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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權限)과 책임(責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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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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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27
월드컵을 시청하노라면 가장 눈에 자주 띄는 장면이 있다. 선수들 누구나가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반칙을 범하게 된 후에 심판을 쳐다보며 취하는 얼굴 모습과 손의 위치이다. 눈을 치켜뜨고 “나는 모르쇠”의 얼굴로 , 혹은 두 손을 옆으로 벌려 올리며 내 손이 아무런 잘못을 안한 것인양 취하는 제스처이다.

심판이 달려와 옐로 티켙, 혹은 레드 티켙을 줄 때 선수들의 이에 대한 항의 태도 또한 다양하다. 알았다며 바로 인정하는 선수들과 큰 소리와 온 몸으로 항의하는 선수들, 혹은 끝까지 항의하다 퇴장당하는 선수들까지 그 모습이 또한 다양하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선수들이 증명하지 못했다. 월드컵에 경험 쌓으러 나오는 팀은 없다. 이 말은 이영표 KBS 해설위원의 이야기이다.

10명의 벨기에 팀에게 숫적으로도 우세한 게임에서 지고도 "좋은 경험했다" 며 심판 앞에서 두손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축구선수처럼 잘못을 간접적으로도 시인하지 않는 홍명보 감독에게 일침을 가한 이영표 해설위원의 일갈이다.

그런데 우리는 똑같은 모습을 보인 다른 사람을 기억하고 있으니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문창극 국무총리 후보를 청문회에 세우는 것을 포기하고 사퇴시키면서 박대통령은 "안타깝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안타깝다"라는 말은 제 삼자가 할 말이지 인사권을 쥐고 있는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이 말로써 자신의 잘못을 결코 시인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더 나가서 이미 사표를 수리했던 정홍원 국무총리를 다시 세움으로 본인의 잘못은 없다는 것에 대해 쐐기 박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이 두 가지 예는 우리에게 책임과 권한에 대한 지도자의 고집과 책임전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정치와 스포츠에서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지.

일반적으로 권한이 클수록 책임도 당연히 커진다. 그래서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나 스포츠팀의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감독일지라도 확실한 잘못이 있는 경우에 무한 책임을 지고 본인 스스로 물러나거나 임기가 끝날 경우에 국민들의 투표로 심판을 받게 되어있다.

그런데 요새 유행하는 “성역없는 철저한 조사” 에서도 예외 사항이 있으니 바로 목회자의 세계이다.

각 교단의 총회 헌법을 살펴보자면 위임된 담임 목사에게는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을 쥐고 있으며 이에 더하여 재정과 인사권까지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지만 이에 반하여 책임 소재에 대한 조항은 명확하지도 않으며 이에 대한 강제조항도 석연치 않다.

막강한 권한에 비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가장 극명한 사례가 있으니 한국의 합동 총회의 소위 가스총 총무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흐지부지 끝난 사건이다. 그뿐인가 성추문이 확실하게 드러난 목회자를 노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일언반구의 회개 없이 당사자는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여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며 헌금 횡령이 사실로 들어나 실형까지 끝낸 목회자가 본교회당을 다시 차지하겠노라고 소란을 피워도 노회나 총회가 아무 조치 없이 수수방관하는 현대 교회이다.

담임목사 자리의 세습금지법을 만들어도 전혀 상관안하거나 여러 다양한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기어히 뜻을 이루고야마는 모습과 서울의 모 대형교회의 재정 책임 장로가 교회의 800억원 적립금 관리에 대한 책임 문제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사건들을 보노라면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실로 궁금하다.

이제 세속화로 인해 거의 회복 불가능한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방법은 오직 교회 권징의 회복이다. 지교회에서 삼권의 권한을 갖고 있는 담임 목사에게 객관적인 잘못이 확인된 경우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 소재가 분명하게 조사되어지며 이에 대한 집행이 확립되어야 한다.

거듭 호소하거니와 교회에서 권징의 회복이 안 될 시에는 진리가 사라지며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이름과 존귀하신 영광이 약화되며 악행이 횡행하고 교회가 타락하게 되며 덕이 무너지고 범죄한 자의 신령적 유익이 결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 치리회에서 권징이 바르게 시행되고 있는가? 대부분의 지도자들 입에서 “교회에서의 권징은 사라진지 오래”라고 한다. 세상이 변하여 권징을 시행하기도 어렵고 공표는 더욱이나 어렵다. 그랬다가는 명예훼손죄로 오히려 세상법정으로부터 범법자가 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더구나 교회 직분자들 조차 스스로 교회의 치리를 달게 받겠다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다. 치리받은 자가 다른 교회나 교단에서 버젓이 직분자로 행세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니 교회로서는 치리받을 자와 그의 가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냥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는 일이 태반이다.

더 나아가서 노회와 총회 뿐 아니라 연합기관에서는 치리를 파벌 싸움이나 권력다툼에 악용하고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치리회가 바르게 치리하여야 교회의 지도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교회를 새롭게 하고 정화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게 오늘의 현실이다.

당회에서 총회에 이르기 까지 치리를 행함에 기준이 없고 감정만 있다. 그래서 그 때 그 치리회의 권한자의 색깔에 따라 시벌이 진행되고 있다면 어느 누가 이런 치리회를 신뢰하겠는가? 큰 교회, 유명한 지도자와 상회비의 규모가 큰 교회에 대한 권징 적용과 힘없는 지도자에 대한 권징적용이 다르게 적용되어 치리가 바르게 시행되지 못한다면 이는 이미 공회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개신교란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 특별히 권징이 바르게 시행되도록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 시벌의 기준이 교회마다 다르고 노회마다 다르게 적용된다면 이미 공교회로서의 가치와 힘을 잃은 것이다. 권징이 바르게 시행되지 않는 것은 교회의 표지를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기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중론을 모아야 할 때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교회의 주인이 누군가이다.
교회의 주인이 목사면 어떤 제도나 법규도 올바른 권징을 이룰 수가 없어 우리의 눈앞에 요사이 흔히 보이는 교회의 혼란스런 모습이지만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일 때 올바른 권징이 이루어져 진리를 보호하며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이름과 존귀하신 영광을 견고하게 하며 악행을 제거하고 교회를 정결하게 하며 덕을 세우고 범죄한 자의 신령적 유익을 도모하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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