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관례”를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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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13-02-1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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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서는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과목”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반드시 이수해야 할 4대 과목은 위장전입, 병역면제,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라고 합니다. 이동흡씨가 지난 1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인해 지명 된지 41일 만에 사퇴하였고, 1월 24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인 김용준씨도 총리 후보자로 지명 된지 닷새 만에 자진 사퇴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가장 엄격한 도덕적 수준이 요구되는 법관 출신인데 국회 청문회의 산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김용준 씨의 경우 청문회의 검증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올곧은 법관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역시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을 비껴가지는 못하였습니다.
고위공직자 후보 청문회에서 테스트 받는 문제는 거의 앞에서 말한 소위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과목”에서 출제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부동산 투기와 자녀 교육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위장전입이라는 것이 바로 자녀 교육을 위해 좋은 학군을 찾는 학부모들의 “맹모삼천지교”에서 비롯되고, 또한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이 그 꿈을 실현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위장전입도 많았겠지만 자녀의 대학 진학과 내 집 마련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과열경쟁인 한국적 상황에서 위장 전입은 살아남기 위해 피해 갈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병역은 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실제로 병역을 면제받는 이들은 대개 힘 있고 돈 있는 집 자녀들입니다. 부동산 투기도 정말 힘없는 서민들은 그나마 할 수 없지만 웬만한 이들은 부동산 투기 혐의를 면할 수 없을 것이고, 탈세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국세청의 세무감사가 기업협박용으로 사용되는 것만 보아도 탈세가 얼마나 공공연한 관행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납세에 정직하다면 정부가 세무감사를 기업협박용으로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정황은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과목”이라는 것이 비단 고위공직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국민 모두의 4대 필수과목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국회청문회에 나갈 일만 없다면 4대 필수과목 이수가 문제될 것이 없는 데,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이 과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한민국에 고위공직자로 나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 중에 국회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없다면 대한민국의 고위공직자는 외국에서 수입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위공직자로 추천된 이들이 국회청문회에서 소위 4대 필수과목에 걸리면 한결같이 “관행” 혹은 “관례”라고 대답합니다. 관행이나 관례가 청문회에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국회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고위공직후보자를 마치 암행어서가 변사또를 닦달하듯이 하지만 국민들은 후보자를 닦달하는 국회의원들이 4대 필수과목을 후보자들보다 훨씬 좋은 성적으로 이수한 이들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직접 투표해서 뽑았기 때문에 “국민청문회”를 통과한 것으로 생각하여 당당한 듯이 큰 소리를 치지만, 만약 국회의원도 국회청문회와 같은 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면 “관행” 혹은 “관례”라는 말을 훨씬 뻔뻔하게 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명백한 범죄행위가 관례로 정당화 되고, 그 관례가 국민대다수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은 뒤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 총체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관례로 당연시 되는 범죄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고, 그런 것을 개혁해야 할 교회가 그런 필수과목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하고 있다는 징후가 우후죽순(雨後竹筍)입니다. 최근 한국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끄러운 일들은 “대형교회 목회자의 4대 필수과목”은 가짜 박사, 세습, 무제한의 목회할동비, 면책특혜가 될 소지가 농후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관례”라는 명분으로 저질러지는 범죄는 많습니다. 총회와 교회협의회들에서의 금권선거, 지나친 회의비 지출, 거마비, 임직자 특별헌금, 유명 강사들의 지나치게 많은 사례비 등도 관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출판하는 성서공회나 찬송가를 만드는 찬송가공회 같은 곳은 임원들의 회의비나 활동비가 가히 돈 잔치라 할 정도로 상식을 뛰어 넘게 지출되어 교단 총회에서는 누구나 그런 기관에 임원이나 위원으로 파송 받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대형교회에서는 수십억이 넘는 선교비나 건축비에서 이익을 챙기는 중직자도 있고 그 이권으로 인하여 분쟁과 싸움이 일어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모든 범죄 행위가 관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방의 천재입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모방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모방 충동이 예술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린아이 때부터 모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모든 것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 중의 하나도 모방하는 능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최근에 세계 학계에 혜성같이 타나난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르네 지랄(Rene Girad)인데, 본래 문학 평론가인 그가 여러 학문 분야에서 두루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의 이론 가운데 “모방욕망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이란 돈이나 욕망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인간은 돈이나 욕망이나 권력 자체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탐하는 사람을 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방욕망 때문에 사회에 갈등과 질투와 폭력과 온갖 범죄가 저질러지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희생양이 된 사람은 자기가 희생양이 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기독교의 십자가도 희생양 메카니즘으로 설명하는데, 십자가 희생양 메카니즘은 스스로를 인식할 뿐 아니라 자신을 드러냄으로서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런 설명이 죽어가는 기독교를 되살리는데 기여한 것으로 인정이 되어 화란 자유대학에서는 그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주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풍요로운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은 그의 모방욕망설의 타당성을 지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례나 관행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의 일종입니다. 특히 좋은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행동을 모방할 때 관행 또는 관례라고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이 좇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말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는 다 불법을 관행으로 자행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행을 거슬러 행동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나쁜 관행을 거슬러 행동하면 사람들이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왕따를 시킵니다. 그런 것이 힘들어서 사람들은 관행대로, 관례를 따라 행동합니다. 복 있는 사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관례나 허용을 따라 행동하지 말아야 하고 진리를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시편 1:1 -
고위공직자 후보 청문회에서 테스트 받는 문제는 거의 앞에서 말한 소위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과목”에서 출제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부동산 투기와 자녀 교육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위장전입이라는 것이 바로 자녀 교육을 위해 좋은 학군을 찾는 학부모들의 “맹모삼천지교”에서 비롯되고, 또한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이 그 꿈을 실현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위장전입도 많았겠지만 자녀의 대학 진학과 내 집 마련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과열경쟁인 한국적 상황에서 위장 전입은 살아남기 위해 피해 갈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병역은 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실제로 병역을 면제받는 이들은 대개 힘 있고 돈 있는 집 자녀들입니다. 부동산 투기도 정말 힘없는 서민들은 그나마 할 수 없지만 웬만한 이들은 부동산 투기 혐의를 면할 수 없을 것이고, 탈세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국세청의 세무감사가 기업협박용으로 사용되는 것만 보아도 탈세가 얼마나 공공연한 관행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납세에 정직하다면 정부가 세무감사를 기업협박용으로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정황은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과목”이라는 것이 비단 고위공직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국민 모두의 4대 필수과목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국회청문회에 나갈 일만 없다면 4대 필수과목 이수가 문제될 것이 없는 데,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이 과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한민국에 고위공직자로 나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 중에 국회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없다면 대한민국의 고위공직자는 외국에서 수입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위공직자로 추천된 이들이 국회청문회에서 소위 4대 필수과목에 걸리면 한결같이 “관행” 혹은 “관례”라고 대답합니다. 관행이나 관례가 청문회에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국회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고위공직후보자를 마치 암행어서가 변사또를 닦달하듯이 하지만 국민들은 후보자를 닦달하는 국회의원들이 4대 필수과목을 후보자들보다 훨씬 좋은 성적으로 이수한 이들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직접 투표해서 뽑았기 때문에 “국민청문회”를 통과한 것으로 생각하여 당당한 듯이 큰 소리를 치지만, 만약 국회의원도 국회청문회와 같은 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면 “관행” 혹은 “관례”라는 말을 훨씬 뻔뻔하게 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명백한 범죄행위가 관례로 정당화 되고, 그 관례가 국민대다수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은 뒤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 총체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관례로 당연시 되는 범죄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고, 그런 것을 개혁해야 할 교회가 그런 필수과목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하고 있다는 징후가 우후죽순(雨後竹筍)입니다. 최근 한국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끄러운 일들은 “대형교회 목회자의 4대 필수과목”은 가짜 박사, 세습, 무제한의 목회할동비, 면책특혜가 될 소지가 농후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관례”라는 명분으로 저질러지는 범죄는 많습니다. 총회와 교회협의회들에서의 금권선거, 지나친 회의비 지출, 거마비, 임직자 특별헌금, 유명 강사들의 지나치게 많은 사례비 등도 관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출판하는 성서공회나 찬송가를 만드는 찬송가공회 같은 곳은 임원들의 회의비나 활동비가 가히 돈 잔치라 할 정도로 상식을 뛰어 넘게 지출되어 교단 총회에서는 누구나 그런 기관에 임원이나 위원으로 파송 받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대형교회에서는 수십억이 넘는 선교비나 건축비에서 이익을 챙기는 중직자도 있고 그 이권으로 인하여 분쟁과 싸움이 일어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모든 범죄 행위가 관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방의 천재입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모방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모방 충동이 예술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린아이 때부터 모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모든 것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 중의 하나도 모방하는 능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최근에 세계 학계에 혜성같이 타나난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르네 지랄(Rene Girad)인데, 본래 문학 평론가인 그가 여러 학문 분야에서 두루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의 이론 가운데 “모방욕망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이란 돈이나 욕망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인간은 돈이나 욕망이나 권력 자체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탐하는 사람을 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방욕망 때문에 사회에 갈등과 질투와 폭력과 온갖 범죄가 저질러지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희생양이 된 사람은 자기가 희생양이 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기독교의 십자가도 희생양 메카니즘으로 설명하는데, 십자가 희생양 메카니즘은 스스로를 인식할 뿐 아니라 자신을 드러냄으로서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런 설명이 죽어가는 기독교를 되살리는데 기여한 것으로 인정이 되어 화란 자유대학에서는 그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주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풍요로운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은 그의 모방욕망설의 타당성을 지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례나 관행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의 일종입니다. 특히 좋은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행동을 모방할 때 관행 또는 관례라고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이 좇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말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는 다 불법을 관행으로 자행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행을 거슬러 행동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나쁜 관행을 거슬러 행동하면 사람들이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왕따를 시킵니다. 그런 것이 힘들어서 사람들은 관행대로, 관례를 따라 행동합니다. 복 있는 사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관례나 허용을 따라 행동하지 말아야 하고 진리를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시편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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