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영지주의(psuedo-gnos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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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13-03-3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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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기독교는 바울의 전도활동을 집요하게 방해하였습니다. 전도를 방해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왜곡하였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거의 율법주의가 되어 있었고, 율법주의란 결국 인본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경건주의의 모습을 하기도 합니다. 율법주의나 경건주의의 문제는 복음을 바꾸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바꾸려 하는 이유는 복음이 율법적 행위나 경건의 형식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이 율법주의적 삶의 정체성이나 경건주의적 삶의 정체성 모두를 해체시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복음을 바꾸려 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은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에 자기들의 마음에 맞는 하나님(우상)을 만든 것처럼 율법주의자들과 경건주의자들은 복음을 자기들의 마음에 맞게 바꾸려 하였습니다. 바울은 바른 복음 증거를 위해 이런 자들과 싸웠습니다. 그는 바른 복음을 왜곡하는 유대주의기독교와 싸우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여 곳곳에 교회를 세웠는데 마치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에게 샤머니즘의 영향이 남아 있듯이 초대기독교인들에게는 영지주의 영향이 남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지주의는 적극적으로 교회 안에 들어가 복음을 왜곡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흉악한 이리”라고 하여 경계하였습니다(행 20:29).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고대의 혼합주의적 종교 운동인데 워낙 그 형성 범위가 넓고 다양하며 그 영향 또한 복잡하여 간단하게 정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교부들의 문서들을 통해 알려진 영지주의는 정통 기독교에서 세력을 얻지 못하고 좌절을 겪은 배교자들이 창시한, 타락된 형태의 교의를 가진 기독교의 한 이단인 것으로 되어 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지주의의 교의 체계가 다양하여 특정 한 종교 분파 또는 단체로 규정할 수 없으며 기원 또한 기독교로 국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45년에 발견된 영지주의의 1차 문서인 나그함마디 문서들(Nag Hammadi library)을 통해 그러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가 가장 활발히 전개된 시기가 기독교가 태동하던 기원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영지주의 안에 종교와 철학이 혼합되어 있어서 교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기독교와 유산한 것들이 성경적인 것으로 오해할 위험이 많았습니다. 벌코프에 의하면 영지주의는 유대교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후에 기독교와 유대교를 혼합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영지주의의 내용은 혼합적이고 다양하여 반드시 영지주의가 아니라도 이방종교나 무속신앙이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신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그러한 요소들은 현대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유사영지주의(psuedo-gnosticism)라고 생각합니다.
영지주의가 기독교에 가장 크게 해를 끼친 것 중의 하나가 이원론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압니다. 현대 교회 안의 이원론적 요소들은 영지주의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이방종교를 믿거나 민간신앙을 가진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가지고 온 이원론이기도 합니다. 거룩하고 속된 것을 극단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원론의 영향입니다. 마귀도 피조물인데 하나님을 선한 신으로 마귀를 악한 신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원론적인 것이고, 영혼은 거룩하고 육체는 속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원론적이며, 성직은 거룩하고 세상 직업은 속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원론적입니다. 이런 종류의 이원론은 교회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이방 사상과 특히 다른 점은 시간관인데, 거의 모든 이방종교와 철학은 순환적 시간관을 가지고 있고 기독교는 선적인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랍의 철학이나 동양 종교, 특히 힌두교나 불교는 윤회를 믿고 영지주의자들도 윤회를 믿는데 이는 다 순환적 시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지주의 분파 중의 하나였던 바실리데스파의 창시자인 바실리데스는 사람이 구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죽었을 때 받는 유일한 벌은 이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때문에 오리겐은 화를 냈는데, 악한 행위를 하면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 데, 윤회는 그 ‘유익한 두려움’을 모두 사라지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반응도 옳은 것은 아니지만 윤회설이 도덕을 해이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영지주의자들의 윤회설이 도덕의식을 해이하게 하기도 하였겠지만 그보다는 이원론이 도덕성을 해이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의 영지주의자들이 일으킨 문제들은 윤회설 때문이 아니라 이원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육체가 쾌락을 추구해도 영혼은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이원론이 바로 그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이원론이 도덕적 방종을 낳게 하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은 쾌락을 탐닉하기보다는 오히려 금욕을 강조하여 성행위나 음식 등에 대해 지나치게 금욕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금욕주의는 중세 수도원운동과 그 이후 극단적인 경건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은 가톨릭교회의 중앙집권적인 권위에 반해 개인의 내면적인 경향 또는 판단이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에 이미 실존주의와 신정통주의와 상대주주의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 사상이 성경에 대한 개인의 견해나 해석을 중시하는 것도 영지주의 내지 유사 영지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통 기독교에서 구원은 “믿음”을 통해 얻는다고 하는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앎(영적 지식)”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영, 혼, 육의 세 요소로 구성된 존재로 보았으며, 현재의 영적 발달 정도에 따른 구분으로, 영적인 인간, 정신적인 인간, 물질적인 인간의 세 부류로 구분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 중 구원을 성취할 가능성이 가장 큰 부류는 영적인 인간, 즉 영지를 소유한자이며, 유대교인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인들은 정신적인 인간의 부류에 들어간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들 세 부류의 사람들 중 영적인 인간과 정신적인 인간만이 “영지”를 가질 수 있으며 물질적인 인간은 이번 생에서 영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구원파나 지성주의자들도 유사 영지주의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반대로 영지는 신비적 밀교의식을 통해 얻기도 하기 때문에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신비주의와 은사주의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따라서 신비한 체험이나 은사주의 또한 유사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절을 맞아, 영지주의 자들에게는 부활 신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구체적인 몸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온 인류의 구원자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땅에 묻혔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고난당하는 하나님, 죽어 땅에 묻히는 하나님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주장은 이성적이기도 합니다. 현대 기독교인들도 많은 경우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부활을 그런 식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죽을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활신앙은 죽음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육체가 없이 죽음이 가능하지 않고 죽음 없이 부활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임사(臨死)나 가사(假死)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실제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실제로 죽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절망입니다. 부활 신앙의 전제는 절망적인 죽음입니다. 죽음은 이 세상과의 모든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사건입니다. 고대 영지주의자들과 오늘의 유사 영지주의자들은 죽음까지 낭만적으로 해석합니다. 잠시 숨을 거뒀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는 의외로 죽음을 아주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모든 것이 끝장나는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는 주장들은 모두 이단입니다. 그런 자들은 교회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사건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부활에서 나오고 부활을 지향합니다. 초대교회에도 교회 안에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은 믿기 어려운 교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도 영지주의나 유사 영지주의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 15:12절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고대의 혼합주의적 종교 운동인데 워낙 그 형성 범위가 넓고 다양하며 그 영향 또한 복잡하여 간단하게 정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교부들의 문서들을 통해 알려진 영지주의는 정통 기독교에서 세력을 얻지 못하고 좌절을 겪은 배교자들이 창시한, 타락된 형태의 교의를 가진 기독교의 한 이단인 것으로 되어 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지주의의 교의 체계가 다양하여 특정 한 종교 분파 또는 단체로 규정할 수 없으며 기원 또한 기독교로 국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45년에 발견된 영지주의의 1차 문서인 나그함마디 문서들(Nag Hammadi library)을 통해 그러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가 가장 활발히 전개된 시기가 기독교가 태동하던 기원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영지주의 안에 종교와 철학이 혼합되어 있어서 교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기독교와 유산한 것들이 성경적인 것으로 오해할 위험이 많았습니다. 벌코프에 의하면 영지주의는 유대교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후에 기독교와 유대교를 혼합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영지주의의 내용은 혼합적이고 다양하여 반드시 영지주의가 아니라도 이방종교나 무속신앙이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신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그러한 요소들은 현대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유사영지주의(psuedo-gnosticism)라고 생각합니다.
영지주의가 기독교에 가장 크게 해를 끼친 것 중의 하나가 이원론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압니다. 현대 교회 안의 이원론적 요소들은 영지주의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이방종교를 믿거나 민간신앙을 가진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가지고 온 이원론이기도 합니다. 거룩하고 속된 것을 극단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원론의 영향입니다. 마귀도 피조물인데 하나님을 선한 신으로 마귀를 악한 신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원론적인 것이고, 영혼은 거룩하고 육체는 속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원론적이며, 성직은 거룩하고 세상 직업은 속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원론적입니다. 이런 종류의 이원론은 교회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이방 사상과 특히 다른 점은 시간관인데, 거의 모든 이방종교와 철학은 순환적 시간관을 가지고 있고 기독교는 선적인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랍의 철학이나 동양 종교, 특히 힌두교나 불교는 윤회를 믿고 영지주의자들도 윤회를 믿는데 이는 다 순환적 시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지주의 분파 중의 하나였던 바실리데스파의 창시자인 바실리데스는 사람이 구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죽었을 때 받는 유일한 벌은 이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때문에 오리겐은 화를 냈는데, 악한 행위를 하면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 데, 윤회는 그 ‘유익한 두려움’을 모두 사라지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반응도 옳은 것은 아니지만 윤회설이 도덕을 해이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영지주의자들의 윤회설이 도덕의식을 해이하게 하기도 하였겠지만 그보다는 이원론이 도덕성을 해이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의 영지주의자들이 일으킨 문제들은 윤회설 때문이 아니라 이원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육체가 쾌락을 추구해도 영혼은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이원론이 바로 그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이원론이 도덕적 방종을 낳게 하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은 쾌락을 탐닉하기보다는 오히려 금욕을 강조하여 성행위나 음식 등에 대해 지나치게 금욕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금욕주의는 중세 수도원운동과 그 이후 극단적인 경건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은 가톨릭교회의 중앙집권적인 권위에 반해 개인의 내면적인 경향 또는 판단이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에 이미 실존주의와 신정통주의와 상대주주의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 사상이 성경에 대한 개인의 견해나 해석을 중시하는 것도 영지주의 내지 유사 영지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통 기독교에서 구원은 “믿음”을 통해 얻는다고 하는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앎(영적 지식)”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영, 혼, 육의 세 요소로 구성된 존재로 보았으며, 현재의 영적 발달 정도에 따른 구분으로, 영적인 인간, 정신적인 인간, 물질적인 인간의 세 부류로 구분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 중 구원을 성취할 가능성이 가장 큰 부류는 영적인 인간, 즉 영지를 소유한자이며, 유대교인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인들은 정신적인 인간의 부류에 들어간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들 세 부류의 사람들 중 영적인 인간과 정신적인 인간만이 “영지”를 가질 수 있으며 물질적인 인간은 이번 생에서 영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구원파나 지성주의자들도 유사 영지주의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반대로 영지는 신비적 밀교의식을 통해 얻기도 하기 때문에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신비주의와 은사주의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따라서 신비한 체험이나 은사주의 또한 유사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절을 맞아, 영지주의 자들에게는 부활 신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구체적인 몸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온 인류의 구원자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땅에 묻혔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고난당하는 하나님, 죽어 땅에 묻히는 하나님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주장은 이성적이기도 합니다. 현대 기독교인들도 많은 경우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부활을 그런 식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죽을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활신앙은 죽음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육체가 없이 죽음이 가능하지 않고 죽음 없이 부활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임사(臨死)나 가사(假死)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실제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실제로 죽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절망입니다. 부활 신앙의 전제는 절망적인 죽음입니다. 죽음은 이 세상과의 모든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사건입니다. 고대 영지주의자들과 오늘의 유사 영지주의자들은 죽음까지 낭만적으로 해석합니다. 잠시 숨을 거뒀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는 의외로 죽음을 아주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모든 것이 끝장나는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는 주장들은 모두 이단입니다. 그런 자들은 교회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사건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부활에서 나오고 부활을 지향합니다. 초대교회에도 교회 안에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은 믿기 어려운 교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도 영지주의나 유사 영지주의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 15: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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