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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여기 계시다"

페이지 정보

허경조2011-01-30

본문

권위가 무너지는 탈권위의 세상이다.
이전에 권위로 상징하던 모습들이 주던 영향이 퇴색하는 시대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일방적인 지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요지음이다.

그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 체험에 더 의지하며 생각을 결정한다.
이런 제 4의 물결로 인하여 가정과 사회와 학교 , 그리고 군대에서 조차도
이전에 권위의 상징들은 그 권위를 감추고 소통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생존을 꾀하는 요지음이 아닌가?

그 거대한 물결을 주도하는 시스템이 바로 인터넷이다.
이전에 권위 세력들은 정보를 독점하며 
여론을 자신의 입맛에 길들이며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입소문이 돌아 민심이 천심으로 변하는 모든 길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책상위에 앉아야만 가능했던 인터넷이 모든 사람의 손에
smart phone 으로 들려지고 게다가 face book , twitter ,text message 등으로
연결되어 세계가 내손에 들려지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이 변화에 "눈가리고 아웅"하는 세계가 있으니
바로 한국과 그리고 세계 어느 곳이건 한국계 이민자들이 세우는 교회이다.

최근에 만난 지인을 통해 가장 구체적인 "눈가리고 아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아멘넷(www.usaamen.net)을
들어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멘넷에 목회자를 비방하는 기사와 컬럼이 많이 있어 
은혜를 잃게 된다는 "눈가리고 아웅"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진실에 눈감으라는

이런 전근대적인 우스꽝스런 사고방식에
필자는 그저 쓴웃음만 짓고 말았으나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런 유사한 "눈가리고 아웅"은
한인 교계에 아직도 널려있는 현실이다.

지금 이 세상이, 그리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떤 영향을 입고, 어떤 결정을 하는지는
알려고도 않고 , 아니 알어도 "눈가리고 아웅"하며 자신의 철밥통만 챙기는 목회자는
왜 그리도 많은지 답답한 심정은 필자만의 오해인지 의심스럽다.

한심하게 변화를 거부하며 "아 ~ 옛날이여"를 주장하는,

그리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목회자들이
존재하는한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모습과는

다른 교회의 모습을 원하기에 교계가 뒤숭숭한
요즈음이 아닌가 ?

이 세대는 더 이상 강대상에서 목회자가 외치는 소리에 변화받는 세대가 아니다.
그대신에 탈권위의 전형적인 흐름과 같은 신사도 운동등이 힘을 얻는 세상이다.

신사도 운동의 모습을 정이철 목사는 이렇게 기술한다.
"성경을 중시하지 않고 교리를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들리는 대로,

나타나는 대로, 경험되어 지는 대로 받고 따르고 수용하는

신사도운동의 근본적인 고질병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성경보다는 경험을 더 중시하고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빈야드 운동의 존 윔버로부터

그 계열의 모든 사람들에게 흐르는 공통적인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
지금은 바로 신유,치유의 기적을 진리인양

따르는 세대이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런 답답한 마음의 해결을 위하여 늘 그렇듯이 말씀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우리가 너무도 익숙한 창세기의 야곱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창 28 ; 11- 13) "
만약 이 꿈이 요즘의 소위 신사도파들에게 나타났다면 어떤 반응일까?
즉시 꿈 , 비젼 , 직통 계시 운운 할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

그런데 야곱의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창 28;16,17)"


야곱은 꿈이나 그 차지할 땅보다는 "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다"는 귀한 고백을 먼저 하고 있지 않은가? 그 당시의 신의 개념이 지역적이고 그래서 "내가 브엘세바에만 하나님이 있는줄 알었더니 이곳 하란으로 가는 도상에도 하나님이 계시는구나"하는 심정의 고백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야곱의 모습.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할 태도요 나아갈 목표이다.
아무리 현대가 탈권위의 시대요 신유,치유의 기적을

진리인양 따르는 세대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나아갈 바는  "여호와가 여기 계시다 "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는

귀한 고백이며 그런 고백이 드려지는 예배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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