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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알맹이 있는 소망 ‘새 사람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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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7-01-08

본문

사람들은 새 해가 되면 희망을 갖습니다. 새 해라고 하지만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묵은 달력 떼어내고 새 달력 거는 것 말고 모든 것은 그대로입니다. 옛 시조에도 “새 해라 하여 시비를 열어보니 예 돋은 해 또 돋아온다.”고 하였습니다.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역사에서 긍정적 미래관을 도입한 것은 기독교였습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본 사상은 희랍철학에도 동양사상에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역사가 흐르면 점점 나빠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황금시대는 과거였지 미래였던 적이 없습니다(The golden age was never the present). 요즘 한국에서 “황진이”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황진이의 시 중에 “산은 옛 산이로되”라는 시가 있습니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쏘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도다.” 황진이도 세월이 흐르고 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부정적 미래관이 지배적인 세상에 어거스틴에 의해서 성경의 긍정적 미래관이 도입되었습니다. 세상은 황금시대가 과거에 있었다고 하지만 성경은 황금시대가 매래에 있다고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소망이나 희망은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여 희망적인 생각과 소망을 갖는 것은 전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교의 사상과 세상의 철학에는 소망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것이 기독교의 영향이라는 것을 모를 것입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기독교 외에는 희망도 소망도 없습니다. 불신자들이 희망과 소망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사실상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결심도 새롭게 하고 희망도 가집니다. 그러니까 내용이 없는 막연한 희망입니다.
알맹이 있는 소망은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현재도 미래에도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습니다. 전도서 기자가 말한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허무하고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허무한 인생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될 때 소망이 생기고 희망적이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들에게 희망이요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실 그 일이 우리 신자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일도 중요합니다. 그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있고 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죄 범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 그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런 과거가 없다면 지금의 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가 중요하지만 과거가 만들어 놓은 지금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나를 위해 하신 하나님의 일은 현재와 미래에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거는 아무리 중요해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황금시대가 있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그리워하며 집착합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학벌, 좋은 가문, 옛날에 부자였던 것, 과거에 성공했던 일, 업적, 공로, 상, 심지어 선행까지도 과거의 것은 다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새 일을 바라보아야 할 이스라엘에게는 엄청난 구원의 사건인 출애굽 사건도 잊어버려야 할 일에 불과하였습니다(사 43:18).

출애굽 사건은 나쁜 일도 아니고 미미한 일도 아닙니다. 크고 위대한 일입니다.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무엇인가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은 과거에 하신 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그리고 장차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는 성취되었고 또한 계속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구원 받은 신자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새 일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인간에 의해 초래되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을 새롭게 하는 것이 원인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이 새롭게 하신 인간을 통하여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새롭게 하실 일에 역행하고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에 부동산 값을 잡도록 하겠다고 하였고, 고용 없는 경제 성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실정을 탓하는 일에만 열을 올리고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고용 없는 경제성장은 이 시대가 풀지 않으면 성장이 재난이 될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심각한 난제입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매년 4∼7%의 높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오히려 높아지는 고용 없는 경제 성장이 지속되고 있고, 특히 청년실업의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서 25세 이하의 실업률이 25세 이상의 실업률보다 세 배나 높은 실정입니다. 시장경쟁이 심화되고, 경제 주체 간 지식ㆍ정보격차가 확대 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소득 계층 간의 격차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층 간 격차의 심화는 소비를 위축시켜 결국 경기 침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심각한 현실적 문제는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고, 기업인들만의 문제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기를 원하시는 문제입니다. 그 일에 신자가 무관심하면 안 됩니다.

또 하나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환경문제입니다. 뉴욕시는 129년 만에 ‘눈 없는 12월’을 보냈습니다. 뉴욕시에는 지난 4년 간 매년 40인치 이상의 눈이 내려 평균 강설량인 22.4인치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눈이 내렸습니다. 12월에 눈이 내리지 않은 곳이 뉴욕만이 아닙니다. 바르샤바와 부다페스트, 베를린, 빈, 스톡홀름에서도 거의 눈이 내리지 않거나 아예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야로슬라블 동물원에서는 동면에 들어갔던 곰이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고 합니다. 저의 집 뜰에는 지난 가을에 떨어진 씨에서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대기의 온실효과는 적당한 지구의 기온 유지를 위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런 온실 효과가 없다면 지구의 온도는 화성처럼 낮에는 뜨거워서 견딜 수 없고 밤에는 추워서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태양빛이 지구에 비췰 때 약 50%는 대기에 반사되어버리고 50%만 지구표면에 도달합니다. 이때 지구 표면에 의해 흡수된 빛에너지는 열에너지나 파장이 긴 적외선으로 바뀌어 다시 바깥으로 방출하게 됩니다. 이 방출되는 적외선은 반 정도는 대기를 뚫고 빠져나가지만, 나머지는 구름이나 수증기,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효과 기체에 의해 흡수되어집니다. 그리고 온실 효과 기체들은 다시 지구 표면으로 되돌려 보내집니다. 이와 같은 작용을 반복하면서 지구를 덥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온실효과는 지구를 항상 일정한 온도로 유지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자원의 과도한 사용으로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지나치게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주거를 위한 목제와 종이 등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삼림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매년 목재를 얻기 위해 나무를 베어 내고, 농경지와 목축지를 늘리기 위해 없어지는 삼림이 50만 에이커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산화탄소는 산림이나 해양이나 식물이나 토양에 의해 흡수됩니다. 산업과 농업 활동으로 대기 중에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년 간 약 70억 톤이라고 합니다. 이 중 대략 반 정도가 해양이나 식물 및 토양에 의해 흡수되고 나머지는 대기에 그대로 축적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발생이 점점 증가하는데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산림은 점점 줄어드니까 대기권 안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고 많아진 이산화탄소는 그만큼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지구가 점점 더워지는 것입니다. 더워진 지구는 북극의 얼음을 녹여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이상기후를 일으키는데 이런 현상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나라들은 거의가 이산화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이 심각한 문제의 해결책은 이산화탄소배출을 줄이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은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림을 덜 훼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기술로도 대기 중에 한번 방출된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시계의 시침처럼 보이지 않게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해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소비와 낭비는 결국 이상기후를 일으키므로 저개발국가의 강 하류인 삼각주와 바닷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가하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과 과학적인 기술에 우리의 미래를 건다면 우리는 한없이 불안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사람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계 21:1).“만물”이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창조물을 가리킵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과 보이지 않는 물질과 온갖 원리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할 수는 있는지만 자연의 법칙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을 만들 수도 있으시고 새롭게 하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신자들은 만물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새 사람 의식”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CEO 조용기'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조직경영과 리더십에서 신화적인 인물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조용기를 배워라!”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새 일은 신화적인 CEO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기업화된 교회는 하나님의 새 일에 기여할 수 없습니다. 교회 목사가 초일류 CEO로 평가 받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그 교회는 비정상적인 교회라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기업과는 성격이 다르고 그 존재의 동기와 목적과 원리가 다릅니다. 교회는 세상적 경영 원리로 세우고 성장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기 목사에 대한 이런 평가는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말해줌과 동시에 그 경영 원리와 리더십을 표방하는 많은 교회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통하여 성공이라는 환상을 좇아가는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 일에 대한 의식이 없고 관심도 없으며 그 일에 대한 가치의 소중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른 행동방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습관과 교회와 사회의 문화도 그런 가치관으로 창조해 가야 합니다. 개인 생활에서 이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고 또한 교회 안에서 먼저 이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돈 많고 권력과 인기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개인의 잘못이든 교회의 잘못이든 사회의 잘못이든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닌 것은 신속히 고쳐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성공 신화에 빠져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인의 잘못이나 교회의 잘못이나 사회의 부조리가 모두 남의 탓이고 그 결과 아무의 책임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문제투성이 교회에 문제투성이 사람이 모이는데도 회개의 메시가 없습니다.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온통 성공사례가 강단 메시지를 대신하여 신자들에게 성공신화를 좇아가게 만듭니다. 이대로는 교회가 세상의 등불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무엇을 새롭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창조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에 참여하는 것을 최선의 것으로 선택한 자들입니다. 세상의 사상과 철학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법과 원리와 목적을 따라 가야 합니다. 새 사람 의식을 가진 신자는 물질 만능주의를 배격해야 하고, 성공과 출세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하고,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성장위주의 자본주의 경제 원리의 피해도 막아야 합니다. 새 해에는 우리 모두가 새 사람 의식으로 소망 없는 이 세대에 알맹이 있는 소망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새 일”에 신실하게 참여하여 살았으면 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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