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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죄악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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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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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천지 만물 중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악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실제로 죄악의 궁극적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이론과 주장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악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하나님을 변호하고 나섰던 사람도 있습니다. 악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자는 하나님이라는 주장이 그렇지 않다는 주장보다 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론이나 사상이나 논리나 여론에서 하나님이 불리한 것 같은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이나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변호하거나 하나님께 도움을 드린다는 생각이나 태도는 인간의 주제를 모르는 무지요 교만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도 사실은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한 보답일 뿐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신학에서는 하나님을 자충족적인 분이라고 합니다. 일체 모자람이나 부족이 없으시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런 차원의 이해가 없으면 온갖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설에 휘둘릴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은 악의 근원을 타락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범죄한 일은 단순히 개인의 독립된 불순종의 죄가 아니고, 창조 세계의 대재난을 의미하는 사건임을 성경은 명백하게 가르칩니다. 그 재난은 인간 이외의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가족, 사회, 국가, 제도, 예술, 공학, 문화, 성(性), 식욕, 육체의 기능 등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란의 영역으로 끌려들어갔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는 타락이 미친 결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창조 제도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음을 우리는 실제로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와 독재, 총기 규제와 같은 특정 이익 집단의 압력에 의해 결정되는 국가 정책, 국제간의 산업 전쟁, 환경의 무분별한 개발과 자원의 낭비, 노동조합, 인종 차별 금지법, 인권이나 동물권을 옹호하는 단체까지 왜곡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화 영역에서는 천박한 예술 작품들과 그림, 음악, 시, 춤, 영화와 영상물 등도 왜곡상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학문 영역에서는 그릇 된 추론, 조잡한 방법론, 과학주의 등이 문제이고 효율성이 과학기술 세계에서 조차 지배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교회의 왜곡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디를 바라보든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왜곡되고 있음을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질서를 따라 살기를 거부한 행위의 결과입니다. 타락이 악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인간의 죄악이 인격적, 문화적, 사회적 왜곡으로 표현되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토양 자체까지도 타락으로 인하여 왜곡되어 농사가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은 본래의 선한 창조에서 왜곡되어 죄에게 종노릇 하여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으나 또한 모든 창조 세계는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궁극적인 해방이라는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전 인류에게 대 재난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로 인하여 죄악의 한계를 간과할 수 있습니다. 타락은 인간을 전적으로 무능하게 하였고 모든 피조물을 탄식하게 할 만큼 왜곡하였지만 죄가 창조를 파괴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의 성(性)이 심각하게 왜곡된 것은 사실이지만 죄가 하나님의 창조로서의 성의 선한 기능을 제거하지는 못합니다. 전체주의와 독재가 아무리 지독해도 하나님의 규례로서의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지는 못합니다. 죄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죄는 모든 피조물을 왜곡하였고, 악은 선의 왜곡으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 없다면 존재할 수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습니다. 창조 질서는 본래적인 것으로서 선을 대표하고 죄는 우발적인 것으로서 왜곡상을 대표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 패드에 이상한 카메라가 있습니다. 옵션에 따라 키다리로 찍을 수도 있고 뚱보로 찍을 수도 있습니다. 얼굴을 여러 모양으로 일그러지게 찍을 수도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온갖 형태로 일그러진 사진을 찍어도 일그러지긴 하지만 나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범죄로 타락한 이후 인간이 왜곡되긴 했지만 동물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입니다. 혼인이 왜곡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창조의 신성함은 있습니다. 세속화 된 가치관도 가치관이고, 손상된 인간관계도 관계이며, 혼란스러운 사고도 역시 사고입니다. 모든 것에는 각각 선한 창조의 고유한 것이 여전히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죄의 왜곡과 파괴성에도 불구하고 창조된 본래의 질서를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는 창조 세계에 낯선 침입자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목적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죄는 결코 하나님의 의도하신 존재가 아니고 창조의 영역에 속할 자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 속에 죄를 허용하는 이론이 있는데, 그런 이론은 결국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것이고 인간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입니다. 이성은 죄의식의 논리에 굴복당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짧게는 근대주의, 길게는 계몽주의까지 포괄하는 이성(理性)주의는 죄책을 피하기 위해 죄를 추상화 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죄의 왜곡에는 죄책을 면하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사변적이고 사회적이고 관습적이고 이원론적인 온갖 방법들이 다 동원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교회가 다 같이 효율과 성장을 교리화 하여 창조의 선한 질서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죄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죄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죄의 지배력을 무력화 시키는 가장 좋은 길은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전병욱, 오정현 목사가 왜 이 길을 택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울은 죄책을 피하려다 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다윗은 죄책을 인정하여 그가 죄를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타락이 인간을 짐승으로 바꾸지 못하였듯이 우리 그리스도인 개인이 짓는 죄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에서 사탄의 자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의로움이나 노력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죄는 한계가 있으므로 모든 이들이 죄의 지배력을 무력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죄를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창 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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