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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길 or 평신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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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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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4
가을이 오면 남자들은 사추기(思秋期)를 겪게 되고 그럴 때면 종종 떠오르는 시가 있으니 바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등재됐던 Robert Frost 의 “ 가지 않은 길 ” 이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 시를 보며 인생의 그 깊은 뜻을 깨닫기 전에 필자에게는 이미 두 갈래의 길로 고민했던 시절이 고교 졸업 즈음에 일어났다.

일제강점기시에 평양신학교를 나오시고 황해도에서 목회를 시작하신 조부께서는 두 아들이 장로로 교회를 섬기게 되니 손자 대에서 목회자가 나오길 바라셨다. 그런데 4남의 우리 집에서 위로 3명의 형님들이 다른 길로 공부를 하니 막내인 필자에게 그야말로 노골적인 강압(?)의 나날이 시작됐고 당시 있었던 대학 예비고사가 끝나고 대입 준비가 본격화 된 시점에서는 매일 독촉과 확인의 순간이 이어졌다.

그런 연고로 필자의 마음 속으로는 반반의 마음이 있었고 기도하며 이 시련(?)을 극복하거나 아니면 목회자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평신도(많은 분들이 이 용어에 반대를 하나 실질적으로 다른 호칭이 없기에 사용하는 바이다)의 길을 간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내 개인적으로도 맞는 길인 것을 깨닫게 되나 프르스트의 시에서 나타난 가지않은 길에 대해서 , 목회자가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키보드를 두들기게 된다.

필자가 고교를 졸업했던 1972년 당시 조부께서 권고하시던 총회신학교는 후기에 속하던 대학교였고 예비고사만 합격하면 쉽게 입학할 수 있었던 수준이었다.(총신을 격하하거나 다른 뜻은 없고 다만 필자가 졸업했던 고교의 진학상담에서 당시의 사실을 알릴뿐이다.)

필자의 외모는 미남은 아니나 남들에게 호감이 가는 얼굴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한 목소리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서 한 때는 취미로 시립합창단(80년 초에는 남자 단원이 모자라 비전공자도 오디션으로 합격하면 가능했다.)을 했을 정도이고 마이크를 사용하는 목소리는 지금도 아나운서였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평생을 주일학교 교사와 고등부 교사와 성경공부 교사로 살아온 필자는 경험을 통하여 깨닫기로는 목회자가 되어서 설교를 하여도 보통 정도의 설교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집안의 사돈 팔촌이 다 교회를 다니고 목회자나 사모이기에 모였다하면 교회이야기이고 필자 역시 평생 경험이 교회이기에 사실상 목회도 무리 없이 순리적으로 잘 했으리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면 보통 정도의 목회자는 충분히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내적 소명이 반반이었고 외적 재능도 웬만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필자에게 목회자로서 결격사유가 하나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 있으니 타고난 성격상 호불호가 뚜렸한 것이 그것이다. 만약 누군가를 싫어하게 된다면 필자의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그 기운을 느낀다고 아내가 가끔 지적하는 바이다.

그런 자가 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이럴 때 쓰는 말이 “명약관화”라는 단어가 아닐까 ?

그런 필자의 마음을 확인시켜주는 사례가 있으니 여동생이 한때 다니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시다(지금은 한국에서 목회한다).

여동생의 말에 의하면 5년 전엔가 뉴욕으로 이민와 처음 장만한 차가 현대 소나타 중고였고 같은 교회의 교인이 타던 것을 인수했다고 한다, 그런데 차가 그다지 상태가 처음부터 안좋았고 그래서 교회 근방에서 만나 인수하여 조심스럽게 집까지 도착했다고 한다.

운전에만 집중하던 동생이 집 앞에 내려서야 깨달은 것은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말도 없이 뒤에서 따라오며 계속 자신을 지켜보았던 사실이다. 당시 뉴욕 지리도 서투르고 중고차를 처음으로 운전하니 염려스러워서 그랬으리라 짐작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한번은 동생이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니 비 오는 날에 목사님이 생일 케이크를 손에 들고 집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물론 그날은 자신의 생일이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 동생은 감격했다,(다른 교인들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섬겼다고 한다)

담임 목사의 이런 교인들에 대한 사랑(사실 설교보다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은 타고난 성격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나 사실 필자에게는 전혀 없는 것이 사실이고 그러니 다른 재능과 소명이 있다 해도 필자는 목회자의 길보다는 평신도의 길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요지음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누군가 그 당시 신학교에 진학하여 목회자가 아닌 신학자의 길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면 필자는 그 길을 걸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요지음이다.( 요사이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교회사이며 특히 신약의 초대교회사이다.)

“ 세월이 오래오래 지난 후에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리
두 길이 숲속에 있었고 나는 가지않은 길을 생각하노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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