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넘어 화목케 하는 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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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2-01-0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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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연도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이전을 주전, 예수 그리스도 이후를 주후라고 부릅니다. 주전은 "Before Christ"라고 하여 말 그대로 시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이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주후는 After Christ가 아닙니다. 주전을 가리키는 B.C.는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이전을 가리키지만 A.D.는 안노 도미나이(Anno Domini)라는 라틴어의 약자인데, Anno는 ‘해’라는 뜻이고, Domini는 ‘우리의 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A.D.는 In the year of our Lord의 약자로서 주가 다스리는 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후를 단순히 시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라는 개념으로 사용하지만, 그런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 잘못된 것입니다. A.D.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시간적으로 주전과 주후를 구분하는 역사적 기준이 아닙니다. A.D.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아래 놓이게 된 것을 의미 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통치하시지만 성육신을 통한 구속사역의 완성으로 만물을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아래 두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이 쓴 “예수의 역사 2000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문화사 속에서의 예수' 상들이 지닌 통일성과 다양성은 철학이나 신학자들의 그리스도론을 가지고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무언가가 그분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예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역사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고찰한 책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또 교회의 벽을 훨씬 넘어서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는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예부터 바뀌지 아니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세계 역사는 곧 예수의 역사라고 하였는데,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거절하고, 어떻게 대항하고, 어떻게 충성하고, 어느 정도 충성했느냐에 따라 문화와 역사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신학적 입장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 위에, 그분 안에, 그분 아래, 그분과 함께, 그분을 향해, 그분을 위해, 그리고 그분처럼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교회 안에서 충성하는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의 상을 넘어 문화와 사상과 철학 등 역사 전반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향을 나타내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억하고 기념할 역사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와 오는 모든 세대의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통치가 당신을 믿는 신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심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거짓과 불의가 지배적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2011년의 역사가 2012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다양한 역사적 현실에 편만하게 미칠 수 있도록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전 방식대로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신 은혜의 방법으로 우리 주님의 통치가 모두에게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인간관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새로운 방법, 새로운 원리, 새로운 가치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해를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들이 죄가 지배하는 지나간 옛 방식으로 실패를 반복하며 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새것에 대한 개념은 다양합니다. 2012년은 2011년에 대비할 때 시간적 개념의 새것입니다. 지난해는 낡은 해이고 올해는 새해입니다. 시간적 개념의 새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새해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개념의 새것의 의미는 이생에서의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새날이 되고 새해가 되는 것은 남은 시간이 짧아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주관적 형식의 새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 경험에 준한 새것입니다. 지난여름에 가본 브라이스 캐년, 그랜드 캐년은 내게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가보았고 내가 가보기 전, 수천 년 전에도 거기 있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신분적 의미의 새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속적 개념에서의 새것입니다. 노처녀가 시집을 가도 새댁이 됩니다. 신분이 바뀌면 새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시간적 개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존재와 속성적 의미에서의 새것도 있습니다. 생각과 속성이 과거 지배적일 때는 낡은 것이고 미래 지향적일 때는 새것이라 부릅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내가 사는 순간 다시 팔려고 하면 Used car가 됩니다. 그러나 새 차와 교환 가치로 따지면 비교가 안 되는 콩 한 줌은 땅에 심어 농사를 지으면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새로워집니다.
바울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것이고 그리스도밖에 있는 것은 낡은 것입니다. 바울은 새것과 낡은 것을 구분하는 기준을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로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이 구분은 자연적 변화나 시간적 개념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변화의 개념이나 효용성이나 능력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유일하고 결정적인 것은 그리스도 안이냐 밖이냐에 달렸습니다. 또한 “누구든지”라는 말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출신성분 같은 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 된 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그 직책은 화목케 하는 직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지만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화목과 다른 사람과의 화목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의 화목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있습니다. 화목을 통해 이루려는 것은 화평입니다. 이 직분을 맡은 자는 누구라도 미워하면 안 됩니다. 누구라도 나 때문에 상처받거나 손해를 보거나 불행하면 안 됩니다.
누구를 언짢게 생각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한 옛사람의 속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새로운 피조물 된 우리를 통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모든 삶의 현장에 미치도록 또 한 해를 연장해 주셨습니다. 화목케 하는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나로 인해 나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지는 2012년이 되도록 성령을 좇아 말씀에 순종하여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고후 14:17,18
우리는 주후를 단순히 시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라는 개념으로 사용하지만, 그런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 잘못된 것입니다. A.D.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시간적으로 주전과 주후를 구분하는 역사적 기준이 아닙니다. A.D.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아래 놓이게 된 것을 의미 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통치하시지만 성육신을 통한 구속사역의 완성으로 만물을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아래 두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이 쓴 “예수의 역사 2000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문화사 속에서의 예수' 상들이 지닌 통일성과 다양성은 철학이나 신학자들의 그리스도론을 가지고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무언가가 그분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예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역사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고찰한 책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또 교회의 벽을 훨씬 넘어서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는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예부터 바뀌지 아니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세계 역사는 곧 예수의 역사라고 하였는데,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거절하고, 어떻게 대항하고, 어떻게 충성하고, 어느 정도 충성했느냐에 따라 문화와 역사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신학적 입장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 위에, 그분 안에, 그분 아래, 그분과 함께, 그분을 향해, 그분을 위해, 그리고 그분처럼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교회 안에서 충성하는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의 상을 넘어 문화와 사상과 철학 등 역사 전반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향을 나타내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억하고 기념할 역사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와 오는 모든 세대의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통치가 당신을 믿는 신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심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거짓과 불의가 지배적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2011년의 역사가 2012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다양한 역사적 현실에 편만하게 미칠 수 있도록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전 방식대로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신 은혜의 방법으로 우리 주님의 통치가 모두에게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인간관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새로운 방법, 새로운 원리, 새로운 가치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해를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들이 죄가 지배하는 지나간 옛 방식으로 실패를 반복하며 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새것에 대한 개념은 다양합니다. 2012년은 2011년에 대비할 때 시간적 개념의 새것입니다. 지난해는 낡은 해이고 올해는 새해입니다. 시간적 개념의 새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새해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개념의 새것의 의미는 이생에서의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새날이 되고 새해가 되는 것은 남은 시간이 짧아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주관적 형식의 새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 경험에 준한 새것입니다. 지난여름에 가본 브라이스 캐년, 그랜드 캐년은 내게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가보았고 내가 가보기 전, 수천 년 전에도 거기 있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신분적 의미의 새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속적 개념에서의 새것입니다. 노처녀가 시집을 가도 새댁이 됩니다. 신분이 바뀌면 새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시간적 개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존재와 속성적 의미에서의 새것도 있습니다. 생각과 속성이 과거 지배적일 때는 낡은 것이고 미래 지향적일 때는 새것이라 부릅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내가 사는 순간 다시 팔려고 하면 Used car가 됩니다. 그러나 새 차와 교환 가치로 따지면 비교가 안 되는 콩 한 줌은 땅에 심어 농사를 지으면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새로워집니다.
바울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것이고 그리스도밖에 있는 것은 낡은 것입니다. 바울은 새것과 낡은 것을 구분하는 기준을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로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이 구분은 자연적 변화나 시간적 개념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변화의 개념이나 효용성이나 능력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유일하고 결정적인 것은 그리스도 안이냐 밖이냐에 달렸습니다. 또한 “누구든지”라는 말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출신성분 같은 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 된 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그 직책은 화목케 하는 직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지만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화목과 다른 사람과의 화목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의 화목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있습니다. 화목을 통해 이루려는 것은 화평입니다. 이 직분을 맡은 자는 누구라도 미워하면 안 됩니다. 누구라도 나 때문에 상처받거나 손해를 보거나 불행하면 안 됩니다.
누구를 언짢게 생각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한 옛사람의 속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새로운 피조물 된 우리를 통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모든 삶의 현장에 미치도록 또 한 해를 연장해 주셨습니다. 화목케 하는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나로 인해 나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지는 2012년이 되도록 성령을 좇아 말씀에 순종하여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고후 14: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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