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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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ㆍ2017-01-1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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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삶에서는 죄의 속성을 지니고 사는 인간들의 만남이기에 항상 편견과 차별이라는 사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몇 일전 겪은 사건을 통해 이를 재확인하게 됐기에 이를 통해 편견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혼자 살기를 원하시며 그러기에 홈케어 서비스를 받고 지내신다. 그런데 갑자기 홈케어 회사로부터 홈케어 시간을 줄인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뉴욕시가 재정적으로 긴축하기 위해 그렇겠거니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수일이 지난 후 어머니 말씀으로는 정기적인 평가를 하러 온 방문 간호사에게 홈케어 시간을 늘려달라고 이야기를 했다하셔서 약간 이상하여 자세히 물어보니 간호사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즉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어서 홈케어 오는 스페니쉬 홈케어의 시간을 더 늘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통보를 받게 된 것이 이상하던 중 홈케어 오는 분에게 물어보니 간호사가 자신에게 무섭게 캐물으며 어머니를 시켜 본인의 시간을 늘리려고 노인을 이용했다는 투로 야단치며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물론 홈케어 오시는 분이 어머니에게 성심성의껏 도와주시니 어머님의 혼자 생각이었다).
자초지종을 다 들으니 전체 사진이 그려져서 뉴욕주 해당 부서에 전화를 하여 정식 불평을 하니 Fair Hearing date를 잡아주었고 3일 전에 브르클린의 오피스로 가서 판사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주치의의 소견서까지 준비하고 만난 판사는 필자에게 메일로 보내진 보고서를 갖고있느냐 하기에 있다고 하니 자신이 살펴 본 바로는 잘못작성된 보고서였노라며 웃으면서 “you won the game" 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직장에서 하루 휴가까지 내어서 멀리까지 시간을 허비하여 가서 사실 확인과 시정 통보를 받았지만 필자가 생각했던 그대로를 확인하게 됨에 화도 나며 어이가 없어 이를 글로 올리고 싶다. 또한 약자들을 판사와 만나게 하여 강자들의 갑질과 차별로 인한 부당함을 시정하게 만드는 미국의 시스템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어느 직업군이건 자부심을 가지면 부지불식간에 교육 수준이 낮거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그들을 멸시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편견과 차별은 요사이는 돈으로 측량되며 그래서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젊은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헬조선”이란 용어로 그들로 하여금 상당수가 이민을 결심하게 만든다고 한다. 소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론이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좋은 배경의 부모(금수저)를 만났고 그래서 남들보다 능력이 없어도 잘살고 있고 하층 계급(흙수저)의 부모를 만난 누구들은 평생 노력해도 가난의 굴레를 더 이상 벗어나기 힘든 요즘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편견과 차별은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교회 안에서도 존재하며 교회를 병들게 하고 약화시키며 급기야는 분쟁으로 치닫게 만드는 주범이다.
20년 전에 퀸즈 모 대형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10년간 했었다. 당시 교사회에서는 소위 문제 학생 리스트를 만들어 교사들에게 해당 학생에 대한 감시와 주의를 준 일이 있었다. 필자는 그 차별에 너무 화가 나서 필자가 맡은 반 학생 중 그 리스트에 올려진 문제 학생을 더욱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배려했던 기억이 난다.
교계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목회자들의 세계도 대동소이하다.
대형교회를 위시하여 웬만큼 교세가 안정된 교회들에서는 담임목사 세습과 변칙 세습내지는 교회개척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그 후에는 그 교회와 통합하여 아들 목사의 안정된 목회를 위하여 전심을 다하는 뉴스가 자주 올려지는 세태를 바라보며 “만약 그렇다면 과연 대교회 목사를 부모로 태어나지 못한 목회자들과 후보생들의 미래는 어떠할까 ?”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필자만의 생각일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물론 필자가 알고 있는 일부 신실한 목사님들은 은퇴 시에 아들 세습은 물론 후임자 선정에도 전혀 관여를 안했으며 아예 이사를 멀리 가버려 교회의 혼란을 철저히 방지하신 분들도 있으나 요사이 이런 분들은 그야말로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아닌가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에 차별이 있는가 ?
현재 한국 사회에서 돈으로 인간을 편견과 차별로 대함같이 우리의 의와 공로로 하나님이 한번이라도 우리를 차별한 적이 있는가 ?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할수록 강자들의 갑질과 차별은 심화된다. 그리고 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어두움의 세력이 점차로 강성해짐에 있다. 그런 연고로 교회 개혁과 갱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지음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 상대방의 직분, 직위,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을 대할 때 주께 대하듯하여 차별없는 교회, 차별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 것이다.
우리가 수시로 암송하는 주기도문은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되어있다. 하늘나라, 천국은 우리의 직분에 상관없이 차별이 완전히 없는 곳이며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땅위에 존재하는 교회내에서 차별이 없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삶에서는 죄의 속성을 지니고 사는 인간들의 만남이기에 항상 편견과 차별이라는 사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몇 일전 겪은 사건을 통해 이를 재확인하게 됐기에 이를 통해 편견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혼자 살기를 원하시며 그러기에 홈케어 서비스를 받고 지내신다. 그런데 갑자기 홈케어 회사로부터 홈케어 시간을 줄인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뉴욕시가 재정적으로 긴축하기 위해 그렇겠거니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수일이 지난 후 어머니 말씀으로는 정기적인 평가를 하러 온 방문 간호사에게 홈케어 시간을 늘려달라고 이야기를 했다하셔서 약간 이상하여 자세히 물어보니 간호사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즉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어서 홈케어 오는 스페니쉬 홈케어의 시간을 더 늘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통보를 받게 된 것이 이상하던 중 홈케어 오는 분에게 물어보니 간호사가 자신에게 무섭게 캐물으며 어머니를 시켜 본인의 시간을 늘리려고 노인을 이용했다는 투로 야단치며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물론 홈케어 오시는 분이 어머니에게 성심성의껏 도와주시니 어머님의 혼자 생각이었다).
자초지종을 다 들으니 전체 사진이 그려져서 뉴욕주 해당 부서에 전화를 하여 정식 불평을 하니 Fair Hearing date를 잡아주었고 3일 전에 브르클린의 오피스로 가서 판사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주치의의 소견서까지 준비하고 만난 판사는 필자에게 메일로 보내진 보고서를 갖고있느냐 하기에 있다고 하니 자신이 살펴 본 바로는 잘못작성된 보고서였노라며 웃으면서 “you won the game" 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직장에서 하루 휴가까지 내어서 멀리까지 시간을 허비하여 가서 사실 확인과 시정 통보를 받았지만 필자가 생각했던 그대로를 확인하게 됨에 화도 나며 어이가 없어 이를 글로 올리고 싶다. 또한 약자들을 판사와 만나게 하여 강자들의 갑질과 차별로 인한 부당함을 시정하게 만드는 미국의 시스템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어느 직업군이건 자부심을 가지면 부지불식간에 교육 수준이 낮거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그들을 멸시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편견과 차별은 요사이는 돈으로 측량되며 그래서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젊은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헬조선”이란 용어로 그들로 하여금 상당수가 이민을 결심하게 만든다고 한다. 소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론이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좋은 배경의 부모(금수저)를 만났고 그래서 남들보다 능력이 없어도 잘살고 있고 하층 계급(흙수저)의 부모를 만난 누구들은 평생 노력해도 가난의 굴레를 더 이상 벗어나기 힘든 요즘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편견과 차별은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교회 안에서도 존재하며 교회를 병들게 하고 약화시키며 급기야는 분쟁으로 치닫게 만드는 주범이다.
20년 전에 퀸즈 모 대형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10년간 했었다. 당시 교사회에서는 소위 문제 학생 리스트를 만들어 교사들에게 해당 학생에 대한 감시와 주의를 준 일이 있었다. 필자는 그 차별에 너무 화가 나서 필자가 맡은 반 학생 중 그 리스트에 올려진 문제 학생을 더욱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배려했던 기억이 난다.
교계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목회자들의 세계도 대동소이하다.
대형교회를 위시하여 웬만큼 교세가 안정된 교회들에서는 담임목사 세습과 변칙 세습내지는 교회개척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그 후에는 그 교회와 통합하여 아들 목사의 안정된 목회를 위하여 전심을 다하는 뉴스가 자주 올려지는 세태를 바라보며 “만약 그렇다면 과연 대교회 목사를 부모로 태어나지 못한 목회자들과 후보생들의 미래는 어떠할까 ?”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필자만의 생각일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물론 필자가 알고 있는 일부 신실한 목사님들은 은퇴 시에 아들 세습은 물론 후임자 선정에도 전혀 관여를 안했으며 아예 이사를 멀리 가버려 교회의 혼란을 철저히 방지하신 분들도 있으나 요사이 이런 분들은 그야말로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아닌가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에 차별이 있는가 ?
현재 한국 사회에서 돈으로 인간을 편견과 차별로 대함같이 우리의 의와 공로로 하나님이 한번이라도 우리를 차별한 적이 있는가 ?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할수록 강자들의 갑질과 차별은 심화된다. 그리고 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어두움의 세력이 점차로 강성해짐에 있다. 그런 연고로 교회 개혁과 갱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지음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 상대방의 직분, 직위,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을 대할 때 주께 대하듯하여 차별없는 교회, 차별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 것이다.
우리가 수시로 암송하는 주기도문은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되어있다. 하늘나라, 천국은 우리의 직분에 상관없이 차별이 완전히 없는 곳이며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땅위에 존재하는 교회내에서 차별이 없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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