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부패를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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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12-12-3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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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그의 《정의론 》에서 정의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자유 우선성의 원칙과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하고 불평등의 원인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차등의 원칙이 롤스 정의론의 핵심이 되는 정의의 두 원칙이라고 합니다. 이중 자유의 원칙은 차등의 원칙에 우선하고 차등의 원칙 중 균등의 원칙은 수혜의 원칙에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초적 상태에서의 계약은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의 계약을 공정으로서의 정의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롤스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는 정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노예와 같은 소수 집단이나 개인의 희생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대안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사회의 안정성을 지키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이론을 받아들여 자유주의 안에서 정의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복지주의 또는 수정자본주의와 같은 전향적인 자유주의 질서를 모색하는 새로운 사회관계에 대한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51-53절에 마리아의 찬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높은 자를 낮추고 낮은 자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자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정의는 높은 자를 낮추고 낮은 자를 높여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지위를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는 조금 낮추고 낮은 자는 조금 높여서 어느 정도 평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평등이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와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낮은 자 된 자를 어느 정도 높여 주는 것이 정의입니다. 낮은 자를 높이려면 높은 자를 낮추어야 하는데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높은 자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아니면 결코 그를 낮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통치자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서 높은 자는 낮추고 낮은 자를 높여야 하는데 높은 자를 낮추려면 지도자는 그 높은 자보다 힘이 강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높은 자가 정의를 이루어야 할 통치자보다 강한 힘을 갖게 되어 정의를 이룰 수 없게 합니다. 재벌의 힘이나 검찰의 힘이나 언론의 힘이나 심지어 의회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서 통치자가 정의를 실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사회는 강한 자를 낮추기 위해 그에 필요한 힘을 통치자에게 점점 더 많이 주었습니다. 민주주의 장점 중의 하나가 힘의 분산인데, 현실적으로 그것은 이상일 뿐이고 강한 자는 점점 강하게 되고 약한 자는 점점 약하게 되고 있습니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국가와 통치자에게 주어진 막대한 힘이 강한 자를 낮추고 약한 자를 좀 높여서 정의를 이루는데 쓰이지 않고 오히려 힘 있는 자를 두둔하고 약한 자를 억누르는데 사용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결과 강한 자는 점점 더 강하게 되고 약한 자는 점점 더 약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패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민주주의가 매우 발전하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가 막대한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처벌권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선생이 학생을 처벌할 수 없고 심지어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권한을 국가가 다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이곳 미국에서 이러한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독점한 처벌법으로 정의를 실현하는데 어느 정도 효율성이 높아졌는지는 모르지만 부작용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사실은 최근 대선을 치룬 미국에서나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사회 부패 방지를 정책으로 내놓은 후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경제정의나 정치개혁이나 사회복지 같은 분야에 대한 정책만 내놓았습니다. 특히 한국 대통령 후보들이 부패 문제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언론조차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 특이할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사회부패가 세계에서 최 하위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부패 때문에 1년에 20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부패를 절반만 줄여도 10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는데 세금을 더 거두거나 낭비를 줄이기도 해야겠지만 부패가 사라져야 정의가 실현되고 정의가 실현되어야 약한 자가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강조하는 민생문제도 부패를 막지 않고는 결코 이루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정부나 정당이나 언론이나 검찰까지도 부패문제를 입에 담을 입장이 못 되는 모양입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지금은 오비삼척(吾鼻三尺)이라, 내 코가 석자인 형국입니다. 교회가 사회를 향해서 부패추방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향해서 부패를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성문제, 공금횡령 문제, 세습 문제, 탈세 문제, 낭비와 사치 문제, 지나친 경쟁, 성공주의, 진영과 패거리 만드는 일, 물량주의 등 이 모두가 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지만 교회나 교회 지도자 중에 이런 문제에 대해 쓴 소리 한 마디 할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이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회지도자나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세속적 유혹들에 대해 초연했던 그 옛날 선비정신의 자존심도 찾아볼 수 없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해 불을 토하던 선지자적 의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앞선 지도자들은 대접과 인기와 돈과 권력과 명예 같은 하급 가치에 목말라 있고, 대다수의 관료들과 지식인들은 관료주의와 이기적 보신주의로 몸을 사리고 있는 동안 부패는 사회라는 공동체의 온 몸에 퍼져버렸습니다. 지도자의 가장 우선되는 임무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치안을 유지하는 것과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가장 우선적인 자질은 불의나 비도덕적인 일은 미워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며 하나님 나라 정신입니다. 지도자는 그 시대의 부패의 원인을 제공한 모든 이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불을 뿜는 세례요한의 입과 아무도 보는 이 없지만 강도 만나 쓰러진 자를 위해 부비를 들여 돌보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손을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그렇게 되지 못한 자신과 나와 비슷한 모든 지도자들을 고발합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 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 미가 7:2-4 -
누가복음 1장 51-53절에 마리아의 찬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높은 자를 낮추고 낮은 자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자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정의는 높은 자를 낮추고 낮은 자를 높여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지위를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는 조금 낮추고 낮은 자는 조금 높여서 어느 정도 평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평등이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와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낮은 자 된 자를 어느 정도 높여 주는 것이 정의입니다. 낮은 자를 높이려면 높은 자를 낮추어야 하는데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높은 자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아니면 결코 그를 낮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통치자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서 높은 자는 낮추고 낮은 자를 높여야 하는데 높은 자를 낮추려면 지도자는 그 높은 자보다 힘이 강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높은 자가 정의를 이루어야 할 통치자보다 강한 힘을 갖게 되어 정의를 이룰 수 없게 합니다. 재벌의 힘이나 검찰의 힘이나 언론의 힘이나 심지어 의회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서 통치자가 정의를 실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사회는 강한 자를 낮추기 위해 그에 필요한 힘을 통치자에게 점점 더 많이 주었습니다. 민주주의 장점 중의 하나가 힘의 분산인데, 현실적으로 그것은 이상일 뿐이고 강한 자는 점점 강하게 되고 약한 자는 점점 약하게 되고 있습니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국가와 통치자에게 주어진 막대한 힘이 강한 자를 낮추고 약한 자를 좀 높여서 정의를 이루는데 쓰이지 않고 오히려 힘 있는 자를 두둔하고 약한 자를 억누르는데 사용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결과 강한 자는 점점 더 강하게 되고 약한 자는 점점 더 약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패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민주주의가 매우 발전하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가 막대한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처벌권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선생이 학생을 처벌할 수 없고 심지어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권한을 국가가 다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이곳 미국에서 이러한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독점한 처벌법으로 정의를 실현하는데 어느 정도 효율성이 높아졌는지는 모르지만 부작용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사실은 최근 대선을 치룬 미국에서나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사회 부패 방지를 정책으로 내놓은 후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경제정의나 정치개혁이나 사회복지 같은 분야에 대한 정책만 내놓았습니다. 특히 한국 대통령 후보들이 부패 문제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언론조차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 특이할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사회부패가 세계에서 최 하위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부패 때문에 1년에 20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부패를 절반만 줄여도 10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는데 세금을 더 거두거나 낭비를 줄이기도 해야겠지만 부패가 사라져야 정의가 실현되고 정의가 실현되어야 약한 자가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강조하는 민생문제도 부패를 막지 않고는 결코 이루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정부나 정당이나 언론이나 검찰까지도 부패문제를 입에 담을 입장이 못 되는 모양입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지금은 오비삼척(吾鼻三尺)이라, 내 코가 석자인 형국입니다. 교회가 사회를 향해서 부패추방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향해서 부패를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성문제, 공금횡령 문제, 세습 문제, 탈세 문제, 낭비와 사치 문제, 지나친 경쟁, 성공주의, 진영과 패거리 만드는 일, 물량주의 등 이 모두가 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지만 교회나 교회 지도자 중에 이런 문제에 대해 쓴 소리 한 마디 할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이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회지도자나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세속적 유혹들에 대해 초연했던 그 옛날 선비정신의 자존심도 찾아볼 수 없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해 불을 토하던 선지자적 의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앞선 지도자들은 대접과 인기와 돈과 권력과 명예 같은 하급 가치에 목말라 있고, 대다수의 관료들과 지식인들은 관료주의와 이기적 보신주의로 몸을 사리고 있는 동안 부패는 사회라는 공동체의 온 몸에 퍼져버렸습니다. 지도자의 가장 우선되는 임무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치안을 유지하는 것과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가장 우선적인 자질은 불의나 비도덕적인 일은 미워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며 하나님 나라 정신입니다. 지도자는 그 시대의 부패의 원인을 제공한 모든 이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불을 뿜는 세례요한의 입과 아무도 보는 이 없지만 강도 만나 쓰러진 자를 위해 부비를 들여 돌보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손을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그렇게 되지 못한 자신과 나와 비슷한 모든 지도자들을 고발합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 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 미가 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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