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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신학의 역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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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6-03-19

본문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지만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해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질문을 통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예수님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해는 바른 이해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이해는 바르고 정확했습니다. 그 정확한 이해는 학문적 이해와 깨달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학문적 이해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절)고 하셨습니다. 이 가르치라는 말씀에는 그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은 일체 배제되어야 함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성을 가진 인간에게 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계시되었다는 사실에서 이성과 학문의 유용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된 성경의 교리화 작업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신조와 신경들은 교회의 공동체의 유익과 필요에 의해 교회 공동체가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시대로부터는 교리가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공동체만의 관심이 아니라 대학과 또는 신학자들의 개인적인 학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학이 신앙 없이도 할 수 있는 하나의 학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일찍이 Duns Scotus에 의해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 되었지만 계몽시대로부터 신학의 학문적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신학은 인간 인식의 범위 너머에 있는 대상을 신학의 대상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 하고, 확실성의 근거를 이성에서 찾지 않고 계시에서 찾는 신학자들은 그들 스스로 선택한 신학?대상을 다룰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폭로한 것이라고 비웃습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신학에 대한 이 같은 부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절대권위를 믿는 사람들에게까지 신학의 학문성을 부정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점에서는 신학의 학문성이 부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학문의 개념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학문이라는 것이 관찰과 실증할 수 있는 대상에만 국한된다는 자연과학의 오만한 전제는 오늘 날 그렇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 안에도 이성적 직관에 근거를 둔 추론들이 용납되고 있기 때문에 신학이 단순히 실증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학문성이 없다고 한다면 그들도 과학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신학에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의 성격에 따라 정해지는 신학 나름의 방법론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신학을 위한 방법론을 찾는 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자연과학은 경험적 실험을 통하여, 정신과학은 이성적 실험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의 실험은 신학을 통하여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의 자료는 계시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신학의 방법도 계시에 의존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계시에서 얻어진 자료들을 조직화하여 계시 의존적 유추를 통해 엄밀하게 실험하는 것이 신학인 것입니다. 누군가 이 계시의 자료들에 대해 포괄적 관점을 가지고 그것을 조직화 하고 통일시키는 작업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학문이 되는 것입니다. 신학은 신학 나름의 독특한 방법이 있지만 다른 학문들과 공유하는 점 또한 많습니다. 일반학문에서나 신학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을 때 당신이 주신 계시의 자료들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조직화 하여 믿음을 더욱 돈독케 하는데 유용하게 의의 병기로 사용하도록 하셨음을 나는 확신하며 또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완전하고 그 계시를 받은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그 계시의 온전한 뜻을 찾는 이성적 탐구의 자세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한 탐구의 합리적 결론을 통하여 믿음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교훈의 깊이와 넓이를 알아감에 이성의 역할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의 양심에, 감성에, 이성에 역사하시기에 죄를 미워하고 은혜에 감사하고, 말씀의 교훈대로 성령을 따라 결단하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사도행전 17:11,1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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