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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 램프와 스마트 폰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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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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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열다섯 살의 불량 청소년입니다. 어느 날 마술사 마그레브가 알라딘에게 접근하여 비밀의 장소에서 요술램프를 꺼내 오라고 합니다. 마술사는 알라딘을 이용하여 요술 램프를 손에 넣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알라딘이 마술사의 계략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시점이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마술사의 반지를 받아 램프가 숨겨진 동굴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라딘은 이 램프를 차지하기 위해 마술사와 다투다 동굴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 알라딘을 구해준 것은 반지의 요정입니다. 알라딘은 램프를 차지하기 위해 마술사와 싸우다 동굴에 갇히기까지 하지만 손에 넣은 램프가 그렇게 신기한 능력이 있는 것을 모르고, 팔면 돈이 좀 생기려니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알라딘의 어머니는 이 고물 램프를 깨끗이 닦으면 더 나은 값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램프를 청소하기 위해 문지르자 놀랍게도 요정이 나왔습니다. 요술 램프 덕분에 부자가 된 알라딘은 술탄의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요술 램프 요정은 알라딘에게 황궁보다 더 화려하고 좋은 궁전을 지어줍니다. 이를 알게 된 마술사는 그를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요술 램프의 중요성을 모르는 알라딘의 아내가 된 공주에게 헌 램프를 새 램프로 바꿔 주겠다며 속여 램프를 넘겨받아 궁전을 아프리카로 옮겨 놓는 등, 온갖 계략을 부려보지만 알라딘은 반지 요정의 도움으로 마술사를 처단하고 램프를 되찾아 공주와 행복하게 지내며 술탄의 현명한 후계자로 오랫동안 세상을 다스리며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알라딘이 요술램프의 요정을 만난 것은 수퍼볼 복권 당첨을 능가하는 인생 대박입니다. 시장 바닥의 좀도둑으로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가던 알라딘의 인생에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대리만족까지 맛보는 재미를 느낍니다.

인간은 대체로 다섯 가지 이유에서 신을 의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첫째, 자기의 도덕적 무능을 자각했을 때, 둘째, 자기의 힘으로 자기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셋째, 불가사의한 일에 직면했을 때, 넷째, 육체적 또는 정신적 질환의 위협을 받았을 때, 다섯째, 초아적(超我的) 욕망을 충족시키려 할 때 절대자의 존재를 찾아 도움을 얻어 자기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고 사람들에 의해 신이라 불리는 신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허상에 불과합니다. 실재하지 않는 허상의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신입니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신이 인간 욕망의 반영임을 의미합니다. 그 욕망이 도덕적 욕망이든 물질적 욕망이든 또한 정신적 욕망이든 인간 스스로 도달하거나 성취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초능력의 존재를 상정한 것입니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도 이러한 신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요술 램프의 요정 지니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요술 램프 요정 지니의 도움이나 도깨비 방망이로 인생 반전이 일어났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과 기대를 종교화 한 것이 우상종교입니다. 우상종교의 제사는 신을 섬기는 행위가 아니라 제사행위를 통해 신을 인간 마음대로 부리려는 것입니다. 우상은 알라딘의 요술 램프 요정처럼 인간을 섬기도록 만들어진 신입니다.

신을 조종하고 부려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은 모든 자연 종교의 특징이지만 타락한 과거 유대교와 현대 기독교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종교적 신도 아니고 신화나 동화 속의 이야기도 아니면서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상당할 정도로 들어 주는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 폰입니다. 스마트 폰은 알라딘 요술 램프 요정 지니나 우상 종교의 신처럼 인간 주인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고 주인의 욕망과 필요와 쾌락을 상당할 정도로 충족시켜 줍니다. 스마트 폰은 주인이 남자거나 여자거나, 어른이거나 아이거나, 인종과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절대 복종합니다. 때와 장소에도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귀찮아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주인에게 봉사합니다. 현대인은 거의 모두가 알라딘의 요술 램프 같은 스마트 폰을 하나씩 손에 들고 다닙니다. 스마트 폰의 능력은 어떤 주인도 다 알지 못합니다. 나는 비교적 스마트 폰을 많이 부려먹는 편이지만 그 능력을 천분의 일도 활용하지 못합니다. 내 손바닥보다 약간 큰 나의 스마트 폰은 내게 알라딘의 요술 램프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스마트 폰에게 구하지 못하고, 구하지 못하여 얻지 못하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요구하고 명령하기만 하면 웬만한 것은 스마트 폰이 다 해결해 줍니다. 스마트 폰을 들고 다닌 지가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그 스마트 폰 능력에 지금까지 놀라고 앞으로도 계속 놀라고 감동할 것 같습니다.

알라딘이 요술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나 인생 대박을 터뜨리고 공주와 결혼하여 화려한 궁전에서 잘 살았다는 것은 신화나 동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지 현실이 아닙니다. 알라딘이 실재하는 인물이었다면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복권 당첨으로 대박을 터뜨린 사람들은 거의 불행합니다. 과정이 생략된 욕망이나 꿈의 실현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욕망이나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성취되었을 때 그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성숙하게 됩니다. 그런데 스마트 폰은 욕망 달성의 과정을 일체 생략하고 결과만 제공합니다. 너무 편리하고 너무 유용합니다. 원하는 것은 거의 다 해결 해 줍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기생충의 생존방식과 같기 때문입니다. 스마트 폰은 내가 원하는 것은 거의 다 해결 해 주지만, 인간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므로 행복하고 성숙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행복을 누리고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리포트를 쓰려면 필요한 책을 도서관에 가서 빌리든지 아니면 서점에 가서 사야 했습니다. 같은 책을 빌리려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빌리기가 어려워 헌책을 사서 리포트를 쓰곤 했습니다. 헌책이라도 사려면 돈을 절약해야 합니다. 헌책 한 권을 사는데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친구가 산 헌책을 돌려가면서 읽고 리포트를 쓰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 책을 돌려볼 수 있는 친구를 물색해야 합니다. 책을 사러 가는데도 친구와 함께 갑니다.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정치와 문학과 삶을 이야기 하고 사랑을 이야기 하며 인간관계를 이야기 합니다.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다방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내일을 이야기 하고 결혼과 전세방 얻을 걱정을 합니다. 리포트 하나를 쓰는데 필요한 책을 구하는 과정에서 경제 문제를 생각하고, 가족관계를 고려하고, 친구 관계가 깊어지고, 정치와 문학과 사랑과 결혼과 삶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은 이런 과정을 다 생략하고 필요한 책뿐 아니라 그 책에 대한 서평과 수많은 사람들의 독후감과 관련된 논문까지도 스마트 폰이 제공합니다. 따로 돈을 지불할 필요도 없고, 자료를 구하러 도서관이나 서점에 갈 필요도 없이 얼마든지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철학, 과학, 음악, 미술, 소설, 시, 영화, 연극, 정치, 경제, 역사, 건축, 사진, 등산, 낚시, 바둑, 설교, 예배, 멜로드라마, 심지어 포르노까지 온갖 것의 쾌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스마트 폰은 요술 램프 요정보다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램프 요정이 그렇듯이 스마트 폰은 우리의 필요와 소원의 옳고 그름을 묻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살인이나 자살 테러의 방법까지도 가르쳐 줍니다. 요정은 좀도둑을 왕자로 만들어 주고 스마트 폰은 아이디어 하나로 스타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대박을 터뜨리게도 합니다. 사람들은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요술 램프의 요정이나 스마트 폰 같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이유를 묻지 않고 들어주는 신을 원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노동하지 않고 수많은 장르에서 온갖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행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노동과 수고가 없기 때문에 창조가 없고 발전이 없습니다. 노동 없이 쾌락을 누리는 인류는 진보가 아니라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비만에 걸립니다. 이 경우 육체와 정신의 괴리가 심화되어 몸은 무력해지고 자의식은 비만이 되어 돈, 외모, 스펙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게 됩니다. 공부와 사업의 목적이 인간 존재의 승리가 아니라 부자 되는 것입니다. 과정에 대한 사유가 없고 욕망과 능력에 대한 검토 없이 욕망에만 지배를 받게 되면 스트레스가 고조됩니다. 이것이 바로 육체와 정신, 욕망과 능력의 간극이 심화되는 것이고, 내 몸 각 부분의 네트워크가 단절된 상태이며 이것이 현대인의 많은 병의 원인입니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 요정이나 스마트 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수단과 방법을 목적 못지않게 중요하게 취급하십니다. 하나님은 옮고 그름을 따지시고, 악하고 선한 것을 가리시고,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시며, 교만과 겸손을 판단하시고, 이기와 이타를 가려내십니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 요정이나 스마트 폰이나 우상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간이 부리고 이용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우상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조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인간처럼 취급하거나 생각하여 조종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처럼 생각하거나 취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 시 50:2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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