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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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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1-08-11

본문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이란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군자는 숨어서 일을 도모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말이다.

군자(君子)는 유교에서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 때에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아내가 남편을 일컫는 말로 쓰기도 한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에 따르면, 군자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논어(論語)》 〈이인편(里仁)〉에는 '군자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소인은 어떤 것이 이익인지 잘 안다. 군자는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출까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편히 살 것인가 생각한다.'는 말로 군자를 정의하였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군자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였고 그래서 어떤 것이 옳은지를 먼저 따지고 언행을 가려서 행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세상이 변했다. 군자냐 소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많은 이익을 낼수 있는가를 우선시했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우선시하여 "모로가도(제 길이 아니라 샛길로가도,비껴가도) 서울로 먼저 가면 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며 당연시 되는 세상이다.

교회도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같은 길로 가고 있다. 더욱이 교단 총회장의 선거에서 떨어진 목사들은 총회장 되고 싶은 욕심에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고 나가 새로운 교단을 차리고는 흔히 하는 소인배들의 공식대로 자신들의 세력화를 위해 부실한 군소신학교를 만들어 그렇지 않아도 이미 과포화된 목회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무임 목사가 앞집 뒷집있는 현실이 아닌가 ?

반면에 세상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갈수록 부정적이며 그야말로 아찔한 현실이다. 그런 영향에 가속도를 만든 것은 흔히 일컷는 당회장님들이다. 교회의 현행 헌법을 방패삼아 정년 퇴직까지 철밥통이 보장되니 교회의 삼권을 독점하고 재정권까지 잡아쥐고는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며 자신들의 입맛대로 교회를 좌지우지하고는 이를 지적하는 평신도들에게는 "하나님의 기름부은 받은 종"을 대적한다며 설교강단에서 일갈하니 알게모르게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이 부지기수요 신문 사회면과 범죄면에 오르내리는 목사라는 단어로 새로 믿는 자들을 찾아 보기가 갈수록 힘든 요지음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
첫째, 교회가 늙어가고 있다. 각 교회의 예배시에 눈에 띄는 것은 성가대이며 그 구성원이 허연 머리와 심한 바이브레이션의 나이든 대원이 태반이며 젊은 얼굴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방과 각종 봉사에도 연로하신 권사님들이 몸소 움직여야 하는 것이 어느 교회에서나 쉽게 보이는 현실이다.주일학교가 줄어들거나 폐쇠되고 중고등부,대학부,청년회도 마차가지이다.

둘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교회내에도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넘치고 교인이 줄어드니 초조한 나머지 방법의 옳바르냐 아니냐가 우선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과가 있느냐 없느냐(목회 경영학)가 진리 판단의 기준이 되버린 세상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모습을 우리는 쿤달리니의 저급한 영적 능력을 카피한 신사도와 아이합, 그리고 이를 모방하고 뒤따르는 인터콮과 유사 아류의 한심한 교회 분파로 그야말로 엉망뒤죽박죽이 되버린 현대 교회에서 찾아 볼수 있다.

저들의 "모로 서울가는 " 모습은 종국에는 죽을 인간의 병을 고치기위해 안간힘을 쓰거나 방언을 하게 하거나 자빠지고 몸을 흔들며 실없이 웃어대는(거룩한?) 웃음속에서 찾으려는 한심한 시도속에서 보여진다.

즉 병이 낫거나 방언을 하거나 정상적이 아닌 몸짓등으로 무엇인가를 보임으로써 기존 교회와의 차별화로 교인들을 끌어 모으려는 "모로 가도" 방식인 것이나 기독교를 제외한 불교,힌두교,토착종교 등등의 종교에도 치유나 방언,이상한 몸짓은 있으며 단지 이런 현상이 성령의 능력이 아닌 다른 영적 현상에 기인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선교의 열매가 눈에 보이게 있다는둥 , 교회와의 관계가 미숙하다 그래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둥의 생뚱맞은 이유를 들먹이며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를 도외시하는 인터콮도 같은 선상에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선교를 지리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여 멀리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지역 목회보다 선교를 우선시하며 최고로 대우하여 기본적인 신학적 문제를 도외시하는 모습 역시 "모로가는"모습이며 이런 자세로는 지구 반대편까지 가더라도 종교 비지니스일 뿐이다.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
이럴때는 누지문서가 항상 찾아가는 말씀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 ; 12 )"
라는 진리의 말씀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속에서 말씀을 깨달았고 그 즉시 물동이를 버려둔채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자기에게 되어진 일을 알렸고 그래서 저희가 예수께로 나온 사건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천년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뛰어가서 알렸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어 운동력이 있고 사람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가 찔러지고 쪼개지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는 것이 확신된다면 그 이야기가 휴대전화, twitter, facebook ,blog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순식간에 전달되지 않겠는지 ?

그런데 우리는 그런 소문을 최근에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대신에 허다한 교회와 목회자들의 실망스러운 뉴스만 계속 듣고 있는 요지음이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이다.
영성계발이니 영성수련회니 교회성장 세미나,교회 경영학등의 "모로가는"길을 찾아가는 대신 대로행(大路行)하기를 바란다. 목회자들이 골방에서 말씀과 기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래서 주일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면 늘어가는 목회자와 줄어드는 교인들이 더 이상의 근심거리가 될수는 없을 것이다.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보내어 당신의 집을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 성장을 위해 필요한 모든 방법으로 생기는 부작용을 막는 길은 교회가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복음의 순수성을 다시 회복하는 길임을 명심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복음을 받아 들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다. 그렇기에 그 빙법도 하나님의 방법인 성경 말씀뿐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고전 2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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