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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성과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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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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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신학자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슐라이어마허 (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년 11월 21일-1834년 2월 12일)는 독일의 개신교신학자이며 철학자입니다. 그는 계몽주의 비판과 전통적인 개신교 사상을 화해시키려는 매우 인상적인 시도를 하였고 또한 성서비평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기독교 사상에 끼친 영향 때문에 “근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또한 “자유주의 신학의 시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운동은 슐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르트는 슐라이에르마허가 신학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연구가 아닌 인간의 종교성에 대한 연구, 즉 인간학으로 전환시켰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가 비록 학문적으로는 신학의 거장이지만 칼빈, 루터, 사도 바울로 이어지는 위대한 전통에 이르는 길을 슐라이에르마허에게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어서 19세기의 대 이단자로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현대의 정황에서 신학이 어떻게 가능하고, 현대 과학과 사상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어떻게 존립할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신학적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는 현대 세계관에 기초하여 기독교의 전통적인 진리를 현대의 정황에 맞게 재해석함으로써 현대 신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현대 세계의 도전에 신학적으로 응답한 최초의 신학자였다는 측면에서 현대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는 특히 신학 방법론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성경본문, 신조 및 교리를 신학의 토대로 삼는 전통적인 신학과는 달리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을 신학의 토대와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신학을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종교적인 감정을 기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신학을 계시에 대한 연구로부터 인간의 종교 의식에 대한 연구로, 신학의 중심을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의 신앙의 배경은 개혁 교회적인 가정과 모라비안 경건주의 교육이었고 사상적으로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철학적으로는 칸트와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개혁파 목사였으나 모라비안 경건주의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모라비안 교단은 종교 개혁의 선구자 후(J.Hus)의 감화로 15세기 모라비아와 보헤미아 지방에서 생겨난 보헤미안 형제단으로부터 기원했으며, 깊은 종교적 감정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보헤미안 형제단은 17세기 30년 전쟁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박해로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1725년 작센(Sachsen)지방의 헤른후트(Herrnhut)에서 진젠도르프 백작에 의해 재조직되었습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나이에 모라비안 교단 학교에서 경건 훈련을 받으면서 종교적으로 깊이 감화되었고, 외적, 내적으로 모라비안 교도가 되었는데 노년에 이르러서도 자신이 “높은 서열의 모라비안 교도”였음을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종교의 본질을 감정으로 간주한 그의 사상에 끼친 모라비안파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루터의 신학과 개혁교회의 신앙과 모라비안의파의 경건주의를 종합하여 감정의 신학을 만든 셈입니다. 철학적으로는 칸트와 플라톤으로부터 지대한 영향도 받았습니다.

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의 신학을 점검하고 지나가야 할 만큼 신학적 거장이면서도 이단자로 비난 받는 원인은 감정을 종교의 본질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정통 신앙에서도 감정을 소중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신앙의 본질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역사적이고 객관적 계시입니다. 객관적 계시는 변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그 객관적 계시로 우리에게 약속되고 성취되었으며 성령께서 그 구원을 이루시고 보증하셨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감정, 총체적 인격이 그 구원의 복음을 믿고 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같은 경향은 모든 것을 상대화시킨 현대철학과 사상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것이 상대화된 상황에서는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게 취급될 수밖에 없습니다. 느낌이 중시되는 상황에서는 무엇이든지 자극적이라야 효과가 있습니다. 현대 문학이나 예술이 점점 더 선정적이 되어 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미련하기가 미끼에 속는 물고기 같습니다. 디어드리 배릿(Deirdre Barrett) 하버드대 진화심리학 교수는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라는 저서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그는 진짜보다 더 ‘과장된’모형들이 본능을 더 강하게 자극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포르노가 남성을 자극하는 초정상 성적 자극이라면 여성에게는 로맨스 소설이나 멜로드라마가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이제 우리는 환경을 스스로 설계해 자연이 우리를 설계하던 그때의 환경에 보다 가까운 상태로 되돌릴 필요가 있고, 우리 주변에 불가피하게 남아 있는 초정상 자극들을 인식하고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최근에 재미있는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지닌 로스(Geneen Roth)가 쓴 “가짜 식욕이 다이어트를 망친다.”는 책입니다. 그의 주장에 상당히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고 또 무리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리가 있는 부분은 인간의 느낌이 가짜 식욕이나 자극에 속는다는 것이고 무리한 부분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정직하게 따르는 것이 이롭다는 논리입니다. 어찌되었건 감정지상주의가 지배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때에 시사하는 바가 자못 진지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배고프지도 않으면서 먹는 것에 지나칠 만큼 관심을 쏟습니다. 먹는 음식을 배가 고프기 때문에 찾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찾는 다른 많은 이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적 허기, 심리적 허기, 사회적 허기, 그 외에 다른 많은 이유 때문에 음식을 찾는다고 합니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분들은 필히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지만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그런지 다이어트에 집착하여 가짜 식욕에 휘둘리는 이들이 자꾸만 가짜 은혜에 휘둘리는 교우들의 모습과 오버랩 됩니다. 가짜는 가짜이기 때문에 때로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도록 선정적으로 선전하고 유혹합니다. 영화나 음식이나 설교까지도 지나치게 선정적이 되어가는 것은 절대를 상대화시킨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 - 롬 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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