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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이유는 감사하지 않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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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2-11-17

본문

행복이나 불행은 객관적인 것이 아닙니다. 매우 감정적이고 주관적이고 수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지식이나 의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불행의 조건이 없는데도 불행을 느끼고, 행복의 조건이 없는데도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한국은 경제나 교육이나 문화나 정치에 있어서 상당한 발전을 해 오고 있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아니 옛날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한국은 세계인들이 놀라는 엄청난 발전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한국의 위상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불과 한 15년 전만 해도 길에서 현대차를 보면 그렇게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거리에 한국 자동차가 수도 없이 많고, 전자 제품을 파는 가게에 가보면 삼성 금성 제품들이 매장의 상당부분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빅 스포츠 게임을 중계하는 방송 시간에 한국의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선전하는 광고를 합니다. 옛날에는 미제 물건이라고 하면 보물처럼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만든 물건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34개 OECD 회원국 가운데 행복지수가 32위이고, 대한민국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나라는 터키와 멕시코뿐이었다고 합니다. 영국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생활만족도는 조사대상 110개국 가운데 104위라고 합니다. 또 다른 어떤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43%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하였고, 그 중 50대가 가장 불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일본의 한 조사 기관에 의하면 미국, 일본, 한국, 중국의 청소년들 중 한국 청소년들이 가장 돈에 집착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종교인이 전체 인구의 53%나 되고, 급상승하는 국가의 위상을 생각할 때 이렇게 불행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가 없는데도 불행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객관적 사실을 알려줄 수는 있고, 그 사실을 인지하고 불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을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감정은 객관적 사실과 결심으로 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지만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원과 의지나 결심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불행을 좋아하거나 원하지 않지만 자신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불행을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감정은 지식이나 의지에 의하여 영향을 받습니다. 내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또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결심에 따라서 감정이 영향을 받습니다.

인간의 의식구조 또는 정신적 활동 능력을 지·정·의(知·情·意) 세 가지로 나눕니다. 지·정·의를 나눌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학자들이 인간을 연구함에 있어서 편리에 따라 그렇게 나누어 연구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정신을 연구할 때 지적인 요소와 정적인 요소와 의지적인 요소를 분리해서 연구를 해 보니까 상당할 정도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누가 가르쳐 주면 배우게 되고 배우면 내 것이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지식을 많이 쌓을 수가 있습니다. 노력을 조금만 하면 지식도 조금 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지식이란 나의 노력이나 결심에 따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의지도 상당할 정도로 나의 노력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결심을 할 수 있고, 비즈니스 하는 사람도 성실과 정직으로 하려는 결심을 할 수 있고, 주부도 근검절약 하려는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결심을 하면 어느 정도는 결심한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은 우리의 지식이나 결심으로 조종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국의 현실입니다. 한국의 수준이 북유럽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많은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이 느끼는 생활만족도가 그렇게 형편없는 것은 행복이란 지식이나 의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감정은 지식이나 결심에 의해 컨츄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이나 결심이 감정에 영향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하고 긍정적인 해석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생활 형편과 수준이 높아졌지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상황을 잘 못 인식하고 또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이곳 미국이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특히 이런 면에서 너무 지나치게 부정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자신이 가해자라는 의식보다는 피해자라는 불만을 품은 사람이 많아서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부정적이라서 어떤 지도자도 존경 받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존경할 대상이 없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것입니다. 정치계나 학계나 예술계나 종교계에 그래도 몇 명의 존경 받는 지도자가 있어야 국민이 희망을 갖고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항상”과 “쉬지 말고”와 “범사”는 사실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표현은 바꾸어 사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항상 모든 일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감정에 관한 것은 명령할 수 없습니다. 명령한다고 기쁘지 않은 사람이 기뻐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는데 감사하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감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하셨습니다.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따지면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과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하셨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는 논리와 과학을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논리와 과학이 하나님 말씀과 대치되는 것 같을 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논리와 과학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믿고 어떻게든 조화를 시켜보려고 노력합니다. 주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창조과학회 회원들이 쓴 글들을 보면 그런 내용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주장도 나름대로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논리와 과학의 차원을 초월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논리와 과학의 원리를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논리와 과학이나 물리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욥기 38-39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시는 질문들이 바로 그런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는 수학이나 과학이나 논리를 존중하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뜻과 명령을 받을 때는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에 우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나서“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뻐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사실은 기뻐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불행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를 순종하면 우리는 불행하게 될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나 정직하게 생각하고 원칙과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감사할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 온갖 좋은 선물이란 인간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시편기자와 바울은 고난과 질병까지도 유익한 것으로 이해하고 믿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성경적 관점에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상황을 바로 인식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조그마한 은혜가 아닙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상황을 잘 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이 있고 불행한 것입니다. 은혜에 묻혀 살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이기적으로 산다면 그것은 배은망덕한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생각이 허망하여 졌기 때문이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고 미련하고 바보 같고 불행한 인생은 없습니다. 우리가 참 하나님의 자녀라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기쁨은 상당히 개인적입니다. 내가 기쁘다고 다른 사람도 기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는 최소한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도 기쁘고 받는 사람도 기쁩니다. 감사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인생이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감사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나에게 복이 되어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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