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의 가치를 절감케 하는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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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06-01-0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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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연말에는 한국에서 수능시험부정사건이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었습니다. 2005년에는 황우석 교수 사건이 그나마 국제 사회에서 쌓아온 대한민국의 크레딛에 끼친 손실은 상상을 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일본사람보다 거짓말은 466배 많이 하고, 위증은 2,352배 많이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거짓말 안 하고 살기가 힘들고, 일본에서는 거짓 말 하고 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직하지 못한 습관은 그 역사가 매우 깊습니다. 조선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도산 안창호 선생은 “거짓말, 거짓 행실이 우리민족을 쇠퇴케 하고 망국민의 수치를 당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고 온갖 못된 만행을 저지른 것이 일본인의 탓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미 그 때 도산은 조선인의 약점이 무엇인가를 보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거짓됩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이 거짓된 존재임을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거짓인데 그것을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의 격이 떨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번 황우석 교수의 가짜 줄기세포 논문은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황 교수는 계속 '원천 기술' 운운하고 있지만 2004년〈사이언스〉발표 논문은 물론 영롱이부터 스너피에 이르는 그의 복제 연구 성과까지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관한 모든 것이 회의적입니다. 김선종 씨의 박사학위 논문도 문제가 있다고 하고, 싸이언스지에 제출된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공동명의로 여러 명의 이름이 올라갔는데 그 중 여러 명이 자기는 자기 이름이 올라간 줄도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그 논문이 명성을 얻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문제가 되니까 자기 이름이 올라간 줄도 몰랐다고 하는 정직하지 못한 교수님들의 태도가 떳떳하지 못합니다. 고구마 넝쿨처럼 불거지는 거짓과 부정직이 끝 간 데 없이 계속될 것 같아 낙심되고 불안합니다. 황우석 파동이 단순 사건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거짓이란 암 세포가 학계와 정치계와 경제계와 종교계까지 전이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낙심천만입니다. 첨단과학에서 남보다 좀 뒤지고 경제적으로 좀 덜 잘살아도 정직에서 남보다 나았으면 좋겠다는 어쩌면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이 있어야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있어야 인정이 싹이 틉니다. 거짓이 나쁜 것은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만 그것은 남에게 손해를 끼칠 뿐 아니라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자신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겠지만 늑대와 소년에 대한 이솝 이야기의 고전적 교훈을 통해 우리는 거짓말의 폐해를 배웠습니다. 2004년에 있었던 수능부정 사건도, 황우석 교수의 사건도 모두가 정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황우석 교수가 정직했고 생명윤리적인 문제도 없었다면 인류를 위해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어 대어를 놓친 낚시꾼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처럼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한국 인천에 제물포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는 유명한 3·1 독립투사요, 민족 교육자인 길영희(吉瑛羲) 선생에 의해 세워진 학교입니다. 길영희 선생은 존경받는 교육자 중 한 분입니다. 그분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학생 정원을 늘이라는 정부의 요구에 절대로 안 된다고 하여 한 학년에 240명을 넘게는 입학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재미있는 별명이 있습니다. 그 별명은 stone head, 石頭, 순수한 말로는 “돌대가리”라고 합니다. 길 선생님은 당신 스스로 돌대가리라고 불리기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제물포고등학교는 교훈을 교실 벽에 써 붙이지 않는 학교였습니다. 아마 지금도 한국에서는 교실마다 교훈을 벽에 써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길 선생님은 이미 그 때 그런 허식을 경계하였습니다. 다만‘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이 구전(口傳) 문구가 교시였다고 합니다. 일체의 허식을 버리고 오직‘양심에 따른 자율’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그분이 지향하는 교육의 최종 목표였습니다.
한국 초유의 무감독 시험 제도, 무규율부 제도, 학생 주관 월례 조회 제도, 전교생이 스스로 그룹을 결성하는 그룹 제도, 전문 운동부가 없이 학생 모두가 체육부원이 되는 학교, 교사의 글은 단 한 줄도 학생 교지에 실리지 않는 학교, 한국 중·고교 최초의 대규모 개가식 도서관을 가진 학교가 바로 제물포고등학교입니다. 1950년 봄 길 교장선생님은 교직원과 학생이 다 모인 자리에서 폭탄선언을 하였습니다.“선생이 제자를 의심하고, 학생이 스승을 속이려는 분위기에서 무슨 교육이 되겠느냐?”며 무감독 시험을 제안하였습니다. 물론 교사들은 절대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상대는“돌대가리” 교장이라 아무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 최초로 무감독 시험을 시작하여 일 년이 지난 후 그 결과는 열 명의 낙제생이 나왔습니다. 열 명의 낙제생은 늘 해마다 있어온 숫자였습니다. 그 결과가 나온 후 길 교장선생님은 교직원과 학생 모두를 모아 놓고 낙제생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부정의 유혹 대신에 양심을 선택한 너희들이야말로 우리학교의 양심이다.”이 말에 온 교직원과 학생들이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합니다.
정치에는 어느 정도 거짓과 부정직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학만은 양심의 보루로 남아주길 바랐습니다. 아니 기독교 신자만은 세상의 등불이 되어 이 시대의 마지막 양심의 보루로 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교 전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 서로가 부정을 눈감아 주는 상황, 대학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의 의혹, 목사님들의 가짜 박사학위, 기업인들의 탈세, 정치인의 야합 등 거짓된 사건들이 주는 충격은 정직과 진실의 가치를 더욱 절감케 한다는 점에서 약간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시편 51:10절 -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거짓됩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이 거짓된 존재임을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거짓인데 그것을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의 격이 떨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번 황우석 교수의 가짜 줄기세포 논문은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황 교수는 계속 '원천 기술' 운운하고 있지만 2004년〈사이언스〉발표 논문은 물론 영롱이부터 스너피에 이르는 그의 복제 연구 성과까지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관한 모든 것이 회의적입니다. 김선종 씨의 박사학위 논문도 문제가 있다고 하고, 싸이언스지에 제출된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공동명의로 여러 명의 이름이 올라갔는데 그 중 여러 명이 자기는 자기 이름이 올라간 줄도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그 논문이 명성을 얻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문제가 되니까 자기 이름이 올라간 줄도 몰랐다고 하는 정직하지 못한 교수님들의 태도가 떳떳하지 못합니다. 고구마 넝쿨처럼 불거지는 거짓과 부정직이 끝 간 데 없이 계속될 것 같아 낙심되고 불안합니다. 황우석 파동이 단순 사건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거짓이란 암 세포가 학계와 정치계와 경제계와 종교계까지 전이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낙심천만입니다. 첨단과학에서 남보다 좀 뒤지고 경제적으로 좀 덜 잘살아도 정직에서 남보다 나았으면 좋겠다는 어쩌면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이 있어야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있어야 인정이 싹이 틉니다. 거짓이 나쁜 것은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만 그것은 남에게 손해를 끼칠 뿐 아니라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자신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겠지만 늑대와 소년에 대한 이솝 이야기의 고전적 교훈을 통해 우리는 거짓말의 폐해를 배웠습니다. 2004년에 있었던 수능부정 사건도, 황우석 교수의 사건도 모두가 정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황우석 교수가 정직했고 생명윤리적인 문제도 없었다면 인류를 위해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어 대어를 놓친 낚시꾼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처럼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한국 인천에 제물포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는 유명한 3·1 독립투사요, 민족 교육자인 길영희(吉瑛羲) 선생에 의해 세워진 학교입니다. 길영희 선생은 존경받는 교육자 중 한 분입니다. 그분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학생 정원을 늘이라는 정부의 요구에 절대로 안 된다고 하여 한 학년에 240명을 넘게는 입학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재미있는 별명이 있습니다. 그 별명은 stone head, 石頭, 순수한 말로는 “돌대가리”라고 합니다. 길 선생님은 당신 스스로 돌대가리라고 불리기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제물포고등학교는 교훈을 교실 벽에 써 붙이지 않는 학교였습니다. 아마 지금도 한국에서는 교실마다 교훈을 벽에 써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길 선생님은 이미 그 때 그런 허식을 경계하였습니다. 다만‘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이 구전(口傳) 문구가 교시였다고 합니다. 일체의 허식을 버리고 오직‘양심에 따른 자율’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그분이 지향하는 교육의 최종 목표였습니다.
한국 초유의 무감독 시험 제도, 무규율부 제도, 학생 주관 월례 조회 제도, 전교생이 스스로 그룹을 결성하는 그룹 제도, 전문 운동부가 없이 학생 모두가 체육부원이 되는 학교, 교사의 글은 단 한 줄도 학생 교지에 실리지 않는 학교, 한국 중·고교 최초의 대규모 개가식 도서관을 가진 학교가 바로 제물포고등학교입니다. 1950년 봄 길 교장선생님은 교직원과 학생이 다 모인 자리에서 폭탄선언을 하였습니다.“선생이 제자를 의심하고, 학생이 스승을 속이려는 분위기에서 무슨 교육이 되겠느냐?”며 무감독 시험을 제안하였습니다. 물론 교사들은 절대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상대는“돌대가리” 교장이라 아무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 최초로 무감독 시험을 시작하여 일 년이 지난 후 그 결과는 열 명의 낙제생이 나왔습니다. 열 명의 낙제생은 늘 해마다 있어온 숫자였습니다. 그 결과가 나온 후 길 교장선생님은 교직원과 학생 모두를 모아 놓고 낙제생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부정의 유혹 대신에 양심을 선택한 너희들이야말로 우리학교의 양심이다.”이 말에 온 교직원과 학생들이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합니다.
정치에는 어느 정도 거짓과 부정직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학만은 양심의 보루로 남아주길 바랐습니다. 아니 기독교 신자만은 세상의 등불이 되어 이 시대의 마지막 양심의 보루로 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교 전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 서로가 부정을 눈감아 주는 상황, 대학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의 의혹, 목사님들의 가짜 박사학위, 기업인들의 탈세, 정치인의 야합 등 거짓된 사건들이 주는 충격은 정직과 진실의 가치를 더욱 절감케 한다는 점에서 약간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시편 51:1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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