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효용을 넘는 욕망을 경계하라 > 지난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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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효용을 넘는 욕망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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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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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는 시골 농가에는 여러 가지 농기구가 있습니다. 그 농기구 가운데 낫이 나 괭이나 톱, 도끼 같은 연장은 한 동안 사용하면 날이 무디어 져서 숫돌에 갈아서 써야합니다. 날이 무딘 연장으로 일을 하면 힘이 갑절이나 들고 능률도 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농부는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연장을 숫돌에 갈아서 날을 세웁니다. 그런데 연장을 숫돌에 가는 것도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아무나 연장을 갈 수 없습니다.

보리나 밀이나 나락을 밸 때 하루에 두 세 번씩은 낫을 갈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른들은 자기 연장을 자기가 갈아서 사용하지만 아직 어려서 갈 줄 모르거나 여자들의 경우에는 남자 어른이 대신 갈아주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낫 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낫에는 두 종류의 낫이 있습니다. 조선낫(?)은 양쪽을 다 갈아야 하고 왜낫(?)은 한 쪽만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낫이나 어떤 농기구라도 갈아서 쓰는 연장은 숫돌에 갈 때 날이 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갈아서 날이 설 때까지만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날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날이 서게 되면 위에서 날을 내려다 볼 때 날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날이 보이지 않으면 날이 선 것입니다. 날이 하얗게 보이면 덜 갈린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갈아서 날이 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날이 넘어버리면 날이 서지 않은 것만도 못합니다. 낫을 열심히 오래 간다고 하여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적당히 잘 갈아서 날이 서야 하고 또 날이 넘지 말아야 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이 나쁘다는 뜻입니다. 한계효용(限界效用-marginal utility)이라는 경제학 이론도 우리에게 과유불급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요즘처럼 영농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지게로 짐을 져 날라야 했고, 삽이나 괭이로 땅을 파야만 했으며 그 더운 삼복더위에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타작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노동도 결국은 더 큰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감수했던 작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 오늘날은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먼 길을 걸어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 긷는 수고도 하지 않게 되었으며 길쌈하는 고달픔도 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고 오늘날도 더 편리한 내일을 위해 역시 고달픈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감수하는 고통은 더 큰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희생이 아니라 과잉 쾌락과 과잉편리를 위한 낭비가 되고 있습니다. 한계효용이라는 경제학 이론으로 말하자면 과연 오늘날 사람들이 누리는 편리와 즐거움이 그들이 감수하고 지불하는 고통에 상응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면 노동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과학기술은 그 한계효용을 넘어서 천연자원의 수요를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시키고 그 결과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오염되어 인간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이런 식으로 과학 기술을 계속 개발 하는 문제를 이제는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학 기술의 개발에서부터 개인의 욕망까지도 그 한계효용내에서 중단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의식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잉여 쾌락과 잉여 편리를 포기한다면 지나쳐서 해가 되는 과유불급의 폐해가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지나친 시대에는 약간 불편하게 사는 것이 남을 위하는 것이고 길게 보면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숫돌에 낫을 갈면서 지나치게 잘 갈려다가 날이 넘게 되어 낭패를 보았던 경험이 한계효용을 넘으려 하는 나 자신의 욕망을 자제하는데 약간은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지나치게 호강하기 위하여 과도한 고통을 감수하는 생활태도는 결코 지혜롭지 못하며 신앙적 자세도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한 지혜 자는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언 30:7-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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