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永遠)을 사모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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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ㆍ2013-01-0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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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13년의 새 아침이 밝았다.
지난밤 많은 사람들은 2012년의 마지막을 같이 보내고 , 그리고 새해의 첫 시간을 count down 하기 위해 타임스퀘어에 인산인해로 몰려들며 그 의미를 자축하기 위해 그야말로 열성을 다했다.
그런데 이런 행사는 전세계 곳곳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보게 되며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한 해의 마지막 시간과 첫 시간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시간(時間)이란 과연 무엇인가 ? 위키백과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시간(時間, time)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다. 세월(歲月)이라고도 한다. 시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은 오랫동안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러나 시간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폭넓은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시간의 정의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시간이 사건의 측정을 위한 인위적인 단위에 불과한지, 아니면 사건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학적 의미를 갖는 어떠한 양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산업혁명은 '시간' 이라는 개념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에는 서구에서조차 기계적이고 객관적이며 측정 가능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딱히 없었다. 공전과 자전에 따라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시간을 대략적으로 가늠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옛 부터 발전해온 학문은 천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시간의 측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철도회사가 생기고, 각종 물품회사가 생기면서 객관적인 시간의 측정과 여기의 정확성은 '돈'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즉, 개인과 사회, 국가에게 있어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경쟁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고래(古來)로부터 인간은 시간에 대해 여러 학설과 주장을 이어왔는바 갈릴레이의 상대성이론과 뉴톤역학이 그것인데 아인슈타인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특수상대성 이론을 제시하기에 이르른다.
그런가하면 철학자들도 시간에 대한 여러 주장을 제시하였는바 누지문서는 그중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인용하고 싶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수많은 역설과 문제를 탐구하였다. 그는 “시간은 정말로 무엇인가? 나에게 아무도 묻지 않더라도 아는 안다. 그러나 내가 질문자에게 설명하고자 한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라고 말하며, 시간 탐구의 어려움을 말했다. 그는 과연 ‘현재’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의 형식적인 분기점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시간을 어떻게 과거와 현재, 미래로 분할할 수 있는지, 시간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고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는 자신이 품은 시간에 관한 일련의 물음들의 답을 인간의 ‘정신(혼)’에서 구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이 시간을 분할하여 이해하는 것은 영원 속에서 유한한 시간을 뽑아낼 수 있는 ‘정신’ 때문이었다. 영원은 시간의 연장이 아닌 신에게 귀속된,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은 그가 인식할 수 있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는 창조 이전과 종말 이후는, 끝없는 시간 혹은 無 시간이 아닌, 영원성일 뿐이고,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은 유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죽음, 재생, 죽음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순환적인 시간관을 거부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인간 정신의 산물로 보고, 인간은 신의 창조 이후 약 수천 년 동안 지속될 역사의 과정 속에서 살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면 누지문서의 시간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
시간(時間)은 어떤 때(時)와 다른 때(時)의 사이(間)이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난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다만 그 사이의 시간이 우리 각자의 삶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永遠)이란 무엇인가 ?
우리에게 있어 영원이란 우리 각자의 태어난 때 이전부터 죽는 순간의 이후이며 이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영역(領域)이다.
전도서기자는 3장에서 인간의 모든 때를 잘 묘사하고 있지 않는가 ?
“ 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
2012년이 벌써 지났다고 허무해할 필요도 없으며 2013년 새해가 왔다고 열광할 필요도 더욱 없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엔 다 지나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
우리에게 하나님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며 그 목적이 “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 전도서 3;14)” 임을 명심하여 2013년 한해에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변함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천성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지난밤 많은 사람들은 2012년의 마지막을 같이 보내고 , 그리고 새해의 첫 시간을 count down 하기 위해 타임스퀘어에 인산인해로 몰려들며 그 의미를 자축하기 위해 그야말로 열성을 다했다.
그런데 이런 행사는 전세계 곳곳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보게 되며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한 해의 마지막 시간과 첫 시간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시간(時間)이란 과연 무엇인가 ? 위키백과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시간(時間, time)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다. 세월(歲月)이라고도 한다. 시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은 오랫동안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러나 시간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폭넓은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시간의 정의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시간이 사건의 측정을 위한 인위적인 단위에 불과한지, 아니면 사건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학적 의미를 갖는 어떠한 양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산업혁명은 '시간' 이라는 개념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에는 서구에서조차 기계적이고 객관적이며 측정 가능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딱히 없었다. 공전과 자전에 따라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시간을 대략적으로 가늠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옛 부터 발전해온 학문은 천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시간의 측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철도회사가 생기고, 각종 물품회사가 생기면서 객관적인 시간의 측정과 여기의 정확성은 '돈'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즉, 개인과 사회, 국가에게 있어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경쟁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고래(古來)로부터 인간은 시간에 대해 여러 학설과 주장을 이어왔는바 갈릴레이의 상대성이론과 뉴톤역학이 그것인데 아인슈타인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특수상대성 이론을 제시하기에 이르른다.
그런가하면 철학자들도 시간에 대한 여러 주장을 제시하였는바 누지문서는 그중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인용하고 싶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수많은 역설과 문제를 탐구하였다. 그는 “시간은 정말로 무엇인가? 나에게 아무도 묻지 않더라도 아는 안다. 그러나 내가 질문자에게 설명하고자 한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라고 말하며, 시간 탐구의 어려움을 말했다. 그는 과연 ‘현재’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의 형식적인 분기점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시간을 어떻게 과거와 현재, 미래로 분할할 수 있는지, 시간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고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는 자신이 품은 시간에 관한 일련의 물음들의 답을 인간의 ‘정신(혼)’에서 구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이 시간을 분할하여 이해하는 것은 영원 속에서 유한한 시간을 뽑아낼 수 있는 ‘정신’ 때문이었다. 영원은 시간의 연장이 아닌 신에게 귀속된,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은 그가 인식할 수 있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는 창조 이전과 종말 이후는, 끝없는 시간 혹은 無 시간이 아닌, 영원성일 뿐이고,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은 유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죽음, 재생, 죽음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순환적인 시간관을 거부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인간 정신의 산물로 보고, 인간은 신의 창조 이후 약 수천 년 동안 지속될 역사의 과정 속에서 살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면 누지문서의 시간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
시간(時間)은 어떤 때(時)와 다른 때(時)의 사이(間)이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난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다만 그 사이의 시간이 우리 각자의 삶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永遠)이란 무엇인가 ?
우리에게 있어 영원이란 우리 각자의 태어난 때 이전부터 죽는 순간의 이후이며 이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영역(領域)이다.
전도서기자는 3장에서 인간의 모든 때를 잘 묘사하고 있지 않는가 ?
“ 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
2012년이 벌써 지났다고 허무해할 필요도 없으며 2013년 새해가 왔다고 열광할 필요도 더욱 없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엔 다 지나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
우리에게 하나님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며 그 목적이 “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 전도서 3;14)” 임을 명심하여 2013년 한해에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변함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천성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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