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의 성지순례 기행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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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ㆍ2009-04-1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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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광야
우리는 피라밋이 아주 가깝게 바라보이는 한 호텔에서 첫날밤 여장을 풀었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카이로시내를 벗어나 광야로 향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한 그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카이로시내를 벗어나자 곧 메마른 광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3월의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태양빛에 눈이 부셔, 차창 밖으로 내다보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가도가도 끝없는 황량한 벌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바싹 메마른 땅, 시뻘건 모래 먼지가 수북이 쌓인 끝없는 들판에는 짧고 앙상한 가시나무 떨기 같은 것이 어른의 주먹 뭉치만 하게 군데군데 엉겨붙어 있는 것 외에는 생명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지금 화성에 온 것일까? 지구 안에도 이런 곳이 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황량함이 보는 이의 마음마저 메마르게 한다.
사막 여기저기에 듬성듬성한 가시덤불 같은 것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재치있는 젊은 안내원이 입을 연다. “지금부터 광야가 시작됩니다, 홍해까지 버스로는 두 시간 반을 더 달려가야 합니다. 가는 길에 화장실은 없습니다. 혹시 급하신 분들이 있으시면 여자분들은 무조건 얼굴만 가리시고 남자분들은 돌아서서 볼일을 보십시오, 여자분들은 그런 때에 대개 저 작은 가시나무 떨기 사이로 가서 숨으시는데, 그곳에는 절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곳이 바로 광야에서 서식하는 전갈과 불 뱀들의 서식처입니다. 그곳에 앉아서 볼일을 보시면 큰일이 나죠.” 우리는 그의 익살스런 말에 와~하고 웃음을 터트렸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민수기 21장 4절 이하에 잘 나온다. 광야의 불 뱀들이 모두 몰려나와서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한 그 무시무시한 불 뱀과 전갈들이 이 불볕더위를 피해 숨을 곳이 있다면 바로 저런 가시나무 떨기밖에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무서운 전갈과 불 뱀들이 우글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어가며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이 눈에 보이는 듯, 끔찍한 환상에 전율했다.
나는 한때,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을 그렇게 많이 체험하고도 수시로 하나님을 원망하다 불 뱀에 물려 죽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어리석고 미련한 백성이라고 비웃었던 적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된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실상에서 체험하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현실이 조금 어렵다고 해서 그리도 쉽게 지도자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등을 돌려야만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광야의 실체를 눈앞에 보면서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때 그 상황에서,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해하게 됐다. “목마르다, 배고프다. 우리를 애굽에서 살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어찌하여 우리를 이 메마른 광야로 끌어내어 죽게 하느냐? 심하게 원망하다 불 뱀에 물려 죽어가던 백성들, 그때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만약 그때 그들과 함께했다면, 나는 분명히 그들보다 몇 배나 더 심하게 하나님도 모세도 원망했을 것이다. 나는 현대 온갖 최첨단 문명의 혜택을 다 누리고 살면서도 작은 어려움 앞에서, 들어내어 놓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입술 밖으로 내어 뱉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원망하는 마음이 수시로 내 감정을 사로잡을 때가 얼마나 많았으며, 그럴 때마다 힘들어하던 내가 아니던가? 몸이 조금 불편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마저 저울질하는 쪽으로 문득문득 떠 올리기도 한 나다. 이렇게 나약한 내가, 만일 그들과 함께 이 메마른 광야에서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이 40년간을 헤매고 다녀야만 했더라면…, 불을 보듯 뻔한 나 자신이었다.
그래, 그런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영역 외에는 잘 알 수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불러내셨고, 그들을 희생시켜서 오늘 우리에게 거울로 삼게 하셨구나…, 이렇게 험한 광야에서 헤매다가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원망하다가 멸망당한 그들, 선택된 민족, 히브리사람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어려움을 당하는 다른 이의 형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정죄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광야의 유목민 베두윈 족
사막지대를 달리는 차 속에서 내어다 보니, 다 낡은 천막 같기도 하고 움막 같기도 한 것이 군데군데 보인다. 바로 저 유명한 광야의 유목민 배두윈 족의 집이다. 광야의 베두윈 족에게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광야의 배두윈이 집을 떠나 먼 길을 갈 때는 반드시 다음 5가지의 필수품을 지니고 가야만 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막에서 가장 필요한 물, 낙타, 돈, 소금, 그리고 고양이라고 했다. 젊은 안내원의 재미있는 퀴즈가 시작된 것이다.
사막에서 꼭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대답은 여러 갈래로 엇갈렸지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역시 소금이란다. 그다음에 고양이, 물, 돈, 그리고 낙타가 남았는데 어떤 것을 버려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다수가 소금 다음에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도 없는 고양이일 것이란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정작 답은 우리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사막에서 제일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첫째, 소금, 다음은 물,그리고 그다음이 돈이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소금이야 없어도 그만이겠지만, 광야에서 물은 생명과 같은 것인 데, 그리고 돈이 있어야 먹을 것을 살 수 있을 텐데..., 광야에서건 어디서건 음식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음식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남겨두어야 할 비상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돈’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에 길든 우리 모두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광야에서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실제로 필요한 것은 돈보다 낙타라고 한다. 낙타만 있으면 먼 길을 갈 수가 있으니 낙타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다. 이제 낙타와 고양이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낙타와 고양이 중 어느 것이겠느냐? 이것이 그날 퀴즈의 클레이맥스였다…. 물론, 우리들은 모두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광야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낙타가 아니고 고양이라고 했다. 엥~~? 고양이라니…” 나는 하찮은 고양이를 맨 마지막까지 남겨두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까 이해가 되었다.
동물 중에서 고양이는 아주 영민한 동물이라고 한다. 사막에서 잠을 잘 때, 무서운 불 뱀과 전갈의 접근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은 고양이뿐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광야에는 불 뱀과 전갈이 그만큼 많으며,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것이다. 생명이 붙어 있고서야 돈도 필요한 것이지, 사람이 생명을 잃고서야 돈이 무엇이 소용이겠느냐 하는 부연 설명이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다. 광야에서 인간의 생명이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새롭게 인식한 좋은 기회였다.
홍해를 건너다
카이로를 떠난 지 2시간 30분, 끝없이 펼쳐진 넓은 광야를 가로질러 새로 닦아 놓은 듯한 고속도로를 쉬지 않고 달려서 우리가 홍해에 도착한 것은 점심때가 지난 오후였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최근에 이 지역은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홍해의 수위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홍해는 여전히 넓디넓은 바다였다. 그 옛날, 저 넓은 홍해 바다가 육지같이 갈라졌고, 바다 속에 뚫린 대로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을 것이다(출14: 1-4절). 짙은 녹색으로 춤추듯 일렁이는 홍해 물은 무척 맑고 깨끗했다. 우리 일행은 카이로시내에서부터 쭉 타고오던 버스에 그대로 앉은 채, 이집트가 돈을 투자했고 중국에서 이루어 놓았다는 바다 속에 뚫린 길로 홍해를 건너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적 같은 것은 필요 없다’큰소리치는 현대문명의 실상을 보는 듯, 신기한 한 편,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이 아니고 수에즈운하 끝자리, 작은 호수가 있는 갈대밭 사이, 육지로 건넜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대판 구약성서 지도를 보면 성경과는 사뭇 다르게 그려져 있는 것도 있다. 인간의 생각으로 바다가 갈라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필자는 유난히도 홍해바다의 길, 그리고 그 주위의 길에 흥미가 있었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성경 일부분은 삭제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일 점일 획도 틀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전제로 할 때, 지도대로 성경을 찢을 것인가, 아니면 성경대로 지도가 그려져야만 하는가? 내 믿음은 지도가 성경대로 그려져야지, 지도대로 성경을 찢어 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려면, 먼저 내 눈으로 그 지형을 확실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고, 성경에서 말씀한 지형들이 눈으로 확인될 때마다 눈물이 흐를 만큼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뜨거워 옴을 느꼈다.
우리는 피라밋이 아주 가깝게 바라보이는 한 호텔에서 첫날밤 여장을 풀었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카이로시내를 벗어나 광야로 향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한 그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카이로시내를 벗어나자 곧 메마른 광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3월의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태양빛에 눈이 부셔, 차창 밖으로 내다보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가도가도 끝없는 황량한 벌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바싹 메마른 땅, 시뻘건 모래 먼지가 수북이 쌓인 끝없는 들판에는 짧고 앙상한 가시나무 떨기 같은 것이 어른의 주먹 뭉치만 하게 군데군데 엉겨붙어 있는 것 외에는 생명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지금 화성에 온 것일까? 지구 안에도 이런 곳이 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황량함이 보는 이의 마음마저 메마르게 한다.
사막 여기저기에 듬성듬성한 가시덤불 같은 것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재치있는 젊은 안내원이 입을 연다. “지금부터 광야가 시작됩니다, 홍해까지 버스로는 두 시간 반을 더 달려가야 합니다. 가는 길에 화장실은 없습니다. 혹시 급하신 분들이 있으시면 여자분들은 무조건 얼굴만 가리시고 남자분들은 돌아서서 볼일을 보십시오, 여자분들은 그런 때에 대개 저 작은 가시나무 떨기 사이로 가서 숨으시는데, 그곳에는 절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곳이 바로 광야에서 서식하는 전갈과 불 뱀들의 서식처입니다. 그곳에 앉아서 볼일을 보시면 큰일이 나죠.” 우리는 그의 익살스런 말에 와~하고 웃음을 터트렸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민수기 21장 4절 이하에 잘 나온다. 광야의 불 뱀들이 모두 몰려나와서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한 그 무시무시한 불 뱀과 전갈들이 이 불볕더위를 피해 숨을 곳이 있다면 바로 저런 가시나무 떨기밖에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무서운 전갈과 불 뱀들이 우글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어가며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이 눈에 보이는 듯, 끔찍한 환상에 전율했다.
나는 한때,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을 그렇게 많이 체험하고도 수시로 하나님을 원망하다 불 뱀에 물려 죽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어리석고 미련한 백성이라고 비웃었던 적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된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실상에서 체험하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현실이 조금 어렵다고 해서 그리도 쉽게 지도자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등을 돌려야만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광야의 실체를 눈앞에 보면서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때 그 상황에서,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해하게 됐다. “목마르다, 배고프다. 우리를 애굽에서 살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어찌하여 우리를 이 메마른 광야로 끌어내어 죽게 하느냐? 심하게 원망하다 불 뱀에 물려 죽어가던 백성들, 그때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만약 그때 그들과 함께했다면, 나는 분명히 그들보다 몇 배나 더 심하게 하나님도 모세도 원망했을 것이다. 나는 현대 온갖 최첨단 문명의 혜택을 다 누리고 살면서도 작은 어려움 앞에서, 들어내어 놓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입술 밖으로 내어 뱉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원망하는 마음이 수시로 내 감정을 사로잡을 때가 얼마나 많았으며, 그럴 때마다 힘들어하던 내가 아니던가? 몸이 조금 불편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마저 저울질하는 쪽으로 문득문득 떠 올리기도 한 나다. 이렇게 나약한 내가, 만일 그들과 함께 이 메마른 광야에서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이 40년간을 헤매고 다녀야만 했더라면…, 불을 보듯 뻔한 나 자신이었다.
그래, 그런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영역 외에는 잘 알 수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불러내셨고, 그들을 희생시켜서 오늘 우리에게 거울로 삼게 하셨구나…, 이렇게 험한 광야에서 헤매다가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원망하다가 멸망당한 그들, 선택된 민족, 히브리사람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어려움을 당하는 다른 이의 형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정죄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광야의 유목민 베두윈 족
사막지대를 달리는 차 속에서 내어다 보니, 다 낡은 천막 같기도 하고 움막 같기도 한 것이 군데군데 보인다. 바로 저 유명한 광야의 유목민 배두윈 족의 집이다. 광야의 베두윈 족에게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광야의 배두윈이 집을 떠나 먼 길을 갈 때는 반드시 다음 5가지의 필수품을 지니고 가야만 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막에서 가장 필요한 물, 낙타, 돈, 소금, 그리고 고양이라고 했다. 젊은 안내원의 재미있는 퀴즈가 시작된 것이다.
사막에서 꼭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대답은 여러 갈래로 엇갈렸지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역시 소금이란다. 그다음에 고양이, 물, 돈, 그리고 낙타가 남았는데 어떤 것을 버려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다수가 소금 다음에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도 없는 고양이일 것이란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정작 답은 우리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사막에서 제일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첫째, 소금, 다음은 물,그리고 그다음이 돈이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소금이야 없어도 그만이겠지만, 광야에서 물은 생명과 같은 것인 데, 그리고 돈이 있어야 먹을 것을 살 수 있을 텐데..., 광야에서건 어디서건 음식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음식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남겨두어야 할 비상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돈’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에 길든 우리 모두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광야에서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실제로 필요한 것은 돈보다 낙타라고 한다. 낙타만 있으면 먼 길을 갈 수가 있으니 낙타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다. 이제 낙타와 고양이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낙타와 고양이 중 어느 것이겠느냐? 이것이 그날 퀴즈의 클레이맥스였다…. 물론, 우리들은 모두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광야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낙타가 아니고 고양이라고 했다. 엥~~? 고양이라니…” 나는 하찮은 고양이를 맨 마지막까지 남겨두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까 이해가 되었다.
동물 중에서 고양이는 아주 영민한 동물이라고 한다. 사막에서 잠을 잘 때, 무서운 불 뱀과 전갈의 접근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은 고양이뿐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광야에는 불 뱀과 전갈이 그만큼 많으며,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것이다. 생명이 붙어 있고서야 돈도 필요한 것이지, 사람이 생명을 잃고서야 돈이 무엇이 소용이겠느냐 하는 부연 설명이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다. 광야에서 인간의 생명이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새롭게 인식한 좋은 기회였다.
홍해를 건너다
카이로를 떠난 지 2시간 30분, 끝없이 펼쳐진 넓은 광야를 가로질러 새로 닦아 놓은 듯한 고속도로를 쉬지 않고 달려서 우리가 홍해에 도착한 것은 점심때가 지난 오후였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최근에 이 지역은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홍해의 수위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홍해는 여전히 넓디넓은 바다였다. 그 옛날, 저 넓은 홍해 바다가 육지같이 갈라졌고, 바다 속에 뚫린 대로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을 것이다(출14: 1-4절). 짙은 녹색으로 춤추듯 일렁이는 홍해 물은 무척 맑고 깨끗했다. 우리 일행은 카이로시내에서부터 쭉 타고오던 버스에 그대로 앉은 채, 이집트가 돈을 투자했고 중국에서 이루어 놓았다는 바다 속에 뚫린 길로 홍해를 건너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적 같은 것은 필요 없다’큰소리치는 현대문명의 실상을 보는 듯, 신기한 한 편,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이 아니고 수에즈운하 끝자리, 작은 호수가 있는 갈대밭 사이, 육지로 건넜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대판 구약성서 지도를 보면 성경과는 사뭇 다르게 그려져 있는 것도 있다. 인간의 생각으로 바다가 갈라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필자는 유난히도 홍해바다의 길, 그리고 그 주위의 길에 흥미가 있었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성경 일부분은 삭제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일 점일 획도 틀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전제로 할 때, 지도대로 성경을 찢을 것인가, 아니면 성경대로 지도가 그려져야만 하는가? 내 믿음은 지도가 성경대로 그려져야지, 지도대로 성경을 찢어 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려면, 먼저 내 눈으로 그 지형을 확실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고, 성경에서 말씀한 지형들이 눈으로 확인될 때마다 눈물이 흐를 만큼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뜨거워 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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