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와 바알 중 누가 하나님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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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6-07-1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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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대표적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거기에 모인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촉구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바알은 명백한 우상이고 여호와는 참신이신데 선지자가 이 둘을 대비하여 둘 중 누가 하나님이냐고 질문한 것 자체가 우리에게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질문이 가능한 것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는 전제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들처럼 바알을 명백한 우상이라고 알고 있었다면 이런 질문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바알은 우상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은 곧 하나님 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들의 하나님 신앙의 이러한 면을 놓치면 안 됩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450명의 갈멜산 대결은 너무 유명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내용이 마치 동화나 신화와 같아서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3년이나 가뭄이 계속되어 국가적으로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은 그가 섬기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기우제를 지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엘리야대로 비 오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는데, 엘리야는 비가 올 것을 미리 내다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 사이에서 번개가 쳤고, 그것이 엘리야의 제단에 명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을 성경 기자가 지금의 본문처럼 편집하여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과 해석은 설명과 해석 자체가 오히려 신화나 동화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솔로몬 때까지만 통일 왕국이었고 그 이후에는 남북이 갈라져서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남쪽은 유다이고 북쪽은 이스라엘인데, 남북이 갈릴 때 수적으로는 북 이스라엘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남쪽에 속하고 나머지 10지파는 북 이스라엘에 속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남 유다가 이스라엘 역사의 정통성을 이어 간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다윗 왕조에 뿌리를 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왕조가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남 유다는 왕조를 이어갔지만 북 이스라엘은 여러 번에 걸쳐서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왕권의 정통성이 취약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맥락은 성경이 이스라엘과 인류의 구속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일반 역사로 생각하면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보다 부강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여로보암인데, 5대 왕인 시므리 이후 이스라엘은 두 파로 갈려 내전상황에 처합니다. 왕상 16:21절 이하에 따르면 반은 디브나 장군을 따랐고, 반은 오므리 장군을 따랐는데, 오므리가 이겨서 새 왕이 되었습니다. 이 때가 주전 9세기입니다. 오므리는 북 이스라엘을 강력한 나라로 만든 능력 있는 왕이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이 그 유명한 아합입니다.
갈멜산 대결은 아합 왕 때 일어난 일입니다. 아합도 그의 아버지 오므리를 닮아 능력 있는 왕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왕이었다는 것은 그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아합이 건설한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명성을 떨칠 정도로 품격 높은 문명 도시였습니다. 아합 치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다른 나라 못지않게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당시 주변 나라들은 북 이스라엘의 부강을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합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이라고 평가 합니다(왕상 16:29). 아합이 행한 구체적 악행은 이방 나라의 공주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을 하나님으로 삼았으며,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했고, 아세라 상도 만들었습니다(왕상 16:29-33).
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일반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면 부강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면에 대해서는 일체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부강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부강하게 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짓을 하면서도 부강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므리와 아합 왕 때 북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성경은 아합의 통치 때 이스라엘이 추구한 것이 하나님을 노하시게 한 것임을 지적합니다. 왕상 16장에서 북 이스라엘의 죄를 열거하다가 마지막에 여호수아가 말한 대로 여리고 성을 건축하다가 장자와 막내를 잃은 히람 사람 히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 이스라엘 나라가 정치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부강한 나라이지만 하나님께서 무너뜨릴 나라로 세워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입니다.
아합은 엘리야 선지자의 이 같은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정치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들었고 종교적으로도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애를 썼습니다. 전통적으로 남북이 갈라지기 전에 모든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갈라진 다음에도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예루살렘으로 제사 드리러 간다면 국민 통합이 어려울 뿐 아니라 종교적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여 사마리아에 예루살렘성전보다 더 웅장한 성전을 세웠습니다. 아합은 정치적 종교적 국민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갈멜산 대결 상황에서 추측해 보면 엘리야의 주장에 동의하여 아합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아합의 폭력과 독재가 두려워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나봇 같이 피해를 당하는 국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심정적으로 아합의 정책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합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전쟁도 아니고 경제 위기도 아니고 왕의 리더십의 부족도 아니었습니다. 엘리야의 강력한 저항이 성가신 것이었습니다. 구약을 대표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선지자 엘리야가 사사건건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의 종교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못마땅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이와 같은 활동 때문에 아합과 이세벨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추방하거나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고대 어느 나라에서든지 왕의 권한에 도전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카리스마가 아무리 대단해도 아합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백성들조차 아합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엘리야를 비난하였습니다. 국민은 언제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합니다. 아합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기 때문에 바알숭배를 별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알 숭배를 정당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겨서 이만큼 부강하게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노 운운하는 것은 엘리야만 이상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참 선지자는 언제나 이런 상황에 직면합니다. 정부와 백성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까지 모두 엘리야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엘리야는 싸워봐야 승산이 없는 싸움에 지쳐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승산 없는 지루한 싸움에 지쳐 있을 때 기회가 왔습니다. 북 이스라엘에 3년이나 긴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왕이라고 하더라도 가뭄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가뭄이 바알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자 심판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합으로서는 엘리야가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국민 결속과 통합을 이루는데 기여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합과 그를 지지하는 모든 국민이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아합은 엘리야 지명수배를 내렸습니다. 잡히기만 하면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야는 위험을 감수하고 아합을 찾아가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가 각각 제단을 쌓아 바알과 여호와 중 누가 참 하나님인지 확인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아합은 엘리야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당장 죽일 수도 있지만 죽이지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바알을 믿는 믿음이 나름 견고했음을 말해줍니다. 바알 선지자는 450명이나 되는데 엘리야는 혼자였습니다. 대결의 결과는 엘리야가 이겼습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이겼다는 사실에만 고무되어 그 다음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 대결에서 엘리야가 이겼고 비가 내려 가뭄도 해소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엘리야가 대결 전보다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속상하고 낙심이 되었으면 사람이 없는 광야로 나가 로뎀나무 아래서 누워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갈멜산 대결에서는 엘리야가 이겼고 이긴 후에는 엘리야가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그 대결 과정을 지켜본 백성들의 반응에서 나타납니다. 엘리야의 제단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바짝 말리는 광경을 지켜 본 백성들이 엎드려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하고 두 번이나 외쳤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바알 그는 하나님이 아니다”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바알을 우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 이러한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바알은 자본주의 가치일 수 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바알이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450명의 갈멜산 대결은 너무 유명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내용이 마치 동화나 신화와 같아서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3년이나 가뭄이 계속되어 국가적으로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은 그가 섬기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기우제를 지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엘리야대로 비 오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는데, 엘리야는 비가 올 것을 미리 내다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 사이에서 번개가 쳤고, 그것이 엘리야의 제단에 명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을 성경 기자가 지금의 본문처럼 편집하여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과 해석은 설명과 해석 자체가 오히려 신화나 동화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솔로몬 때까지만 통일 왕국이었고 그 이후에는 남북이 갈라져서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남쪽은 유다이고 북쪽은 이스라엘인데, 남북이 갈릴 때 수적으로는 북 이스라엘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남쪽에 속하고 나머지 10지파는 북 이스라엘에 속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남 유다가 이스라엘 역사의 정통성을 이어 간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다윗 왕조에 뿌리를 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왕조가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남 유다는 왕조를 이어갔지만 북 이스라엘은 여러 번에 걸쳐서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왕권의 정통성이 취약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맥락은 성경이 이스라엘과 인류의 구속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일반 역사로 생각하면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보다 부강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여로보암인데, 5대 왕인 시므리 이후 이스라엘은 두 파로 갈려 내전상황에 처합니다. 왕상 16:21절 이하에 따르면 반은 디브나 장군을 따랐고, 반은 오므리 장군을 따랐는데, 오므리가 이겨서 새 왕이 되었습니다. 이 때가 주전 9세기입니다. 오므리는 북 이스라엘을 강력한 나라로 만든 능력 있는 왕이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이 그 유명한 아합입니다.
갈멜산 대결은 아합 왕 때 일어난 일입니다. 아합도 그의 아버지 오므리를 닮아 능력 있는 왕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왕이었다는 것은 그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아합이 건설한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명성을 떨칠 정도로 품격 높은 문명 도시였습니다. 아합 치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다른 나라 못지않게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당시 주변 나라들은 북 이스라엘의 부강을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합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이라고 평가 합니다(왕상 16:29). 아합이 행한 구체적 악행은 이방 나라의 공주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을 하나님으로 삼았으며,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했고, 아세라 상도 만들었습니다(왕상 16:29-33).
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일반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면 부강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면에 대해서는 일체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부강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부강하게 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짓을 하면서도 부강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므리와 아합 왕 때 북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성경은 아합의 통치 때 이스라엘이 추구한 것이 하나님을 노하시게 한 것임을 지적합니다. 왕상 16장에서 북 이스라엘의 죄를 열거하다가 마지막에 여호수아가 말한 대로 여리고 성을 건축하다가 장자와 막내를 잃은 히람 사람 히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 이스라엘 나라가 정치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부강한 나라이지만 하나님께서 무너뜨릴 나라로 세워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입니다.
아합은 엘리야 선지자의 이 같은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정치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들었고 종교적으로도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애를 썼습니다. 전통적으로 남북이 갈라지기 전에 모든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갈라진 다음에도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예루살렘으로 제사 드리러 간다면 국민 통합이 어려울 뿐 아니라 종교적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여 사마리아에 예루살렘성전보다 더 웅장한 성전을 세웠습니다. 아합은 정치적 종교적 국민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갈멜산 대결 상황에서 추측해 보면 엘리야의 주장에 동의하여 아합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아합의 폭력과 독재가 두려워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나봇 같이 피해를 당하는 국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심정적으로 아합의 정책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합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전쟁도 아니고 경제 위기도 아니고 왕의 리더십의 부족도 아니었습니다. 엘리야의 강력한 저항이 성가신 것이었습니다. 구약을 대표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선지자 엘리야가 사사건건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의 종교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못마땅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이와 같은 활동 때문에 아합과 이세벨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추방하거나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고대 어느 나라에서든지 왕의 권한에 도전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카리스마가 아무리 대단해도 아합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백성들조차 아합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엘리야를 비난하였습니다. 국민은 언제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합니다. 아합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기 때문에 바알숭배를 별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알 숭배를 정당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겨서 이만큼 부강하게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노 운운하는 것은 엘리야만 이상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참 선지자는 언제나 이런 상황에 직면합니다. 정부와 백성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까지 모두 엘리야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엘리야는 싸워봐야 승산이 없는 싸움에 지쳐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승산 없는 지루한 싸움에 지쳐 있을 때 기회가 왔습니다. 북 이스라엘에 3년이나 긴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왕이라고 하더라도 가뭄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가뭄이 바알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자 심판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합으로서는 엘리야가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국민 결속과 통합을 이루는데 기여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합과 그를 지지하는 모든 국민이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아합은 엘리야 지명수배를 내렸습니다. 잡히기만 하면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야는 위험을 감수하고 아합을 찾아가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가 각각 제단을 쌓아 바알과 여호와 중 누가 참 하나님인지 확인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아합은 엘리야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당장 죽일 수도 있지만 죽이지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바알을 믿는 믿음이 나름 견고했음을 말해줍니다. 바알 선지자는 450명이나 되는데 엘리야는 혼자였습니다. 대결의 결과는 엘리야가 이겼습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이겼다는 사실에만 고무되어 그 다음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 대결에서 엘리야가 이겼고 비가 내려 가뭄도 해소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엘리야가 대결 전보다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속상하고 낙심이 되었으면 사람이 없는 광야로 나가 로뎀나무 아래서 누워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갈멜산 대결에서는 엘리야가 이겼고 이긴 후에는 엘리야가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그 대결 과정을 지켜본 백성들의 반응에서 나타납니다. 엘리야의 제단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바짝 말리는 광경을 지켜 본 백성들이 엎드려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하고 두 번이나 외쳤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바알 그는 하나님이 아니다”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바알을 우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 이러한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바알은 자본주의 가치일 수 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바알이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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