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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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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3-11-17

본문

“정체성”의 ‘정체(正體)’란 참된 본디의 형체, 또는 본심의 모양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정체성(正體性)”이란 환경이나 사정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의 개성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체성이란 언뜻 쉬운 말 같으나 참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사람들이 정체성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정체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미국에 이민 와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정체성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늘 직면하는 문제입니다.

제 아내가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대화중에 대한민국을 지칭해서 “우리나라”라고 하면 미국 선생님들이 네가 말하는 “우리나라”란 어느 나라를 말하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코리아를 말한다고 하면 “미국이 너의 나라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한답니다.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로 산지가 얼만데,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미국 시민권자로 이 나라의 보호를 받고 이 나라에서 일하고 이 나라에 세금내고 이 나라의 법을 지키고 살면서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데 아직도 우리는 심정적으로 대한민국이 우리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민자들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더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초등하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자기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약간의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100% 미국인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법적 정체성으로는 틀림없이 미국인이지만 정서적으로 인종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세대나 우리 자녀들의 세대에서도, 아니 몇 세대를 더 지나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다른 나라에 이민 와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만 이런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나라에 살면서도 마치 이방인처럼 취급되고 대우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가 없는 사회란 이 땅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인간 소외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해결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믿음 안에서 해결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설명이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정체성의 문제를 겪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문제로부터 해방되었으면서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노예해방이 되었는데도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노예처럼 살아가는 이들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에 대한 성경 말씀은 너무나 귀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에 대하여“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는 정체를 모르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실수가 많고 죄를 짓는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실 때문에 전도를 하면 심지어 “하나님 믿고 싶고 예수 믿고 싶어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 믿는다며 교회 다니는 놈들 보기 싫어서 교회 안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오죽했으면 불신자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이 “예수 믿는다는 놈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안타까운 사실을 사도 요한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학문이 깊어서, 좋은 학교를 나와서, 비즈니스에 성공해서, 인격이 훌륭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굳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된 자격을 말하자면 무자격이 자격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 되기에 무자격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서도 이 사실을 잘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고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도 이론적으로 관념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렴프시나마 알고 있지만 경험적으로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 사랑의 특별한 수혜자의 경험으로서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절에 )고 설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집 나간 망나니 탕자의 모습으로만 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것을 탓하지 않고 반대 논리로 이야기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논리와 합리성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논리와 합리성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불신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을 볼 때 망나니 탕자로만 보지 않고, 탕자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하나님 자녀가 되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탕자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특별한 하나님 사랑의 수혜 때문임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법적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 identity 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이 확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이 미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잘 모르는 정체성의 혼란 같은 것은 빅 딜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의 근거입니다. 우리는 이 정체성의 확신 위에 든든히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녀의 이 정체성 확신 위에 든든히 서 있다면 이념이나 이권이나 진영 감정에 휩쓸려 하나님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는 행동이나 말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갇힌 바울의 권면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십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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