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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전승과 역사성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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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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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는 삼위일체교리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신 자신의 특별계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은 곧 삼위일체교리에 대한 설명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삼위일체교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성령을 단순한 감화력이나 힘으로 봅니다. 단일론자들이나 신천지교에서는 한 하나님이 세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타난다고 하는 양태론적 단성론을 주장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삼위일체교리를 부인하는 이단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대부분 삼위일체교리를 나름대로 잘 설명하려다가 잘못 된 경우입니다. 기독교 교리 중에 삼위일체교리만큼 논쟁을 많이 불러일으킨 것이 없습니다. 삼위일체교리는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나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교리라는 말 자체가 가장 기본적인 논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셋이 하나이고 하나가 셋이라는 것이 삼위일체교리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삼위일체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되거나 오류에 빠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삼위일체교리는 기독교의 골칫덩어리인 셈입니다. 삼위일체교리는 성경 계시의 근간이기에 추호도 소홀히 할 수 없는데, 나름대로 설명을 하려고 하면 오류에 빠지게 되니 골칫덩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교리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니까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해버리면 그만인데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 권위의 말씀이고, 그 성경에서 삼위일체교리라는 용어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을 계시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교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골칫덩어리 삼위일체교리가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삼위일체교리가 기독교 교리 변증에 있어서 온갖 이단과 오류로부터 바른 교리와 신학과 신앙을 지켜온 보배임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의 지식이나 지혜로 하나님을 설명하려 했다면 절대로 삼위일체교리 같은 것은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이 골칫덩어리 삼위일체교리가 또 한편 기독교의 보배 중의 보배인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에서나 기독교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나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으로가 아니라 인간이 납득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류는 한 순간에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시계의 시침처럼 사람이 느끼거나 인식할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순수한 신앙적 동기에만 의존하면 안 되고 전승과 역사성에 의존해야 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성령님을 의존해야 하지만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방법이나 성령님의 인도에서 역사성을 발견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앙에 있어서 진정성과 순수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역사성이고 객관성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경계하시면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눅 7:20)고 하시므로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것이 직관이나 순수성이 아니라 역사적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진리와 비 진리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를 전제한 말씀입니다. 인간 마음의 상상하는 것과 생각까지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열매로 확인할 필요 없이 참과 거짓을 아시지만 인간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열매가 맺는 것을 보고서야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교회는 교리와 신학의 역사성을 매우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지식과 지혜가 아무리 탁월해도 역사를 능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역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모든 것은 역사적 과정을 거처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10억년짜리 지구나 30살(?) 먹은 아담을 창조하실 수 있지만 인간을 비롯한 현존하는 모든 창조물은 역사의 과정을 거처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어린아이와 어른은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다른데, 인식의 대상이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능력이 자라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도 역사의 과정을 거처 밝히 드러난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과거보다는 지금, 지금보다는 미래에 하나님의 계시가 더 확연해 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역사가 곤두박질 치기도하지만 의미 없는 역사는 없습니다. 교회와 교리나 신학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이 다 불완전하지만 그것들의 역사를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오만이며 교만입니다. 우리는 관념적으로 역사성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신앙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실제적으로는 자기가 속한 교단의 역사나 전통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의도적이라기보다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에 대한 무지는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부터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는 교만과 역사를 이어가려는 열정의 부족까지를 포함합니다. 사도신경은 완전하지 않지만 많은 교회들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것을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고 성경에도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믿는 성경이 정경으로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에서 불완전한 사도신경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성경 계시와 교리나 신학의 역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이나 교회는 비교적 건전하지만 그 역사성을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하는 개인이나 교회는 거의 잘못되거나 바른 교회에 긍정적 기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인기의 바람을 타고 대중에게 어필하는 교회 지도자나 교회는 얼마 가지 않아 진리에서 파선하는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도 역사에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해석이나 교회의 전통이나 교리나 신학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장로교회에 속한 지도자나 교인들은 장로교의 역사를 존중해야 하는데, 이것은 다른 교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리나 신학이나 교파도 완전하지 못하지만 누구나 그가 속한 교단의 역사에 의해 보호받아야 합니다. 알프스를 오르는 사람은 그곳의 안전수칙을 존중해야 하고,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은 설악산 등반의 안전수칙을 존중해야 안전합니다. 장로교 목사가 장로교 교리나 신학이나 목회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은 알프스를 등반하면서 설악산 등반 수칙을 생각하거나 알프스 등반수칙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개인보다 역사적 과정을 통한 검증이 더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장로교에 머물러 있는 것은 장로교의 모든 것이 다른 교파의 것보다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개인의 지식이나 지혜나 판단 능력보다 역사성을 존중하여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지엽적인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역사성을 존중해야 하는 맥락에서 전통적 예배방식을 쉽게 무시하거나 교단을 쉽게 옮기는 목회자의 태도는 건전하거나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지도자는 역사를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와 지혜와 덕으로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주관적으로 하나님을 깨닫고 체험하게도 하시지만 진리의 계시가 희미했던 과거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하여 보듯이 진리가 확연하게 될 미래를 향하여 역사적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고전 13: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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