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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영존(永存)하시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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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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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용어에 존재(存在, being)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이라고 나온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비존재자)’도 어떤 뜻에서는 존재자의 일종이라고 한다. 그 말뜻과는 별개(別個)의 문제지만, 필자의 생각에 지금 있는 것은 무엇이든 미래에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더 나은 모습일 수도 있고 더 못한 모습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죽은 후에도 미지의 어떤 양상으로든 존재는 존속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 있다(존재)는 것이 어느 한순간 영과 육의 분리(죽음)로 인해,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사라진다고 하여도 그 자체가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인간의 영(spirit)은 불멸한다고(전 12:7하 참조) 말씀하고 있고, 다른 사물도 천국 혹은 지옥에서 존재할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해 주셨음을 보아 확증할 수 있다. ( 마 26:29절 참조)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도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 전 1:9-10절 말씀).”

우리가 늘 새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새해라기보다는 또 다른 한해의 시작일 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같은 하루고 내일도 같은 하루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숫자를 부여하여 셈을 하고 무언가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는 건 만물 중, 오직 인간뿐이다. 끝이면 다시 시작하고 시작은 또 다른 끝을 기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1916년 이후 상대성이론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확장시킨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성이론에서 공간과 시간을 합쳐 단일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인슈타인’ 이전의 사람들은 공간과 시간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시공(時空)은 단일개념임을 우리에게 이미 말씀해 주셨다는 것이다. 역시, 우리 주님은 시공(時空)을 초월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대목이 아니고 무엇이랴.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눅 20:38절 말씀).”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만 영존(永存)하시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은 바 된 우리 인간도 영존(永存)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영원으로 영존(永存)하시지만, 우리 인간은 시작한 날이 있고 그 시작한 날부터, 영존(永存)한다는 차이가 분명히 있음을 밝혀둔다.)

잠시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고, 인간이 생각하는 죽음이란 것도 결국, 주님의 눈앞에서는, 영혼과 육체가 잠시 분리된 상태일 뿐, 모두 살아 있는 자들이란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살아 있다….이 얼마나 멋진 하나님의 말씀인가? 그러니까, 우리의 눈높이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새해란 새것이 아니라,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어느 한 간점선(間點線),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생각을 가져야 더 멀리, 더 높이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차원의 세계, 하나님의 계획 하심마저 바라볼 수 있는 시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헛된 행복을 잡으려는 인간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 8절 말씀).” 이 고백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가? 세계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누린 대왕 솔로몬이다! 그는 글자 그대로 부. 귀. 영화를 다 누린 사람이다.“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다섯이며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했다고 했다. 현대판 학위로 치면, 그는 문학 박사, 정치학 박사, 철학 박사, 종교학 박사, 식물학 박사, 생물학 박사, 광물학 박사…등등… 재물 또한 엄청났고, 모든 남성의 꿈인 (나의 의견이 아닌, 통속적인 관념) 아름다운 여인들, 왕후가 육십, 후비가 칠백, 비빈이 팔십, 빈장이 삼백인, 그 외에도 무수한 시녀들( 왕상 11:3절, 아 6:8절 참조) 이런 그였으니, 인간으로서 무엇을 더 소원하며 무엇을 더 소유할 수 있겠는가?

그런 그가 내린 결론은,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될 뿐이다.” 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이생에서 바라고 소원하는 그 모든 것들은 헛되기가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고, 사막의 신기루요, 무지개를 좇는 것과 같다고 하는 데는 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사막의 신기루란 어떤 것인가? 신기루란, 광학(光學)에서, 빛의 밀도가 서로 다른 공기층에서 굴절함으로써 멀리 있는 물체가 거짓으로 보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우리 인간에게 이런 거짓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창세기로 되돌아가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창 3장 참조). 저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그 대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였기 때문이다. (요 3:36절 참조) 결국,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인 인생, 저주받은 인생이 저주받은 땅 위에서 행복을 잡으려고 달음박질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헛된 것으로서, 우리의 병든 안목, 굴절된 안목으로 보이는 무지개 같고, 사막에서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을 뿐이다. 행복을 좇아가지만, 안타깝게도 행복은 점점 더 멀리 달아나고 목마르고 지친 인생, 결국은 파멸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죄지은 인간이 가야 할 the last destination이요, 숙명이다.

행복한 당신: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해 질 수 없는가? 새해에 우리가 지녀야 할 최대의 목표, 진정한 행복을 소유하는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가? 앞에서 잠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행복을 잃어버렸고 대신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였던 사람들이다. 그 속박된 굴레를 벗어던지고 병든 영혼과 육신을 회복시키기 전에는 결코 진정한 행복이란 없다. 먼저 인간 본질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말씀을 통해서 살펴본 필자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셨고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다. 죄 없으신 하나님이 죄인 대신 죽어주셨기에 그 피는 효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는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굴절되고 어그러진 신분, 죄인 되었던 신분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너무 간단해서 사람들이 오히려 믿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불변하는 진리다.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다. 수학도 아무리 간단한 공식이라 해도 그 공식을 무시하면 안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엔 자신의 환경과 삶의 조건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가난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불행하게 사는 부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몸이 건강하지 않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 중에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불행의 원인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행복의 조건이다.

죄가 빼앗아가 버린, 하나님이 주셨던 좋은 선물을 되찾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안에서만 인간 본질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 그분이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만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니라 죄가 가져다주었던 모든 불행으로부터도 구원해 주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은 그 순간부터 영원까지 행복한 사람이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가 가져다준 본성과 죄가 만들어 놓은 환경과 죄가 준 삶의 무게 때문에 불행하게 살았지만, 예수를 믿고 나서는 다르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불행의 조건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환경에 지배되어 불행하게 살던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더는 환경에 눌려 살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불행을 이기면서 환경을 지배하며 살게 된다.

결론적으로,
존재(being)는 그 자체가 육신이 죽은 후에도 영(spirit)으로서 존재하며 그 영(spirit)이 갈 곳은, 천국이든 지옥이든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결정지어진다. 천국 백성도 영원하고, 지옥 백성 또한 그 영과 육이 부활한 후에는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불 못에 던지우되 영원히 후회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계 19:20 절 참조).

해마다 새해가 되면, 계획이라는 명분 아래 이것저것 높이 쌓아 올리던 공중누각, 제대로 한 번 성취한 적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어리석은 짓에 시간과 마음 빼앗기지 말자. 새해라고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근본이 바뀌어야 한다. 차라리, 인간이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는가? 제대로 된 고민을 한 번 해볼 필요가 있고, 구원의 기초부터 확실하게 다져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간 본질이 변화되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무엇을 가지지 못해 불행하다는 낮은 생각에서,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뀐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한 점 후회 없는 멋진 인생을 남기게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 절망뿐인 인생,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인 인생에게 이 영원한 행복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보석보다 값진 인생이 될 것이다. 내가 먼저,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전하는 일, 그 일만이 헛되지 않은 일, 영존(永存)하는 당신의 존재(存在)가 영원토록 빛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최상급의 멋진 일이 될 것이다.

고로, 행복한 당신, 그대는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한 사람이다. 이 새해에는 찰라적이며 헛된 이 땅 위의 것, 육신의 것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영원(永存)의 세계, 영존(永存)하는 당신을 위해서도 투자를 좀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3-14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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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생 

2010-01-05 03:44
 119.xxx.240
 사모님!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새해란 새것이 아니라,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어느 한 간점선(間點線),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생각을 가져야 더 멀리, 더 높이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차원의 세계, 하나님의 계획 하심마저 바라볼 수 있는 시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동감합니다.

사모님!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에게서 세시풍속(歲時風俗)은 반듯이 극복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 합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전멸하라고 엄격하게 명령하셨습니다. 나아가 그들의 관습과 풍속을 따르지 말 것을 거듭 천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무심코 세시풍속을 수용하다보면 어느새 사상까지도 믿게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모님! 매년 반복 전승되는 세시풍속에서 새해를  지키는 이유는 일 년간 재액 초복하여 풍요와 건강을 획득하고자 함에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면서 무속적인 세시풍속을 타파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가 무속적인 세시풍속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모님! 좋은 글 계속 기대 합니다.


누지문서 
2010-01-04 10:10
 69.xxx.198
 고로, 행복한 당신, 그대는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한 사람이다. 이 새해에는 찰라적이며 헛된 이 땅 위의 것, 육신의 것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영원(永存)의 세계, 영존(永存)하는 당신을 위해서도 투자를 좀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_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새해에도 게속 복음적인 글들을 보고 싶습니다.


아침이슬 
2010-01-02 03:12
 75.xxx.193
 저의 옛 모습을 드려다 보는 심정으로
 별똥별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  썩어가는 옛 구습을 좇는
 옛 모습들이랑…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시어
 주의 거룩하심을 따라 …  거룩한 자리에
 이 못난이도 거할 수만 있다면 그 보다
 큰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가는 구습을 쫏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엡4: 22-24)

저의 옛 모습을 변화 시키신 많~~은 말씀 중에…
이 말씀을 되새기며…  육적인 모든 욕망을
 조금씩 버리게 하여 주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연약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어느 곳 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하답니다^^* ^^*
이 행복을 알기까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새해엔 더욱 주님 닮아가는 믿음 ,
저의 모습이 되고 싶은 소원 기도 올렸답니다
.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주시는 별똥별님의 글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의열매 

2009-12-31 05:00
 72.xxx.211
 사모님!
다시 한번 저의 마음을 다짐 할 수 있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전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번 해에는 주님께 저의 온 마음을 드리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나의 가정과 사업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한분으로 행복한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기를 소원합니다.
사모님! 저는 그래도 새해라는 말이 좋습니다.
다시 한번 소망을 갖고 도전하는 전환점이 되거든요.

저의 본분을 명심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루 하루를
 살겠습니다. ^^*
감사드려요!


초생달 

2009-12-31 04:09
 222.xxx.169
 누구나 해가바뀌어가는 1월1일전날이면 지나온날을 뒤돌아보듯이 나도 역시 31일 눈덮인 낮은산넘으로 지는해를바라보면서 생각에잠기려는찬라
 별똥별님의 새글을..부끄러운 이 초생달역시 먹을것 풍족하게 입을것 가고싶은곳은 마음데로 하면서도 항상 하나님에게 두손을벌리면서 더달라고 졸으면서 지나온 내행동이너무도 부끄럽습니다,두손을 털면서 하늘을 우러러쳐다보면서이세상의시간은잠깐이면지나고나면 내 영은 하나님옆으로가는 그 순간의 행복이 나의행복이라는 별똥별님의 행복론에힘입어 그냥 욕심이라는 두글자는살아지고 즐거워지네요,예수님을 내 구주로뫼시면서 더 성숙한신앙생활로서 거듭난 성도로서의 참 행복을 가슴에 안겠습니다,
내 생의 최고의 복음으로 2010년을 마지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쉬지않고 전달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부군이신 목사님 그리고 별똥벼님 몸 건강하시고 참 행복을 지니시기를 기도하면서 고맙습니다,부족란 저의 생각을 이해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마음은 가득하나 표현력이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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