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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누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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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1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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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가면 좀 늦을 것 같다고 하시더니 이렇게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시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온 종일 병원 심방을 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지어 먹으려니까 너무 피곤한 탓인지 밥이 모래알을 씹는 듯 입 안에서 뱅글거리는 것이 영 넘어가지를 않는다. 저녁을 뜨는 둥 마는 둥 숟갈을 놓고, 대충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서, 따끈한 녹차 한 잔을 끓여 손에 들고 잠시 쉬기라도 할 겸, 소파에 앉아 아무런 생각도 없이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 숨이 멎는듯했다.

백령도 천안함의 실종자를 구출하려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 부인의 오열하는 모습, 실종자 가족들의 울부짖는 안타까운 모습, 모든 것을 집어삼켜야만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 집채만큼 큰 파도가 마치 머리를 산발한 유령들이 흐느적거리듯 시커멓게 곤두서서 출렁대는 물결이 구조선의 조명을 받아 화면 한가득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애쓰다 결국 자신도 함께 그렇게 가고 만 것인가? 그렇다면, 실종자들은 지금 저렇게 거센 파도 속 어딘가에 고립되어 사투를 벌리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춥고,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나님, 왜입니까? 왜 나여야 하며, 왜 하필 우리 가족이어야 합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당황하게 되며 절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의 일 같지가 않고 가슴이 아려서 더 이상 현미 녹차의 구수한 향을 즐길 마음마저 사라져버린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슬그머니 탁자 위에 내려놓고 말초신경마저 곤두세운 채 웅크리고 앉아, 뉴스 앵커의 해설을 듣느라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백령도 서남쪽 1마일(1.6km)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하였다. 원인은 여러 가지 설만 있을 뿐 불확실한 상태이며, 승조원 104명 중 구조자는 58명, 사망자는 1명, 실종자는 45명이라고 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소원과 온 국민의 간절한 간구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실종자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하였을 것으로 잠정결론을 내리고 있다니 더욱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살다 무엇 때문에 갔는가? 그들은 자신을 낳아준 조국과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살다가 장렬하게 순직한 것이다. 아직 한창 일할 젊은 나이인데…정말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조국과 사랑하는 가족과 동족의 안전을 위해 대신 죽은 그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반대로 위클리 지구촌 리포터의 말을 빌리면 파키스탄에서는 이제 겨우 열 살을 갓 넘긴 어린이들이 마구잡이로 살인폭탄 테러에 동원되고 있다고 한다. 탈레반이 검문을 피하기 위해 어린이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파키스탄 북서부에 위치한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범 훈련소 벽에는 천국을 묘사한 아름다운 그림들로 가득하게 꾸며두었다고 한다. 몇 푼의 돈을 부모에게 건네주는 조건으로 팔려온 이 아이들을 탈레반 전문가들이 맡아서 훈련시킨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이란 쓰레기일 뿐이며 알라를 위해서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얘기하여 순교정신을 고취시키고 또 그들 탈레반은 천국엔 우유, 꿀 등 먹을거리가 가득하다며 매일 같이 아이들을 세뇌교육시킨다고 한다. 평소 가난과 허기에 시달려 온 아이들은 그런 말에 금세 현혹되는 것이다. 자살폭탄 테러가 되기에는 아직 너무도 어린 알리란 소년이 잡혀서 남긴 말이 듣는 이의 가슴을 찌른다. "신께서는 어째서 자살 폭탄 테러를 권장하시는지 아직 모르겠어요."

끝없는 분쟁과 가난으로 하루 한 끼를 잇기 어려운 어린이들, 공짜로 밥 먹여주고 천국 보내준다는 말이 달콤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알라를 위하여 살다가 알라를 위해서 죽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자살 테러범들의 최고 목표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인간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인지, 그 대상과 목적을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이토록 맹목적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살고 있으며 하나밖에 없는 나의 생명, 누구를 위해 바칠 것인가? 한 번쯤 깊이 생각하며 심사숙고해 보아야 한다는 것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성도는 물론이거니와 복음을 맡은 사역자들이라면 더욱더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역자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일해야 한다. 특히, 부름을 받은 사역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기쁜 소식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그 복음을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역자는 행동하기 전, 먼저 본인의 삶 속에 사랑의 주체이신 주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내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가?” 확실한 목적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에만 집착하다 보면 본인에게도 남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내 마음 가운데 과연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여유와, 충만함, 그리고 참사람,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된 전인적 인격을 갖춘 모습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결국 복음은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얼마나 많은 사역자가 자신의 사역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동역 자들, 부교역자나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나는 거룩하고 나는 신령하고 내가 가장 많이 알고…등등의 자고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따르라 강요하고 있는가? 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도 더욱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역이란 말인가? 사역이 우상화된 사례라고 보겠다. 이 시점에 와서 우리는 주님의 사역 방법을 다시 한 번 배워보고 우리들의 사역자세도 재검토해 보아야만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감당하신 사역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이지 사람을 희생시키며 그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죽이려 함이 아니었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혈기를 죽여야 한다, 교만을 죽여야 한다, 정욕을 죽여야 한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정신없이 뛰고 있는가? 일의 동기 가치를 부여하라(value entitlement), 목적에 가치를 부여하라, 발걸음(행보)에 가치를 부여하라, 삶의 가치를, 죽음의 가치를 부여하라.

우리는 심지 않은 것, 거두어 들이는 일에 참여하는 것뿐이다. 생명으로 생명을 심은 이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 생명을 거두어 들이는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종일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심지 않은 생명을 주와 함께 거두어 들이는 기쁨을 누리는 특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육신대로, 정욕대로 살겠다 고집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가 지금 열심 내고 있는 그 일 속에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이 빠졌다면 문제다. 그런 사람이나, 그런 마음으로 행하는 사역, 역시, 자살폭탄 테러범만큼이나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며, 사람을 죽이고 자기도 죽는, 그야말로 일말의 가치조차도 없는 하찮은 일에 목숨 거는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병기로 사용되게 원수에게 내어주지 말고 사람을 살리는 일, 그리스도의 일꾼,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지도록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한다.

“너는 누구를 위하여 일하고 있느냐.”그날 저녁, 내 영혼 깊숙이 파고들듯 울려오는 성령님의 음성을 나는 들었던 것이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요 4:36-37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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