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것 좋아하고, 미운 자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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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07-06-2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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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든지 하고 싶은 것 못하면 불행하게 느낍니다. 갓 난 어린아이도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면 울고, 연세 많으신 어른도 하고 싶은 것 못하면 몹시 서운해 합니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좋아하는 것 하면 행복하고 싫어하는 것 하게 되면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소유가 많든 적든 가진 것을 좋아하고, 하는 일을 좋아하고,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사랑하여 결혼했으면서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가 선택한 일인데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分福)이로다.”(전 5:18)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의 윤리성만 문제 되지 않는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사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신자에게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요구합니다.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좋아하되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행위의 윤리성과 사회정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마땅한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며 살아야 하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정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정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술이 좋아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박이 좋아 도박을 끊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끊지 못해 고생합니다. 우리가 끊지 못하는 것은 술이나 도박이나 마약뿐 아닙니다. 거짓말을 끊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교만도 욕심도 끊지 못합니다. 허영을 끊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음란에 빠져 그 악한 욕망을 끊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음란과 탐심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장 경계해야 할 악입니다. 음란죄의 출발은 하나님을 떠난 데서 시작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음란은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탐심 역시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음란과 탐심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을 섬기는 무서운 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법은 그 죄를 통제하지 못합니다. “성인”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온갖 음란한 것이 허용되고, “순수”라는 이름하에 문학과 예술이 음란성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음란과 탐심을 우상숭배와 동격의 무서운 악으로 규정하고 그 욕망을 죽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즐길 것이 아니라 미워해야 한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멀리 하고 미워하고 죽이는 것은 자신을 십자가에 달아 두는 것과 같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마약을 끊는 것이 힘들듯이 음란을 즐기는 것을 끊기가 어렵고 탐심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두 번의 실수로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마약처럼 중독되어 끊을 수가 없어서 몇 년이고 불륜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요즘은 불륜이 얼마나 정당화 되고 동정을 받는지 모릅니다. 드라마는 거의 불륜을 정당화 하고 동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음란과 탐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습니다. 선한 욕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선한 욕망은 악한 욕망에게 지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한 욕망을 절제하라고 하지 않고 죽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고, 사랑스러운 자를 사랑하고 싶지만 성경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을 미운 자, 원수로 설정해 놓았고, 우리에게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가라고 하였으며, 십자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는 사랑스러운 자는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자 사랑하는 것은 아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은 미운 자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하고 사랑스러운 자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싫은 것 좋아하고, 미운 자를 사랑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눅 6:32-
좋아하는 것 하면 행복하고 싫어하는 것 하게 되면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소유가 많든 적든 가진 것을 좋아하고, 하는 일을 좋아하고,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사랑하여 결혼했으면서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가 선택한 일인데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分福)이로다.”(전 5:18)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의 윤리성만 문제 되지 않는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사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신자에게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요구합니다.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좋아하되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행위의 윤리성과 사회정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마땅한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며 살아야 하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정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정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술이 좋아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박이 좋아 도박을 끊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끊지 못해 고생합니다. 우리가 끊지 못하는 것은 술이나 도박이나 마약뿐 아닙니다. 거짓말을 끊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교만도 욕심도 끊지 못합니다. 허영을 끊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음란에 빠져 그 악한 욕망을 끊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음란과 탐심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장 경계해야 할 악입니다. 음란죄의 출발은 하나님을 떠난 데서 시작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음란은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탐심 역시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음란과 탐심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을 섬기는 무서운 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법은 그 죄를 통제하지 못합니다. “성인”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온갖 음란한 것이 허용되고, “순수”라는 이름하에 문학과 예술이 음란성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음란과 탐심을 우상숭배와 동격의 무서운 악으로 규정하고 그 욕망을 죽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즐길 것이 아니라 미워해야 한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멀리 하고 미워하고 죽이는 것은 자신을 십자가에 달아 두는 것과 같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마약을 끊는 것이 힘들듯이 음란을 즐기는 것을 끊기가 어렵고 탐심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두 번의 실수로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마약처럼 중독되어 끊을 수가 없어서 몇 년이고 불륜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요즘은 불륜이 얼마나 정당화 되고 동정을 받는지 모릅니다. 드라마는 거의 불륜을 정당화 하고 동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음란과 탐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습니다. 선한 욕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선한 욕망은 악한 욕망에게 지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한 욕망을 절제하라고 하지 않고 죽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고, 사랑스러운 자를 사랑하고 싶지만 성경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을 미운 자, 원수로 설정해 놓았고, 우리에게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가라고 하였으며, 십자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는 사랑스러운 자는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자 사랑하는 것은 아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은 미운 자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하고 사랑스러운 자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싫은 것 좋아하고, 미운 자를 사랑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눅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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