지 그래서 의문이 생기신 것이라고 봅니다! 

주께서 저를 길러내실 때, 저 역시 궁금했던 점들이 많았구요, 평생을 걸려서 주께서는 저를 훈련 시키셨습니다. (사단의 장난이냐, 성령의 음성이냐)

현재 신사도 운동가들이 쏟아내는 예언과 그들의 간증들, 김학중 님과, 엠에스 님의 간증들을 제가 올려드린 '하나님의 음성듣기' 방법에 대한 성구를 비교해가며 찬찬히 읽어보셨다면, 그 속에서 정답은 이미 찾으실 수가 있었을텐데요.
특히, 아래 c부분을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제가 위로 올려드렸습니다 (김학중 장로님, 그분은 그 말씀을 들을 때, 너무 가슴이 뜨거워 통곡을 하셨다.)

그랬다면 이와 같은 질문이 생길 수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그래도 잘 알지 못하겠다고 하시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제가 그 부분을 다음 칼럼 글로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만, 요즘 제가 좀 바쁜 일이 생겨서요...그러나 반드시 언제 한 번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3.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신령한 예언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언이라기보다는 대언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보혜사 성령님께로부터 성도가 신앙생활을 더 잘 해 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써,  때로는 예언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말씀을 레마로 주시기도 한다. 곧 모든 양이 그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직통계시적 형태를 취하는 태도를 삼가야 한다. 우리(성도)가 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의 역활이시요, 사용되는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 안에 있어야만 한다. (행27:22-25) 

참고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시 속에는 크게 나누어 몇 가지 형태의 계시가 있는데 특별계시(예수 그리스도), 혹은 기록(문서)계시(성경),  일반(자연)계시로 나누어진다.

간단히 요약해, 특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고, 문서 계시인 성경 말씀 역시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요, 핵심은 인간 구원이다. 일반계시는 자연 속에서 (롬1:19-20절 참조)하나님의 뜻을 밝혀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현 세대에서 우리(성도)는 성경을 다시 쓸 수 있는 특별 계시, 혹은 문서계시는 받을 수도 없고(계 22:18-19절 참조), 또 받을 필요가 없다. 일반 계시도 자연 속에서 찾으면 되기에 우리가 다시 재창조를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성도)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란, 곧 성령님의 조명하에 특별계시를 통해서, 기록계시 속에서, 혹은 일반계시 속에서 찾아지고 들려질 수가 있으며 양으로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차원으로 해석돼야 한다. 성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손에 이미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하게 무릎 꿇고 기도하는 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따로 선지(예언자)학교가 필요치 않다고 본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14;26).”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대언의 영으로 주시는 말씀도, 반드시 다음과 같은 잣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이 되어져야만  한다.

a)  은사로서의 예언:
권면 하며 안위하며 덕을 세우기 위해서 대언의 영으로 증거(예언)할 수 있으나, 반드시 교회와 사람(개인)에게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말씀이 되어야 한다. (고전14:3절, 계시록19:10절 참조.) 사업이 잘될는지, 자녀가 학교에 입학 가능한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혼은 어떤지...등등, 이런 류의 점치는 형식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b)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신명기18:18-22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내가 고하라고 말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예수 그리스도)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 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c) 말씀을 들을 때 혹은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
 (때론 너무나 뜨거워서 부모가 돌아 가셨을 때보다 더 통곡을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큰 감동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24:32절 말씀 )”.

d)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자기가 기도하거나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생각이 머리에 주입된다. 이때 들려지는 말씀이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절하반절)".

e) 그 생각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레마로 머리에 정확히 떠오르거나 입술에서 터져 나온다. 성령님께서 예수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14:26절)

f) 다른 이가 예언 은사적 말씀을 받았을 때에도 예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같이 마음이 뜨거워진다. (눅1:41-45절)

g) 항상 선한 말씀이 아니고 때론 책망함과 바르게 함으로 탄식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절)”.                               

결론적으로
 이 혼탁한 세상에서 악한 영에 미혹 받지 말고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성령에 의해서 잘 인도되고 내 귀에 아무것도 들리는 것 없고 내 눈에 아무런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변하지 않고 온전하신 말씀 안에 내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겸손하게 주와 동행하는 성도가 복된 성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엠에스  모든 예언기도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신사도 운동가등 혼탁한 곳에서 쏟아내는 예언과 그들의 간증이 문제라는 예기신 것으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저도 그들의 예언과 간증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쁜신데 감사합니다.  7/12 18:58
 203.xxx.23
 
 별똥별  (모든 예언기도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언은 주님께서 원하는 시간, 주님께서 원하는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 교회에 (개인 교회 공동체 교회)주시는 은혜입니다. 따라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예언기도회= 여기서 (회)란, 그 시간이 바로 인위적인 예언 시간, 인위적인 모임이란 뜻이 내포되어있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 시간이 주님이 원하는 시간이라고어찌 말 할 수 있나요? 저는 예언기도회 자체는 온전한 주님의 영에 의해서 운행되어진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대답을 원하시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다음 칼럼 글로 준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12 20:01
 66.xxx.176
 
 엠에스  바쁘신데 감사하네요...이제 별 사모님의 말씀과 주장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한참 이해력이 떨어지네요^^ 이해해 주시구요... 우시는 모습의 표현을 쓰셔서 마음이 아픕니다.
어떤 의도는 정말 없구요...
제가 예언 사역자가 되려고 기도하고 있었고, 한 두달 신우회 목사님들을 통해서 훈련(?)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정이철 목사님과 사모님의 글을 보게 되어서 브레이크가 걸렸지요...
어정쩡하게 되어 속상했고 그래서 문의를 한 것이고 답이 정확히 인지가 안 되어서 다각도로 질문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되었는데 묵상과 고민을 해 보겠습니다. 다음글에서 질문을 계속해서 해도 될런지요?
무례한 사람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7/12 22:42
 203.xxx.23
 
 별똥별 
저도 엠에스 님께서 무례한 분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아니, 오히려, 주님의 사랑받는 분이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간단하죠. 말(언어)은 그 사람의 혼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듯, 엠에스 님의 말씀은 곧 엠에스 님 자신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남긴 글이나, 언어에는 그 사람의 향이 묻어서 배어나오지요. 그런 이유로, 엠에스 님을 조금은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받는 아드님심을요.제가 우는 표정의 아이콘을 선택한 것은, 그렇게 귀한 분이 엠에스님이시란 것은 알겠는데,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이 다른 이에게 제대로 전달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였습니다.이점 오해가 없으시고 주님 안에서 계속 좋은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7/12 23:10
 66.xxx.176
 
 Humble  "예언은 주님께서 원하는 시간, 주님께서 원하는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이것이 바로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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