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하나님의 유기(遺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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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5-07-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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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여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몹시 화가 나 있습니다. 경건한 기독교인들이라면 동성결혼 합법화에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도 매우 화가 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상 된 일입니다. 연방대법원 판사들이 동성결혼을 합법적이라고 판결한 것은 그들의 판결이 아니라 이 사회가 선택한 것입니다. 그 판결이 위헌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것을 연방대법원 판사들이 임의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동성결혼은 이미 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법원이 확정한 것뿐입니다. 그것을 연방대법원 판사들이 결정하였다고 기독교인들이 화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나이브한 태도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것을 합법화 할 수 있는 사상과 가치관의 변화가 진행되어 왔고 이제 그것을 합법화해도 될 만큼 상황이 무르익어 이런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동성애는 이류 역사만큼이나 그 역사가 깊습니다. 기독교 보다 훨씬 전인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그리스, 로마, 중국 등에서도 동성애나 동성결혼은 존재해왔습니다. 소돔 사람이 비역 질 하는 남색 자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은 성경이 기록하는 바와 같이 소돔성에 동성애가 만연했음을 역사가 증명하는 셈입니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주후 800년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바실리우스 1세가 교회 의식으로 친구 남성과 결혼하였으며, 비잔티움 제국 내에서 동성 결혼이 드물지 않게 있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061년 4월 16일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라이리스 데 베이가에서 두 남성, 페드로 디아즈와 무뇨 반딜라즈가 신부의 축복 하에 결혼하였다는 기록물이 셀레노바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12세기 아일랜드의 역사가였던 제럴더스 캄프렌시스에 따르면 당대의 아일랜드에서 동성 결혼이 여럿 존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세 후기의 프랑스에서는 '하나의 빵과 하나의 와인, 하나의 지갑'을 공유하며 동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affrèrement)가 존재하였는데, 이는 현대 시민 결합의 가장 시초의 형태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에는 동성결혼을 한 사회나 국가가 합법적으로 광범위하게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1989년 덴마크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 간 시민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였고, 2001년 네덜란드가 테오도시우스 법전 이후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26일 미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여 세계에서 17개 국가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시민 결합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을 포함하면 전 세계 35개 국가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5월에는 아일랜드가 동성결혼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미국과는 달리 법원에서가 아니라 주민투표를 통해 받아들였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주민발의로 된 법안이 2014년 11월 의회에서 통과되어, 이르면 2017년에 동성결혼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정된다고 합니다. 구 공산권 국가들 중에선 슬로베니아 의회가 최초로 2015년 3월 동성결혼 허용법안을 가결하여 조만간 시행할 예정입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동성결혼 제도의 입법화가 논의 중에 있고, 스위스는 동성결혼을 허용할지 주민투표로 물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경우 국민의 74%가 동성결혼을 찬성하니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시간문제입니다. 유럽연합은 동성결혼이 허용된 국가에서 결혼한 부부를 다른 국가에서 인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흐름으로 보아 미국이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동성결혼이 정당하다는 인정이 아니라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는 사상과 철학과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현상이고 훨씬 근원적인 원인을 간파하고 대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동성애를 하나님께 심판 받을 범죄라는 맥락에서가 아니라 동성애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라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기껏해야 교회가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는 돌아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빤한 이야기를 무엇 하러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가 동성애 같은 문제에 대응할 성경적이고 신학적 내공이 부족하니 그렇게 밖에 대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동성애자 뿐 아니라 강도와 도둑은 물론 살인자까지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성결혼이 보편적 가치라는 주장을 그런 수준으로 대응하는 것은 할 말이 없으니까 모 나지 않는 좋은 말 한 마디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무신론과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부정하는 실천적 무신론과 무엇보다 자본주의 가치관을 하나님 나라 가치관이라고 믿는 다른 복음이 교회를 점령하고 있음을 분별하여 대처해야 합니다. 동성애는 오히려 쉬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성결혼은 너무나 분명한 불신앙이고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정체가 분명한 적은 대응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문제는 동성결혼 자체보다 그것을 명백하게 금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 이성의 판단과 시대적 형편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불신앙과 교만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동성결혼은 반대하지만 거짓말과 사기와 위증과 무고와 모함은 동성애자들보다 훨씬 많이 합니다. 그래서 현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동성결혼 문제를 성경적으로 반박할 도덕적이고 영적인 권위를 상실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간음하고 거짓말 하고 공금을 횡령한 이들이 동성결혼을 비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일 것입니다. 자기 교회 지도자가 치졸하고 역겨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잘 못 된 것인 줄도 모르고 알아도 용기 있고 지혜롭게 대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낮으로 동성결혼을 비난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은 동성결혼이 비성경적이고 인류의 미래에 치명적 해약을 끼치는 죄악임을 끈질기게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성결혼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임을 직시하고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동성애 문제를 그런 측면에서 다룹니다. 로마서 1장은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토대를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롬 1:18-32절은 이방인들의 배교에 대해 이야기입니다. 이방인들을 배교라고 할 것도 없지만, 이방인들의 형편을 종교적으로, 즉 성경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배교의 과정을 눈여겨보면 불의로 진리를 막았다고 합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았다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과 계시와 양심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지만 억지로 그런 것을 억눌러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하나님께 돌려야 할 마땅한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는 자신이 최고의 권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도 자기가 판단해서 하고 싶으면 하게 됩니다. 동성결혼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이 같은 자기의 절대화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종교적 형태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살면 행복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행복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를 절대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자기를 절대화해도 자기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절대화를 종교화 하여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은 인간의 욕망의 정당성을 객관화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입니다. 둘째로 모든 것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결국 자기 절대화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거의 이 두 번째에 해당됩니다. 그것을 영어로 deism이라고 합니다. 이신론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후에 모든 것을 자연법에 맡겨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마치 옛날 회중시계가 태엽을 감아놓으면 저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세상을 그렇게 창조하시고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바 된다고 하였고,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르네상스나 자연과학이나 상대주의나 다원주의나 관념론이나 경험론이나 이신론이나 심지어 실존주의까지도 강조하는 것은 이간의 이성이나 경험과 느낌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보다 이성이나 인간 경험을 중요시 하는 사상들입니다. 그래서 합의론 이나 상대주의가 나온 것입니다. 이것들의 특징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절대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어필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믿는 이들은 마음이 넓고 포용력이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하기 때문에 못 받아들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바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할 수 있는 가치관의 토양입니다. 이런 사상과 가치관의 토양에서는 모든 것을 상대화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전통적 가치들도 폐기해 버릴 수 있고 느낌이나 합의에 의해서 새로운 가치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동성결혼은 그 중에 하나 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동안 전통적 가치 아래서는 미친 짓이라고 여겼던 것들도 아무 문제없이 용납하게 되고 그와 같은 태도를 성숙하고 열린 태도로 보는 것입니다. 현대 지성인들과 젊은이들은 이러한 상대주의의 포용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고집불통입니다. 관용도, 용서도, 이해도, 포용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대주의의 함정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상대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상대화 하지만 그 상대주의는 상대화 하지 않습니다. 즉 상대주의는 절대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점을 파악하지 못하여 상대주의에 쉽게 설득 당하고 넘어갑니다. 상대주의를 상대화시키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 노릇 하는 교만입니다.
며칠 전에 모 인터넷에 동성애를 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아주 적극적인 기사가 나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침묵하고 있던 장로, 권사, 집사, 대학생 등이 동성결혼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 참을 수 없는 사상과 생각의 가벼움에 실망이 큽니다. 옛날에는 무신론자라도 그렇게 영혼 없는 소리를 함부로 내뱉지는 않았습니다. 역사도 논리도 철학도 없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없는 발언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 당신이 나의 주인 노릇 하는 게 싫으니 이제는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살 거요.”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관용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깊이 있고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없습니다. 인간 존재에 대해서나 하나님에 대해서도 소위 큐티식 수준의 나이브한 이해는 다분히 실존주의와 상대주의에 아부하는 교회의 분별없는 태도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의 모든 주장은 확실한 성경적 근거와 학문의 객관적 합리성에 의해 뒷받침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겨운 욕망을 정당화 하려는 억지주장에 불과합니다. 세계 17개 나라가 동성결합을 합법화 했지만 많은 나라가 동성 커풀의 법적 지위를 결혼 제도에 포함시키지 않고 결혼과는 상관없는 제 3의 시민결합 같은 형태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동성결혼의 정당성을 성경 안에서 찾을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덴마크가 1989년 10월 1일에 최초로 동성애자들의 결합에 대한 법적 보호를 할 때 결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시민결합이라고 하였습니다. 궁여지책인 셈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성애자의 결합을 결혼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정당하지 않으니까 궁여지책으로 시민결합이라고 한 것입니다. 동성 간의 시민결합 제도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영국, 아일랜드, 핀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안도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호주 등의 국가에서 시행 중에 있습니다. 물론 시민 결합이라는 제도도 결국은 동성결혼의 합법화로 가는 과도기일 뿐이지만 그 정당성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음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동성 커플을 보편적인 “결혼”에 포함시키는 것은 너무 억지 같으니까 “시민 결합”이라는 결혼과는 차별적이고 모호한 제도로 만들어 수용하려는 것입니다.
시민결합(市民結合, civil union) 또는 생활동반자관계(生活同伴者關係,Civil partnership)는 결혼과 유사한 가족제도입니다. 혼인 관계에 준하여 배우자로서의 권리와 상속, 세제, 보험, 의료, 입양, 양육 등의 법적 이익을 일부 혹은 온전히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이런 관계는 정상혼인관계에서 이혼보다 결합의 해소가 자유롭습니다. 시민결합 제도는 국제적으로 확고히 정해진 기준과 규격이 없기 때문에 명칭이나 언어, 국가, 지역, 법안 별로 서로 다릅니다. 시민동반자관계(Civil partnership), 등록된 동반자관계(Registered partnership), 가정동반자관계(Domestic partnership), 생활동반자관계(Life partnerships), 중요관계(Significant relationships), 상호수혜관계(Reciprocal beneficiary relationships), 성인상호의존관계(Adult interdependent relationship), 관습법적 혼인(Common-law marriage), 시민연대계약(Civil solidarity pacts)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려고 시도하는 흔적들입니다. 동성결혼 합법화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주장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사실들입니다.
인간이 타락을 했어도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기본 구조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이며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이 구별을 인위적으로 바꾸면 안 되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남자가 남자와 혹은 여자가 여자와 결합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고 가정을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혼인은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에 따라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세워진 거룩한 제도입니다. 동성결혼은 창조 질서가 아니고 타락한 인간의 욕구를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 가운데 세워진 혼인이나 가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동성결혼이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하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비성경적이라고 반박하기보다 동성애나 동성결혼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며 유기(遺棄)라는 사도바울의 주장을 강조해야 하고, 상대주의 영향으로 교회가 분별없이 받아들이고 선택한 세속적 가치들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 가치를 따라 순종하므로 하나님 없는 세속에 대항할 수 있는 영적 내공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 롬 1:24-27 -
동성애는 이류 역사만큼이나 그 역사가 깊습니다. 기독교 보다 훨씬 전인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그리스, 로마, 중국 등에서도 동성애나 동성결혼은 존재해왔습니다. 소돔 사람이 비역 질 하는 남색 자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은 성경이 기록하는 바와 같이 소돔성에 동성애가 만연했음을 역사가 증명하는 셈입니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주후 800년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바실리우스 1세가 교회 의식으로 친구 남성과 결혼하였으며, 비잔티움 제국 내에서 동성 결혼이 드물지 않게 있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061년 4월 16일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라이리스 데 베이가에서 두 남성, 페드로 디아즈와 무뇨 반딜라즈가 신부의 축복 하에 결혼하였다는 기록물이 셀레노바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12세기 아일랜드의 역사가였던 제럴더스 캄프렌시스에 따르면 당대의 아일랜드에서 동성 결혼이 여럿 존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세 후기의 프랑스에서는 '하나의 빵과 하나의 와인, 하나의 지갑'을 공유하며 동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affrèrement)가 존재하였는데, 이는 현대 시민 결합의 가장 시초의 형태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에는 동성결혼을 한 사회나 국가가 합법적으로 광범위하게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1989년 덴마크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 간 시민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였고, 2001년 네덜란드가 테오도시우스 법전 이후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26일 미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여 세계에서 17개 국가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시민 결합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을 포함하면 전 세계 35개 국가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5월에는 아일랜드가 동성결혼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미국과는 달리 법원에서가 아니라 주민투표를 통해 받아들였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주민발의로 된 법안이 2014년 11월 의회에서 통과되어, 이르면 2017년에 동성결혼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정된다고 합니다. 구 공산권 국가들 중에선 슬로베니아 의회가 최초로 2015년 3월 동성결혼 허용법안을 가결하여 조만간 시행할 예정입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동성결혼 제도의 입법화가 논의 중에 있고, 스위스는 동성결혼을 허용할지 주민투표로 물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경우 국민의 74%가 동성결혼을 찬성하니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시간문제입니다. 유럽연합은 동성결혼이 허용된 국가에서 결혼한 부부를 다른 국가에서 인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흐름으로 보아 미국이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동성결혼이 정당하다는 인정이 아니라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는 사상과 철학과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현상이고 훨씬 근원적인 원인을 간파하고 대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동성애를 하나님께 심판 받을 범죄라는 맥락에서가 아니라 동성애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라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기껏해야 교회가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는 돌아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빤한 이야기를 무엇 하러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가 동성애 같은 문제에 대응할 성경적이고 신학적 내공이 부족하니 그렇게 밖에 대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동성애자 뿐 아니라 강도와 도둑은 물론 살인자까지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성결혼이 보편적 가치라는 주장을 그런 수준으로 대응하는 것은 할 말이 없으니까 모 나지 않는 좋은 말 한 마디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무신론과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부정하는 실천적 무신론과 무엇보다 자본주의 가치관을 하나님 나라 가치관이라고 믿는 다른 복음이 교회를 점령하고 있음을 분별하여 대처해야 합니다. 동성애는 오히려 쉬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성결혼은 너무나 분명한 불신앙이고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정체가 분명한 적은 대응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문제는 동성결혼 자체보다 그것을 명백하게 금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 이성의 판단과 시대적 형편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불신앙과 교만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동성결혼은 반대하지만 거짓말과 사기와 위증과 무고와 모함은 동성애자들보다 훨씬 많이 합니다. 그래서 현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동성결혼 문제를 성경적으로 반박할 도덕적이고 영적인 권위를 상실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간음하고 거짓말 하고 공금을 횡령한 이들이 동성결혼을 비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일 것입니다. 자기 교회 지도자가 치졸하고 역겨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잘 못 된 것인 줄도 모르고 알아도 용기 있고 지혜롭게 대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낮으로 동성결혼을 비난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은 동성결혼이 비성경적이고 인류의 미래에 치명적 해약을 끼치는 죄악임을 끈질기게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성결혼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임을 직시하고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동성애 문제를 그런 측면에서 다룹니다. 로마서 1장은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토대를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롬 1:18-32절은 이방인들의 배교에 대해 이야기입니다. 이방인들을 배교라고 할 것도 없지만, 이방인들의 형편을 종교적으로, 즉 성경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배교의 과정을 눈여겨보면 불의로 진리를 막았다고 합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았다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과 계시와 양심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지만 억지로 그런 것을 억눌러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하나님께 돌려야 할 마땅한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는 자신이 최고의 권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도 자기가 판단해서 하고 싶으면 하게 됩니다. 동성결혼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이 같은 자기의 절대화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종교적 형태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살면 행복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행복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를 절대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자기를 절대화해도 자기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절대화를 종교화 하여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은 인간의 욕망의 정당성을 객관화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입니다. 둘째로 모든 것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결국 자기 절대화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거의 이 두 번째에 해당됩니다. 그것을 영어로 deism이라고 합니다. 이신론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후에 모든 것을 자연법에 맡겨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마치 옛날 회중시계가 태엽을 감아놓으면 저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세상을 그렇게 창조하시고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바 된다고 하였고,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르네상스나 자연과학이나 상대주의나 다원주의나 관념론이나 경험론이나 이신론이나 심지어 실존주의까지도 강조하는 것은 이간의 이성이나 경험과 느낌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보다 이성이나 인간 경험을 중요시 하는 사상들입니다. 그래서 합의론 이나 상대주의가 나온 것입니다. 이것들의 특징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절대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어필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믿는 이들은 마음이 넓고 포용력이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하기 때문에 못 받아들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바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할 수 있는 가치관의 토양입니다. 이런 사상과 가치관의 토양에서는 모든 것을 상대화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전통적 가치들도 폐기해 버릴 수 있고 느낌이나 합의에 의해서 새로운 가치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동성결혼은 그 중에 하나 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동안 전통적 가치 아래서는 미친 짓이라고 여겼던 것들도 아무 문제없이 용납하게 되고 그와 같은 태도를 성숙하고 열린 태도로 보는 것입니다. 현대 지성인들과 젊은이들은 이러한 상대주의의 포용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고집불통입니다. 관용도, 용서도, 이해도, 포용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대주의의 함정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상대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상대화 하지만 그 상대주의는 상대화 하지 않습니다. 즉 상대주의는 절대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점을 파악하지 못하여 상대주의에 쉽게 설득 당하고 넘어갑니다. 상대주의를 상대화시키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 노릇 하는 교만입니다.
며칠 전에 모 인터넷에 동성애를 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아주 적극적인 기사가 나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침묵하고 있던 장로, 권사, 집사, 대학생 등이 동성결혼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 참을 수 없는 사상과 생각의 가벼움에 실망이 큽니다. 옛날에는 무신론자라도 그렇게 영혼 없는 소리를 함부로 내뱉지는 않았습니다. 역사도 논리도 철학도 없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없는 발언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 당신이 나의 주인 노릇 하는 게 싫으니 이제는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살 거요.”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관용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깊이 있고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없습니다. 인간 존재에 대해서나 하나님에 대해서도 소위 큐티식 수준의 나이브한 이해는 다분히 실존주의와 상대주의에 아부하는 교회의 분별없는 태도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의 모든 주장은 확실한 성경적 근거와 학문의 객관적 합리성에 의해 뒷받침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겨운 욕망을 정당화 하려는 억지주장에 불과합니다. 세계 17개 나라가 동성결합을 합법화 했지만 많은 나라가 동성 커풀의 법적 지위를 결혼 제도에 포함시키지 않고 결혼과는 상관없는 제 3의 시민결합 같은 형태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동성결혼의 정당성을 성경 안에서 찾을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덴마크가 1989년 10월 1일에 최초로 동성애자들의 결합에 대한 법적 보호를 할 때 결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시민결합이라고 하였습니다. 궁여지책인 셈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성애자의 결합을 결혼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정당하지 않으니까 궁여지책으로 시민결합이라고 한 것입니다. 동성 간의 시민결합 제도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영국, 아일랜드, 핀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안도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호주 등의 국가에서 시행 중에 있습니다. 물론 시민 결합이라는 제도도 결국은 동성결혼의 합법화로 가는 과도기일 뿐이지만 그 정당성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음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동성 커플을 보편적인 “결혼”에 포함시키는 것은 너무 억지 같으니까 “시민 결합”이라는 결혼과는 차별적이고 모호한 제도로 만들어 수용하려는 것입니다.
시민결합(市民結合, civil union) 또는 생활동반자관계(生活同伴者關係,Civil partnership)는 결혼과 유사한 가족제도입니다. 혼인 관계에 준하여 배우자로서의 권리와 상속, 세제, 보험, 의료, 입양, 양육 등의 법적 이익을 일부 혹은 온전히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이런 관계는 정상혼인관계에서 이혼보다 결합의 해소가 자유롭습니다. 시민결합 제도는 국제적으로 확고히 정해진 기준과 규격이 없기 때문에 명칭이나 언어, 국가, 지역, 법안 별로 서로 다릅니다. 시민동반자관계(Civil partnership), 등록된 동반자관계(Registered partnership), 가정동반자관계(Domestic partnership), 생활동반자관계(Life partnerships), 중요관계(Significant relationships), 상호수혜관계(Reciprocal beneficiary relationships), 성인상호의존관계(Adult interdependent relationship), 관습법적 혼인(Common-law marriage), 시민연대계약(Civil solidarity pacts)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려고 시도하는 흔적들입니다. 동성결혼 합법화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주장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사실들입니다.
인간이 타락을 했어도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기본 구조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이며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이 구별을 인위적으로 바꾸면 안 되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남자가 남자와 혹은 여자가 여자와 결합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고 가정을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혼인은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에 따라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세워진 거룩한 제도입니다. 동성결혼은 창조 질서가 아니고 타락한 인간의 욕구를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 가운데 세워진 혼인이나 가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동성결혼이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하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비성경적이라고 반박하기보다 동성애나 동성결혼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며 유기(遺棄)라는 사도바울의 주장을 강조해야 하고, 상대주의 영향으로 교회가 분별없이 받아들이고 선택한 세속적 가치들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 가치를 따라 순종하므로 하나님 없는 세속에 대항할 수 있는 영적 내공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 롬 1:2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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