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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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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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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삶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려면 그 관계에 집중해야 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머리로는 받아들여지는데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현실감이 없이 공허하다는 것을 누구나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머리와 마음의 일치, 또는 이론과 실제의 일치란 주님 오실 때까지는 우리가 도달하기에 불가능한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고 한 것이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 경지에 도달하려고 출가하여 수도사가 되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인식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붙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그래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 또는 틈틈이 경험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한 해답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이 하시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현실적으로 더 다급한 것들이 우리에게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돈, 명예, 직장, 가정 등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에 집중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시에 집중합니다. 그들은 음악이나 시에 집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각각 시와 음악을 경험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흙과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물이 쉬이 빠져버리는 모래흙인지 물을 오랫동안 머금을 수 있는 퇴적물로 이루어진 흙인지 조사하고 관찰하고 각각의 흙에 적합한 작물을 재배하여 수확하는 것으로 땅을 경험합니다. 또한 200평 한 마지기가 나의 땅이라고 할 때는 땅의 넓이를 의미하지만 나의 땅이 타인 소유의 땅과 맞닿아 있는 경우 농부는 자기 땅을 넓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흙으로 이해하고 경험합니다. 이것은 실제 농사를 지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해가 불가능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 위의 예들과 같은 것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을 좀 더 실제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 능력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과 직접 관계를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맺으시고 그 관계에 집중하여 살기를 바라십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께 냉수 한 그릇 직접 대접할 수가 없고 마른 빵 한 조각도 직접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 나눠 주는 것이나 배고픈 사람에게 빵 한 조각 나눠 주는 것을 당신께 하는 것으로 카운터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방법과 뜻을 우리는 너무 쉽게 오해하고 곡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비난합니다. 자기의 인식능력이 얼마나 나이브한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범인을 정죄하는 법정에서의 검사처럼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 정의와 사랑을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고 참으시고 용납하시고 기다리시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보다 더 정의로운 것처럼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이런 것이 흔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입니다. 왜곡된 자신의 인식능력을 절대화 하는 그 확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식 능력으로는 바람을 타고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 나뭇잎 하나에 대해서도 다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현상적으로는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창문으로 날아들어 왔는지, 그 나뭇잎 하나와 우주 전체와의 관계와 얽힌 사연은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바람에 날아다니는 나뭇잎 하나에 대해서도 우리의 인식 능력으로 그 사연과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다면 하나님을 닮은 사람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과 실수와 잘못이 부족이 아니고 실수가 아니고 잘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하고 삼가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아는 것만 말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복음 진리가 왜곡될 때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싸웠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실 때는 머뭇거림 없이 자신을 의의 병기로 기꺼이 내놓았지만 그들이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겼던 덕목 중 하나가 침묵이었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라는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을 핑계로 하지 않아도 되고 더욱이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게 되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욥기 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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