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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신 네가 관 속에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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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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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1일에 모택동이 중화인민 공화국을 선포하였습니다. 1958년 모택동은 전 인민을 군대처럼 조직화하여 대 약진운동을 펼쳤습니다, 대 약진운동이란 곡물과 철강 생산을 극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 무리하게 추진하여 실패를 하고 맙니다. 모택동은 그 실패를 만회하려고 1966년에 문화혁명을 일으킵니다. 모택동은 소위 4인방인 강청, 왕홍문, 장춘교, 요문원을 앞세워 문화혁명을 추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운동의 행동대가 홍위병들이었습니다. 문화혁명은 4구 타파를 주창하였습니다. 4구란 구사상, 구문화, 구풍습, 구습관을 말합니다. 이 4구에 해당되는 사람은 무조건 숙청대상이 되었습니다. 홍위병들은 모택동의 어록을 들고 다니며 4구에 해당되는 사람은 무조건 숙청시켰습니다. 홍위병들은 거의 청소년들이었는데 나이 어린 그들이 종교인, 문인, 언론인, 예술인, 과학자, 교수, 변호사, 의사, 심지어 공산당원들 중에서 숙청 대상을 결정하였습니다. 한 때는 등소평도 그들에게 자아비판을 강요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모택동이 일으킨 중국의 문화혁명에 대하여 건설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인물이 주은래와 등소평입니다. 1966에 시작된 문화혁명이 1976년까지 계속되는 동안에 숙청되고 희생된 중국인이 무려 1억 명에 달합니다. 어떤 노 애국자는 나이 어린 홍위병에게 봉변을 당하고 그 수치를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일이 부지기수였을 것입니다. 문화혁명을 주도하던 홍위병들의 난폭한 행동 때문에 인민의 원망이 폭발직전이었던 1976년 1월 8일에 주은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여 천안문 광장에 모여들었습니다. 주은래에 대한 애도도 애도이지만 모택동의 문화혁명을 수행하는 홍위병들이 너무나도 가혹하게 백성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발심이 상승 작용하여 천안문 광장은 애도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이에 4인방(강청, 장춘교, 요문원, 왕홍문)은 이때를 당과 국가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하고 주은래의 장례에 대하여 간섭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은래에 대한 인민의 존경과 애도 감정을 가급적 약화시키려고 하였으며,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주은래의 영향력을 지워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택동 다음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들의 손에 넣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은 1976년 1월 21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중앙정치국회의를 소집하고, 2월 3일에 화국봉을 국무원 총리대리에 임명하였습니다.

4월 4일, 수많은 사람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였습니다. 천안문 광장에는 애도하는 시와 조화들이 가득 하였고, 북경뿐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주은래에 대한 추모활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천안문 광장에 있었던 모든 조화와 만장(輓章)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도 체포되었습니다. 이 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일부의 민병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4인방은 이를 반혁명 사건으로 간주하고 잔혹하게 진압하였습니다. 이것이 소위 천안문 사태입니다. 천안문 사건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전 인민의 항의가 집중적으로 표현된 것이었으며 이 항의의 형식은 주은래에 대한 애도를 표시하면서 4인방을 반대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그리고 문화혁명을 건설적으로 비판해 오던 주은래, 등소평을 대표로하는 중국공산당 지도자에 대한 지지와 옹호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직후 등소평이 고민 끝에 모택동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주석님! 지금 주석님이 세우신 중화인민공화국이 일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무슨 좋은 묘안이 있습니까?" 그러자 모택동이 등소평에게 “지금 당장 나를 관속에 넣어 내가 누워 있는 관을 천안문 광장에 옮겨놓게.”등소평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하시려고요?”라고 묻자 모택동이 “그리고 관 뚜껑을 열고 나를 일으켜 세우게” “그런 다음 에는요?” “그런 다음 나대신 자네가 관 속에 들어가면 되지”

나는 이 글을 읽고 한참 생각을 하였습니다. 모택동의 대 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이 진정 인민을 위하고 인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정당하게 추진되다가 이런 위기를 맞았다면 그의 대안은 나라와 인민을 위한 기가 막힌 묘안이며 등소평이 모택동 대신 관 속에 들어가는 선택은 모든 지도자들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등소평이 모택동의 제안을 따르는 것은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고 최고 통치자가 모택동이 아니라 주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실제로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당신의 제자로 살려면 “나대신 네가 관 속에 들어가라!”고 하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 길을 택했고 주님의 제자들도 모두 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말씀이 바로 주님대신 관 속에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마다 새 해에 직원을 임명하여 사역을 맡깁니다. 교회에도 조직이 필요한 것은 사역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조직은 세상의 조직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조직은 일의 효율성을 위해 계급과 상하 질서와 심지어 상명하복의 원칙까지 필요로 합니다. 그 질서와 원칙들은 법에 준하는 강제성으로 요구되고 또한 지켜집니다. 그러나 교회 조직 안에서는 계급과 강제성이 일체 배제됩니다. 평교인과 직분 자들 모두는 자발적으로 자기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아무도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강제성이 있는 사회조직 안에서보다 몇 배 무거운 역할이 요구됩니다. 사회조직 안에서 계급과 보직은 특혜지만 교회에서의 직분(보직)은 전적으로 희생만이 요구됩니다. 그것이 교회와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직분의 의미입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 자들은 인정받고 높임 받고 존경 받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인정해 주고 높여 주고 존경하는 것은 더 없이 귀한 것이지만 그런 것을 눈곱만큼이라도 인위적으로 요구하거나 바라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특히 직분 자들이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분쟁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교회 안의 분쟁은 거의 직분 자들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주님대신 관 속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를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좀처럼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주님대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대신 관 속에 들어가는 것도 주님대신 관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관주 하십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즉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관 속에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정과 교회에서 모든 갈등과 분쟁과 싸움이 그칠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평화는 그렇게 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보면서도 평화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 눅 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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