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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變質)된 목회자의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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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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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18
먼저 이 글은 전 글인 ‘전병욱과 이경실’ 에 댓글로 올려진 황서경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로 쓰여졌음을 알린다.

“ 저도 참 궁금합니다. 사실 여부는 그렇다치고..현재 홍대 교회 구성원을 보면 젊은이들이 대부분 입니다. 이들이 치부를 알면서도 홍대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누구 설명 좀 해 주십시요. 기성 세대는 그렇다쳐도 젊은 이들이 이성을 잃었나요? 요새 젊은 이들이 어떤 세대인데 ..참 알다가도 모르는 수수께끼입니다 ”

이제 카리스마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이곳에 옮긴다.
“카리스마(타)χαρίσματα)는 카리스(χάρις)에서 유래된 말로서 교부문헌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대중적인 헬라문헌에서 조차도 용어사용의 용례가 희귀한 1세기 후반에 사용되어진 바울만의 독특한 개념이다

바울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은혜(grace)로 번역되는 ‘카리스’와 ‘은사’(gift)에 대한 독특한 신약적 용어인 ‘카리스마'는 한면에서는 ‘카리스'와 연결되고 또 다른 한면에서는 영적현상들이 ‘카리스마타’라는 면에서는 ‘프뉴마’와 연결된다. 그래서 카리스마는 ‘영적인 선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것은 은혜의 구체화, 즉 인간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관대하시고 권세있는 관심의 구체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 ( 바울서신에 나타난 카리스마에 관한 연구, 조갑진교수)

3 세기 말 무렵부터 교회내에서 카리스마라는 용어의 종교적인 중요성이 감소되었다. 이후 20세기 초에 이를 다시 등장시킨 사람이 막스베버 (Max Weber) 였으며 현재에는 종교적, 사회적으로 많이 사용되어진다.

더불어 초대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인 카리스마는 누구든 구하면 주신다고 믿었으나 이후 카리스마는 설교자, 신학자, 교회 지도자등에게만 국한되어 사용하는 모습으로 변해갔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한편 현대 사회적 용어로서의 카리스마는 실제로 힘을 행사하지 않고, 밀고 당기는 싸움도 없이 무릎 꿇게 하는 힘이 바로 카리스마인 것이다. 자발적으로 졌음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승부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전략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카리스마를 갖고 싶어한다.

비밀스런 힘, 남다른 능력, 그리고 신비로운 광채 등의 뜻을 가진 이 ‘카리스마’라는 말은 사실상 실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보이는 것’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누구나 카리스마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겠지만 자신이 카리스마와 좀 거리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 다음은 카리스마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 있는 사람에게 보통 사람으로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특별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이 카리스마라는 개념을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들은 헌신적인 추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런 모든 이유가 비록 성추행이라는 주홍글씨를 갖고 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로 700명 이상의 청년 교인들로 힘을 얻고 있는 전병욱 목사와 홍대새교회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들이 자아도취적 성격을 보여주는 두드러진 본보기이며 자신감이 엄청나고 자기 회의를 절대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데에 있다.( 심리학자, 렌 오크스)

우리는 전병욱 목사가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공적인 회개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속 평양노회는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전번 글 결론에서 언급했던 바이나 과연 올바른 징계의 권위가 실추된 한국 교회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

이제 ‘경제와 사회’라는 책에서 언급된 베버의 3가지 지배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자.
1. 합법적으로 설립된 비인격적 체계에 복종해야 하는 합법적 지배.
2. 전통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과 전통의 권위아래 행사하는 권력에 의지하는 전통적 지배. 3. 예외적인 신성함과 영웅적 행위를 가진 개인에 의한 카리스마적 지배.

베버의 말은 쉽게 말하면 국가, 기업, 학교, 교회 같은 비인격적체가 합법적으로 가지는 권력으로 다스리는 것이 합법적 지배이고, 전통, 관습, 전례 등 무형의 체계가 가진 권력이 지배하는 것이 전통적 지배이며, 영웅적이거나 천재적이거나 종교적으로 영험한 존재의 개인적 힘이 다스리는 것이 카리스마적 지배라는 뜻이다.

그런데 유대인의 전통과 관례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7‘8,9)”라며 힐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하면 2번째 전통적 지배의 맹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3번째 카리스마에 의한 지배는 현재 허다한 한국 교회에서의 일탈을 통하여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결국 가장 올바른 지배는 합법적인 지배이며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1세기 후반부터 교회에 제도와 법이 틀을 갖추어져 가면서 예언자, 사도들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한 지배가 점차 교회제도와 법, 교리에 의한 지배로 바뀌어져 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 ‘카리스마의 역사’, 존 포츠)

다시 말해서 오늘날 교회가 목회자나 혹은 교회안의 한 두 사람의 카리스마(은사)에 의지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도 바울이 처음 사용한 카리스마의 본래적 의미는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한 ‘모든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나눠주신 선물로서의 재능, 능력을 의미했다. 결코 공동체의 리더인 ‘천재적인 개인’의 탁월함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카리스마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카리스마적인 개인이 지배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말씀), 교회의 법(교회법)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며 이는 현재의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로 헌신할 수 있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즉, 현행 총회 헌법의 독소조항들을 과감히 개혁하여 공적인 회개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게 일컽는 일탈 목회자들에게 면직과 같은 과감한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마르지 않게 흐르는 강같이 만들 수” 있는 현대판 아모스 목회자를 이 시대는 요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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