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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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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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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따라 예배 드리는 형태와 횟수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가 바른 것인지, 일주일에 몇 번 드리는 것이 적당한 것인지 단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고 여러 번 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하루 종일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던 20-30년 전 한국 기도원에서도 하루 종일 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려야 되는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전부터 그렇게 드려왔으니까 정기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 세상살이에 쫓기면서도 정기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기만 하면 되지 굳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정한 시간과 정한 장소에 함께 모여서 예배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교회주의자들의 주장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나”라는 개인 혼자서는 정체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정체성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담 한 사람뿐이었다면 이름도 필요 없고 성도 필요 없고 정의도 사랑도 윤리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그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말 속담에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고 합니다. 가까운 이웃이란 서로 오가고 주고받는 실제적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회에는 형식적인 인관 관계도 필요하지만 형식적인 관계는 충분히 인격적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는 형식적인 인간관계만 가지고도 별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정직하게 물건을 팔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가족관계는 정직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실성만으로도 안 됩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상대의 모든 것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시간과 정성과 인내와 배려와 물질과 그 외 온갖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만 가지고 사랑을 할 수는 없습니다. 대화도 해야 하고 이해도 해야 하고 오래 참고 기다는 것도 필요하고 계산 없이 주기만 하는 희생도 필요합니다. 거기에 참된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배도 그런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 된 자의 거룩한 교제입니다. 하나님께 혼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드릴 때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사람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것인데,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혼자로서는 불완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많은 자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녀들이 함께 더불어 예배를 드릴 때 더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가 적은 수의 사람이 드리는 예배보다 더 온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데는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회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이 사실의 전제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혼자서는 부족합니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아무리 사이가 좋다고 해도 다른 모든 가족을 무시하고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배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 지고, 하나님의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예배를 이해하면, 왜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 왜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 예배에 왜 이런 순서가 필요하냐는 등의 어린아이 같은 질문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예배가 따분하고 지루하고 형식적이 되고 예배에 참여하면서도 냉소적이 되는 이유는 예배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그것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임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종종 예배의 형식이나 분위기를 문제 삼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문제는 형식과 분위기보다 예배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합니다. 만약 어떤 분이 여름휴가 계획을 세웠다면 그 휴가가 즐겁고 보람된 휴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할 것입니다. 필요한 돈, 옷, 신발, 화장품, 수영복, 등산복, 시간, 건강, 스케줄 등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부족하지만 아무튼 즐겁고 보람된 휴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합니다. 예배도 그런 마음과 정성과 성실함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복음이나 구원을‘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이해의 토대 위에서 개혁자들은 ‘예배’란 하나님 자녀들에게 있어서 삶의 꽃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은 이 예배, 즉 제사에서 삶을 꽃피웠습니다. 그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뒤 광야생활을 하면서 이동이 가능한 성막을 세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가나안 정복 시대를 거쳐 예루살렘에 솔로몬 성전을 건축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성전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입을 옷, 성전에서 사용할 기구, 제사 드리는 절기와 방법 등등, 제사에 관한 수많은 규정이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제사를 향한 그들의 열정이 조금씩 차이가 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제사가 소홀하게 다루어진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이 전쟁에서 크게 패해 나라를 잃었을 때는 물론 제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나라를 회복하기만 하면 가장 먼저 제사를 회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제사 행위에 놓였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제사가 없는 이스라엘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확보되고 나타나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예배하러 모여 싸우는 일입니다. 싸우더라도 예배는 드려야 한다는 신념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여서 싸울 바에는 모이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예배하러 모인 이들이 싸운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죄가 되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도 모독을 당하게 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여 싸움과 분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분쟁이 있어야 옳고 그른 것이 드러나는 분쟁의 순기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예배하러 모여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에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로 생각이 나면 예배를 중단하고 돌아가서 형제와 사화하고 그리고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싸우며 드리는 예배는 드리지 않는 것이 좋고, 잠시 싸우는 일은 어느 교회에나 있을 수 있지만 몇 년이고 계속 싸우는 교회라면 교회를 폐쇄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지역 교회는 필요에 의해 세워졌다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결코 경솔히 되어서는 안 되지만 필요하지 않거나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마땅히 폐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죄를 덜 짓는 길입니다. 교회는 바르고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풍성하게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사려 깊은 결단을 내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사 1:13(새 번역)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롬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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