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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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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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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백과는 욕망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욕망(欲望)은 생물이 어떠한 혜택을 누리고자 하는 감정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느낌이 강하다. 시민 윤리에서는 적절한 정도의 욕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과도한 욕망은 주변인에게 피해를 입히며, 자신 또한 망친다" 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욕망이라는 단어를 떠오를 때면 우리는 흔히 1947년에 테너시 윌리암스가 쓴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연상하게 된다. 그 작품이 2011년의 오늘에도 우리들의 마음을 휘잡는 것은 세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각기 다른 욕망과 숨겨진 이중성을 잘 묘사하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평은 과히 억측이 아닌 것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이 사는 곳은 욕망이 존재하며 그러한 개개인의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적인 갈등에서 우리 모두는 공감을 하기 마련이리라.
 
새해의 새 마음을 다시 잡으려는 사이도 없이 터진 한국의 소망 교회 목회자 폭행 사건은 그 동안의 한국 내외의 여타 교회 문제에서의 변질된 목회자들로 인한 사건들이 점차 도를 더해 가고 있으며 그 추락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모르는 것을 깨달을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연상케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일게다. 문제는 그 전차의 브레이크를 제어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초기의 목회자들은 현재의 목회자들과 그 차원이 달랐다. 당시 평양 신학을 나오셨던 필자의 조부께서도 목회자가 귀하던 그 시절에 자전거를 타고 황해도의 7,8군데 교회를 다니시며 예배를 인도하셨으며 사례비는 커녕 성미 얼마가 그 댓가의 전부였다. 그 당시의 부흥회 강사들 역시 농어촌과 산간 지역의 작은 교회를 마다하고 사례비없는 복음 전도에 열정적인 기억을 우리 모두는 갖고 있지 않은가 ?
 
이미 30년전에 교계가 이리 퇴락할 것을 예견하신 한완상 장로님의 지도자에 대한 일갈을 소개한다.

"지도자가 될 사람은 동시대 민중들의 생각과 판단에 민감해야 한다. 이는 민중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민심이 천심이 되는 경우 천심을 어기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된다. 지도자는 여론과 민의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의 심판이다. 그러나 역사의 심판도 잘못될 경우가 있다. 역사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진리의 심판이다. 역사도 잘못 판단할수 있다. 그러기에 진리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나의 말 , 나의 행동이 후일에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국내외 그 어디나 교회 문제의 중심에는 목회자들이 자리잡고 있고 그 도가 지나침은 상상을 불허한다. 그들은 역사도,진리도 무시한체 자신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끝없는 나락으로 계속 나갈 뿐이다. 그들은 거룩한 교회의 강단을 세속적 가치와 타협시켜서 "세속적인 복"을 강조하며 오로지 "잘먹고 잘살자"라는 기복신앙만을 추구하는데 전력을 추구한다. 그 결과로 은혜받기 위해 헌금을 많이 내고 잘 먹고 잘 살라는 외침은 세례요한의 "회개하라"는 외침을 대신한지 오래이다.
 
생각해보라.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것 보다 어렵다 " "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등등의 설교를 들어본지가 그 언젠가 ?
 
이 영적 혼란의 와중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 우리를 혼미시키는 저들의 저의를 깨달을수 있어야 하며 축복이라는 미명하에 교회 성장으로만 밀어 부치는 교묘함에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삶속에서 실천하며 진리를 드러내는 작업을 쉬지 말어야 한다. 특히나 신사도와 같은 고도의 수법을 지닌 이단들을 판단할수 있으며 그들의 영적 욕심을 부추키는 수법에 이길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신자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깨닫는것 역시 중요하다. 왜냐하면 초기의 깨끗하던 목회자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교회 성장이라는 욕망의 전차를 타고 다른 길로 달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전차에 브레이크가 작동이 안됨을 깨닫는 한국의 사건을 어제 보도에서 읽게 됐다.
 
서울 관악구 봉천교회는 2010년 12월 27일 장로 22명 중 13명에게 출교 및 면직 등 무더기 권징을 내렸다. 박모 담임목사의 은퇴를 불과 4일 앞두고 내린 징계였다. 교회 측은 장로 13인이 당회 내에 사조직을 만들어 교회를 분란케 했기 때문에 권징을 내렸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장로 13인은 법적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자의적인 권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곳에서 장로 권징에 대한 시비를 가르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이미 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은퇴하는 박모 목사가 후임을 결정하지도 않고 스스로 교회 강단위에 내걸은 현수막의 내용이 필자를 놀라게 했다.
 
"원로 목사 추대및 항존직 은퇴식" 교회 개척후 44년 동안 시무하였던 박모 목사에게 원로 목사의 추대는 누가 보아도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이 은퇴하며 (이미 한번은 은퇴 날자를 번복했다고 함) 후임을 결정도 않고 이를 지적하는 장로들을 은퇴 4일전에 무더기로 징계하면서도 자신만의 은퇴식과 그 원로목사의 위치가 항존직이라고 못 박는 것은 아무리 백보 양보하고 생각해도 상상을 불허하는 새로운 사건이다.
 
과연, 과연 이 목회자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그 끝이 어디이며 누가 이 전차의 브레이크를 걸수 있을지 아멘넷 논객들의 지혜를 다시 한번 기다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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