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는 대중적이기를 거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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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06-06-2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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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어떤 특정한 성격을 지닌 인간군(人間群)을 뜻합니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셋(Ortega y Gasset)에 의해 “대중”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쓴“대중의 봉기”라는 책에서 대중을 “익명의 인간”, “평준화 되어 있는 인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인간”, “감정에 민감하고 지성이 둔화된 인간”, “평범한 인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대중이 오늘날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적이지 않은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어느 정도 소외감과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정한 성격을 지닌 인간군으로서의 대중을 만들어 낸 것은 산업사회의 구조입니다. 산업사회의 구조가 대중을 만들어 내고 대중문화도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산업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적이 되어 갑니다.
오르테가 이 가셋에 의하면 대중에게는 일체의 도덕의식과 윤리의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산업사회는 무책임하고 , 평범하고, 유행에 민감하고, 평준화 된 인간군을 만들어냈으며, 또한 그들이 좋아하는 향락위주의 대중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산업사회는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성격은 생산구조가 규격적이라는 것입니다. 대량생산은 불가피하게 규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옛날 길쌈을 통해 옷을 만들어 입던 때는 목화와 삼의 생산에서부터 실을 뽑는 과정과 옷을 만드는 기술에서 백인백색의 개성이 살아있었지만 오늘날의 대중은 한 공장에서 나온 같은 옷을 입고, 대량으로 생산된 음식을 먹으며, 규격화된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고,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으며,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문화를 즐깁니다.
이런 규격화된 삶의 방식과 소비생활이 비슷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비슷한 옷은 비슷한 행동을 하게한다는 사실이 규격적인 것에 익숙한 대중이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될 것인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산업사회의 규격화는 그 편리함과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확산 되고 그로 인해 인간 자체를 규격화 하고 평균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갑니다.
현대인들은 평균적인 인간이 되어야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될 때 그것은 언제나 환경 때문이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사회는 사람들에게 책임적인 자아를 정립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기껏해야 자기는 사회 속의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미미한 존재라고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 있어서 일등공신은 역시 언론과 방송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대중의 구미에 맞고 자기들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대중문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회에서 경제적 기득권층이 바로 대중이 좋아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대중사회에서는 고급한 가치를 지닌 문화와 예술이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윤리성과 도덕성이 결여된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의해 인기도의 그라프는 상승 곡선을 그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자극적이어야 하고, 쾌락적이어야 하고, 충동적이어야 합니다.
대중은 그 특성상 창조적이거나 개성적이지 못합니다. 그 대중을 통해서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의 의도는 매달 수백만 권씩 팔리는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여성 잡지와 음란 소설과 만화로 구독자들을 유혹하는 신문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어필하지 않고서는 비즈니스도 교회도 소위 맥을 추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도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고, 기업도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고, 문화와 예술도 대중의 취향을 무시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심지어 교회까지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여 메시지를 전하고 교회의 문을 열어놓습니다. 대중도 복음을 들어야 할 다수이지만 그들의 수요는 복음의 가치와 대립하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것들입니다.
대중이 좋아하는 대중문화가 무시 못 할 세력인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는 복음을 가지고 그 옛날 몇몇 초대 교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속에 아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주장이 대중을 무시한 귀족주의적이라든가 혹은 편협하고 독선적인 것이라고 비판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와 사실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대중의 애환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순수하고 인간적이라고 찬양을 합니다. 하지만 대중은 순수하지도 인간적이지도 않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무의식중에 강요된 것들입니다. 신자는 대중처럼 퇴폐하고 그릇된 문화와 가치에 조작되지 말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비록 대중과 같은 옷을 입고 살지라도 대중과 같은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신자는 대중문화 안에서 대중적이기를 거부하므로 외톨이가 되고 나그네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자는 대중을 따라 갈 것이 아니라 피상적이고 향락적인 대중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순화시켜야할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절-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셋(Ortega y Gasset)에 의해 “대중”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쓴“대중의 봉기”라는 책에서 대중을 “익명의 인간”, “평준화 되어 있는 인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인간”, “감정에 민감하고 지성이 둔화된 인간”, “평범한 인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대중이 오늘날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적이지 않은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어느 정도 소외감과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정한 성격을 지닌 인간군으로서의 대중을 만들어 낸 것은 산업사회의 구조입니다. 산업사회의 구조가 대중을 만들어 내고 대중문화도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산업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적이 되어 갑니다.
오르테가 이 가셋에 의하면 대중에게는 일체의 도덕의식과 윤리의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산업사회는 무책임하고 , 평범하고, 유행에 민감하고, 평준화 된 인간군을 만들어냈으며, 또한 그들이 좋아하는 향락위주의 대중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산업사회는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성격은 생산구조가 규격적이라는 것입니다. 대량생산은 불가피하게 규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옛날 길쌈을 통해 옷을 만들어 입던 때는 목화와 삼의 생산에서부터 실을 뽑는 과정과 옷을 만드는 기술에서 백인백색의 개성이 살아있었지만 오늘날의 대중은 한 공장에서 나온 같은 옷을 입고, 대량으로 생산된 음식을 먹으며, 규격화된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고,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으며,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문화를 즐깁니다.
이런 규격화된 삶의 방식과 소비생활이 비슷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비슷한 옷은 비슷한 행동을 하게한다는 사실이 규격적인 것에 익숙한 대중이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될 것인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산업사회의 규격화는 그 편리함과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확산 되고 그로 인해 인간 자체를 규격화 하고 평균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갑니다.
현대인들은 평균적인 인간이 되어야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될 때 그것은 언제나 환경 때문이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사회는 사람들에게 책임적인 자아를 정립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기껏해야 자기는 사회 속의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미미한 존재라고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 있어서 일등공신은 역시 언론과 방송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대중의 구미에 맞고 자기들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대중문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회에서 경제적 기득권층이 바로 대중이 좋아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대중사회에서는 고급한 가치를 지닌 문화와 예술이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윤리성과 도덕성이 결여된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의해 인기도의 그라프는 상승 곡선을 그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자극적이어야 하고, 쾌락적이어야 하고, 충동적이어야 합니다.
대중은 그 특성상 창조적이거나 개성적이지 못합니다. 그 대중을 통해서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의 의도는 매달 수백만 권씩 팔리는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여성 잡지와 음란 소설과 만화로 구독자들을 유혹하는 신문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어필하지 않고서는 비즈니스도 교회도 소위 맥을 추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도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고, 기업도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고, 문화와 예술도 대중의 취향을 무시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심지어 교회까지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여 메시지를 전하고 교회의 문을 열어놓습니다. 대중도 복음을 들어야 할 다수이지만 그들의 수요는 복음의 가치와 대립하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것들입니다.
대중이 좋아하는 대중문화가 무시 못 할 세력인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는 복음을 가지고 그 옛날 몇몇 초대 교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속에 아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주장이 대중을 무시한 귀족주의적이라든가 혹은 편협하고 독선적인 것이라고 비판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와 사실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대중의 애환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순수하고 인간적이라고 찬양을 합니다. 하지만 대중은 순수하지도 인간적이지도 않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무의식중에 강요된 것들입니다. 신자는 대중처럼 퇴폐하고 그릇된 문화와 가치에 조작되지 말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비록 대중과 같은 옷을 입고 살지라도 대중과 같은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신자는 대중문화 안에서 대중적이기를 거부하므로 외톨이가 되고 나그네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자는 대중을 따라 갈 것이 아니라 피상적이고 향락적인 대중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순화시켜야할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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