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독교적 진보사상의 뿌리와 철학에 아부하는 신학 > 지난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페이스 상패 제이미 제이미혜택



이곳은 2017년 이전에 올려진 아멘넷 오피니언 칼럼 글입니다. 이름으로 찾으실 수 있습니다.
황상하 | 김동욱 | 최송연 | 허경조 | 이수일 | 송흥용 | 김정국

지난 오피니언

반기독교적 진보사상의 뿌리와 철학에 아부하는 신학

페이지 정보

황상하2008-09-18

본문

희랍 철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희랍에 있어서는 종교가 자유로운 철학적 사고를 제한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그리스에는 고대 제국이나 동양에서처럼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 사제 계급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은 이성적 사유가 발전할 수 있는토양으로서는 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이성적 사유의 열매로서의 희랍철학은 필연적으로 기독교의 계시와 충돌하게 되는 이유가되었습니다. 기독교 복음을 처음 접하게 된 희랍철학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무식한 자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하였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논리적 설득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식의 유무나 철학적 사고와 상관없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에게 받아들여졌지만 기독교는 복음을 변증하고 전파하는 일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노력의 결과 중세기에 이르면 기독교 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신학의 발전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는가 하면 부정적인 측면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중세가 암흑기가 된 것도 신학이 모든 학문의여왕으로서 누렸던 절대권력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학문의 여왕으로서의 신학이 서구 사회에 끼친 영향은 서구의 모든 사상과 학문을이론적인 것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론적인 것은 희랍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서양 사람들의 머리에 집어넣은 것은 기독교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도도하게 권력과 영화를 누렸던 신학이 13-14세기에 문예 부흥(the period of the Renaissance)의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인문주의자들(humanists)은 모든 학문에서 히브리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희랍적인 요소를회복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신학에 대해 비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신학이 한번 기우뚱했지만 여전히 여왕의 자리에서 물러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자연과학(natural science)의 발전에 의해신학은 좀 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16,17세기 갈릴레오 사건입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형편을대변해 주는 사건인데 그 때 자연 과학과 신학이 대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 과학과 신학이 대결하여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a campaign for enlightenment)입니다. 계몽주의를 여러 가지로 정의 할 수 있고특히 인문학에서는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만 계몽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특징은 반기독교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불란서에서 많은계몽주의 학자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다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그 때 무신론의 교과서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무신론자들로 구성된백과사전학파가 생겨났습니다. 그 백과사전학파들 중에 볼테르를 제외하고는 무두가 무신론자들이었는데, 볼테르는 도덕을 위해 그자신이 믿지도 않는 신을 도입한 것뿐입니다. 신이 없으면 우리가 도덕을 위해 신을 하나 만들어야 하되 마담과 그 아들에 대하여는우리가 알바가 없다고 하였는데, 마담은 마리아이고 그 아들은 예수를 가리킵니다. 즉 마리아나 예수에 대해서는 상관할 것도 없고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계몽주의 정신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정신을 이어 받은 것이 포이에르바하의 무신론이고,그의 무신론을 이어 받은 사람이 칼 마르크스입니다.

계 몽 시대 끝에 독일에서 유명한 철학자 헤겔이 등장합니다. 헤겔은 자기 자신이 훌륭한 루터교 신자라고 생각하였고 프러시아왕국에서는 헤겔에게 훌륭한 기독교 철학자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오늘날은 헤겔을 기독교 철학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당시는 헤겔에 대하여 자타가 훌륭한 기독교 철학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헤겔의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아니고, 그는범신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 사람들이 헤겔을 위대한 기독교 철학자요, 훌륭한 루터교 신자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많은신학자들이 헤겔의 철학적 영향을 받아서 신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경우가 David Straus인데, 그는헤겔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헤겔의 정반합의 논리를 적용하여 베드로파는 정, 바울파는반, 합은 사도행전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의 책을 읽고 신앙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은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엥겔스입니다.칼 마르크스와 함께 자본론을 쓰고 공산주의를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 엥겔스는 고등학생 때까지는 매우 경건하고 독실한 신앙을가지고 있었는데 신학자가 쓴 책을 읽고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19세기의 신학은 헤겔에게 아부를 하든지 그 때 일어난 자연과학에 아부를 하든지 두 종류의 아부를 하면서 새로운 신학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자유주의신학입니다. 독일의 성서학자 벨하우젠(Wellhausen, Julius)은 자연과학에 근거하여 문서설을 통해 구약성경에 칼질을하여 성경을 완전히 해체시켜버렸고, 그 결과 19세기 구라파의 교회는 다 죽어버렸고 교회당은 사교장이 되어버렸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라는 책은 당시의 교회의 형편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명력을 잃고 완전히형식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 죽어버린 구라파의 교회를 다시 살린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스위스의 신학자 칼바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자유주의로부터 구라파의 교회를 살리는 데는 공헌을 하였지만 그의 신학은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에 아부를 하여 생긴 신학이었습니다. 칼 바르트는 에밀 부룬너와 함께 덴마크의 철학자키에르케고르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신학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 실존주의 신학이 2차 대전 이후에 크게 유행하여 많은 영향을끼쳤는데 1960년대에 와서는 실존주의 신학과는 정반대의 신학인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이 등장하였습니다.

정치 신학자들이 눈을 돌린 철학자들은 칼 마르크스와 신 마르크스주의자들입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헤겔과 자연주의에 아부를했고, 20세기 초의 실존주의 신학은 키에르케고르와 야스퍼스, 하이덱거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아부를 했고, 1960년대에일어난 정치신학은 칼 마르크스 및 신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아부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진보적인 교단에서 칼바르트의 실존주의 신학을 받아들였다가 1960년대 이후 정치신학이 나타나자 또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실존주의 신학과 정치신학은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한 때는 실존주의 신학을,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정치신학을 받아들이자 그러한 신학에 영향을 받는일반인들은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양심적으로 실존주의 신학을 포기한다고 양심선언을 하였지만 대부분의신학자들은 어물쩍 넘어가버렸습니다.

자유로운 사유의 열매로서의 철학이 진보적인 사상을 낳았고 진보적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신학은 철학에 아부를 함으로서 그독자성(identity)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신학이 성경으로부터 시작하는 신학이 아니라 상황으로부터 시작하는, 그야말로학문으로서의 신학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보주의의 뿌리는 자유로운 사유의 철학이고 그 철학이 낳은 반기독교적 계몽주의는 자유주의신학을 낳았으며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해체하여 교회를 사교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절대적권위를 상실한 증거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거룩한 공통체로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장으로변화되어 가는 것이고 이러한 현대교회는 19세기의 구라파 교회의 닮은꼴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골 2:8, 살전 2:4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아멘넷의 시각게시물관리광고안내후원/연락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Flushing, New York, USA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