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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높이는 교회 안의 불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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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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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크리스마스가 되면 대형 백화점들이 성탄인사를 “Merry Christmas!”로 할 것인가, 아니면 “Happy Holidays!”로 할 것인가 말이 많습니다. 12월 25일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바로 그날은 아니지만 기독교가 오랫동안 예수님의 나신 날로 지켜 오고 있으니까 분명 기독교의 명절인데 속담처럼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하는 격입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이 시대가 반기독교적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니까 반기독교 정서가 확산되고, 장사꾼들은 종교적 소신도 없으면서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그런 고객들에게 어필하려고 성탄 인사말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 없다.”라고 말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도 없고 예수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 없다, 하나님도 없다.”는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할 이유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불신자들이“예수 없다 하나님 없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날 점점 확산되는 반 기독교적인 정서는 교회 다니는 불신자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핍박 가운데서 더 부흥하고, 신자는 핍박 가운데서 믿음이 성숙해 집니다. 하지만 교회 안의 불신자는 어려움이 생기면 교회를 떠나고 평안할 때는 불평분자가 되거나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합리성과 논리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 합리성과 논리도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합리성과 논리로 이해되는 것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오해이며 무지요 오만입니다. 신자는 합리성과 논리로 진리를 세우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성경은 정당성을 세우기보다는 차라리 손해 보는 입장에 서라고 합니다. 신자에게는 불완전하나마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믿음과 희생과 사랑이 지배적 특징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을 때 황제는 기독교를 제국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가시화 된 것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그동안 소외자이며 핍박받는 입장에 있던 신자들은 기득권을 누리는 위치에서 새로워진 교회의 특권과 위상을 마음껏 탐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교회 안에 불신자들을 끌어 들이는 요인이 되었고, 불신자들은 세상에서 구가하던 것을 교회 안에서 얻을 수 있었으며 그것은 곧 교회 안과 밖의 구별을 철패하게 만든 것의 다름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자들은 로마 제국 안에서 핍박받는 소수였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전문직에 나갈 수 없었고, 변변한 직장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땅속으로 감옥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았고, 그들에게는 죽음만이 유일하게 자유를 맛볼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불신자들이 좋아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던 교회가 제국의 국교가 되자 순식간에 불신자들이 좋아하는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특권과 위상을 누리게 된 교회는 권위주의적이 되어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구원하고 사랑해야 할 기독교는 권위와 폭력과 사치를 위해 교리를 이용하고 사람들을 기만하였습니다.
구라파와 러시아의 옛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나는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교회의 권위와 폭력이었습니다. 교회라는 절대 권력의 주변에는 어김없이 가혹한 고문의 도구들이 유적들로 남아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교들과 사제들이 입었던 옷과 장신구들이 당시 교회의 사치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옷과 모자와 장신구에는 온갖 종류의 값비싼 보석들이 수도 없이 많이 박혀있었습니다. 무개만 해도 상당할 텐데 어떻게 그 옷을 입고 다녔는지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덤입니다. 대성당은 그것의 이름이 성당이고 예배당이지 사실은 무덤입니다.

엄청난 크기의 대리석에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조각과 상들로 꾸며진 무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피땀을 필요로 했을까를 생각할 때 그것들은 위대한 교회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교회의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교회 안에 신자보다 불신자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형편은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중세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 불신자가 많아지는 것은 교회가 세상적으로 고급한 위상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중세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교회는 너무 화려하고 너무 세련되고 물질적으로 너무 풍부합니다. 게다가 교회가 그런 것을 복음과 함께 약속하기 때문에 강단의 메시지는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교회 안의 불신자를 양산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중세 교회가 그랬고 오늘의 교회가 그렇습니다. 교회 안의 불신자들은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듭니다. 저마다 정당한 듯 의로운 듯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들의 언행에서 하나님 경외함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나의 영감이 무딘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롬 2: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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