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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윤리적 종교 아니지만 윤리적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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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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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일반 다른 종교와 다르다는 사실은 정통 기독교 안에서는 이미 인정된 사실입니다. 종교 행위로서 교회에 습관적으로 출석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믿음의 생활이 아니며,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의 종교심을 이용하는 것은 사교나 이단의 특징입니다.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고 있는 사람은 소수뿐이라고 하였습니다(마 7:13-14). 또한 사람들이 “주여! 주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보아 많은 기독교인들이 종교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교회 밖의 우상 숭배자와 사교나 이단이 아니라 다수의 소위 건전하다고 생각하는 교회 안의 그릇된 믿음을 가진 지도자와 신자들입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하여 나타내신 바를 잘 깨달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종교는 사람이 초인간적인 위력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신뢰의 감정을 느끼며 희생을 바치고 기원, 예배하며 나아가서는 제사의식을 행하고 의무 관념에서 복종, 종사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정도만으로는 종교라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종교에 대한 정의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종교의 현상이 그만큼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종교의 정의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라고 합니다. 이것도 물론 유신론적 관념을 중심으로 종교를 정의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유신론적 종교 개념에 해당하지 않는 종교도 수 없이 많습니다. 원시적인 종교형태에서 볼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나 정령을 믿는 애니미즘이나 불교나 인도의 자이나교(Jainism) 또한 여기에 속합니다. 이러한 종교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고 초자연적인 힘과 인간과의 관계 혹은 초인간적인 원리와 인간과의 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종교이든지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인간 이상의 어떤 실재와의 관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종교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나 인간 삶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모든 교의가 하나님의 계시로서 초자연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종교에서는 어떤 우주적인 힘이나 원리의 개념이 중심이 되고 그에 대한 신비적인 체험이나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가르침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기원에도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가 없었던 시대가 없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인간은 종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칼빈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종교적의 씨를 심어 놓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고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는 보편적인 인간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종교의 출현 원인 중의 하나가 공포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기를 보존하려는 동기에서 종교가 발생하였다고 하지만, 이러한 이론을 성경적으로 설명한다면 죄가 공포, 즉 두려움의 원인입니다. 소원성취에 대한 욕구에 대한 방해를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종교가 생겼다는 설명도 있고, 지배계급이 자기들의 지위와 세력을 보존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또한 지고한 신을 신앙함으로써 종교가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고, 마술이 최초의 종교형식이라고 보는 설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유력한 설은 토테미즘인데, 토템이란 원시인과 친밀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식물이나 동물을 말합니다. 모든 사물을 인간 생명과 같이 살아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 즉 물활론적 기원설도 있습니다.

한국에도 다양한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및 다수의 민족종교와 신흥종교가 있고 무속계의 종교도 있습니다. 현대는 거의 모든 종교가 혼합주의적 경향을 보이지만 한국의 종교는 생태적으로 혼합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러 나라에서는 종교가 혼합주의를 거부하면서 혼합주의로 이행하지만 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한 종교가 다른 종교의 가치관을 별다른 거부감이나 긴장 없이 수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의 인생관은 불교적이고 행동은 기독교적이고 인간관계는 유교적이고 운명관은 무속종교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종교도 나름대로 수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고등종교와 하등 종교가 있는데 이를 나누는 기준은 그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고급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를 고등종교라고 하고 하급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를 하등종교라고 합니다. 고급 가치란 사랑이나 정의 같은 것이고, 하급 가치는 돈이나 권력 같은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이러한 가치 추구는 곧 윤리로 드러나게 됩니다. 기독교는 고급 가치를 존중하는 고등종교라고 할 수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는 윤리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윤리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것은 윤리적 가치, 즉 고급 가치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인간이나 인간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일반 종교와 같이 성실과 진정성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에 다가가고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인간 영혼 구원을 포함하여 사회복지와 만물의 회복, 나아가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창조까지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기독교의 교리와 가치관은 윤리적인 실천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사실 기독교의 윤리는 일반 종교에서 강조되는 측면에서의 윤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즉 기독교는 선행으로 궁극적 목적에 다가가는 일반종교와 다릅니다. 기독교는 선행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궁극적 목적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윤리를 강조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교리를 편협하게 이해하거나 왜곡하게 되면 비윤리적이 되어 그러한 신앙을 가진 자신들이 불행할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와 나아가서 모든 사람에게 가공할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세월호의 참사는 기독교에 의미심장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라는 사이비 기독교가 발생하게 된 토양은 고급 가치 즉 윤리의식이 전무하고 하급 가치만을 추구한 교회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한국적 기독교의 토양에서 구원파라는 사이비 기독교가 돋아나 거대한 암 덩어리로 변하였습니다. 유병언의 구원파와 관련된 모든 집단에서 윤리의식이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교리 자체가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인 윤리적 의무를 신앙의 이름으로 해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와 세월호는 하급 가치를 추구하는 극단적인 비윤리적 집단이 언제라도 일으킬 수 있는 테러와도 같은 경우이지만, 적지 않은 교회들이 구원파보다는 덜 극단적이지만 가치 질서를 무시하는 수준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습니다. 세월호, 청해진해운의 기업운영 수준과 같은 교회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사건들을 열 손가락으로 다 카운트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몇몇 교회와 지도자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는 듯합니다. 마을에 도둑이 들어 사람들이‘도둑이야!’고 하면 도둑이 제일 먼저 몽둥이 들고 설쳐대듯이 구원파와 별반 다르지 않는 윤리 수준의 교회 지도자들이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하고 겸손과 경건의 모양을 하고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역겹습니다. 제2, 제3의 세월호가 언제 테러처럼 다가올지가 예측불허입니다. 세월호는 청해진이나 구원파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상식과 질서가 무시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세월호 같은 참사는 잠재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법과 기업윤리와 인권을 무시하는 기업인과 그것을 감독해야 할 공무원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통속이 되어 만들어 낸 것이 세월호 참사입니다. 9.11사건에서 보았듯이 문명의 이기가 비윤리적인 인간과 만나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가공할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법과 질서와 상식과 윤리를 무시하는 가치관입니다. 청해진해운의 가히 야만적이라 할 수 있는 비윤리적 경영수준과 그것을 묵인하는 공무원의 비리가 어쩐지 문제가 되고 있는 몇몇 교회들과 그 문제를 묵인하는 노회나 총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습니다. 법과 질서와 윤리와 상식 같은 보편 가치를 무시하는 집단은 기업이나 교회나 세월호처럼 테러와 같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가 윤리를 강조하는 것은 여타 종교처럼 윤리적 행동, 즉 착하고 선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의 마땅한 태도로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윤리를 무시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리는 성경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 요일 3:10, 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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