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넘지 말라
페이지 정보
최송연ㆍ2009-06-02관련링크
본문
도(道)를 넘지 말라
다음은 필자가 지난 번에 올린 글 아래, 댓글로 단 어느 형제님의 질문을 요약한 것이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 맞지요? 그러면 지금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들에 침묵으로 기도로만 임하라고 하시는 건지요.(물론, 필자는 글 속에서 말하는 뜻, 그 이상을 넘어선 생각으로 쓴 것은 아니다) 글을 쓰신 이유가지금 아멘넷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논쟁들도 한몫을 했으리라 사료 됩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데 그러려니, 낙태가 아무 제재 없이 이뤄지는데 그러려니, 동성애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만연하려고 하는데 그러려니,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인본주의자들이 예배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만들려 하는데 그러려니 하는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까요? 아시겠지만 요즘 너무나도 물탄 복음이 난무하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형제.자매가 많아서 걱정이 돼서 올렸습니다.“지금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들에 침묵으로 기도로만 임하라고 하시는 건지요?라는 요지였다. 아마도 많은 독자분이 같은 질문을 심중에 품고 있을 것이란 것과, 그 문제를 놓고 함께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성도는 불의에 항거하되 성경이 말씀하는 곳까지만 가야 하고, 그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는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임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고전 13: 6 절의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거기에 보면,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불의를 보고 침묵하면 안된다. 불의는 반드시 항거해야 한다. 정부에 대한 잘못, 권력 남용에 대한 지적, 필요하다. 그러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던, 다른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을 한 번 찾아보자.“너는 저희(성도)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므로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디도서3:1-2절 말씀)”, 또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는 심판을 자취 하리라 (로마서 13: 1-2)” 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1. 권세는 하나님께로 났다. 2. 성도는 권세 자에게 복종하고 굴복해야 한다. 3.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통령이 잘못 된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 그것은 하나님의 일꾼된 우리가 대언의 영이신 성령님을 힘입고 담대하게 ‘진리가 무엇인지, 불의가 무엇인지, 낙태가 왜 안되는지, 동성연애가 왜 옳지 않은지’, 똑바로 그에게 전하되 목소리 높여 큰 소리로 전해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서는 행동으로 과격하게 시위를 한다거나, 다투거나 거역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하고 외친 후, 그래도 듣지 않을 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기도로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간구 해야만 한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아멘넷의 댓글 논쟁이나, 우리 조국 교회의 지도자, 그리고 성도들의 열띤 논쟁은 그 도를 넘어 다툼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성도가 성도로서의 할 도리, 그 이상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서론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성도는 불의에 항거하고 진리를 밝히는 메세지를 전해야만 하고 서로 떡을 떼는 마음으로 말씀을 풀어 강론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그것으로 끝을 내어야 함에도, 끝까지 자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런 태도는 결국, 하나님 자리에 자기가 앉으려는 태도로써 성도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태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어리석은 변론을 피하라고 했음에도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태도일 뿐,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해야할 일,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 구분하라는 것이다. 니느웨 성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선지자의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 결과까지 바라고 원망을 하던 요나에게 주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교리가 다르면 그것은 순교까지 각오를 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워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아군과 적군을 분별해야 한다. 아군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는 것이고, 적군이란 공중 권세잡은 자에 속한 자들로써, 세상에 속했거나, 다른 교리를 전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사함 받고 한 형제 자매가 된 것을 말씀으로 검증하고 확인되면, 그 다음에 서로간에 약간 견해차가 있다고 해도, 교리, 구원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고, 삼위일체 교리가 분명함)같고 천국과 지옥론이 분명하면 지위의 높고 낮음, 빈부의 귀천, 남녀노소, 관계없이 모두 아군이요, 한 피로 맺어진 형제요 자매다. 서로 돕고 서로 감싸주며 서로 세워주어야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우리 부모님은 그 자녀들이 다툴 때, 마음 아파 하신다. 우리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도 그러하건데, 하물며 온전하신 그분의 사랑,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 사랑으로 너와 나를 사셨는데, 이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 물고 뜯고 싸운다면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더 아프시겠는가....우리는 말씀의 떡을 떼며 강론을 하되, 도(道)를 넘지는 말자.
먼저 분별의 은사를 사용하되 말씀으로 비추어서 확인한 후에, 확실히 해야 한다. 한 번 그렇게 믿었으면, 설령, 자신의 견해와 약간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여도, 이단이 아닌 이상, 다투거나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이 부분이 변질된 사람은 입으로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해도 그 양심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법을 좇아 행하는 사람이 아니며, 계속 그대로 간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많다고 보는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절제된 한계는 말씀에 의한 성경66권, 즉 말씀에 의한 분별까지 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형제를 정죄하기 앞서, 묵묵히 참으면서 주님께 기도로 아뢰고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 하는 것은, 주께서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시는 주인되심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양보하고 져 주어라.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 133: 1-3절 말씀)
"My confession in the Cross"/ The true
I've been the first to point fingers, to bring up someone
else's fault to light, and to argue for changes. I was
hoping and convinced this was how I would make
our faith better and do a service to our Lord. This
was my way of justice.
나는 처음에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끄집어 내어,
빛으로 들고 나오기도 했으며,
변화를 위해 다투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을 잘 섬기는 길이요
우리의 믿음을 보다 성숙케 만드는 길이라
확신했고 소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내 방식의 의로움이었습니다.
Then, I came to realize that I was pointing fingers to
myself exposing my own faults. I saw myself on the
very person who I was pointing fingers at.
다음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며
지적하는 손가락들이 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손가락질하며 지적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Then, I saw our Lord still weeping in the Cross after
all this time while I was claiming being on the true
side. I saw it was I keeping Him up there.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진리 편에 서 있다고 주장하던 내내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여전히 눈물 흘리고 계셔야 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는 그것들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 위에 계속 매달아 놓는 것임을.
Then, I realized that the silent suffering of Him in the
Cross for someone else's sins was and is His way of doing justice.
그리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죄를 위하여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것이 의로움을 위한 그분의 방법이란 것을....
번역/최송연
다음은 필자가 지난 번에 올린 글 아래, 댓글로 단 어느 형제님의 질문을 요약한 것이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 맞지요? 그러면 지금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들에 침묵으로 기도로만 임하라고 하시는 건지요.(물론, 필자는 글 속에서 말하는 뜻, 그 이상을 넘어선 생각으로 쓴 것은 아니다) 글을 쓰신 이유가지금 아멘넷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논쟁들도 한몫을 했으리라 사료 됩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데 그러려니, 낙태가 아무 제재 없이 이뤄지는데 그러려니, 동성애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만연하려고 하는데 그러려니,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인본주의자들이 예배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만들려 하는데 그러려니 하는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까요? 아시겠지만 요즘 너무나도 물탄 복음이 난무하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형제.자매가 많아서 걱정이 돼서 올렸습니다.“지금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들에 침묵으로 기도로만 임하라고 하시는 건지요?라는 요지였다. 아마도 많은 독자분이 같은 질문을 심중에 품고 있을 것이란 것과, 그 문제를 놓고 함께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성도는 불의에 항거하되 성경이 말씀하는 곳까지만 가야 하고, 그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는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임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고전 13: 6 절의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거기에 보면,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불의를 보고 침묵하면 안된다. 불의는 반드시 항거해야 한다. 정부에 대한 잘못, 권력 남용에 대한 지적, 필요하다. 그러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던, 다른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을 한 번 찾아보자.“너는 저희(성도)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므로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디도서3:1-2절 말씀)”, 또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는 심판을 자취 하리라 (로마서 13: 1-2)” 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1. 권세는 하나님께로 났다. 2. 성도는 권세 자에게 복종하고 굴복해야 한다. 3.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통령이 잘못 된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 그것은 하나님의 일꾼된 우리가 대언의 영이신 성령님을 힘입고 담대하게 ‘진리가 무엇인지, 불의가 무엇인지, 낙태가 왜 안되는지, 동성연애가 왜 옳지 않은지’, 똑바로 그에게 전하되 목소리 높여 큰 소리로 전해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서는 행동으로 과격하게 시위를 한다거나, 다투거나 거역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하고 외친 후, 그래도 듣지 않을 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기도로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간구 해야만 한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아멘넷의 댓글 논쟁이나, 우리 조국 교회의 지도자, 그리고 성도들의 열띤 논쟁은 그 도를 넘어 다툼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성도가 성도로서의 할 도리, 그 이상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서론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성도는 불의에 항거하고 진리를 밝히는 메세지를 전해야만 하고 서로 떡을 떼는 마음으로 말씀을 풀어 강론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그것으로 끝을 내어야 함에도, 끝까지 자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런 태도는 결국, 하나님 자리에 자기가 앉으려는 태도로써 성도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태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어리석은 변론을 피하라고 했음에도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태도일 뿐,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해야할 일,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 구분하라는 것이다. 니느웨 성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선지자의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 결과까지 바라고 원망을 하던 요나에게 주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교리가 다르면 그것은 순교까지 각오를 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워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아군과 적군을 분별해야 한다. 아군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는 것이고, 적군이란 공중 권세잡은 자에 속한 자들로써, 세상에 속했거나, 다른 교리를 전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사함 받고 한 형제 자매가 된 것을 말씀으로 검증하고 확인되면, 그 다음에 서로간에 약간 견해차가 있다고 해도, 교리, 구원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고, 삼위일체 교리가 분명함)같고 천국과 지옥론이 분명하면 지위의 높고 낮음, 빈부의 귀천, 남녀노소, 관계없이 모두 아군이요, 한 피로 맺어진 형제요 자매다. 서로 돕고 서로 감싸주며 서로 세워주어야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우리 부모님은 그 자녀들이 다툴 때, 마음 아파 하신다. 우리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도 그러하건데, 하물며 온전하신 그분의 사랑,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 사랑으로 너와 나를 사셨는데, 이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 물고 뜯고 싸운다면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더 아프시겠는가....우리는 말씀의 떡을 떼며 강론을 하되, 도(道)를 넘지는 말자.
먼저 분별의 은사를 사용하되 말씀으로 비추어서 확인한 후에, 확실히 해야 한다. 한 번 그렇게 믿었으면, 설령, 자신의 견해와 약간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여도, 이단이 아닌 이상, 다투거나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이 부분이 변질된 사람은 입으로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해도 그 양심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법을 좇아 행하는 사람이 아니며, 계속 그대로 간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많다고 보는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절제된 한계는 말씀에 의한 성경66권, 즉 말씀에 의한 분별까지 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형제를 정죄하기 앞서, 묵묵히 참으면서 주님께 기도로 아뢰고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 하는 것은, 주께서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시는 주인되심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양보하고 져 주어라.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 133: 1-3절 말씀)
"My confession in the Cross"/ The true
I've been the first to point fingers, to bring up someone
else's fault to light, and to argue for changes. I was
hoping and convinced this was how I would make
our faith better and do a service to our Lord. This
was my way of justice.
나는 처음에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끄집어 내어,
빛으로 들고 나오기도 했으며,
변화를 위해 다투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을 잘 섬기는 길이요
우리의 믿음을 보다 성숙케 만드는 길이라
확신했고 소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내 방식의 의로움이었습니다.
Then, I came to realize that I was pointing fingers to
myself exposing my own faults. I saw myself on the
very person who I was pointing fingers at.
다음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며
지적하는 손가락들이 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손가락질하며 지적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Then, I saw our Lord still weeping in the Cross after
all this time while I was claiming being on the true
side. I saw it was I keeping Him up there.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진리 편에 서 있다고 주장하던 내내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여전히 눈물 흘리고 계셔야 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는 그것들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 위에 계속 매달아 놓는 것임을.
Then, I realized that the silent suffering of Him in the
Cross for someone else's sins was and is His way of doing justice.
그리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죄를 위하여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것이 의로움을 위한 그분의 방법이란 것을....
번역/최송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