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가장한 사탄의 장난, 속지 마세요 > 지난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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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성령을 가장한 사탄의 장난, 속지 마세요

페이지 정보

최송연2012-01-04

본문

** 아래 간증은 실제 인물이며 저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집사님이십니다. 이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독자님 중, '질문'(Watchman)님의 체험 간증과 일치하여서 올려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이영미(가명)입니다.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나의 간증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나는 여러분께 사단이 어떻게 성령님의 가면을 쓰고 왔는지 나의 체험을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07년, 저는 모 장로교회에서 열심히 성경공부도 하고 또 나름 열심히 우리 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날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내 딸 민아(가명)를 만져주시기를 바랐고 난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내 딸 민아가 병이 다 낫게 되어 말도 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어면 하는 나의 간절함과 소망이었습니다. 난 기도를 잘 할 줄 몰라서 기도 시간이 매우 짧았습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는 것이 되풀이하는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난 친구를 통해서 믿음이 참 좋으신 집사님 한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집사님은 믿음도 좋았고 사랑도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적 체험도 많이 하신 분이어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분도 아픈 상처가 있어서 나에게 더욱더 신경을 써주셨고 우리 민아에게 아주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난 그분에게 많이 의지했었지요. 난 그분을 너무 좋아하였기에, 그분이 나가는 교회를 자진해서 따라갔고, 그 교회로 옮겨서 열심히 함께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우리 민아도 데리고 매주 주일 성수를 지키면서 열심히 그야말로 열심히 믿음생활을 해왔었지요. 그런데 난 그분처럼 방언도 할 줄 모르고 아무런 영적 체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난 그분에게 질투도 나고 속도 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사님께서 사사기 6장 37-40절 말씀을 펴놓고 기도하라고 하더군요. 자기도 그 말씀을 펴놓고 기도하다가 응답받았고 많은 체험과 기도할 때면 성령님께서 만져주시는 것을 매 기도시간마다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난 그분 말씀처럼 밤마다 사사기 6장 37-40 말씀을 펴놓고 기도하기를 시작했고 난 주님께서 나를 만져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같이 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진동이 왔습니다. 어느 날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몸에 진동이 오면서 떨리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뛰는 듯 공중에 뜨는 듯, 도저히 절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내 온몸의 기운이 모두 다 빠지는 듯했고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온몸에는 땀으로 범벅이 되고 신기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난 점점 신비주의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집사님을 따라서 외국 분이 인도하는 “치유 집회, 신유 집회도” 서슴없이 따라다녔습니다. 난 사실 오랫동안 신유 집회라면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민아 1살 때 유명하다는 흑인 치유강사가 왔다기에 한 번 가봤었는데 그때 우리 아이 아빠랑 저는 너무 실망을 해서 그 후 10년 동안 그런 집회라면 아예 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시 치유, 신유 집회에 정신을 빼앗기고 성령 충만한 집회라면 우리 딸 민아를 데리고 열심히 찾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집회 때 방언도 받고, 수많은 외국 목사님들로부터 안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이 점점 이상하게 뭔가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할 때면 환상도 보이고, 기도하다가 내 입을 통해서 예언도 하고, 서울 어느 큰 교회 C 목사님의 DVD 설교집을 틀어놓고 찬양을 드리다 보면 내 손과 내 몸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기도할 때면 내 몸을 가지고 어떤 힘에 의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성령님께서 만져주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시작되고 매일같이 대화를 통해서 많은 것을 체험했습니다. 자다가도 내 몸을 막 흔들어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면 민아 방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놀라서 급하게 민아에게 가다가 넘어진 적도 있습니다. 또 내 입을 통해서 민아가 6월 20일 날 말을 한다고 하는 예언도 주었고 8월 22일 날이면 민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달력의 날짜까지 짚어주면서 예언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난 너무 좋아서 우리 남편이랑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귀라고 하는 느낌도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 많이 읽어라. 금식해라. 찬양 드려라. 기도 많이 해라. 교회 열심히 다녀라.”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열심히 하라고 하니까( 만약 교회를 다니지 말라고 한다던지 성경을 멀리하라고 했더라면 의심했겠지요.) 전혀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다 복종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금식도 하루 한 끼만 먹고 30일 씩 3번을 연달아서 금식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금식할 때면 더 역사를 심하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하다가 하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토하고 토할 때 이물질은 하나도 나오지 않으면서 창자를 다 뒤틀어서 토하게 합니다. 그때 난 너무 힘들어서 거울을 보면 핏줄이 내 얼굴에 가득했고 얼굴이 너무 심하게 상해있었습니다. 그래도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이라 참고 기도할 때면 쓰레기통을 준비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담임 목사님께 의논하면 마귀가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귓가에서 무엇인가 소리가 들리듯 속삭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 귀신하고 노는 거야. 너 지금 귀신을 부르는 것이야.”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난 성령님께,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면 내 방언이 또 마귀를 야단치는 소리가 나오는데 정말 무섭게 야단을 치고 그 방언이 나올 때면 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내 몸을 뒤틀듯이 아주 심하게 야단을 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정말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내 입에서 흉측하고 괴상한 소리가 내 입으로 나오는 것이었어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머리끝, 털끝이 다 쭈빗쭈빗 섰고 소름도 끼치고 나의 혼이 다 나가는 듯했고 난 그 순간 “예수님 도와주세요.”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귀신의 소리가 끝나면 내 손이 움직여서 귀신이 다 나갔다고 신호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3일 밤 똑같이 귀신한테 시달린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난 성령님께 물어봅니다. “예수님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면, “네 왼쪽에 서 계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대화한다는 것은 귀로 말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생각에서 떠오르는 말로 또는 내 입으로(육성으로) 물어보면 대답해 줄 때는 내 몸을 흔들어서 대답을 주는데 꼭 우리가 사람하고 대화를 하듯, “응, 그래. 그래 맞아.” 하는 듯 탁탁! 제 몸을 쳐줍니다.

그러다가 신나면 사정없이 내 몸을 흔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제 남편이 절더러 밖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꼭 미친 사람같다고. 난 그 말도 듣지 않고, 성령님과 대화한다고 확신하면서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 난 대화를 했고 방언으로 찬양도 드리고 난 그때 내가 정말 성령 충만한 사람인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렇게 2007년 1월부터 5월까지 성령님인 줄만 알고 의심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치유 은사 집회가 있었는데 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식구 모두를 데리고 열심히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유명한 강사들이 왔었는데 난 그곳에서 여러 가지 기이한 현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서울의 한 대형교회 H목사님도 병낫기를 구하면서 그곳에 와서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그분께도 안수를 받았습니다. 손에 금가루가 가득 묻어 있는 사람,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신한 사람, 이빨이 변해서 금이빨이 되는 것도, 또 하늘 문이 열려서 천국이 보인다는 사람, 또 안수 받고 쓰러져서 울다가 이유 없이 한없이 웃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것을 그들은 거룩한 웃음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웃는데 마음은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집회 시간에는 뜨거웠는데 집회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맹맹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 때마다 난 나보다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나의 현상에 관해서 의논했지만, 오히려 그런 생각을 주는 것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니까 속지 말고 믿고 계속 의지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5월에 LA에서 유명한 ‘치유 은사’를 가졌다는 C.S라는 여자 목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새롭게 하소서’ 기독교 방송국에서 간증도 하신 분이고 그 CD가 나한테 한 장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CD를 듣는 순간 내 몸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하물며 그분과 전화 통화를 하기만 해도 내 몸이 쓰러지며 중심을 잡을 수 없었고 남이 부축해서 겨우 걸을 수 있었으니까요. 남편과 나는 그분이 정말 성령 충만한 사람인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가 사는 지역으로 오시게 되어서 함께 지낸 적이 있습니다. 난 그분께 나의 모든 현상을 의논했고 그분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고 다른 영일 수도 있고 내 영, 내 자아일 수도 있다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해서 속고 있다고 하더군요. 나의 예언도 거짓이니까 믿지 말라고, 다 잊어버리고 주님만 믿으라고 하더군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고 속도 많이 상했습니다. 방언도 물어보았지만, 통역을 해보시더니 방언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이니까 믿고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딸 민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믿고 기도하라고, 예언을 해주시고는 LA로 돌아가셨습니다. 역시나 그분의 예언도 날짜가 지나도 예언대로 우리 딸 민아가 일어나지 않았고 난 너무도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난 다시금 치유집회를 찾게되었고 그곳에서 외국 사람 한 분을 만났는데 당신의 친구분 간증을 해주면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면서 기도하라고 마태복음에서 요한복음까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말씀들을 적은 종이를 주면서 꼭 승리하라고 하더군요. 난 말씀을 받아가지고 와서 그때부터 열심히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말씀 선포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여러 날을 반복해서 기도하다가 어느 날은 정말 영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는데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 드렸슨데 정말 너무나 깜짝 놀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 마음속 깊은, 아주 깊은 곳이라고 해야겠는데, 설명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아주 아주 깊은 곳, 마음 어디에선가 아주 속 저 깊은 곳에서, “성령이 아니다!”라고 하는 큰 소리가 마음으로부터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난 너무도 놀라서 한동안 아주 잠깐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지나간 일들을 되짚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속은 것에 화가 났고 성령님인 줄만 알았던 것이 마귀, 사단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난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을 멈추었고, 방언도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면 멈추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다시 사사기 6장 37-40절 말씀을 펴놓고 간절하게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방언이 나오더니 이번에는 아주 짧은 방언이 나오더니 나의 혀가 밖으로 나오면서 괴물 소리를 내면서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난 너무 놀랐고, 하나님께 다시 보여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짧은 방언이 나오더니 나의 혀가 밖으로 나오면서 괴물 소리를 내더니 딱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난 하나님이 너무도 두려웠고 무서웠습니다.

항상 좋으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늘 생각하고 믿었는데 그때는 나는 정말 하나님이 너무 크고 두려워서 어디로든 숨어버리고만 싶었습니다. 꼭 내가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때 나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이대로 귀신과 놀고 있다가는 지옥으로 가겠구나 싶더군요. 그때부터 다시 성경 말씀만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성경말씀이 마음속에 와 닿기 시작하고 깨달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난 내가 나갈 교회를 잃었고 어느 교회를 가야할지 3, 4개월 방황하며 주님께 계속 좋은 교회를 찾게 해주십사 기도로 여쭈다가 별똥별 사모님(그땐 누군지 전혀 몰랐음)께서 부군 목사님과 함께 섬기시는 지금의 교회를 이 교회의 장로님을 통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보다도 예배 시간이 나와 맞는 시간이고 해서 한 번 방문해보기나 하자고 왔던 것이 지금까지 4년 째 출석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처음 참석하는 때가 12월 마지막 때였는데 주일 대예배 설교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예배 시간마다 찬송에서도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배시간 주보에 인쇄된 찬송을 펴는 순간 주보에 있는 찬송가 한 마디 한 마디가 빠져나와 내 얼굴로 다가오면서 내 눈으로 내 입으로 들어가는 듯 은혜로웠습니다. 나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주보를 덮었다가 다시 펴는 순간 하나님 말씀 한 말씀이 한 말씀이 또 다시 빠져나오는 듯, 내 얼굴로 다가오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음에 뜨거운 감동이 온다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자꾸 쏟아졌습니다. 그날은 하루 온종일 뜨거운 눈물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제 속지 않습니다. 사단에게 속아서 끌려다닌 지난 세월이 너무도 아깝습니다. 이제는 내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려고 합니다. 내가 내 딸 아이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너무 간절하게 소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마귀가 자신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내게 접근한 것을 나는 성령 충만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난 사단의 장난질을 통해서 더욱더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정말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간증을 읽으시는 여러분, 절대로 사람으로부터, 아니, 치유강사들에게 안수받지 말고, 또 방언 받지 마세요. 그 방언은 마귀로부터 왔음을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그 예언들도 틀린 것은 모두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성경 말씀에 있다는 것을 우리 별사모님이 말씀해 주셨고 정리해 두신 글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보았습니다. 어느 여자 분이 내 앞에서 방언을 받을 때 그분의 혀가 밖으로 나오면서 괴물 소리를 내는 것을, 나 역시 방언이 바뀌면서 혀가 밖으로 나오면서 괴물 소리를 내는 방언을 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때는 마귀가 방해를 하는구나 했었는데 아닙니다. 그 방언의 실체는 괴물이었습니다. 어쨌든, 그 후로 저는 두 번 다시 방언 기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방언을 통해서 무시무시한 체험을 했으니까요.

여러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간증을 하게 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믿으며 끝까지 간증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이 간증을 끝까지 할 수 있게 해주신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참고:
내 사랑하는 딸 아이의 병명은 aicardi syndrome 이라고합니다, 아주 희귀병이고 전 세계에서는 300명, 미국 전역에서 50명 밖에 없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주에서도 단 한 명 우리 딸 '민아'뿐이랍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말을 할 수도 혼자 일어나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없으며 눈도 제대로 뜰 수도 없습니다. 특수 제작된 침대에 누워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호흡하며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민아가, 그래도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올해 16살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들(치유 은사) 집회 장소에서 나타난다는 희꾸므리한 안개
그들은 이 현상을 "Dust Angel"(먼지 천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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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2012-01-02 23:37
 68.xxx.254
 무서운 일이군요.
그 자매님이 복음을 듣고 회개와 죄사함으로 생명의 주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딸의 치유를 원하고 역사를 추구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불상사요 마귀의 장난이었다고 생각되는군요. 
문제는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와 구원을 혼동하고 체험과 신앙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별똥별 사모님과 부군 목사님을 통하여 그 자매를 수렁에서 끌어올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교제
2012-01-10 01:14
 24.xxx.86
 방언을 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언 [dialect, dialektos, Διάλεκτος]과
 종교적 용어로 쓰이는 방언[tongue,Glossolalia,γλωσσολαλιά]이
 함께 나옵니다.

 *Glossolalia -(often called speaking in tongues)(from Greek
γλωσσολαλιά and that from γλῶσσα - glossa "tongue, language"
 and λαλεῖν (lalein) "to talk") is making noises that sound like
 language but are not a known language. It is often as part of
 religious practice. Some people believe the sounds are
 not language and do not mean anything, but some people think
 it is a special holy language-영어 위키백과

 또 사도행전 21:40/22:2/26:14절을 각 영어성경으로 찾아보면
NIV-in Aramaic: 
 KJV-in the Hebrew tongue
 NASB-in the Hebrew dialect 로 나오고 한국어 성경에는 그
 구절 부분이 히브리 말,히브리 방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두 단어 tongue/dialect 가 우리 말로 구분없이 모두
 방언으로 쓰이고 있기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방언(예-사도행전)- 하나님께 영으로 말하는 방언(예-고전)을
 학습되어질 수 있는 방언(dialect),사람이 배워서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foreign language)와 신학적으로 구분하고
 은사에 속하는 방언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분들에 의해 성경의 설명이
 객관적으로 반영된 "영으로(with spirit) 말하는 언어"라는
 의미를 담은 "영언"이라는 신학용어가 조합,파생된 것으로
 압니다.

영으로 말하는 방언(tongue)을 지역어, 외국어(사람의 능력으로
 알아들을 수 있고 필요하면 통역할 수 있는 언어)라 한정하고픈
 분들은 방언은 외국어라 할 것이고 /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그 귀와
 혀를 열어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영언(tongue with spirit)이라고 이해하는 분들은 방언을 영언이라
 정의하고자 할 것이니 그런 신학용어에 거부감이 들면 거부감 드는
 분들은 사용하지 않으시면 됩니다..신학용어는 선택사항이고
 어차피 그 용어의 배경은 방언은 외국어,방언은 하늘의 소리
 라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니까요

 방언 말하는 사람도, 방언 소리를 옆에서 듣게 되는 사람도
 알아듣지 못해서 그 소리가 사람에게 야만이 된다고 피조물의
 혀를 지으시고 그 혀의 소리로 의사소통하는 것도 창조하신
 하나님, 피조물의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시편 139) 하나님에게까지 그 소리가 야만이
 되겠는지요?

사람에게는 야만이 될지라도 하나님께는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성도의 영으로 하는 기도와 찬미와 감사의
 소리이니 당연히  받으실 것이고 성경도 성도의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
 했으니 성도를 교훈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든 거부하든
 그것은  알아서....

성령받은 사람은 성령의 은사방언을 할 것이고 악령의 역사에
 참예하거나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방언을 할 것이고 은사가
 있게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가장하는 사람은 가짜방언을 할
 것입니다. 성경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나오는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 하였고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짓 것을
 믿어 심판받을 것이라 하였으니

 오직 성도는 자신안에 그리스도가 있는가 (그리스도가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의 교훈을 순전하게 받음)
확증하고 진리의 사랑을 받고 있는가 확인하면서 복음진리에
 굳게 서서 행하면 됩니다.

방언을 귀신이라고 하는 분들이라면 신학용어 "영언"에 대해서
 불가불가할 이유가 없다고 봄, 왜냐면 귀신도 영이니까 
귀신방언가지고 불가불가하다가 재난이 닥치면 귀신방언론으로
 할수있는일이 무엇일지..귀신방언 영적이론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지 자문해 봄도 좋을 듯 싶다.
 
 별똥별  전적 동의합니다! 1/10 01:20
해처럼달처럼
 좋으신 하나님께서 님의 삶과 딸 아이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딸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뜻하신 바가 있을 줄 압니다.
끝까지 잘 견뎌나가시기 바라구요.
별싸모니임.... 좋은 일들만, 아니 너무 그러면 안되나..?
그래도 안 좋은 것들보다 좋은 일이 더 많은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98.xxx.205 
 holykang 
참 잘정리해주셨읍니다. 저희 하성에서 주장하는 방언도 교제님의 의견과 별차이가 없는줄 앎니다
감사합니다 1/10 09:17
 108.xxx.205
 
 holykang  귀신이 주는 방언과
성령님의 은사 곧 귀한 선물로서의 방언
그냥 나불거리는 무의미한 방언 다 존재할수있다고 믿읍니다
 1/10 09:20
 108.xxx.205 
epistelchristi 
2012-01-03 01:04
 79.xxx.134
 마귀는 늘 교회 안이나 교회 주위에서 활동하고,
심지어는 예수님 곁에서도 활동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진정 영이 깨인 사람은 교회 안에서
 예수님 이름, 말씀과 성령을 빌어서
 활동하는 마귀를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

마귀는 어쩌면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은
 아예 관심대상 밖일 지 모릅니다.

갖은 사랑의 명목으로 지나치게 되는
<설마...>가 사람을 잡지요. ^(^ 
  69.xxx.95 
 교제 
 "영언"이 축약어이듯 그 영어 표현도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참고하여 이해를 돕도록 간결하게 축약한
표현입니다.
고전 14:2 -For anyone who speaks in a tongue...
 he utters mysteries with his spirit.
고전 14:15- I will pray with my spirit,..
I will sing with my spirit,
위 성경구절에 따로 by the Holy Spirit 생락되었다고
바울이 잡신,귀신(by devils/demons)에 홀겨서
혀가 꼬부라지는 것으로 해석하실 것인지요?
성도의 방언이라 전제된 상태니 생략이 된 것
상식아니겠습니까
 1/10 22:56
 24.xxx.86 
 교제 
 이런 저런 신학적 입장에서 이런 저런 이론에 맞추려고
성경을 객관성 없게 해석하는 신학자들의 글을 두루두루
참고하기보다는
*예전에 은사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은사중지론적
입장에 있는 그런 글들을 검색하여 두루두루
읽어본 바 있고 ..내린 결론은 그런 글들 역시도
은사주의 관점에서 쓰인 글들만큼이나 치우쳤다는
것!
기록된 성경, 고린도전서 14장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고 주석을 참고하며 거기에 담긴
교훈을 순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성경적인 방언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10 23:09
 24.xxx.86
 
 JuNick  저는 교제님을 귀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내가 교제님에게 설명을 더 하여야 할까 말까 망설여집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더 연구하시고 여기에 올려진 몇가지 글은 다시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시면 a tongue 와 tongues 는 구별이 됩니다. 그리고 spirit 과 the spirit, 또는 Spirit 은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tongue with spirit 가 아니라 speak with spirit 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1/11 19:13
 69.xxx.95
 
 JuNick  그리고, mysteries with his spirit 와 pray with my spirit 에서 왜 (Holy) Spirit 이라 말하지 않고, (his or my) spirit 라 표현한 것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The truth about tongues 란 글을 소개합니다.
http://www.gty.org/resources/sermons/1872/The-Truth-About-Tongues-Part-2 1/11 19:18
 69.xxx.95
  교제 
명사앞에 붙는 관사 정관사 구별 강의론?
분명 준익님이 저보다 영어에 능통하리라 봅니다.
speak with spirit -영으로 말하다 대신
영으로(with spirit) 말하는(speak) 언어(tongue)의
축약어인 영언(명사: spirit /tongue)을 제가
콩글리쉬로 말*tongue*에 촛점을 두어
tongue with spirit 으로 표현한 것이 문법적으로
걸리시는 것을 보니...
준익님은 말하다에 촛점을 두고 저는 "말(언어)"에
촛점을 둔 차이가 있다는 점도, 말하는 주어가
구체적으로 지정되어 있기에 spirit 앞에 (he-his/I-my)
소유격이 붙었다는 점도,영(Spirit 하나님의 영 )
영(spirit- 피조물의 영) 차이점도 유념하시기를...  1/11 21:19
 24.xxx.86
 교제 
저는 두어가지 이유로 존 맥아더 목사님께
그리 높은 신뢰를 주지 않는 입장에 있으니
준익님이 그 분에게 큰 신뢰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겠으나 이제 그만 소개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읽기를 바래서
그런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요.
방언필수론주장하는 분들에게 물려서 억지로라도
방언중지론으로 기울려고 존 맥아더 목사님 글을
읽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전에도 한번 언급했다시피
무분별한 은사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인정하나
저는 그분의 은사 중지론을 전혀 지지하지 않습니다.
제가 준익님을 예전부터 좋아했기에 준익님과
이렇게 서로 다른 방언관으로 마찰과 갈등을
하는 것은 지난 한번으로 족하다고 여겨서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했었는데..제가 절제를
못한 탓입니다.
교제 
2012-01-09 22:38
 24.xxx.86 
1.만약 은사주의의 취지와 목적이 다음과 같고 실제로 그 취지와
 목적에 합당하게 은사주의 운동이 진행되어 왔다면 은사주의를
 그릇된 운동으로 경계할 이유가 없습니다.

취지-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유익하게 하시고자
      그 뜻에 따라 각 지체에게 나누어 주시는 여러 신령한
      은사들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사모케 하기 위함

 목적- 각자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하여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신앙공동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기 위함

 그런데 은사주의의 현실은 표적이나 능력 은사에 치중하고
 방언은사와 예언은사의 기능과 역활을 호도하며 성경의 참된
 교훈에서 벗나가 무질서하고 무분별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또 사도행전의 방언관련 부분만 귀납적으로 추정해
"방언필수론", "성령세례-방언-구원론"같은 비성경적이고도
 무익한 이론을 도출하여 심각한 병폐를 야기,조장하였구요

 지체끼리 방언은사 유무로 어리석은 비교와 자랑을 하게 하고
 방언 말하지 못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거칠 것을 두었으며
 아직 복음진리에 굳게 서서 행할만큼 성숙함도, 분변도
 부족한 교인들을 꾀어 인위적으로 방언을 유도하고 훈련시키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을 행하였고 성령의 역사를
 표방하여 미혹하는 사탄의 기만에 빠지게 방치하는 식으로
 그 열매가 나타났기에 그런 그릇된 신학주의와 운동은
 경계되어질 수 밖에 없고 경계되어져야 마땅합니다.

2. 만약 은사중단주의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에 근거해

<너희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

건물의 터가 되고 터를 닦는 사역, 곧 주 하나님께 직접
 받은 계시를 전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사역을
 담당하였던 사도와 선지자의 직임 은사가 ,계시의 종결과
 완성을 선언하며 그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 첨삭을 엄금한
 요한계시록과 함께 중단되었다고 하는,사도 선지자의
 직임은사에 한정된 것이라면 성경적이니 경계할 이유가
 없습니다.

 *은사의 목록에 계시가 따로 없는 이유는 계시가 사도와
 선지자의 직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계시의
 완성 종결은 곧 사도 선지자 직임의 완성 종결 의미

*성경은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움을 받은 성도들에게
 사도와 선지자의 직임은사를 사모하라 교훈한 바 없고
 자칭 사도라 하고 자칭 선지자라는 직임으로 나아와서
 미혹하는 거짓 사역자들을 주의 경계하라는 경고와 그런
 자들의 거짓이 드러남을 기록하였음

 그러나 은사중단론의 실상은 계시와 연결된 사도 선지자의
 직임은사 중단 뿐 만 아니라 사도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은 성도들에게 허용된 은사, 즉 그리스도의 지체의 덕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역활과 기능을 하는
 방언은사와 예언은사도 중단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에

 성경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을 간과하고 각 은사에 대한
 교훈에 착념치 못한데서 나온 그릇된 이론,방언하는 형제
 자매에게 거칠 것을 두는 무익한 이론으로 경계되어질 수
 밖에 없고 경계되어져야 마땅합니다. 

 *혹 어떤 이들이 방언은사와 예언은사의 기능과 역활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버리고 자의적으로 계시의 수단으로
 삼아 기만하는 병폐를 보이면 방언은사와 예언은사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바르게 상기시킴으로 분별, 경계시키는
 것이 성경적임

3.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은사는 그리스도 지체 개인의 덕을
 세우는 은사요,(사람이 알아듣는 말로 사람에게 계시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은사가 아니라)하나님께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은사로 성경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에 기도,찬미, 축복, 감사가 해당됨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었구요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큰 일(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구원사역,십자가
 복음의 비밀) 언급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 방언에 대한
 고전말씀이 유기적으로 연결됨을 알 수 있음

 주와 성도가 얼굴을 대면하고 성도가 온전히 알고 하나님과
 피조물이 서로 대면하여 대화하던 때처럼 성도가 온전하게
 말할 때가 오면 부분적으로 하는 예언,방언,지식이 폐해질
 것이나 그전까지는 부분적일지라도 각 지체의 덕을 세우고
 몸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는 계속 될것입니다.

과연 성령께서, 시대를 무론하고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성경에,
주 오실때까지 동일한 말씀으로 교훈받을 성도에게 40년 뒤
 중단될 은사들을 사모하라, 멸시치 말라/ 금하지 말라,성령을
 소멸치 말라 라고 기록하고 명하셨을까요
(고린도 전서 기록 AD 55년경 요한계시록 기록 AD 95년경)

사도들이 활동하던 그 시대 교회에 산재된 문제들은
 오늘날 교회에도 여전히 나타나고 오늘날에도 은사에 대해
 바로 알지 못하여 무질서한 방언이나 점치기식 예언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성경에 직접 교훈된 말씀이 아니라
 중단론이라는 특정 신학설로 대처,시정해야 옳을까요

[준익:  이 예언하는 은사는 바로 "기록된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풀어서 해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1/6 21:19 69.xxx.95

 JuNick  왜냐하면 초대 교회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잘 해석해서 그것을 가르치는 능력을 예언하는
 능력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4장
3절에서 "예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기 때문에
 교회의 덕을 세우고 사람들을 권면하고 안위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정이철 목사님 칼럼중에서 -그러므로 선지자라 기록된 바나바를
 통하여서도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 사역이었음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선지자들의
 예언의 기능이 오늘날의 설교와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방언은사와 예언은사를 대비하여 설명하고 교훈한 고전 14장
6절에 보면 바울은 계시와 예언을 구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14:26절에서는 예언대신 가르치는 말씀(a word of instruction)으로
 계시와 구분하여 기록하였고 예언이 권면하며 가르치는 말씀이기에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하였구요

 은사로서의 예언이 계시가 아니라 이런 성격의 것이기에 주석도
 예언은 설교나 가르침을 뜻한다고 해석하는데 건덕,권면,안위
 기능을 하는 예언은사가 중단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지요.

정리하자면 방언에 대해 은사주의나 은사중단론으로
 치우치지 말고 오직 성경의 교훈에 착념하여 교훈대로 행하자는
 것입니다.
 
 별똥별 
언제나 그런 것이지만, 참으로 성령의 조명하심이 느껴지는 놀라운 논증입니다. 특히, "부족한 교인들을 꾀어 인위적으로
방언을 유도하고 훈련시키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을 행하였고 성령의 역사를
표방하여 미혹하는 사탄의 기만에 빠지게 방치하는 식으로
그 열매가 나타났기에 그런 그릇된 신학주의와 운동은
경계되어질 수 밖에 없고 경계되어져야 마땅합니다."
참으로 손뼉을 치고 싶을 만큼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이성이나 알량한 지식의 한계의 틀을 깨고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thomas 
2012-01-09 16:38
 69.xxx.142
 방언을 포함한 어떤 <은사>가 <중단 being ceased>되었다고할 때는 그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1) 방언이 "중단"되었다는 말은 존재가 완전히 소멸됐다는 의미라기보다 "규칙적으로 또는 일상적으로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규칙적/일상적이라 함은, 어떤 조건이 갖추어지면 결과가 항상 일정하게 발생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방언과 관련하여 성령님을 그 조건으로 주장하는 경우에, 이러한 발생 조건과 연관된 방언은 허구라고 믿습니다.

오순절 교단의 가장 대표적인 Assemblies of God은 1940년대 늦은 비(Latter Rain) 운동과 관련된 내분 외에도, 1916년에 Fran Ewart와 Glenn Cook이 주도하여 Pentecostal Assemblies of the World와 United Pentecostal Church로 갈라져나갈 때 내홍을 겪었는데, 그들은 "방언이 구원에 필수적이다" 주장하였습니다.
http://books.google.com/books?id=0ZFV50fbksoC&pg=PA27&dq=Glenn Cook

여기서 "방언이 구원에 필수적"이란 말은 곡학아세 혹세무민하는 소리로서 마땅히 정죄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방언을 구원의 <필수적인 그 무엇>으로 주장하는 집단이 있다면 그들은 개(혁)신(앙)교와 전혀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2) <중단되었다>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항을 보면:

 <...그러한 것들(일반계시)은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지식을 주는 데 있어서 불충분하다 (yet are they not SUFFICIENT to give that knowledge of God, and of his will, which is NECESSARY unto salvation)...

그래서 주님은 여러 시대에,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기의 교회에 자신의 뜻을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으며, 그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그리고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비하여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위로하시기 위해서, 바로 그 진리를 온전히 기록해 두시는 것을 기뻐하셨다.

이 같은 이유로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which make the holy Scripture to be MOST NECESSARY).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 (those former ways of God's revealing his will unto his people BEING NOW CEASED).>

그러면서 마지막 문장에 히1:1,2절을 근거로 붙여 놓았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Fran Ewart와 Glenn Cook이 주장한 "방언이 구원에 필수적이다"라는 말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나오는 "필요/충분"이란 말과 비교하여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에 쓰인 구원의 충분성과 필요성이란 말과 함께 <중단>이란 말의 뜻에 대해 17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 어셔를 인용하며 한 목사님이 설명한 글입니다.

어셔는 "Oracles, Visions같은 extraordinary Revelations가 중단"되었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구원에 필요충분한 모든걸 계시하고 있으며, 다른 비본질적인 것들이 <중단되었다>라는 개념을 밝혔습니다.
http://www.newhopefairfax.org/files/coffinconfessiononcessation.pdf

거기 인용되는 책 <Body of Divinity 1645>를 쓴 영국(아일랜드)의 주교(목사) James Ussher는 인류의 역사가 예수탄생 전까지 4004년이라는걸 상세하게 나름대로^^* 계산한 바로 그사람으로서 당대 최고의 신학자이었습니다.

thomas
2012-01-09 11:45
 69.xxx.142
 방언에 관하여는 예전에 논의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다들 예전의 입장에서 조금도 변하신게 없으신거 같습니다. 저는 아멘넷에 늦게 참여했을 뿐더러, 방언에는 전혀 무관심이었지만 아멘넷 논객들에게 배우고 나름대로 공부하여 자신의 입장을 변화시킨 유일한 사람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여야인지 잠긴동산인지 하는 자는 부끄러운줄 모르고 여전히 꼬리를 끌고 다니며 말을 꼬아 이간짓하는 버릇이 여전하군요.

그래서 이번엔 좀 다른 각도에서 지금까지 배워온 사실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1)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이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방언과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순절계통 사람들 뿐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충분히 검토가 안됐으니, 혹시 장로교회/개혁교회/침례교회/성공회(저/광)교회/감리교회 신학자들 중에서 행2장에 나오는 방언을 "외국어"로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나 출처(책이나 엣세이)가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알아보고 응답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Harper Collins, Abingdon (The Interpreter's Study Bible), Oxford에서 나온 스터디 바이블과 Abingdon에서 출판한 12+권 주석(?) 그리고 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를 참고합니다. 현대적인 신학을 반영한 것들이지만 학문적으로 철저하고 가장 보편적인 참고서들입니다.

이들 모두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을 외국어로 해석합니다.

 (2) KJV 고전14장에 6번 나오는 unknown이란 글자는, 고전14장 뿐만 아니라 KJV 전체에 걸쳐서 번역자들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가한 것을 표시한 것들입니다. 이탤릭체로 쓰였습니다.

그게 헬라어 원어가 복수/단수로 표현된 사실에 따라 바울이 진짜/가짜 방언을 나타냈다는 주장은 단순패턴을 지나치게 인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14장은 KJV을 번역한 사람들이 원문의 뉴앙스를 영어로 표현하기위해 첨가시켰을 만큼 무언가 다른 뜻이 있다고 합니다. 위에 언급한 참고서들에서 직접적으로 KJV의 번역을 문제삼지 않지만, 현대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썽꾸러기 고린도교회 사람들의 방언이 외국어가 아닌 그 무엇이라고 받아들입니다.

 (3) 마가복음 16장 17절은, 방언을 중요시하는 오순절 교회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방언의 근거를 주장할 때 인용하지 않는 구절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지만 여기는 적절하지 않은 장소이어서 삼가하겠습니다.

다만, 고전 14장에 unkown를 여섯번 첨가한 KJV의 母本은 중세기에 에라스무스가 처음으로 편집한 TR(Textus Receptus)계통으로서 비잔틴계열의 majority 사본인데, 이들 사본들은 마가복음 16장 8절과(shorter ending) 9절이하(longer ending)를 노트 없이 담고있습니다.

우리말 성경(개역 한글, 개역 개정, 새번역)은 기본적으로 근대적인 critical本을 모본으로 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6장 17절의 <새 방언>을 "영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냥 <새 방언>을 <새 방언>이라 하는게 옳습니다.

Assemblies of God 싸이트에 가면 그들의 소위 position papers에 "Baptism in the Holy Spirit: The Initial Experience and Continuing Evidences of the Spirit-Filled Life"에 자세한 주장이 나와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이 한군데 인용되지만, 방언과 관련되지 않았습니다.
http://ag.org/top/Beliefs/Position_Papers/index.cfm

이 paper의 제목에는 "Initial Experience"라고 슬그머니 흐렸지만 원래 그들의 소위 "Our 16 Fundamental Truths"에는 "The Initial Physical Evidence of 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라고 주장하였습니다.

1916년에 Fran Ewart와 Glenn Cook이 주도하여 Pentecostal Assemblies of the World와 United Pentecostal Church로 갈라져나갈 때 그들은 "방언이 구원에 필수적이다" 주장하였습니다.

 (4) 기독교 역사를 읽어보면 "방언" 비스무레한걸 했던 집단들은 거의 모두 heresy로 정죄되거나 비난받았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방언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사실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자세히 알아보고 응답드리겠습니다.

비스무레라고 말해야 할 이유는 현대의 많은 연구를 통하여, 그러니까 오순절 계통의 방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려는 노력의 결과로, 방언을 포함한 종교적 현상의 표출방식에 대한 견해가 다양해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여하간, 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오리겐, 역사가 유세비우스,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에드워드, 웨슬레 등 2000년에 걸친 무수한 성인들이 방언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러는 "방언"을 적대시 하였습니다.

한편,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교회사에서 그 중거를 찾아 헤메다녔지만 오히려 부정적인 증거만을 찾을 뿐이었습니다. 가령 모라비안들이 "방언"으로 추정되는걸 했다고 하는데, 웨슬레가 모라비안들에게 동정적이었다고 하며 그들의 "방언"을 긍정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컬트집단들의 어떤 "열심" 같은거에 대한 평가와, "방언" 비스무레한걸 하는 각종 문제 집단들이 지나치게 박해(?)받은걸 현대의 인도적인 차원에서 동정하면서 그들의 "방언"을 포함한 각종 방방거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5) private하게 하며 나름대로의 신앙을 돈독히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의 "진짜" 방언은, 방언을 하는 그 개인의 신앙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유도 그렇습니다. 예수믿는다는게 무슨 한탕 하는건가요? 불치의 병에 걸려 고생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일상적인 또는 과학적인 의료제도를 따라서 죽음을 포함한 삶의 엄중함을 절도있게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게 예수믿는 본질 아닙니까?

비록 불구가 되었지만 불굴의 노력으로 재활치료를 하면서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지금-여기 주어진 몸으로서 이전까지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의지의 결과를 개척해가는 일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역사하는 놀라운 성령님의 도우심,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방언을 하며 개인의 공덕을 쌓아 나름대로의 만족감에 도취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그들이 알아듣도록 올바른 언어로 분명하게 증거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지 않습니까?

방언과 같은 개인적인 경험은 자기정당화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 삶의 꼬인 부조리를 정당화 하기 위해 성경말씀을 곡해하는걸 막기 위해 교리와 신학이란게 존재하지 않습니까?

진리의 신학과 건전한 교리, 그리고 경건한 삶을 통해 구현되는 참된 기독교 신앙의 실천으로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별똥별 
감사합니다. 늘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토론에 임해주시는 분이시기에 더욱 신뢰가 갑니다. 그리고 영언이라고 한 것은 새 방언에 대한 말씀을 '외국어'라고만 국한 시키시는 분에게 좀 더 시각을 넓히자는 의미에서입니다. 아이디어는 '고전 14: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하고 영으로..." 그래서 영언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저는 그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일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을 인정한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랄랄랄'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란 뜻도 심어주고 싶고요...^^토마스님께서 좋은 자료들을 많이 올려주시고 토론을 이끌어주시니 저나 우리 독자님들께 많이 배움을 주게 될 것 같아서 기대가 큽니다!! 1/9 12:01
 98.xxx.205
 
 thomas  (6) 방언을 <은사>의 하나로서 본다고 가정하면, <은사>를 연구한 현대적인 관점, 그러니까 궁켈의 기념비적 저술과 그에 이은 각종 "종교 현상"에 대한 논의도 웰컴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근대를 연 프로이드와 융을 비롯한 심리학/정신병리학자들이 얘기하는 종교현상의 한 단편으로 이해되는가는 얼마든지 흥미로우면서도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9 12:03
 69.xxx.142
 
 별똥별  예, 지금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을 가장한 사단의 정체를 밝히 드러내자는 것입니다! 토마스님의 좋은 연구...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이 이끌어 주십시오.^^ 1/9 12:29
 98.xxx.205
 
 교제 
고바야시 마코토: 과학적 사고에는 크게 분석과
융합의 과정이 있다. 분석은 논리적이고
연속적이지만, 융합은 통찰력이 필요하고
비연속적이다. 과학적 분석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지만, 융합적 사고는 영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신자가 함께 견해를 나누고 권고를 주고받는
이런 토론에 토마스님처럼 성경적인 마인드
아래 과학적 사고가 가능한 분도 함께 참여하여
주신다면 건전한 신학적 좌표를 설정하는데에도
성령의 역사,은사를 표방하여 나타나는 사단의
미혹를 경계시키는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부엉이 

2012-01-08 23:51
 69.xxx.72
 토론의 주제 자체가 너무 예민하고 힘들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귀한 분들끼리 마음이 상할까 염려되어 저의 글들을 지운 것이지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 바르고 모범적으로 신앙생활하면서 방언하시는 많은 분들을 알고 있고, 충분히 존중하고 있습니다. 특정 교단이나 학교의 신학만이 100% 완전하고고는 할 수 없으므로 이단성 있는 집회에 참여하면서 무질서하고 부패한 방언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닌한, 서로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대적해야 할 것은 명백하게 신앙을 변질시키는 더러운 방언운동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경감심을 높이다 보니 예민한 토론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구 실명을 거론하면서 모든 성령의 역사와 은사와 치유이적을 부인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조롱하는 행위는 삼가하여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일일히 이름을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독교 신학이 형성되는데 너무나도 큰 공헌을 남긴 수 많은 주류 신학자들에 의해서 발전된 은사중단론이라는 신학은 오직 기독교 계시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임시적으로 나타난 성령의 은사와 특별한 치유이적이 성경완성 이후 종결되었다는 것이지, 성령의 모든 치유의 역사하심가 다른 은사들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일 저나 다른 누가 그러한 사상을 정말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이단 중의 이단이고, 배교자 중에서 가장 악날한 배교자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러 누구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누명을 쒸우는 행위는 삼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악한 행위를 배제하고 건실한 토론을 진행하는 풍토가 아멘넷에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관리자님께서도 다시 그러나 악플이 발견되면 지체없이 삭제하여 그런 일을 당하는 성도의 영혼 깊은 곳에서 끓어올라오는 분노와 수치심으로 인하여 큰 고통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조취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주제에 대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토론을 종료하고자 합니다. 모두 잘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이선 
2012-01-07 14:31
 166.xxx.246
 김성훈님,
우선 새해인사부터 드림니다. 어려운일을 담당하시는데 건강하시고 금년에도 많은 가르침을 기대해봅니다.

그래도 님이 등장해야 이런저런 얘기가 부담없이 흐를것 같군요.
 "신약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글세요 신약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게 아니라 아직 준비가 안됏기 때문이라 보고싶은데요, 이유는 한국의 기독교는 fundamental 이 없이 사이비 사상에 마구잡이 집짖기에 근간을 둔다고 진단하기땜시 부득불 구약에만 머물러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셜록홈즈의 방법론이 무엇일까요?  대학에서 공부할때 case study 를 미국에선 많이 시키더군요. 그런 공부의 매력은 상황 분석입니다. 딱히 이것이다 라고 정답을 찾기보다 프로세스와 어프로우치 방법론에 논리적인 훈련을 시키죠. 즉 어느기업의 흥망성쇠를 판단할때 그원인분석에 일정한 정답이 없읍니다. 단지 최대한 그이유를 논리화 합리화시키는 작업이 많이 쌓아질수록 판단력이 점점 정확해질수있다고 보는것이 케이스 스터디의 주목적이겠죠.

김성훈님은 진리에대한 정답이 있다고 보십니까? 예를들어 지금 경제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토픽이 달러의 운명이랄수도 있겟죠. 크게 둘로 나눠 한쪽은  베이비부머들의 대거 은퇴로 이어지는 경제침체로 인한 디플레이션, 그리고 궁극적으로 달러의 강세를 점치는쪽이있고, 또 한쪽은 QE 를 통한 Paper money 범람으로 이어지는 Hiper inflation 을 통한 모든 화폐붕계로 갈림니다. 두이론이 다 일리가 있고 어떤식으로 나타날지 저도 헷갈림니다. 얼마전 토마스님이 언급하신 Tipping Point 처럼 어떤 단순한 사건이 하나는 개똥철학이 되고 하나는 쓰나미를 유발하는 이유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겟는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모든상황과 개개의 구성분자가 고정된게 아니라 Dynamic 하기땜에 진리란것은 때와 장소에따라 항상변한다는것이죠. 이것이 요즘 곽광받는 Complex theory 즉 system 의 degree of complexity study 라 볼수있읍니다. 요부분은 토마스님이 잘설명해주시면 공부해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구약은 case study 라 봅니다. 그런다음 신약으로 넘어가야 신약의 함축성있는 진리를 제대로 이해할수있다 보는것이 제 신앙관입니다. 예수. 성령, 천국, 십자가, 이런 단어는 지금 교리적으로 나열해놓은 정의가 정답은 당연 아니지요. 구약적 시스템에 대한 복합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풀수없는 내용들이라 봅니다. 왜 신약에 와서 이단이 많은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유대교는 왜 이단이 없을까요? 님이 다른 컬럼에서 질문한 내용입니다.
 
 별똥별 
롱기누스님과 이선님이 미웁지가 않다는 것은, 자신이 개똥?(지송.^^) 철학가란 것을 인정한다는데 있다는 것이죠. ㅋㅋㅋ"진리에 정답이 있다고 보는가?" 제게 물어보신 것은 아니지만, 흥미롭기에...그럼, 이선님은 진리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진리는 그 자체가 이미 정답이라고 봅니다.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 자체가 정답이고 진리란 것이죠. 님이 구약에서만 머물고 있는한, 진리와는 거리가 먼~~~것은 사실입니다.^^
교제  성도가 학습된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에
감사도 있고 찬양 찬미도 있고 기도도 있듯
성도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할 수 하고
(행 2:11)그 영으로 비밀을 말할 수 있고(고전 14:2)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고
(고전 14:16) 영으로 기도와 찬미를 할 수
있음(고전 14:15)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언 말하는 것이 기도와 무관하지 않음은 오순절
성령강림날에 모인 일백이십명의 무리가 마음을
같이하여 전심으로 기도에 힘썼다는 기록으로도
증거됩니다.
(행 1:14)
통계적 추정,귀납적 분석 방법으로 방언 말하는
것에 기도를 배제하려고 하는 주장이나 이론은
그 타당성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1/6 19:37
 24.xxx.86
 
 JuNick  에고!, 어쩌다 내가 교제님에게 도전을 받게 되다니...ㅠㅠ
영광입니다. ^(^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praying in the Holy Spirit-KJV)"(유다서 1:20)에서 "성령으로 기도하며"가 바로 "방언기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praying in the Holy Spirit-KJV)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기도(praying in the unknown tongue)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은사주의자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은사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의 흐름을 나누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1/6 20:27
 69.xxx.95
 
 JuNick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성령의 기도"를 곧 "방언기도"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성령의 기도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고린도 전서 14장의 말씀을 그들의 편리에 맞게 사사로이 풀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4장 2절의 말씀은 방언을 말하는 자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자가 그 영으로 비밀(mysteries), 즉 알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1/6 20:31
 69.xxx.95
 
 JuNick  고린도 전서의 전체적인 상황을 볼 때 사도 바울은 지금 두 가지 방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외국어 방언(Tongues-이성적이고 인격적인 언어)이 있고, 또 하나는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가 아닌 다른 영에 의한 방언(an unknown tongue)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방언(tongue)의 은사를 적극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교회의 덕을 위해 사용하지 말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1/6 20:43
 69.xxx.95
 
  교제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과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영으로 기도하는 것(pray with the spirit)을
성경이 구별하였으니 구별할 것은 구별하되 방언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에 기도와 찬미와 감사가
있음을 성경이 기록하였으니 그 말씀도 취사선택하지
말고 목적에 이끌려 편향적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그대로 받야들여야 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이 편향되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나
은사중지론자들이 편향되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나
둘다 경계대상이기에  1/6 21:10
 24.xxx.86
 
 별똥별  교제님의 올바른 논증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다 시원해 집니다!
주님께서 영광받으실 줄 믿습니다! 1/7 03:15
 98.xxx.205
 
 JuNick  이와 같이 “방언으로 기도한다.”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 단 한 곳에만 등장합니다. “랄레오(λαλεω)” 가 아닌 “프로슈코마이(προσεύχομαι)”로 쓴 곳은 단 한 곳입니다. 그것은 위에 언급한 고린도전서 14:14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머지 방언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방언 기도”가 아니라, “방언을 말하는 은사”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1/7 07:39
 69.xxx.95
 
 JuNick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말하다(λαλεω)”가 아닌 “기도하다(προσεύχομαι)”로 쓴 단 한 곳.
알 수 없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그 내용을 스스로도 알 수 없기에 마음에 열매가 없다. 은혜의 방편인 기도로써의 유익이 전혀 없다.는 내용입니다. 1/7 07:44

기다림... 

2012-01-03 04:51
 128.xxx.193
 귀한 한 영혼을 건져 주신 주께 감사 드립니다. 제가 처음 이단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콥의 불건전한 집회에 반대하기 시작한 이유는 섬기는 교회의 한 형제님께서 그 집회에서 '안수'로 '방언'을 받고, 너무나 주변 지체들을 힘들게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형제님도 너무 고생을 하셨지요...)

당시 분별이 없던 저는 '왠지 이상하다'정도 밖에 몰랐습니다. (계속해서 의심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는 그 집회에 소개해 주신 분이 교회에서 너무나 신망이 있는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형제를 놓고 인터콥 간사들이 '표적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섬뜩하지요...)

제 교회는 담임 목사님이 부재 중인 상황이라... '무방비'였지요...

몇 달을 방황했습니다. 무려 10명에 가까운 청년부 지체들이 비전스쿨을 들었고... 그 중 '열심'이 있는 이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가족을 등진 채 선교를 나갔지요.

그리고 한 형제는 선교 편지를 주며 파송교회를 우리 교회에 허락도 맏지 않은 채 우리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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