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보다는 치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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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06-10-1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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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화를 이야기 할 때 창조와 타락과 구속을 이야기 합니다. 창조 때에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문화적 명령을 받았으나 죄를 범한 후 인간 문화는 타락의 결과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고 타락의 결과로서의 문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치료와 회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범죄 하지 않았어도 문화가 발전되었겠지만 그 문화는 지금의 문화와는 다른 문화였을 것입니다.
아담은 필요 이상의 생산을 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남보다 많이 가지기 위해 경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여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세상에서는 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 성을 높이 쌓을 이유도 없고 무기를 생산할 필요도 없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는 성을 쌓았고 무기를 생산했습니다.
범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여전히 당신을 믿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가인은 누군가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가인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어 자신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인류 문화가 발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룩한 문화는 타락의 결과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기 위해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자연의 재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문화가 비록 타락의 결과라는 특징을 지니기도 하지만 선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문화를 통해서도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시, 고상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학작품, 인간에게 유익한 사상과 철학,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과학과 의술 등도 결국은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발과 진보의 위험입니다. 진보와 개발은 근대 세계의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그 어떤 국가나 정부도 개발과 진보를 거스르는 정책으로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끝없는 성장을 하지 않으면 무너지고 말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 시대의 끝없는 성장주의는 자원의 낭비와 그에 따른 환경오염을 심화시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신음하게 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필수 조건인 공기와 물과 먹을거리가 심각하게 오염되어가고 있는 것은 결국 지나친 개발과 진보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개발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발보다 치료가 더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개발과 진보가 인류의 고통을 덜어 주었고 불편한 것을 편리하게 해 주었지만 오늘날의 지나친 개발과 진보는 인류에게 과거보다 더 가혹한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 핵개발, 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는 수십만 종의 의약품의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인류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 폐해는 점점 더 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나라가 책임질 문제도 아니고 유엔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인류 모두가 책임질 문제이며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질 문제입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근검절약하여 약하고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발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지나친 진보는 지양해야 합니다. 이미 개발해 놓은 것을 관리하는 것도 인류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수준입니다. 개발을 자제하기 위해서는 좀 덜 편리하게 살아야 하고 의도적으로 약간은 불편한 방법을 선택하여 살아야 합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그 문제 해결을 위한 각국들의 노력과 유엔의 몸부림은 예측을 불허하는 가공할 재난에 대해 아무도 책임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여 더욱 두렵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자본주의, 핵개발, 정치, 과학, 교육, 문화, 심지어 교회까지 치료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의 대표적인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목사, 의사, 변호사는 무엇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치료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임을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교회는 한국의 시청 앞 광장이나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 수만 명을 모아놓고 노래하고 춤추며 손들고 기도하게하기보다 그들을 골방으로 들여보내 무릎 꿇고 기도하며 삶의 현장에서 거짓과 불법 행하는 습관을 고치며 성경의 가르침대로 비즈니스 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공부하고, 믿음과 정직과 성실로 세상을 치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롬 12:2절 -
아담은 필요 이상의 생산을 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남보다 많이 가지기 위해 경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여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세상에서는 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 성을 높이 쌓을 이유도 없고 무기를 생산할 필요도 없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는 성을 쌓았고 무기를 생산했습니다.
범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여전히 당신을 믿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가인은 누군가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가인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어 자신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인류 문화가 발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룩한 문화는 타락의 결과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기 위해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자연의 재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문화가 비록 타락의 결과라는 특징을 지니기도 하지만 선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문화를 통해서도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시, 고상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학작품, 인간에게 유익한 사상과 철학,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과학과 의술 등도 결국은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발과 진보의 위험입니다. 진보와 개발은 근대 세계의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그 어떤 국가나 정부도 개발과 진보를 거스르는 정책으로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끝없는 성장을 하지 않으면 무너지고 말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 시대의 끝없는 성장주의는 자원의 낭비와 그에 따른 환경오염을 심화시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신음하게 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필수 조건인 공기와 물과 먹을거리가 심각하게 오염되어가고 있는 것은 결국 지나친 개발과 진보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개발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발보다 치료가 더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개발과 진보가 인류의 고통을 덜어 주었고 불편한 것을 편리하게 해 주었지만 오늘날의 지나친 개발과 진보는 인류에게 과거보다 더 가혹한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 핵개발, 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는 수십만 종의 의약품의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인류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 폐해는 점점 더 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나라가 책임질 문제도 아니고 유엔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인류 모두가 책임질 문제이며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질 문제입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근검절약하여 약하고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발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지나친 진보는 지양해야 합니다. 이미 개발해 놓은 것을 관리하는 것도 인류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수준입니다. 개발을 자제하기 위해서는 좀 덜 편리하게 살아야 하고 의도적으로 약간은 불편한 방법을 선택하여 살아야 합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그 문제 해결을 위한 각국들의 노력과 유엔의 몸부림은 예측을 불허하는 가공할 재난에 대해 아무도 책임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여 더욱 두렵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자본주의, 핵개발, 정치, 과학, 교육, 문화, 심지어 교회까지 치료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의 대표적인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목사, 의사, 변호사는 무엇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치료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임을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교회는 한국의 시청 앞 광장이나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 수만 명을 모아놓고 노래하고 춤추며 손들고 기도하게하기보다 그들을 골방으로 들여보내 무릎 꿇고 기도하며 삶의 현장에서 거짓과 불법 행하는 습관을 고치며 성경의 가르침대로 비즈니스 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공부하고, 믿음과 정직과 성실로 세상을 치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롬 12: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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