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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추수감사절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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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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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나고 농촌 마을의 가을이 깊어갈 때 성도들이 추수한 곡식의 가장 좋은 것을 예배당으로 가져가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은 내 어린 시절의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주일학생들은 집에서 농사지은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간직해 두었다가 추수감사주일에 예배당으로 가져갑니다. 무, 배추, 감, 호박, 고구마 등의 농사를 많이 지었던 우리 집에서는 미리 추수 때에 제일 크고 좋은 것으로 구별해 두었다가 추수감사 주일에 예배당으로 가져가곤 하였습니다. 누구의 것이 제일 큰가 하는 경쟁심도 있었지만 강대상 아래 가득히 쌓인 가장 좋은 여러 종류의 열매와 농산물들은 보기에도 탐스러워 어린 가슴을 흐뭇하게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아까운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아직 어렸기 때문에 재물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에 대한 애착과 아까운 생각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는 제일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추수감사절이 나에게 가르쳐 준 매우 값진 신앙의 교훈이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성도들의 가정에서는 떡을 만들어 시루 째 가져옵니다. 성도가 열 명이면 떡이 열 시루, 성도가 스무 명이면 떡이 스무 시루가 됩니다. 온 교회 당 안은 구수한 떡 냄새로 가득하고, 성도들의 사랑은 또한 온 마을에 가득합니다. 그 많은 떡을 봉지에 싸서 온 마을의 믿지 않는 집집마다 돌립니다. 그러면 온 동네에 떡 잔치가 벌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인하여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며 성도의 교제를 나눕니다. 이 복의 잔은 차고 넘쳐서 이방인에게까지 미칩니다.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이 유난히 가슴 뿌듯한 날입니다.
   
이곳 미국, 청교도들이 새로 정착하게 된 이 땅에서, 첫 해의 추수한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절을 지켰다는 유서 깊은 뉴잉글랜드 가까이에서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지의 땅에 첫 발을 디딘 그들은 첫 해 겨울에 살인적인 추위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음 해 봄에 씨를 뿌리고 그 해 가을에 추수하여 눈물 어린 감사와 넘치는 감격의 기쁨으로 첫 번째 감사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추수한 옥수수와 야생 터키를 잡아서 요리하여 주위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이웃과 함께 복을 나누고 기뻐한다는 것은 내 어릴 때 추수감사주일이 가르쳐 준 것이며 청교도들이 물려준 신앙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추수감사주일이 너무도 소중합니다.
   
이곳 미국에서 몇 년째 아내는 추수감사절에 터키 두 마리를 준비합니다. 한 마리는 추수감사주일에 성도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한 마리는 추수감사일에 모이는 가족들을 위한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비교적 가까이에 사는 형제들의 가족들 30여 명이 함께 모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건강하실 때는 자녀들 집 이곳 저곳에서 모이기도 했지만 좀 먼 거리 여행이 불편하신 이후로는 줄 곳 우리 집에서 모입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명절 음식에서 떡을 하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에도 별 다른 음식을 하지 않고 떡을 하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상징하는 음식이 터키입니다. 미국 생활 초창기에는 터키를 요리할 줄 몰라서 닭볶음탕처럼 해서 먹었지만 이제 아내는 터키 요리에 상당한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살아 있는 터키를 잡아서 준비하는 것이라면 절대로 아내 가 할 수 없겠지만 가게에서 사서 하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터키는 매년 가게에서 파는 것 중 제일 큰 것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가게에서 파는 터키 중 제일 큰 것은 20파운드를 넘는, 어떤 해에는 25파운드, 어떤 해에는 22파운드, 올해에는 21파운드짜리 두 마리를 준비하였습니다. 20파운드가 넘으면 들어 만지기가 쉽지 않아 가게에서 구입할 때부터 요리하는 과정 내내 들어 옮길 때는 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터키를 구입하는 것도 정보와 요령이 필요합니다. 얼지 않은 터키는 이틀 전쯤에 사서 준비해도 되지만 값이 3-4배 정도 비싸기 때문에 한 번도 얼지 않은 터키로 준비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얼지 않은 생 터키는 맛이 더 좋을 텐데..., 나는 해마다 마음속으로 올 해는 얼지 않은 터키로 해 보자고 아내에게 제안해 보고 싶지만 그런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것을 알기에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뿐 감히(?)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아내는 일주일 전부터 찌라시를 뒤져서 터키 세일 하는 데를 찾거나 이곳 저곳 쇼핑센터에 전화를 걸어 터키 세일하는 곳을 알아냅니다. 올해도 스탑앤샵에서 터키 세일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명절에 식료품, 옷 등 꼭 필요한 물건 값이 오르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명절에 꼭 필요한 물건은 반드시 세일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올해도 스탑앤샵에서 25불 이상 고객에게 터키 두 마리까지를 파운드당 59c에 세일하여, 21파운드짜리 터키를 한 마리에 12불 39센트를 주고 두 마리를 구입하였습니다. 25불어치의 물건 구입은 터키 요리에 필요한 크렌베리 레몬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낭비를 피하기 위해 주로 토일렛 휴지 같은 것을 삽니다. 한 주일 전에 나 혼자 쇼핑하러 갔다가 추수감사절 터키 요리를 생각하고 내 딴에는 잘한다고 크렌베리를 한 봉지 사왔다가, 아내로부터 그것은 터키 구입 시 필요한 25불 어치 물건 구입에 포함되는 것인데 왜 샀느냐고 핀잔을 들었습니다. 매년 추수감사절 때 아내와 같이 터키와 함께 크렌베리나 레몬을 구입하였었지만 나는 터키와 크렌베리의 관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아내의 핀잔을 듣고서야 ‘그러네!’라고 겸연쩍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구입한 터키는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3일 전에 꺼내어 상온에서 24시간 정도 녹입니다. 전에는 녹은 터키의 내장을 꺼내고 깨끗이 씻어 큰 들통에 터키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레몬 서너 개를 썰어 넣어 24 시간 담가 놓았었지만, 이번에는 레서피를 달리하여 소금2컵(물 1갤론에 1컵), 월계수 잎, 통 후추, 레몬 등을 넣고 24시간 담가 두었습니다. 24시간 지난 후 꺼낸 터키에 레몬 즙, 흑설탕, 후추 가루 등을 섞어 만든 양념을 안팎으로 골고루 발라 포일로 싸서 냉장고에 하룻밤 넣어두었다가 터키 굽는 특수 비닐봉지(Oven Bag)에 넣어 공기구멍을 5-6개 뚫어 오븐에 넣어 약 세 시간 정도로 굽습니다. 소금물에 24시간 담가 두어서 살 속까지 골고루 간이 베어 맛이 좋습니다. 추수감사주일 예배 후에 교우들이 한 가지씩 해 온 음식들과 함께 푸짐한 추수감사 잔치에 모두가 흡족해 하는 것이 더욱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해마다 교회에서 먹고 남은 터키 뼈는 푹 고아 두었다가 추수감사일 가족 모임 때 국을 끓입니다. 배추 두 포기, 고사리 파 등을 넣고 터키계장(?)국을 끓이면 아이들은 터키를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터키보다 터키계장국을 선호합니다. 푸짐한 음식을 앞에 놓고 감사기도를 드린 다음 음식을 먹으려 하자 어머니가 ‘찬송 한 장 부르고 먹자’고 하셔서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를 부르고 모두들 접시에 음식을 마음껏 가져다 먹습니다. 푸짐한 음식을 대할 때면 왜 어김없이 음식이 귀했던 옛날이 기억나는지..., 아이들은 푸짐한 음식이 호사라는 걸 알 턱이 없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자 아이들은 영화를 보러간다며 모두 나가고 어른들은 남아서 이런저런 덕담을 나누며 막내가 낚시로 잡아 온 한치를 회 쳐서 먹었습니다. 몇 해째 추수감사절 때가 되면 커네티컷트 주에 사는 막내 군섭 장로가 낚시해 오는 한치 회를 아이들까지 잘 먹습니다. 오징어나 낙지나 한치 회 같은 것은 미국인들에게는 몬도가네 수준의 음식인데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잘 먹는 것을 보면 식성에도 DNA가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 배우자나 친구가 된 외국인들도 회를 잘 먹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 번 추수감사절에는 메사추세스에 사는 동생 문영 목사가 열무를 벤에 가득 실어 왔습니다. 며칠 전 형제들 카톡에 문영 목사가 그곳 어느 미국 농장의 끝이 보이지 않게 넓은 열무 밭 사진을 올렸습니다. 아무나 와서 뽑아 가면 된다기에 한 번 올라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 추수감사절에 모일 때 한 차 뽑아 와서 형제들에게 선물로 나눠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정말 뽑아 왔습니다. 추수감사절 오후에 어른들은 열무를 다듬었습니다. 각기 필요한 량을 챙기고 나머지는 다듬어 무청은 줄을 만들어 널고 일본 무 같은 작고 가는 무가 몇 바구니나 되는데 아직 어떻게 할지 좋은 아이디어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문영 목사가 퀸즈제일교회 교우들 몫이라고 한 것은 남겨 두었는데 주일까지 두어도 괜찮을지 걱정입니다. 무가 작고 가늘지만 맛은 좋은 편입니다.
   
영화를 보고 늦게 돌아온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난 후 한 가정씩 돌아가고 뒷정리를 하고 나니 10시가 넘었습니다. 준비하기 전에는 지치고 힘들어 나름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다들 즐겁게 왔다 가고 나니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수감사일 아침 7시쯤에 우리 집 바로 건너 집에 불이 나서 온 동내가 다 놀랐습니다. 골목마다 911 차로 꽉 막혔고 수십 명의 소방대원들이 골목에 가득했고 고가 사다리를 놓고 불 난 집 지붕 위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하는데, 불꽃은 보이지 않고 연기만 창문을 통해 나오고 있었습니다. 또한 간간히 창문을 통해 천정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화재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소방대원들이 진화하느라 천정을 뚫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추수감사일 아침에 일찍 음식을 만들다가 불이 났는지, 아니면 전기 누전으로 불이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 시간 동안 불을 끄고 소방대원들이 철수한 후에는 Emergency 차량 여러 대가 몇 시간에 걸쳐서 뒤처리를 하였습니다. 마침 나는 며칠 전 바람에 넘어진 체리 나무를 잘라서 태우고 있었는데 연기를 보고 놀란 소방대원 몇 명이 달려왔다가 나무를 태우는 것을 보고는 안도하며 'Happy thanksgiving day!'라고 말하고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우리에게는 행복한 땡스기빙 데이였지만 불난 집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땡스기빙 데이였을 것입니다. 불행한 이웃 곁에서 감사절 잔치라니...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 맞추었다면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욥 31: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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