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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과 경건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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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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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後漢) 시대의 조엽(趙曄)이 엮은 오월춘추(吳越春秋)의 합려내전(闔閭內傳)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유래(由來)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같은 병 또는 같은 처지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끼리 서로 고통을 헤아리고 동정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초나라 사람 오자서(伍子胥)가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죽임을 당하자 복수할 마음을 품고 오나라로 망명하였습니다. 그는 오나라에서 공을 세워 대부(大夫)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왕 합려가 즉위한 해에 초나라 사람 백비(伯嚭)도 역시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 백주려가 죽임을 당하자 오자서처럼 오나라로 망명하였습니다. 백비의 사정을 안 오자서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백비를 합려(闔閭)왕에게 천거하여 오자서와 같은 대부가 되게 하여 함께 정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같은 대부인 피리(被離)가 오자서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자네는 한번 본 백비를, 대부로 천거하였는가?”이에 오자서는 “그는 나와 같은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오. 강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지 못했소...”그 노랫말에 “동병상련(同病相憐) 동우상구(同憂相救)-같은 병은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같은 근심은 서로 구원한다. 경상지조(驚翔之鳥) 상수이비(相隨而飛)-놀라 나는 새는 서로 따라 날고, 뇌하지수(瀨下之水) 인부구류(因復俱流)-여울 아래 물은 따라 다시 함께 흐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함께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동병상련”을“과부사정 과부가 알고 홀아비 사정 홀아비가 안다.”는 속담과 동의어와 같이 사용합니다. 동병상련의 의미가 지닌 교훈은 의미심장합니다. 고사성어로서의 동병상련의 동기와 뜻이 성경의 교훈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고난 당하는 자만이 고난 당하는 자를 위로할 수 있다는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경건의 능력으로 동병상련의 의미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고 하였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 지출 항목을 반영한 예산안을 두고 벼랑 끝 대치를 벌인 끝에 연방정부가 부분 폐쇄에 들어갔습니다. 당장 80만 명의 공무원이 무급 휴가를 떠나야 합니다. 국립공원이 폐쇄돼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고, 법원의 파산보호 신청 심리도 지연되고, 중소기업청의 기업대출과 보증 관련 업무, 연방주택청의 대출 보증 업무도 중단됩니다. 국세청 직원의 90% 이상이 쉬기 때문에 온라인 이외 징세와 환급업무도 중단됩니다. 여권 갱신 업무도 지연될 가능성이 있어 해외여행을 앞둔 미국 국민은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방부는 민간인 직원 80만 명 가운데 절반을 일시 해고해야 합니다. 국방과 치안 등 연방정부의 핵심 기능과 필수 인력만 유지됩니다. 백악관 예산관리국이 밝힌 핵심 기능과 필수 인력은 군인과 경찰, 소방, 교정, 기상예보, 우편, 항공, 전기, 수도 등입니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개혁이 필요합니다. 지난 2000년 기준으로 세계보건기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의 의료제도가 가장 비싸고, 연구 대상 191개국 가운데 의료제도의 전반적 수준이 72위라고 평가했습니다. 블룸버그 자료를 보면 가장 효율적인 건강보험 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는 1위가 홍콩, 2위가 싱가포르, 3위가 일본, 한국은 8위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은 브라질과 세르비아에도 뒤처지는 46위입니다. 사회적 약자층을 위한 메디케이드와 65세 이상 노인층을 위한 메디케어를 제외한 나머지 미국의 의료보장 체계는 사실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미국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억 3천만 명이 치과 보험이 없어 이가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오바마케어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도 도전했으나 실패했던 의료보험개혁입니다. 오바마가 이 의료보험개혁에 그토록 집착하는 개인적인 동기와 목적이 있습니다. 오마바 대통령의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 소에토로는 난소암에 걸려 5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선 TV 광고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어머니가 암에 걸려 가장 고통스러운 몇 달을 보내면서 다시 나을 것이라는 희망 대신 엄청난 치료비 걱정을 하면서 지냈다.”며 건강보험을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오바마케어를 추진하게 된 동기입니다. 암에 걸린 어머니가 보험사와 분쟁을 겪는 과정을 지켜본 오바마는 미국 건강보험제도의 문제를 실감하게 됐고 환자가 자기 어머니처럼 나을 것이란 희망 대신 치료비를 걱정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오바마케어의 목적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오바마케어도 동병상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친구와 가족, 심지어 아내와 자식들의 위로에도 마음을 열지 않다가 암으로 투병 중에 있는 사촌 누나의 투병담에 마음을 열고 위로를 받을 뿐 아니라 평정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그 누나가 들려준 경험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나니, 내 삶이 더 가치가 있어졌어. 지금의 삶은 보너스지. 죽음을 배우면, 죽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달라져...”동병상련의 의미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감기 앓았던 경험은 상대방을 너무 몰라서 화나게 하는 경박스러움일 뿐입니다. 감기 밖에 앓아보지 못한 사람은 암으로 투병 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병상련은 성경적으로도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이 됩니다. 사람이 겪게 되는 고난과 아픔은 고난당하고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의 400여 년은 그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을 동병상련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사용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출 23:9). 자신이 장애자가 되거나 가족 중에 장애자가 있어서 장애자를 위하여 살게 된 분들의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능력이란 다른 사람을 물리적 힘이나 정신적 지적 힘으로 압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경건의 능력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돕는 것은 물질이나 지적인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 능력은 고난을 통해서만이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그 능력을 갖기 위해서 스스로 고난을 선택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별한 경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고난이나 죽음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내가 희생해야 살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고난 받는 불특정 다수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극단의 고통이나 고난을 선택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도 어느 정도의 고생일 때 가능한 것이지 경건의 능력을 위해 극한의 고난을 선택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이 당하는 모든 고난은 넓은 의미에서 죄의 결과이지만 그 죄의 결과가 많은 경우에 경건의 능력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 경우 고난이 경건의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은 구체적 범죄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애매히 당하게 되는 고난이라야 합니다. 요즘 범죄자가 자기가 지은 죄의 대가로서의 벌을 애매히 당하는 고난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의 고통도 진실 된 회개를 통해 유익한 고난이 될 수 있지만, 고난이 유익이라는 이야기를 자기 죄를 정당화 하거나 가볍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거듭 죄를 짓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 범죄 행위로 인하여 벌을 받은 자가 그 벌이 유익한 고난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그 범죄가 결과론적으로 정당화 되는 효과를 낼 수 있기에 극히 삼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벧전 2:20)라고 하였습니다. 이 경우 칭찬이 없다는 것은 덕이 되지 못한다는 뜻일 뿐 아니라 아무 유익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중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난치병으로, 어떤 이는 사업의 실패로, 어떤 이는 사랑의 실패로, 어떤 이는 실직으로, 어떤 이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 보내게 된 일로, 어떤 이들은 재난으로, 어떤 이들은 인간관계의 실패 등 여러 경우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 경우 그 고난이 어떤 구체적 죄에 대한 벌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고난 당하는 자신이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어떤 죄에 대한 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구체적 범법 행위로 법에 의해 제재를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애매히 당하는 고난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우는 동병상련의 능력을 갖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위로해도 될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자신도 그 고난의 의미를 자신과 동일한 고난을 겪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을 갖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어도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하신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그 십자가의 고난을 고난 당하는 자를 위로할 수 있는 경건의 능력으로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 히 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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