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간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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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07-07-2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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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이따금씩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다가 다시 말을 타고 달린다고 합니다. 말이 지쳐서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힘들어 쉬려는 것도 아니며 혹시 너무 빨리 달려 자기의 영혼이 미쳐 뒤쫓아 오지 못했을까봐 영혼이 따라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신앙까지 잠식하는 현실에서 앞만 보고 달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잠간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자는 것은 세상을 너무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릅니다. 경제성장 이론은 이기주의의 합리적 논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 이데올로기는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종교적 권위로 현대인의 마음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것과 심지어 옆을 돌아보는 것까지 “성장종교”에 대한 배교라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바울이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였지만 그 역시 때때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하여 살았지만 두려워 떨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다짐과 결심을 새롭게 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실수와 부족을 뒤돌아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자기 돌아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달려갈 푯대가 분명할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평생 남을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주의 일꾼들을 낙심시키며 교회를 어지럽히면서도 그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정과 거짓말을 능력인 것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늘 자기의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교회 성장과 선교와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욕심과 명예에 집착하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신앙의 경력과 연륜과 돈과 고집을 정당한 리더십으로 착각하고 주님의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장로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남의 충고를 듣지 않는 못된 버릇 때문에 좀처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지 못합니다. 실용주의와 과학실증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그릇된 자기 확신에 더욱 고착되게 합니다. 이런 오해와 그릇됨을 일깨워 주는 것은 말씀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되 잘못된 주관적 감정과 판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성경이 가르치는 두 가지 큰 원칙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달려온 인생의 달음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원칙에서 빗나간 행위는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잠간 멈추어 서서 지금까지 달려온 나의 인생 달음질이 이 두 가지 큰 원칙을 따르는 것이었는지 뒤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
우리들은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신앙까지 잠식하는 현실에서 앞만 보고 달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잠간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자는 것은 세상을 너무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릅니다. 경제성장 이론은 이기주의의 합리적 논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 이데올로기는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종교적 권위로 현대인의 마음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것과 심지어 옆을 돌아보는 것까지 “성장종교”에 대한 배교라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바울이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였지만 그 역시 때때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하여 살았지만 두려워 떨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다짐과 결심을 새롭게 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실수와 부족을 뒤돌아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자기 돌아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달려갈 푯대가 분명할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평생 남을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주의 일꾼들을 낙심시키며 교회를 어지럽히면서도 그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정과 거짓말을 능력인 것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늘 자기의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교회 성장과 선교와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욕심과 명예에 집착하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신앙의 경력과 연륜과 돈과 고집을 정당한 리더십으로 착각하고 주님의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장로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남의 충고를 듣지 않는 못된 버릇 때문에 좀처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지 못합니다. 실용주의와 과학실증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그릇된 자기 확신에 더욱 고착되게 합니다. 이런 오해와 그릇됨을 일깨워 주는 것은 말씀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되 잘못된 주관적 감정과 판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성경이 가르치는 두 가지 큰 원칙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달려온 인생의 달음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원칙에서 빗나간 행위는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잠간 멈추어 서서 지금까지 달려온 나의 인생 달음질이 이 두 가지 큰 원칙을 따르는 것이었는지 뒤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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