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메르클레와 척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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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6-11-2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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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에서 시작된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만이 아닌 국제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을 불러와 연쇄적인 경제위기를 초래하였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수많은 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 사업을 접은 사람, 파산을 한 사람, 수를 다 헤아릴 수도 없는 가정들이 붕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노숙자와 자살자가 급증하고 인심은 각박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2008년 금융위기를 생각할 때 특별히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독일의 억만장자 사업가 아돌프 메르클레((Adolf Merckle 74)가 독일의 남부 소도시 블라우보이렌에서 열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타살의 징후는 없었고 그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엔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고 합니다. 2007년 그의 순자산은 120억 달러로 전 세계에서는 97번째 부자였고 독일에서는 최고 부자였습니다. 그는 유럽 최대 제약 회사의 소유주였고, 점점 사업 영역을 넓혀 제조업과 건설업에도 진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는 통 큰 사업가답게 거액을 주식시장에 베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내용은 폭스바겐의 주가 하락을 자신하면서 엄청난 량의 주식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포르쉐가 폭스바겐 인수에 나서면서 주가가 급상승하였습니다. 그는 거의 하루 만에 이 한 번의 도박으로 10억 달러 중 거의 4분의 3을 잃었습니다. 그는 거액의 대출금을 갚기 위해 현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은행들은 억만장자는 물론 은행들끼리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3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독일 최고 부자의 자리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럴 경우 모든 비용을 줄이고 손실을 감수 하고 헐값에라도 사업체 몇 개를 팔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의 유서만 달랑 남기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였습니다.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 것인지 메르클레가 죽고 불과 며칠 후에 그가 그토록 마련하려고 애썼던 대출 신청이 통과되었고 회사는 회생했습니다. 아돌프 메르클레가 자살한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돈이 그에게 의미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 돈은 삶의 토대였고 정체성이었으며 존재의 의미였습니다. 30억 달러를 잃었지만 남은 돈이 90억 달러나 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고 독일 최고 부자 자리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측합니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도 사실은 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의미하는 것에 집착합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메르클레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자살로 내몰았습니다. 당장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내 쫓기고 생존을 위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이들에게는 몇 달 집세 낼 돈만 있어도 자살까지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메르클레는 30억 달러를 잃어도 90억 달러가 남아 있는데도 자살을 하였습니다. 돈은 다 같은 돈이지만 그 돈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에 따라 행.불행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의 죽음은 독일은 물론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1967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소규모 화학제품 판매회사를 연 매출 300억 유로에 이르는 거대 기업으로 키웠으며, 독일 사람들은 그를 ‘기업가 정신’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왔었기에 충격 또한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돈은 꿈을 현실로 바꾸는 수단 중 하나입니다. 돈에 쪼들리면 삶이 비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다고 해서 꿈이 실현되고 모든 것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돈은 꿈을 현실로 바꾸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자만 사람을 바꾸지 못하고 우리의 욕망을 극대화시킬 뿐입니다. 비열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돈이 많을수록 더 비열하고 이기적이 되고 감사하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은 돈이 많을수록 더 감사하고 더 베풀게 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주식과 주택의 가치 수조 달러를 흔적도 없이 증발시켰습니다. 어떤 이들은 두려워했고, 어떤 이들은 분노했고, 어떤 이들은 체념했고, 어떤 이들은 결심했습니다. 이런 반응들은 얼핏 돈에 대한 반응 같지만 사실은 자신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금융 위기 뿐 아니라 우리를 충격에 빠지게 하는 모든 사건들은 무엇이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아돌프 메르클레를 생각하면 그와 대조되는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은 그를 빈털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억만장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뉴저지 주 엘리자베스 출신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척 피니(Chuck Feeney)입니다. 이미 『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THE BILLIONAIRE WHO WASN'T-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라는 책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아일랜드 금언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고,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는 인상 깊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우산 팔이, 카드 판매, 골프장 캐디 등 소년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군대에 자원 입대하여 한국전쟁 당시 일본에서 통신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기도 하였고, 코넬대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대학을 다니면서 1950년대 지중해 항구에서 미국 선원들에게 면세 술을 파는 일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소매 면세점(Duty Free Shops)을 창업하여 전 세계의 ‘면세점 신화’를 만들어 가며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돈을 버는 데 남다른 안목과 탁월함을 지닌 돈 버는 귀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돈 밖에 모르는 구두쇠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무슨 일로 면세점 체인인 DFS의 지분을 파는 과정에서 동업자들과 이해관계가 얽히는 바람에 6억 달러 기부라는 회계장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부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내게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익명의 기부재단을 통해 40억 달러를 남몰래 기부해 왔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많은 돈을 25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기부를 해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을 기부의 거인으로 알고 있지만 척 피니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미 40억 달러를 기부했지만 남은 재산 40억 달러도 기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집도 차도 없고 15달러(14,000원)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언제나 이코노미 클래스로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그가 자랄 때 그의 가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부모는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늘 살피고 도와주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1988년, <포브스>는 척 피니를 13억을 가진 부자로 미국 갑부 순위 23위에 올렸습니다. 당시로는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이나 부동산 재벌 도날드 트럼프보다 더 큰 부자로 소개되었습니다. 피니가 그 신문 기사를 읽고 담당 변호사에게 전한 쪽지의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부호 명단에서 빠지고 싶다면 돈을 잃거나, 남에게 줘버리거나, 죽는 방법밖에 없다.’그런데 ‘첫째 경우는 생길 것 같지 않고, 셋째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둘째만 남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피니는 이미 이 둘째 방법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1984년, 피니는 아무도 모르게 자선재단을 세워 부인과 자녀들 몫으로 얼마간의 돈만 남기고 자신의 재산은 모두 넘겼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생기는 재산도 모두 자선재단에 넘기기로 함으로써 그는 억만장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억만장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도 그의 뜻을 받아들였으며, 막내딸 다이앤은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선재단을 통해 그는 미국은 물론 아일랜드, 베트남,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남아공, 쿠바에 이르는 세계 여러 곳의 보다 나은 삶과 질병 퇴치, 인권과 사회 발전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하면서, 엄격하게 비밀엄수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합니다. 그의 돈으로 세워진 수많은 학교와 병원, 도서관, 연구기관, 기숙사 어느 곳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는 현재 40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 전부를 앞으로 10년 동안 모두 기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40억 달러를 10년 안에 다 기부하려면 하루에 100만 달러를 내놓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재산을 기부하지만 그는‘살아 있는 동안의 기부’라는 새로운 미국의 기부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워렌 버핏이 310억 달러를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도 피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2014년 미국의 기부 액수에 따른 순위로 보면 1워 워런이 버핏이 28억 달러, 2위 빌 게이츠가 13억 달러, 3위 조지 소로스가 7억 3,300만 달러, 4위 블룸버그가 4억 6,200만 달러에 이어 척 피니는 5위로 4억 3,400만 달러를 기부하였지만 유독 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그가 억만장자인지도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한지도 몰랐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작은 선행을 하고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인데 그렇게 큰돈을 기부하고도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오랫동안 비밀로 할 수 있었는지...,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늘 그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면 자랑하지 말라고 한 교훈을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 고전 4:7 -
그 와중에 2008년 금융위기를 생각할 때 특별히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독일의 억만장자 사업가 아돌프 메르클레((Adolf Merckle 74)가 독일의 남부 소도시 블라우보이렌에서 열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타살의 징후는 없었고 그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엔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고 합니다. 2007년 그의 순자산은 120억 달러로 전 세계에서는 97번째 부자였고 독일에서는 최고 부자였습니다. 그는 유럽 최대 제약 회사의 소유주였고, 점점 사업 영역을 넓혀 제조업과 건설업에도 진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는 통 큰 사업가답게 거액을 주식시장에 베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내용은 폭스바겐의 주가 하락을 자신하면서 엄청난 량의 주식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포르쉐가 폭스바겐 인수에 나서면서 주가가 급상승하였습니다. 그는 거의 하루 만에 이 한 번의 도박으로 10억 달러 중 거의 4분의 3을 잃었습니다. 그는 거액의 대출금을 갚기 위해 현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은행들은 억만장자는 물론 은행들끼리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3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독일 최고 부자의 자리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럴 경우 모든 비용을 줄이고 손실을 감수 하고 헐값에라도 사업체 몇 개를 팔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의 유서만 달랑 남기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였습니다.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 것인지 메르클레가 죽고 불과 며칠 후에 그가 그토록 마련하려고 애썼던 대출 신청이 통과되었고 회사는 회생했습니다. 아돌프 메르클레가 자살한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돈이 그에게 의미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 돈은 삶의 토대였고 정체성이었으며 존재의 의미였습니다. 30억 달러를 잃었지만 남은 돈이 90억 달러나 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고 독일 최고 부자 자리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측합니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도 사실은 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의미하는 것에 집착합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메르클레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자살로 내몰았습니다. 당장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내 쫓기고 생존을 위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이들에게는 몇 달 집세 낼 돈만 있어도 자살까지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메르클레는 30억 달러를 잃어도 90억 달러가 남아 있는데도 자살을 하였습니다. 돈은 다 같은 돈이지만 그 돈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에 따라 행.불행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의 죽음은 독일은 물론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1967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소규모 화학제품 판매회사를 연 매출 300억 유로에 이르는 거대 기업으로 키웠으며, 독일 사람들은 그를 ‘기업가 정신’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왔었기에 충격 또한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돈은 꿈을 현실로 바꾸는 수단 중 하나입니다. 돈에 쪼들리면 삶이 비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다고 해서 꿈이 실현되고 모든 것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돈은 꿈을 현실로 바꾸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자만 사람을 바꾸지 못하고 우리의 욕망을 극대화시킬 뿐입니다. 비열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돈이 많을수록 더 비열하고 이기적이 되고 감사하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은 돈이 많을수록 더 감사하고 더 베풀게 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주식과 주택의 가치 수조 달러를 흔적도 없이 증발시켰습니다. 어떤 이들은 두려워했고, 어떤 이들은 분노했고, 어떤 이들은 체념했고, 어떤 이들은 결심했습니다. 이런 반응들은 얼핏 돈에 대한 반응 같지만 사실은 자신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금융 위기 뿐 아니라 우리를 충격에 빠지게 하는 모든 사건들은 무엇이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아돌프 메르클레를 생각하면 그와 대조되는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은 그를 빈털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억만장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뉴저지 주 엘리자베스 출신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척 피니(Chuck Feeney)입니다. 이미 『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THE BILLIONAIRE WHO WASN'T-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라는 책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아일랜드 금언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고,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는 인상 깊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우산 팔이, 카드 판매, 골프장 캐디 등 소년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군대에 자원 입대하여 한국전쟁 당시 일본에서 통신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기도 하였고, 코넬대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대학을 다니면서 1950년대 지중해 항구에서 미국 선원들에게 면세 술을 파는 일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소매 면세점(Duty Free Shops)을 창업하여 전 세계의 ‘면세점 신화’를 만들어 가며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돈을 버는 데 남다른 안목과 탁월함을 지닌 돈 버는 귀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돈 밖에 모르는 구두쇠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무슨 일로 면세점 체인인 DFS의 지분을 파는 과정에서 동업자들과 이해관계가 얽히는 바람에 6억 달러 기부라는 회계장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부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내게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익명의 기부재단을 통해 40억 달러를 남몰래 기부해 왔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많은 돈을 25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기부를 해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을 기부의 거인으로 알고 있지만 척 피니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미 40억 달러를 기부했지만 남은 재산 40억 달러도 기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집도 차도 없고 15달러(14,000원)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언제나 이코노미 클래스로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그가 자랄 때 그의 가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부모는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늘 살피고 도와주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1988년, <포브스>는 척 피니를 13억을 가진 부자로 미국 갑부 순위 23위에 올렸습니다. 당시로는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이나 부동산 재벌 도날드 트럼프보다 더 큰 부자로 소개되었습니다. 피니가 그 신문 기사를 읽고 담당 변호사에게 전한 쪽지의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부호 명단에서 빠지고 싶다면 돈을 잃거나, 남에게 줘버리거나, 죽는 방법밖에 없다.’그런데 ‘첫째 경우는 생길 것 같지 않고, 셋째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둘째만 남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피니는 이미 이 둘째 방법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1984년, 피니는 아무도 모르게 자선재단을 세워 부인과 자녀들 몫으로 얼마간의 돈만 남기고 자신의 재산은 모두 넘겼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생기는 재산도 모두 자선재단에 넘기기로 함으로써 그는 억만장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억만장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도 그의 뜻을 받아들였으며, 막내딸 다이앤은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선재단을 통해 그는 미국은 물론 아일랜드, 베트남,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남아공, 쿠바에 이르는 세계 여러 곳의 보다 나은 삶과 질병 퇴치, 인권과 사회 발전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하면서, 엄격하게 비밀엄수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합니다. 그의 돈으로 세워진 수많은 학교와 병원, 도서관, 연구기관, 기숙사 어느 곳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는 현재 40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 전부를 앞으로 10년 동안 모두 기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40억 달러를 10년 안에 다 기부하려면 하루에 100만 달러를 내놓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재산을 기부하지만 그는‘살아 있는 동안의 기부’라는 새로운 미국의 기부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워렌 버핏이 310억 달러를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도 피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2014년 미국의 기부 액수에 따른 순위로 보면 1워 워런이 버핏이 28억 달러, 2위 빌 게이츠가 13억 달러, 3위 조지 소로스가 7억 3,300만 달러, 4위 블룸버그가 4억 6,200만 달러에 이어 척 피니는 5위로 4억 3,400만 달러를 기부하였지만 유독 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그가 억만장자인지도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한지도 몰랐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작은 선행을 하고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인데 그렇게 큰돈을 기부하고도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오랫동안 비밀로 할 수 있었는지...,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늘 그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면 자랑하지 말라고 한 교훈을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 고전 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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