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trial) 과 시험(temp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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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ㆍ2017-01-1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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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요사이 한국과 미주는 물론 이곳 뉴욕등 도처에서 유명 목회자들의 교회 헌금 횡령과 불륜등의 사실들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며 교회마다 분쟁에 휩쓸리니 이미 이런 일에는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마음이 황량해지므로 “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 교회를 어지럽히는가 ? ” 하는 궁금증에 말씀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싶다.
우리는 주위에서 “ 모모 집사가 요새 시험에 들었대 , 그래서 그렇대 ” 혹은 “ 그렇게 말 하지마 잘못하면 그 집사 시험 들어 ”라는 대화를 가끔 듣거나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에 보면 시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몇몇 구절에서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발견한다.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절)”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12절 전반절)”
그런데 그 다음 부분에서는
“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 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13절)”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14절)”
두 부분을 비교해 보면 한글로는 시험이라는 같은 단어이나 영어 성경으로는 2절에서 trial이라는 단어를, 13절에서는 tempted , tempting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2절의 시험(trail)은 3절을 보니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시련인줄 바로 깨닫게 되며 이것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온전히 이룰 때에 복이 있는 사람이 되며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됨을 깨닫게 된다.(12절)
2절의 시험(trial) 이 외부적인 시련으로 우리의 신앙 인격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시험인데 반하여 13절의 시험(temptation)은 내부적인 것이며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에 따라 실패하면 범죄에 이르는 부정적인 시험(temptation)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런 내부적인 시험(temptation)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his own evil desire) 때문이며 그 욕심이 잉태되면 죄를 낳고 , 죄가 점점 커져 최대로 되면(full-grown) 사망을 낳는다고 경고한다(14,15절).
그런데 야고보 사도가 1장에서 먼저 외부적인 시험(trial)을 말씀하고 그 후에 내부적인 시험(temptation)을 말씀하신 순서가 필자의 눈에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
즉 , 믿는자들에게는 외부적인 시험 - 복음을 전하는 자의 믿음의 시련 - 이 없거나 시험에 실패했을 때 내부적인 시험(temptation) 에 직면하게 되며 그럴 때에 자기 욕심에 끌려 죄를 짓고 끝내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
멀리 볼 필요 없이 근세사에서 좋은 롤모델을 이야기하고 싶다. 1938년 어느 유대인 소녀가 독일인 하급 관리를 총으로 사살한 이유로 히틀러는 하룻만에 3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투옥하는 사건을 일으켰으며 당시 나찌의 시퍼런 권력앞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인물이 바로 디트리히 본훼퍼였다. 그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신학자 리처드 니이버가 초청장을 보냈지만 본훼퍼는 초청에 응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 제가 만일 이 힘겨운 순간을 우리 국민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후에 독일에서 기독교 생활의 재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히틀러 암살 사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체포되었고 1945년 4월 5일에 사형되었으며 교수대 옆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한 후 처형이 되었으며 당시 이를 지켜본 수용소 담당 의사는 “ 나는 그토록 하나님에 철저히 순종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회의 사이트에 등재된 순교자 리스트에 보니 중화군 성현교회 목사로 시무할 때 6·25를 만났으며, 1950년 9월 23일 공산당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숨진 강광범 목사를 필두로 백여명의 순교자 명단과 사건 기록을 보게 된다.
이제 한국의 경제 부흥으로 교회도 돈과 부동산으로 부해졌고 더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믿음의 시련이 거의 없어진 요사이는 외적인 시험으로 인한 인내와 연단이 없는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실족하여 내적인 시험에 무너지게 된다. 저들은 자기 욕심에 미혹되어 거액의 교회 헌금을 횡령하고 성적인 유혹에 몸을 내맡기며 장성한 죄로 인해 영적 , 육적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내게 힘이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아니라 그 이상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기필코 해내고야 만다. 감리 교단이 세습불가를 결정하자 부목사에게 담임 자리를 넘겼다가 다시 자신의 아들에게 넘기며 세습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김모 목사를 비롯하여 논문 표절이 사실이더라도 수염기르고 눈을 지긋이 감으며 당회장 자리를 유지하는 오모 목사의 모습과 소속 교회의 장로들에게 본인과 가족들의 거액의 교회 공금 횡령에 대한 고소에도 계속 전면 부인하는 조모 목사의 모습과 그 외 여러 가지 모양의 궤변들에 우리의 눈과 귀가 이미 익숙한 요즈음이다.
만약 불거진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저들을 심판하며 죄의 값을 물을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므로 우리의 할 일은 저들이 하루빨리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 그런 죄의 길에 서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이 시험(trial)이 없는 때라면 더 더욱 그리하여 시험(temptation)에 들지 말기를 매일 기도하며 살고 싶은 요즈음이다.
나의 마음을 정금과같이 정결케하소서
나의 마음을 정금과같이 하소서
내 영혼에 한 소망있으니
주님과같이 거룩하게하소서
나의 삶을 드리니 거룩하게하소서 오 주님
나를 받으소서 나를 받으소서
요사이 한국과 미주는 물론 이곳 뉴욕등 도처에서 유명 목회자들의 교회 헌금 횡령과 불륜등의 사실들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며 교회마다 분쟁에 휩쓸리니 이미 이런 일에는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마음이 황량해지므로 “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 교회를 어지럽히는가 ? ” 하는 궁금증에 말씀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싶다.
우리는 주위에서 “ 모모 집사가 요새 시험에 들었대 , 그래서 그렇대 ” 혹은 “ 그렇게 말 하지마 잘못하면 그 집사 시험 들어 ”라는 대화를 가끔 듣거나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에 보면 시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몇몇 구절에서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발견한다.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절)”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12절 전반절)”
그런데 그 다음 부분에서는
“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 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13절)”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14절)”
두 부분을 비교해 보면 한글로는 시험이라는 같은 단어이나 영어 성경으로는 2절에서 trial이라는 단어를, 13절에서는 tempted , tempting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2절의 시험(trail)은 3절을 보니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시련인줄 바로 깨닫게 되며 이것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온전히 이룰 때에 복이 있는 사람이 되며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됨을 깨닫게 된다.(12절)
2절의 시험(trial) 이 외부적인 시련으로 우리의 신앙 인격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시험인데 반하여 13절의 시험(temptation)은 내부적인 것이며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에 따라 실패하면 범죄에 이르는 부정적인 시험(temptation)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런 내부적인 시험(temptation)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his own evil desire) 때문이며 그 욕심이 잉태되면 죄를 낳고 , 죄가 점점 커져 최대로 되면(full-grown) 사망을 낳는다고 경고한다(14,15절).
그런데 야고보 사도가 1장에서 먼저 외부적인 시험(trial)을 말씀하고 그 후에 내부적인 시험(temptation)을 말씀하신 순서가 필자의 눈에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
즉 , 믿는자들에게는 외부적인 시험 - 복음을 전하는 자의 믿음의 시련 - 이 없거나 시험에 실패했을 때 내부적인 시험(temptation) 에 직면하게 되며 그럴 때에 자기 욕심에 끌려 죄를 짓고 끝내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
멀리 볼 필요 없이 근세사에서 좋은 롤모델을 이야기하고 싶다. 1938년 어느 유대인 소녀가 독일인 하급 관리를 총으로 사살한 이유로 히틀러는 하룻만에 3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투옥하는 사건을 일으켰으며 당시 나찌의 시퍼런 권력앞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인물이 바로 디트리히 본훼퍼였다. 그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신학자 리처드 니이버가 초청장을 보냈지만 본훼퍼는 초청에 응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 제가 만일 이 힘겨운 순간을 우리 국민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후에 독일에서 기독교 생활의 재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히틀러 암살 사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체포되었고 1945년 4월 5일에 사형되었으며 교수대 옆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한 후 처형이 되었으며 당시 이를 지켜본 수용소 담당 의사는 “ 나는 그토록 하나님에 철저히 순종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회의 사이트에 등재된 순교자 리스트에 보니 중화군 성현교회 목사로 시무할 때 6·25를 만났으며, 1950년 9월 23일 공산당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숨진 강광범 목사를 필두로 백여명의 순교자 명단과 사건 기록을 보게 된다.
이제 한국의 경제 부흥으로 교회도 돈과 부동산으로 부해졌고 더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믿음의 시련이 거의 없어진 요사이는 외적인 시험으로 인한 인내와 연단이 없는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실족하여 내적인 시험에 무너지게 된다. 저들은 자기 욕심에 미혹되어 거액의 교회 헌금을 횡령하고 성적인 유혹에 몸을 내맡기며 장성한 죄로 인해 영적 , 육적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내게 힘이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아니라 그 이상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기필코 해내고야 만다. 감리 교단이 세습불가를 결정하자 부목사에게 담임 자리를 넘겼다가 다시 자신의 아들에게 넘기며 세습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김모 목사를 비롯하여 논문 표절이 사실이더라도 수염기르고 눈을 지긋이 감으며 당회장 자리를 유지하는 오모 목사의 모습과 소속 교회의 장로들에게 본인과 가족들의 거액의 교회 공금 횡령에 대한 고소에도 계속 전면 부인하는 조모 목사의 모습과 그 외 여러 가지 모양의 궤변들에 우리의 눈과 귀가 이미 익숙한 요즈음이다.
만약 불거진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저들을 심판하며 죄의 값을 물을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므로 우리의 할 일은 저들이 하루빨리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 그런 죄의 길에 서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이 시험(trial)이 없는 때라면 더 더욱 그리하여 시험(temptation)에 들지 말기를 매일 기도하며 살고 싶은 요즈음이다.
나의 마음을 정금과같이 정결케하소서
나의 마음을 정금과같이 하소서
내 영혼에 한 소망있으니
주님과같이 거룩하게하소서
나의 삶을 드리니 거룩하게하소서 오 주님
나를 받으소서 나를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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