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信仰人), '아나키즘(Anarchism)'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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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ㆍ2010-01-1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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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信仰人), '아나키즘(Anarchism)' 없다
필자는 며칠 전, 우연히, 한 사이트에 들어 가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 여류 칼럼니스트가 필자의 지난 칼럼 글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삽입시켜놓고 “신앙인의 아나키즘”이란 거창한 제목과 함께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송구영신 예배에 성경구절을 뽑아 바구니에 담아 놓고 성도들이 개별적으로 집어 낸 그 말씀이 구약의 제비뽑기와 같은 형식이며, 그 제비뽑은 말씀을 일 년 동안 개인과 가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을 타당하다고 본다는 것이고, 그것을 ‘샤머니즘적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비본질적이며,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편협한 사고를 가진 자요, 지식적으로 많이 부족(?)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교회를 허는 자다라고까지 심하게 몰아부치는 그런 요지와 함께, 이런 태도가 바로 '신앙인의 아나키즘’, 곧 신앙의 무정부 상태’로 본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 칼럼니스트의 그 글이 적어도 그곳 사이트에서만은 최고 인기 뉴스로 급부상하는 영예(?)를 누리고 있었다. 어떤 마음에서 그런 터무니 없는 발상을 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큰 관심이건 작은 관심이건 관심을 준 것은 사랑이고, 그 받은 사랑을 헌신짝처럼 내어 던지는 그 마음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앞에서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눈 흘기는 처사나 행동은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가 아닌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 글을 정리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주님 앞과 독자들 앞에서 밝히며 확실히 해 두고 싶다.
다른 이의 말이나 글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은 창의적이랄 수도 없고,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대개 상처가 많다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기에(꼭 그 칼럼니스트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임), 그런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먼저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옳지 않은 말이나 폄훼하는 글은 염두에 둘 가치조차 없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오늘 아침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다. 비본질을 본질인양 말하는 것은 뒤로하고라도 우선 복음을 뒤틀어 억지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 뿐 아니라 그 글을 읽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도 문제를 안겨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 주시기를 바라고, 이것을 기회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른 지표, 잣대인 하나님의 말씀 위에 내 신앙이 올바르게 잘 세워지고 정립되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1. 말씀 제비뽑기는 신 구약 그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분이 제비뽑기에 비유하면서 증거로 든 성구들은 꽤 많았다. 아래 그분의 글을 잠시 인용해 보면(그분이 먼저 시도했으니, 이해하실 듯…^^), 편의상 괄호로 표시한다.
(속죄 제물 결정등(아사셀 염소 결정: 레16:7-10) 이스라엘의 민족적 중대사를 판결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아 제비 뽑기의 도구란 해석이 유력시 되고있다. 제비 뽑기는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 출애굽 후 가나안 땅 분배시 모세에게 명하신 것으로 (민26:52-56; 수14:2)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기업의 분배 방식이었으며, 전쟁등 국가의 대위기시 (삿1:1-3; 20:27), 범인을 찾을 때(수7:14; 삼상14:41- 42; 욘1:7), 사무엘이 사울왕을 뽑을 때등 특별 인물 선출이나 레위지파의 직분 배치시(대상24:5), 신약시대엔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도 맛디아를 선출시(행1:26) 행해졌다. 가나안 땅 분배시 땅의 크기는 인구비례제로 정해졌으나 그 위치는 제비뽑기로 결정(민26:52-56)하게 하신 것은 특정 지파에 특혜를 주는 것을 막고, 각 지파의 기업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각 지파의 특성등을 고려하여 당신의 주권에 의해 나누어주는 것임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분쟁이나 시비없이 감사함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또 다윗이 아론의 자손의 두 가문에게 성소의 직임을 맡길때 제비 뽑기로 결정한 것은 각 가문의 수(數)에 관계없이 성소의 직임만큼은 동등한 입장에서 결정하도록 한 것이었다(역상24:5). 그러면 제비뽑기의 근본 정신은 무엇인가?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는 말씀이 나타내듯 제비 뽑기는 그 결과를 온전히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돌리는 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한편 이 제비 뽑기는 고대 근동의 여러 국가들에게서도 행해졌던 것인데 그들의 제비뽑기 정신은 운명에 맡긴다는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의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위의 성구들이 나타내고 증거하듯, 구약의 제비뽑기는 대개 인간 관계에서 다툼이나 분쟁이 없도록 하기 위한 구약 법, 그러니까, 이미 받은 하나님의 말씀중 한 법이란 것이다. 이런 구약적 법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 와서는 그 모든 구약 법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뿐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히 9:10-11절 참조) 구약의 모든 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몸으로 완성하셨기에 더 이상 우리 성도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말씀은 예외가 없이 주께서 택하신 선지자들의 입으로 친히 말씀하셨다.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받는 것을 제비뽑기 한 흔적은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신약시대는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들 속에 임재하셔서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가르치신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절 말씀).” 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비뽑기 형식으로 받는 것은 미신적 행위일 뿐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가로채는 월권 행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신앙인(信仰人)에게 아나키즘(Anarchism)이란 있을 수 없다.
아나키즘(Anarchism)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무정부’란 뜻이다. 그리고 그 칼럼니스트도 분명히 그런 뜻을 알고 그 단어를 취사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고 답은 ‘No, 아니다!’이다. 신앙인(信仰人)이란 a believer(or believers)로서, 물론, 여러 다른 종교에서도 사용하는 말이긴 하지만, 여기서 그리스도를 신앙(信仰)하는 사람이란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면 ‘아나키즘’은 분명히 잘못 선택된 단어이다. 신앙인(信仰人), 신앙생활에 ‘무정부’란 있을 수 없고, 그 단어야말로 성경과는 무관한, 극히 인본주의적 단어 선택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내어놓는다 하여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면, 그리고 그 글이 신앙 글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기억하고 염두에 두고 선별 사용해야 하는 용어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text인 성경을 근거한 용어들로 기도 중에 신중히 선택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말 한마디에 우리의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 달렸고, 인본주의가 인간존재의 가치를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려는 이념이므로 이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관심을 떼어 놓으려는 사단의 전략일 뿐임을 간과할 수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오늘날의 인본주의는 모든 철학 이념 종교 사상 등을 인간 잠재력 개발의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기에, 이런 인본주의에 깊이 물들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맞춰져야 할 우리 눈의 초점(focus)이 오히려 인간의 성공, 자기존중에 돌려질 수 있기 때문에 성도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에서는 신앙인, 신앙생활, 곧 영적 세계에 있어서 ‘아나키즘(Anarchism)이란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의 세계에는 ‘사각지대’마저도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는 사람이 이렇게 인간적인 생각으로 사고하고 다른 이, 곧 그리스도의 그 흘리신 고귀한 피로 값을 지불하고 사신바 된 한 형제.자매들의 글을 자세히 읽고 소화시키기 이전에, 그 글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데만 급급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요,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글을 쓰건 설교를 하건 주님의 말씀이 가는 데까지만 가고 주님의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는 반드시 멈추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지식 자랑이나, 인기를 위해, 혹은 다른 이를 치기 위해, 말씀을 준비하거나 말씀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끌어다 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그런 것은 인본주의적 발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그런 인본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않는 한, 결코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수가 없을 것이다.
3. 신앙생활, 영의 세계에는 빛과 어두움의 세력, 두 정부가 있을 뿐이다!
신앙생활에는 빛에 속한 빛의 자녀(살전 5:5절 말씀)던지, 아니면 어둠에 속한 어둠의 자식(엡 5:8절)이 있을 뿐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사단도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기에 영의 세계도 단일정부,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권 아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사단이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엡 6:12절 말씀).”
우리는 빛의 자녀요, 그리스도께 속한 영적 군대들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인가? 다른 형제 자매를 시기하여 끌어내리려는 마음을 버리고 온전한 믿음과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함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승리하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 8-9절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바로 믿는 믿음과 형제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여야 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극히 세상적이며 짧은 지식을 가지고 형제 치기를 계속한다면 어찌 참된 그리스도의 군사라 하겠는가?
이런 사람은, 마치, 아군과 적군을 분별하지 못하는 정신 나간 군인과 같다고 보겠다. 군인이라면, 마땅히 아군과 적군을 분별하여, 손에 들려진 총칼로 아군은 옹호하고 적군을 향해 맹공격을 퍼부어야 하는데, 오히려 뒤돌아서서 아군을 향하여 총칼을 겨눈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런 사람이 군인이라면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영적 전투장에서도 매한가지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과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치열한 영적 전투장에서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도가 나가야 할 길은 넓고 안전한 길이 아니라, 좁고 협착하며 치열한 전투장임을 기억할 때, 나는 때때로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즈’를 떠올리며 도전을 받는다.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즈’ 장군은 멕시코 정복의 꿈을 안고 열한 척의 배에 700명의 병사들을 태웠다. 이렇게 적은 수로 멕시코를 정복한다는 것은 보통 각오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르테즈’ 장군은 비장한 각오로 멕시코의 베라쿠르즈 항구에 도착했다. ‘코르테즈’는 자신의 군대가 너무 적고, 모든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았다. 이 많은 멕시코 인들은 상대로 싸워 승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이 전투는 무모한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많은 병사들은 스페인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코르테즈’장군은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타고 온 배 열한 척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자 이제 우리는 정복을 하거나 죽거나 해야 한다. 우리는 되돌아 갈 수 없다.” 칠백 명의 병사들은 생각했다. ‘더 이상 우리는 돌아갈 길이 없다.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오직 이기는 것뿐이다. 지면 죽는다. 승리가 생명이다.’ 병사들의 눈에는 불이 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싸움은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출발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을 누가 당하겠는가?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에는 사각지대 없고, ‘아나키즘(Anarchism)’상태란 더더욱 없다. 이런 영적 세계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분별하게 되면, 결코 형제를 시기 질투하거나, 그 형제. 자매 끌어내리기 작전으로 헛된 소모전을 벌이고 아까운 시간과 힘을 분산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위해 힘을 합쳐 구령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할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는 사람이 형제.자매 치기에만 급급하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르켜 과연 빛의 자녀라 말 할 수 있겠으며, 그리스도의 군사라 말 할 수 있겠는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비록 순간적이었다 할지라도 그 순간만은 어둠의 세력자 사단의 조종을 받는다는 것이고(마 16:22-23절 참조), 사단의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아무런 유익 없고, 우리 주님 편에서 보면 큰 손실이기에 속히 돌이켜 회개해야 된다.
고로 말세지말을 살고 있는 우리 성도는 이 악한 시대에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싸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늘 깨어서 기도하며 자기 자신 속에, 인본주의적 사고나 육신의 생각들이 숨어 있는가 살피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를 것은 잘라내고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빛의 갑옷으로 재무장 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자신을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굳게 믿는 믿음 뿐이며, 또한 신앙생활의 길에서 적과 아군을 잘 분별하여 적은 힘써 대적하고, 형제. 자매이면, 그가 비록 나와는 약간 다른 견해가 있드라도 그것이 말씀에서 증명하는 일이면 서로 격려해 주고 내 몸같이 서로 사랑하며 주님의 깃발 아래 굳게 뭉치는 것 뿐이다. 그런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최후 승리를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딤후 2:3절 말씀).”"저가(예수 그리스도)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4-26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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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D
2010-01-22 00:54
67.xxx.135
그런데 비겁한건요...말씀뽑기 하는 교회에서 눈이 무서워서 줄줄이 서서 뽑아든 말씀 일년내내 성경 책 속에 소중하게 간수하는 사람들이...이런 종류의 칼럼 나오면 입에 거품 물고...입과 손발이 따로 노는 사람들...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요한 뭘 어쩐답니까? 그냥 기도해 주시던지 못본체 해주시면 되지요...주님 앞에 비겁하지 않은 영혼이 누가 있을까요? 누굴 정죄하자고 이런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스스로 믿어지면 하지 않을 능력도 생기겠죠^^ 1/22 02:05
121.xxx.84
별똥별 예,
저도 요한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실수를 할 수도 있기에...
계몽차원으로 주신 말씀이라고 받으시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알면서 행하는 것이라면, 고의성이라....
문제가 되겠지요?
성령의열매님처럼
지금까지 다르게 생각하고 계셨지만,
이번 기회를 선용하시고 깨달았다고
진솔하게 고백하시는 것을 보면서
참 아름다우신 분이라 여겨지거든요....
감사해요, 01=D님, 그리고 요한님. ^^
주님의 일이란,
서로 나누며, 함께 동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해드립니다... ...^^* 1/22 03:16
66.xxx.59
이=D 물론 누구 개인을 놓고 정죄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각성하자는 거지요. 주로 거품물고 떠드는 이들은 비겁한 남자들이더만...예수님 손가락 끝에서 꼼짝도 못하면서... 1/22 17:17
67.xxx.135
별똥별 (예수님 손가락 끝에서 꼼짝도 못하면서...)
호호, 하하!!
정말 통쾌합니다, 01=D 님. ^^*
서재생
2010-01-21 23:10
119.xxx.141
사모님께서 “제비뽑기를(말씀뽑기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모든 문제가 본인이 기고한 “신년 점괘 본다는 성도들”에서 출발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제비뽑기가 시작된 것은 목사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총회장 선거에 교단 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선거비용이 수십억 들어가는 여러 문제성이 있게 되자 이 문제점을 해결 방법으로 본인이 소속한 합동 교단에서 시작하면서 지 교회에서도 제비뽑기를 시작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다시 선거제도로 돌아 갈려는 시도가 몇 년 전부터 시도 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교단에서는 제비뽑기로 돌아 갈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선거제도의 장점은 검진된 사람이 선출되지만 선거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고, 제비뽑기는 장점은 선거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교단을 정말 대표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제비뽑기 단점 때문에 교단적인 망신을 산적이 있었습니다.
사모님! 사도적인 글에 늘 감사합니다
별똥별
목사님,
제비뽑기를 하는 것도, 사도행전 적으로 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지요?
사도들은 가룟 유다 대신을 뽑을 때(행 1:21-26절 참조)
모든 성도를 대상으로 제비뽑은 것이 아니구요.
검증된 두 사람,
예수님과 늘 함께 다녔다. (믿음의 초보자가 아님)
그러니까, 자질을 갖춘자, 요셉과 맛디아를 먼저
선출, 천거한 다음,
최종 결정을 제비뽑기로 주님께 물어보는 것...
이런 방법론이 아주 중요할 것 같아요.
또 딤전 3장을 보면, 직분자의 자격이 잘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총회장 선거도 성서적으로 하기만 하면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목사님과 다른 분들의 고견이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1/22 03:06
66.xxx.59
서재생 사모님께서 자질을 갖춘자, 요셉과 맛디아를 먼저 선출, 천거한 다음,
최종 결정을 제비뽑기로 주님께 물어보는 것...이런 방법론에 동의 하고자 합니다. 총회장으로서 공적인 장소에서 비속어을 쓰는 비인격적인모습에서 자질문제가 나오면서 제비뽑기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많은 목회자님께서도 지역선거로 자질을 검정하고 최종 결정을 제비뽑기로 하자는 의견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합니다. 1/22 04:54
119.xxx.141
별똥별 목사님 감사해요. ^^
제비뽑기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전 교인을 상대로 해야 한다 생각하기에 자질 미달인 사람이 뽑힐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주님께서는 외모나 세상 지식 그런 것, 보는 분 아니시고 사람의 속 중심을 살피는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일개 목동이였던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주님,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선출이 되면 좋은 것이죠.그런데, 사람들의 안목은 그게 아니구요. 결국 왕권도 세습을 하게 된 것 같구요.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으니까 아무 말씀 없으시죠. 사람들이 투표도 정도로만 행하면 문제될 것 하나 없는데, 타락한 심성이,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목사님? 그리고 요한님 혹은 다른 독자님들의 고견도 듣고 싶네요^^
1/24 21:36
66.xxx.59
별똥별
2010-01-21 20:13
66.xxx.59
《Re》요한 님 ,
(신약에는 사도를 세우는 일에 제비뽑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비뽑기를 미신적(말씀뽑기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복음 즉 내 생각으로 성경을 재단하는 반성경적인 사고입니다.)
요한님께서 다시 한 번 잘 읽어보십시오.
저는 제비뽑기 그 자체를 반대한 적 없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분, 성령의열매님이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제가 쓴 댓글과 칼럼 글을 읽고 회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점 오해없기를 바라고요...^^
님의 교회의 예는 가장 최악의 예이며, 가슴 아픈 예이기도 하네요.
(선뜻 동의가 되시지 않는다면 천천히 연구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
저야말로, 요한님께서 저의 본 글과 답글들을 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저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 뽑기는 제외) 제비뽑기를 반대한 적 없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아래 성령의열매님께 드린 제 답변을 여기에다 올려놓습니다.(처음 들어오시는 분들, 시간 없어 아래까지 내려가기 힘든 분들에게 혼란을 줄일 수 있도록...^^
(예, 성령의열매님의 말씀도 옳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지난 해,
제 2여선교회에서 회장단을 제비뽑기 한 적 있습니다.
그때,
그 뽑아진 인물들이 놀랍게도,
우리 교회에 그때 그 당시 꼭
필요한 인재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랐지요....^^
그리고,
올해는 다시 투표를 해서 새로운 임원진을
선출했습니다...지난 번에 회장된 사람이
재임을 해주기를 회원들이 모두 원해서이지요.
아무튼지,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항상 아름다운 성품이 돋보이는 성령의열매님이
열심히 기도해 주시고 참여해 주시니...
큰 힘을 얻습니다.
저도 님을 위해 기도해 드림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
별똥별
2010-01-21 13:10
66.xxx.59
《Re》요한 님 ,
요한님의 뜨거운 열정과 관심, 참여에 감사드립니다. ^^
저도 다시 그 문제를 두고 기도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주께서 응답 주신 것은...
역시,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깨달음입니다.
제비뽑기를 하건, 투표를 하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행하는 그곳에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절대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절대주권 +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이죠.
우리나라 격언에 "민심이 천심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로봇으로 만드시지 않은 주께서
우리들이 기도로 행하되 우리들의 자율적인 모임 속에
그분을 인정해 드리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도자를 세우는데, 꼭 제비뽑기 여야 한다는 법 없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도, 땅을 분배할 때,
제비뽑기를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기에
그들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로 부름 받고 선택된 제사장 직분 중
작은 임무를 맡길 때, 제비뽑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큰 직임을 맡길 때는 주께서 친히
불러서 세우셨지 제비뽑기를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9장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을 선택할 때, 제비뽑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제2대 왕, 다윗도 제비뽑기로 세우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제3대 왕 솔로몬은 인간의 역사대로,
왕권은 세습되어졌습니다.
언뜻 보면, 사람의 방법이었다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주께서
그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곧, 어떤 직분에는 그 직분에 걸맞은 자질과 성품
그리고 여건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또 사도행전 1:26절에 보면, 배신자, 가룟 유다 대신, 제자를
선출할 때는 제자들의 안목으로 자질을 갖춘 자라고 생각되는
두 사람을 먼저 세운 후, 제비뽑기를 해서 '맛디아'를 얻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건대,
제비뽑기만이 정석이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라고 좁혀 생각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먹거나 마시거나 그분 안에서,
행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구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라면,
모두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사용한다 하여,
그 자유를 남용하지만 않는다면, 주께서 책망치
않을 것입니다!!!
고로
투표를 하던,
제비뽑기를 하던, 주께서 허락하신,
개 교회의 형편대로 순종하며 행하시면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해가 잘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령의열매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전 요한님과는 반대로 제비뽑는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기 보다 미신적인 느낌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사모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제 생각이 틀렸다는것도 알았구요.
제비뽑기 하자고 하신 그 분을 잠시나마 판단한것도 죄송하구요.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주님께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겠어요.
1/21 14:36
173.xxx.2
별똥별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주님께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겠어요.)
예, 성령의열매님,
그것이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첫 걸음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한 일이 아니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1/21 14:52
66.xx
Thetrue
2010-01-21 07:30
152.xxx.131
"주님의 영(Holy Spirit)을 마음속에 모신 성도들이,"이것은 성경적이다,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너무 따지거나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우리는 이미 자유자들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절 말씀)."
I think this should be the conclusion of this discussion and it says it all.
On the other side, I have strong feeling for the need to pray for the author of the article in debate here (anarchism of the faithful).
별똥별 진실 형제님...
오늘도 참여를 해 주셨고, 동의해 주셔서
감사해요...^^
님의 기도와 관심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님의 그 맑은 영혼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죠.
예, 이 토론의 원인 제공자라 할 수 있는
그 칼럼니스트님을 위해 기도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신다는 진실 형제님의 제안에 동의하며,
저 역시 그분을 위해 기도해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1/21 17:03
별똥별
2010-01-21 01:06
66.xxx.59
《Re》성령의열매 님 ,
그리고 요한님...
본 글에서 설명드린 대로
제비뽑기 그 자체가 잘못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logos)을 신년에, 혹은
평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씀을 점치는 식으로 제비뽑거나
점치는 식으로 한 구절, 혹은 몇 구절이건, 좋은 말씀을
뽑아 내어, 올해, 혹은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구약 66권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겸허한 마음으로 그 말씀 그대로 정독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한 순간, 그 말씀 중 한 구절,
혹은 몇 구절이, 뜨거운 감동과 함께
내게 부닥쳐 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그 사람 개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기도 하시는 (요 14:26절 참조) 것이며, 이런 경우를 가르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요 10:27 절 참조)라고 하는
말씀이 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영적 지도자에게 의존하여,
그 사람이 기도해서 뽑아 놓은 말씀이라
더욱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으면
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인제사장'이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말씀을 읽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비뽑기식으로 받는 것은
성경적이지를 않습니다만....
그 외에,
회장 선출을 하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성도는 제비뽑기를 하던, 투표를 하던 그런 방법론에
너무 구애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자유자들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절 말씀)."
주님의 영(Holy Spirit)을 마음속에 모신 성도들이,
"이것은 성경적이다,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너무 따지거나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저런 율법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사람을 외식하는 자,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보다는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는다고 하는 신앙고백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선거를 하는 것도, 투표를 하는 것도
제비를 뽑는 것도, 모두 인간이 경영하는 것 같으나
그 결과는 주께서 허락하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 16: 1)."
이 말씀을 꼭 제비뽑기에만 국한 시키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들 속에서
'주님의 주권을'인정하라는 것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기억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
성령의열매 그렇군요! 전 어느정도 본인의 의견도 존중하는것이 좋다고
생각을 해서 제비뽑는다는것이 달갑지 않았어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했다기 보다 직위를 받는 분의
충성심과 열정을 생각해 보았구요.
모두 함께 몇칠간 기도하고 나서 만장일치로 회장을 뽑았어요.
음~ 제 생각이 짧아서 율법에 얽매이고 싶지않구요.
저 또한 주님안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1/21 04:16
72.xxx.211
별똥별 예, 성령의열매님의 말씀도 옳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지난 해,
제 2여선교회에서 회장단을 제비뽑기 한 적 있습니다.
그때,
그 뽑아진 인물들이 놀랍게도,
우리 교회에 그때 그 당시 꼭
필요한 인재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랐지요....^^
그리고,
올해는 다시 투표를 해서 새로운 임원진을
선출했습니다...지난 번에 회장된 사람이
재임을 해주기를 회원들이 모두 원해서이지요.
아무튼지,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항상 아름다운 성품이 돋보이는 성령의열매님이
열심히 기도해 주시고 참여해 주시니...
큰 힘을 얻습니다.
저도 님을 위해 기도해 드림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 1/21 13:58
66
서재생
2010-01-19 22:21
119.xxx.141
사모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공감합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한국 초대 교회에 없었던 성구 뽑기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직도 이 땅에는 소위 신년 신수 보는 “토정비결” 신년 운수 점술 영향에서 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점복문화가 아직도 한국교회와 기독교 가정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모님!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한국교회가 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목회자에게 각성이 필요하고요. 둘째는 기독 출판업계 기업인들의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여러 출판사들의 성구 뽑기 상품광고지가 수없이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꼭 신년에 삼재부적, 축원부적 등 을 인쇄하여 사찰에 역술원에 무당집에 구입하라고 보내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사모님의 깊은 영적 통찰력 있는 선지자적인 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누지문서 저도 서재생목사님의 댓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1/20 06:30
필자는 며칠 전, 우연히, 한 사이트에 들어 가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 여류 칼럼니스트가 필자의 지난 칼럼 글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삽입시켜놓고 “신앙인의 아나키즘”이란 거창한 제목과 함께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송구영신 예배에 성경구절을 뽑아 바구니에 담아 놓고 성도들이 개별적으로 집어 낸 그 말씀이 구약의 제비뽑기와 같은 형식이며, 그 제비뽑은 말씀을 일 년 동안 개인과 가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을 타당하다고 본다는 것이고, 그것을 ‘샤머니즘적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비본질적이며,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편협한 사고를 가진 자요, 지식적으로 많이 부족(?)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교회를 허는 자다라고까지 심하게 몰아부치는 그런 요지와 함께, 이런 태도가 바로 '신앙인의 아나키즘’, 곧 신앙의 무정부 상태’로 본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 칼럼니스트의 그 글이 적어도 그곳 사이트에서만은 최고 인기 뉴스로 급부상하는 영예(?)를 누리고 있었다. 어떤 마음에서 그런 터무니 없는 발상을 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큰 관심이건 작은 관심이건 관심을 준 것은 사랑이고, 그 받은 사랑을 헌신짝처럼 내어 던지는 그 마음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앞에서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눈 흘기는 처사나 행동은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가 아닌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 글을 정리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주님 앞과 독자들 앞에서 밝히며 확실히 해 두고 싶다.
다른 이의 말이나 글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은 창의적이랄 수도 없고,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대개 상처가 많다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기에(꼭 그 칼럼니스트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임), 그런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먼저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옳지 않은 말이나 폄훼하는 글은 염두에 둘 가치조차 없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오늘 아침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다. 비본질을 본질인양 말하는 것은 뒤로하고라도 우선 복음을 뒤틀어 억지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 뿐 아니라 그 글을 읽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도 문제를 안겨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 주시기를 바라고, 이것을 기회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른 지표, 잣대인 하나님의 말씀 위에 내 신앙이 올바르게 잘 세워지고 정립되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1. 말씀 제비뽑기는 신 구약 그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분이 제비뽑기에 비유하면서 증거로 든 성구들은 꽤 많았다. 아래 그분의 글을 잠시 인용해 보면(그분이 먼저 시도했으니, 이해하실 듯…^^), 편의상 괄호로 표시한다.
(속죄 제물 결정등(아사셀 염소 결정: 레16:7-10) 이스라엘의 민족적 중대사를 판결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아 제비 뽑기의 도구란 해석이 유력시 되고있다. 제비 뽑기는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 출애굽 후 가나안 땅 분배시 모세에게 명하신 것으로 (민26:52-56; 수14:2)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기업의 분배 방식이었으며, 전쟁등 국가의 대위기시 (삿1:1-3; 20:27), 범인을 찾을 때(수7:14; 삼상14:41- 42; 욘1:7), 사무엘이 사울왕을 뽑을 때등 특별 인물 선출이나 레위지파의 직분 배치시(대상24:5), 신약시대엔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도 맛디아를 선출시(행1:26) 행해졌다. 가나안 땅 분배시 땅의 크기는 인구비례제로 정해졌으나 그 위치는 제비뽑기로 결정(민26:52-56)하게 하신 것은 특정 지파에 특혜를 주는 것을 막고, 각 지파의 기업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각 지파의 특성등을 고려하여 당신의 주권에 의해 나누어주는 것임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분쟁이나 시비없이 감사함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또 다윗이 아론의 자손의 두 가문에게 성소의 직임을 맡길때 제비 뽑기로 결정한 것은 각 가문의 수(數)에 관계없이 성소의 직임만큼은 동등한 입장에서 결정하도록 한 것이었다(역상24:5). 그러면 제비뽑기의 근본 정신은 무엇인가?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는 말씀이 나타내듯 제비 뽑기는 그 결과를 온전히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돌리는 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한편 이 제비 뽑기는 고대 근동의 여러 국가들에게서도 행해졌던 것인데 그들의 제비뽑기 정신은 운명에 맡긴다는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의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위의 성구들이 나타내고 증거하듯, 구약의 제비뽑기는 대개 인간 관계에서 다툼이나 분쟁이 없도록 하기 위한 구약 법, 그러니까, 이미 받은 하나님의 말씀중 한 법이란 것이다. 이런 구약적 법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 와서는 그 모든 구약 법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뿐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히 9:10-11절 참조) 구약의 모든 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몸으로 완성하셨기에 더 이상 우리 성도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말씀은 예외가 없이 주께서 택하신 선지자들의 입으로 친히 말씀하셨다.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받는 것을 제비뽑기 한 흔적은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신약시대는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들 속에 임재하셔서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가르치신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절 말씀).” 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비뽑기 형식으로 받는 것은 미신적 행위일 뿐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가로채는 월권 행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신앙인(信仰人)에게 아나키즘(Anarchism)이란 있을 수 없다.
아나키즘(Anarchism)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무정부’란 뜻이다. 그리고 그 칼럼니스트도 분명히 그런 뜻을 알고 그 단어를 취사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고 답은 ‘No, 아니다!’이다. 신앙인(信仰人)이란 a believer(or believers)로서, 물론, 여러 다른 종교에서도 사용하는 말이긴 하지만, 여기서 그리스도를 신앙(信仰)하는 사람이란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면 ‘아나키즘’은 분명히 잘못 선택된 단어이다. 신앙인(信仰人), 신앙생활에 ‘무정부’란 있을 수 없고, 그 단어야말로 성경과는 무관한, 극히 인본주의적 단어 선택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내어놓는다 하여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면, 그리고 그 글이 신앙 글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기억하고 염두에 두고 선별 사용해야 하는 용어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text인 성경을 근거한 용어들로 기도 중에 신중히 선택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말 한마디에 우리의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 달렸고, 인본주의가 인간존재의 가치를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려는 이념이므로 이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관심을 떼어 놓으려는 사단의 전략일 뿐임을 간과할 수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오늘날의 인본주의는 모든 철학 이념 종교 사상 등을 인간 잠재력 개발의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기에, 이런 인본주의에 깊이 물들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맞춰져야 할 우리 눈의 초점(focus)이 오히려 인간의 성공, 자기존중에 돌려질 수 있기 때문에 성도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에서는 신앙인, 신앙생활, 곧 영적 세계에 있어서 ‘아나키즘(Anarchism)이란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의 세계에는 ‘사각지대’마저도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는 사람이 이렇게 인간적인 생각으로 사고하고 다른 이, 곧 그리스도의 그 흘리신 고귀한 피로 값을 지불하고 사신바 된 한 형제.자매들의 글을 자세히 읽고 소화시키기 이전에, 그 글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데만 급급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요,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글을 쓰건 설교를 하건 주님의 말씀이 가는 데까지만 가고 주님의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는 반드시 멈추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지식 자랑이나, 인기를 위해, 혹은 다른 이를 치기 위해, 말씀을 준비하거나 말씀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끌어다 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그런 것은 인본주의적 발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그런 인본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않는 한, 결코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수가 없을 것이다.
3. 신앙생활, 영의 세계에는 빛과 어두움의 세력, 두 정부가 있을 뿐이다!
신앙생활에는 빛에 속한 빛의 자녀(살전 5:5절 말씀)던지, 아니면 어둠에 속한 어둠의 자식(엡 5:8절)이 있을 뿐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사단도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기에 영의 세계도 단일정부,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권 아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사단이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엡 6:12절 말씀).”
우리는 빛의 자녀요, 그리스도께 속한 영적 군대들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인가? 다른 형제 자매를 시기하여 끌어내리려는 마음을 버리고 온전한 믿음과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함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승리하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 8-9절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바로 믿는 믿음과 형제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여야 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극히 세상적이며 짧은 지식을 가지고 형제 치기를 계속한다면 어찌 참된 그리스도의 군사라 하겠는가?
이런 사람은, 마치, 아군과 적군을 분별하지 못하는 정신 나간 군인과 같다고 보겠다. 군인이라면, 마땅히 아군과 적군을 분별하여, 손에 들려진 총칼로 아군은 옹호하고 적군을 향해 맹공격을 퍼부어야 하는데, 오히려 뒤돌아서서 아군을 향하여 총칼을 겨눈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런 사람이 군인이라면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영적 전투장에서도 매한가지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과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치열한 영적 전투장에서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도가 나가야 할 길은 넓고 안전한 길이 아니라, 좁고 협착하며 치열한 전투장임을 기억할 때, 나는 때때로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즈’를 떠올리며 도전을 받는다.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즈’ 장군은 멕시코 정복의 꿈을 안고 열한 척의 배에 700명의 병사들을 태웠다. 이렇게 적은 수로 멕시코를 정복한다는 것은 보통 각오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르테즈’ 장군은 비장한 각오로 멕시코의 베라쿠르즈 항구에 도착했다. ‘코르테즈’는 자신의 군대가 너무 적고, 모든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았다. 이 많은 멕시코 인들은 상대로 싸워 승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이 전투는 무모한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많은 병사들은 스페인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코르테즈’장군은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타고 온 배 열한 척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자 이제 우리는 정복을 하거나 죽거나 해야 한다. 우리는 되돌아 갈 수 없다.” 칠백 명의 병사들은 생각했다. ‘더 이상 우리는 돌아갈 길이 없다.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오직 이기는 것뿐이다. 지면 죽는다. 승리가 생명이다.’ 병사들의 눈에는 불이 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싸움은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출발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을 누가 당하겠는가?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에는 사각지대 없고, ‘아나키즘(Anarchism)’상태란 더더욱 없다. 이런 영적 세계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분별하게 되면, 결코 형제를 시기 질투하거나, 그 형제. 자매 끌어내리기 작전으로 헛된 소모전을 벌이고 아까운 시간과 힘을 분산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위해 힘을 합쳐 구령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할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는 사람이 형제.자매 치기에만 급급하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르켜 과연 빛의 자녀라 말 할 수 있겠으며, 그리스도의 군사라 말 할 수 있겠는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비록 순간적이었다 할지라도 그 순간만은 어둠의 세력자 사단의 조종을 받는다는 것이고(마 16:22-23절 참조), 사단의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아무런 유익 없고, 우리 주님 편에서 보면 큰 손실이기에 속히 돌이켜 회개해야 된다.
고로 말세지말을 살고 있는 우리 성도는 이 악한 시대에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싸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늘 깨어서 기도하며 자기 자신 속에, 인본주의적 사고나 육신의 생각들이 숨어 있는가 살피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를 것은 잘라내고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빛의 갑옷으로 재무장 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자신을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굳게 믿는 믿음 뿐이며, 또한 신앙생활의 길에서 적과 아군을 잘 분별하여 적은 힘써 대적하고, 형제. 자매이면, 그가 비록 나와는 약간 다른 견해가 있드라도 그것이 말씀에서 증명하는 일이면 서로 격려해 주고 내 몸같이 서로 사랑하며 주님의 깃발 아래 굳게 뭉치는 것 뿐이다. 그런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최후 승리를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딤후 2:3절 말씀).”"저가(예수 그리스도)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4-26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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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D
2010-01-22 00:54
67.xxx.135
그런데 비겁한건요...말씀뽑기 하는 교회에서 눈이 무서워서 줄줄이 서서 뽑아든 말씀 일년내내 성경 책 속에 소중하게 간수하는 사람들이...이런 종류의 칼럼 나오면 입에 거품 물고...입과 손발이 따로 노는 사람들...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요한 뭘 어쩐답니까? 그냥 기도해 주시던지 못본체 해주시면 되지요...주님 앞에 비겁하지 않은 영혼이 누가 있을까요? 누굴 정죄하자고 이런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스스로 믿어지면 하지 않을 능력도 생기겠죠^^ 1/22 02:05
121.xxx.84
별똥별 예,
저도 요한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실수를 할 수도 있기에...
계몽차원으로 주신 말씀이라고 받으시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알면서 행하는 것이라면, 고의성이라....
문제가 되겠지요?
성령의열매님처럼
지금까지 다르게 생각하고 계셨지만,
이번 기회를 선용하시고 깨달았다고
진솔하게 고백하시는 것을 보면서
참 아름다우신 분이라 여겨지거든요....
감사해요, 01=D님, 그리고 요한님. ^^
주님의 일이란,
서로 나누며, 함께 동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해드립니다... ...^^* 1/22 03:16
66.xxx.59
이=D 물론 누구 개인을 놓고 정죄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각성하자는 거지요. 주로 거품물고 떠드는 이들은 비겁한 남자들이더만...예수님 손가락 끝에서 꼼짝도 못하면서... 1/22 17:17
67.xxx.135
별똥별 (예수님 손가락 끝에서 꼼짝도 못하면서...)
호호, 하하!!
정말 통쾌합니다, 01=D 님. ^^*
서재생
2010-01-21 23:10
119.xxx.141
사모님께서 “제비뽑기를(말씀뽑기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모든 문제가 본인이 기고한 “신년 점괘 본다는 성도들”에서 출발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제비뽑기가 시작된 것은 목사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총회장 선거에 교단 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선거비용이 수십억 들어가는 여러 문제성이 있게 되자 이 문제점을 해결 방법으로 본인이 소속한 합동 교단에서 시작하면서 지 교회에서도 제비뽑기를 시작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다시 선거제도로 돌아 갈려는 시도가 몇 년 전부터 시도 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교단에서는 제비뽑기로 돌아 갈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선거제도의 장점은 검진된 사람이 선출되지만 선거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고, 제비뽑기는 장점은 선거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교단을 정말 대표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제비뽑기 단점 때문에 교단적인 망신을 산적이 있었습니다.
사모님! 사도적인 글에 늘 감사합니다
별똥별
목사님,
제비뽑기를 하는 것도, 사도행전 적으로 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지요?
사도들은 가룟 유다 대신을 뽑을 때(행 1:21-26절 참조)
모든 성도를 대상으로 제비뽑은 것이 아니구요.
검증된 두 사람,
예수님과 늘 함께 다녔다. (믿음의 초보자가 아님)
그러니까, 자질을 갖춘자, 요셉과 맛디아를 먼저
선출, 천거한 다음,
최종 결정을 제비뽑기로 주님께 물어보는 것...
이런 방법론이 아주 중요할 것 같아요.
또 딤전 3장을 보면, 직분자의 자격이 잘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총회장 선거도 성서적으로 하기만 하면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목사님과 다른 분들의 고견이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1/22 03:06
66.xxx.59
서재생 사모님께서 자질을 갖춘자, 요셉과 맛디아를 먼저 선출, 천거한 다음,
최종 결정을 제비뽑기로 주님께 물어보는 것...이런 방법론에 동의 하고자 합니다. 총회장으로서 공적인 장소에서 비속어을 쓰는 비인격적인모습에서 자질문제가 나오면서 제비뽑기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많은 목회자님께서도 지역선거로 자질을 검정하고 최종 결정을 제비뽑기로 하자는 의견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합니다. 1/22 04:54
119.xxx.141
별똥별 목사님 감사해요. ^^
제비뽑기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전 교인을 상대로 해야 한다 생각하기에 자질 미달인 사람이 뽑힐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주님께서는 외모나 세상 지식 그런 것, 보는 분 아니시고 사람의 속 중심을 살피는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일개 목동이였던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주님,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선출이 되면 좋은 것이죠.그런데, 사람들의 안목은 그게 아니구요. 결국 왕권도 세습을 하게 된 것 같구요.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으니까 아무 말씀 없으시죠. 사람들이 투표도 정도로만 행하면 문제될 것 하나 없는데, 타락한 심성이,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목사님? 그리고 요한님 혹은 다른 독자님들의 고견도 듣고 싶네요^^
1/24 21:36
66.xxx.59
별똥별
2010-01-21 20:13
66.xxx.59
《Re》요한 님 ,
(신약에는 사도를 세우는 일에 제비뽑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비뽑기를 미신적(말씀뽑기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복음 즉 내 생각으로 성경을 재단하는 반성경적인 사고입니다.)
요한님께서 다시 한 번 잘 읽어보십시오.
저는 제비뽑기 그 자체를 반대한 적 없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분, 성령의열매님이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제가 쓴 댓글과 칼럼 글을 읽고 회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점 오해없기를 바라고요...^^
님의 교회의 예는 가장 최악의 예이며, 가슴 아픈 예이기도 하네요.
(선뜻 동의가 되시지 않는다면 천천히 연구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
저야말로, 요한님께서 저의 본 글과 답글들을 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저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 뽑기는 제외) 제비뽑기를 반대한 적 없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아래 성령의열매님께 드린 제 답변을 여기에다 올려놓습니다.(처음 들어오시는 분들, 시간 없어 아래까지 내려가기 힘든 분들에게 혼란을 줄일 수 있도록...^^
(예, 성령의열매님의 말씀도 옳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지난 해,
제 2여선교회에서 회장단을 제비뽑기 한 적 있습니다.
그때,
그 뽑아진 인물들이 놀랍게도,
우리 교회에 그때 그 당시 꼭
필요한 인재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랐지요....^^
그리고,
올해는 다시 투표를 해서 새로운 임원진을
선출했습니다...지난 번에 회장된 사람이
재임을 해주기를 회원들이 모두 원해서이지요.
아무튼지,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항상 아름다운 성품이 돋보이는 성령의열매님이
열심히 기도해 주시고 참여해 주시니...
큰 힘을 얻습니다.
저도 님을 위해 기도해 드림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
별똥별
2010-01-21 13:10
66.xxx.59
《Re》요한 님 ,
요한님의 뜨거운 열정과 관심, 참여에 감사드립니다. ^^
저도 다시 그 문제를 두고 기도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주께서 응답 주신 것은...
역시,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깨달음입니다.
제비뽑기를 하건, 투표를 하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행하는 그곳에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절대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절대주권 +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이죠.
우리나라 격언에 "민심이 천심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로봇으로 만드시지 않은 주께서
우리들이 기도로 행하되 우리들의 자율적인 모임 속에
그분을 인정해 드리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도자를 세우는데, 꼭 제비뽑기 여야 한다는 법 없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도, 땅을 분배할 때,
제비뽑기를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기에
그들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로 부름 받고 선택된 제사장 직분 중
작은 임무를 맡길 때, 제비뽑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큰 직임을 맡길 때는 주께서 친히
불러서 세우셨지 제비뽑기를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9장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을 선택할 때, 제비뽑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제2대 왕, 다윗도 제비뽑기로 세우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제3대 왕 솔로몬은 인간의 역사대로,
왕권은 세습되어졌습니다.
언뜻 보면, 사람의 방법이었다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주께서
그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곧, 어떤 직분에는 그 직분에 걸맞은 자질과 성품
그리고 여건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또 사도행전 1:26절에 보면, 배신자, 가룟 유다 대신, 제자를
선출할 때는 제자들의 안목으로 자질을 갖춘 자라고 생각되는
두 사람을 먼저 세운 후, 제비뽑기를 해서 '맛디아'를 얻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건대,
제비뽑기만이 정석이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라고 좁혀 생각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먹거나 마시거나 그분 안에서,
행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구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라면,
모두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사용한다 하여,
그 자유를 남용하지만 않는다면, 주께서 책망치
않을 것입니다!!!
고로
투표를 하던,
제비뽑기를 하던, 주께서 허락하신,
개 교회의 형편대로 순종하며 행하시면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해가 잘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령의열매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전 요한님과는 반대로 제비뽑는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기 보다 미신적인 느낌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사모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제 생각이 틀렸다는것도 알았구요.
제비뽑기 하자고 하신 그 분을 잠시나마 판단한것도 죄송하구요.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주님께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겠어요.
1/21 14:36
173.xxx.2
별똥별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주님께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겠어요.)
예, 성령의열매님,
그것이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첫 걸음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한 일이 아니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1/21 14:52
66.xx
Thetrue
2010-01-21 07:30
152.xxx.131
"주님의 영(Holy Spirit)을 마음속에 모신 성도들이,"이것은 성경적이다,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너무 따지거나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우리는 이미 자유자들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절 말씀)."
I think this should be the conclusion of this discussion and it says it all.
On the other side, I have strong feeling for the need to pray for the author of the article in debate here (anarchism of the faithful).
별똥별 진실 형제님...
오늘도 참여를 해 주셨고, 동의해 주셔서
감사해요...^^
님의 기도와 관심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님의 그 맑은 영혼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죠.
예, 이 토론의 원인 제공자라 할 수 있는
그 칼럼니스트님을 위해 기도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신다는 진실 형제님의 제안에 동의하며,
저 역시 그분을 위해 기도해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1/21 17:03
별똥별
2010-01-21 01:06
66.xxx.59
《Re》성령의열매 님 ,
그리고 요한님...
본 글에서 설명드린 대로
제비뽑기 그 자체가 잘못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logos)을 신년에, 혹은
평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씀을 점치는 식으로 제비뽑거나
점치는 식으로 한 구절, 혹은 몇 구절이건, 좋은 말씀을
뽑아 내어, 올해, 혹은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구약 66권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겸허한 마음으로 그 말씀 그대로 정독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한 순간, 그 말씀 중 한 구절,
혹은 몇 구절이, 뜨거운 감동과 함께
내게 부닥쳐 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그 사람 개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기도 하시는 (요 14:26절 참조) 것이며, 이런 경우를 가르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요 10:27 절 참조)라고 하는
말씀이 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영적 지도자에게 의존하여,
그 사람이 기도해서 뽑아 놓은 말씀이라
더욱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으면
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인제사장'이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말씀을 읽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비뽑기식으로 받는 것은
성경적이지를 않습니다만....
그 외에,
회장 선출을 하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성도는 제비뽑기를 하던, 투표를 하던 그런 방법론에
너무 구애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자유자들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절 말씀)."
주님의 영(Holy Spirit)을 마음속에 모신 성도들이,
"이것은 성경적이다,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너무 따지거나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저런 율법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사람을 외식하는 자,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보다는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는다고 하는 신앙고백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선거를 하는 것도, 투표를 하는 것도
제비를 뽑는 것도, 모두 인간이 경영하는 것 같으나
그 결과는 주께서 허락하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 16: 1)."
이 말씀을 꼭 제비뽑기에만 국한 시키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들 속에서
'주님의 주권을'인정하라는 것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기억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
성령의열매 그렇군요! 전 어느정도 본인의 의견도 존중하는것이 좋다고
생각을 해서 제비뽑는다는것이 달갑지 않았어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했다기 보다 직위를 받는 분의
충성심과 열정을 생각해 보았구요.
모두 함께 몇칠간 기도하고 나서 만장일치로 회장을 뽑았어요.
음~ 제 생각이 짧아서 율법에 얽매이고 싶지않구요.
저 또한 주님안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1/21 04:16
72.xxx.211
별똥별 예, 성령의열매님의 말씀도 옳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지난 해,
제 2여선교회에서 회장단을 제비뽑기 한 적 있습니다.
그때,
그 뽑아진 인물들이 놀랍게도,
우리 교회에 그때 그 당시 꼭
필요한 인재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랐지요....^^
그리고,
올해는 다시 투표를 해서 새로운 임원진을
선출했습니다...지난 번에 회장된 사람이
재임을 해주기를 회원들이 모두 원해서이지요.
아무튼지,
너무 얽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항상 아름다운 성품이 돋보이는 성령의열매님이
열심히 기도해 주시고 참여해 주시니...
큰 힘을 얻습니다.
저도 님을 위해 기도해 드림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 1/21 13:58
66
서재생
2010-01-19 22:21
119.xxx.141
사모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공감합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한국 초대 교회에 없었던 성구 뽑기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직도 이 땅에는 소위 신년 신수 보는 “토정비결” 신년 운수 점술 영향에서 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점복문화가 아직도 한국교회와 기독교 가정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모님!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한국교회가 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목회자에게 각성이 필요하고요. 둘째는 기독 출판업계 기업인들의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여러 출판사들의 성구 뽑기 상품광고지가 수없이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꼭 신년에 삼재부적, 축원부적 등 을 인쇄하여 사찰에 역술원에 무당집에 구입하라고 보내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사모님의 깊은 영적 통찰력 있는 선지자적인 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누지문서 저도 서재생목사님의 댓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1/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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