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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분노를 어떻게 조절하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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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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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분노는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으로  들린다. 속에서 분노가 일어나면 말과 행동이 거칠어진다. 그 결과로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분노는 아담의 아들 가인 때부터 있었으니 그 역사가 길다. 그가 동생 아벨을 시기한 나머지 분노가 치밀어 조절치 못하여 돌로 쳐 죽였다. 이 만큼 분노를 다스리기가 어렵다.

어느 민족이나 대동소이하지만 근래 한국과 미국에서는 분노 조절이 안되어 가정이 파탄되고 사회적 불안이 극심하다. 폭언과 폭행은 다반사이고 방화, 흉기(몽둥이, 칼, 총)로 목숨과 재산을 앗아가는 사건 사고가 꼬리를 문다.

한국에서는 날로 증폭되고 있는 분노로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는데 이 일을 교회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된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맞는 말이다. 다른 경전에도 분노 조절에 대한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는 다른 차원(4차원)에서 교훈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보고, 한 말로 들린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 5:39)라고 하신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분노를 조절하느라 애쓰기 전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당신을 체포하러 온 악당들 중 말고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리는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하신 후 체포되어 끌려 가셨다.
그 후 2천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몸소 행하신 것을 따라 살다가 목숨바쳐 순교한 자들의 수가 얼마나 많았으며 순교는 하지 않았지만 박해자들에게 분노하지 않고 재산을 빼앗기고 고문을 당해 불구자가 된 성도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분노 문제로 고민하고 두려움에 떨지 않고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이루려면 단 한가지만 시행하면 된다. 그것은 유아원부터 대학교까지 성경을 가르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찰과 검찰과 그리고 법관의 수가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형무소도 헐어 버리고 아파트가 세워질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130년 전에 미국, 캐나다, 호주 선교사들이 세워 성경을 가르쳐 온 기독교 학교(Mission School)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드리는 것을 금하고 있다. 교실과 캠퍼스에서 학생이 학생을 폭언과 폭행으로 왕따시키고 못 견디어 자살을 한다. 심지어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미국은 1966년 케네디 대통령 때 학교에서 기도와 성경 가르치는 것을 금해 왔다. 그 후 학교 캠퍼스에서 총기 사고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뉴저지 러커스 대학교에서 총기 사고가 있었는데 그것은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였다. 타락한 인간이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분노하지 아니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 분을 내는 나를 지켜주면 범죄(방화, 살인)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분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공분(公憤)과 사분(私憤)이다. 공분이란 글자 그대로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일에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공적인 유익과 정의를 위한 분노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사분은 공분과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세상이 각박할수록 공분은 줄어들고 사분은 늘어감을 느끼게 된다. 사분은 자신의 이익에 상반된다고 판단되면 반드시 분노하나 공적인 피해가 있을 때는 함구해 버리는 이기적인 분노자로 남는다.

교회나 사회가 안정되고 평안을 누리려면 사분자는 없고 공분자가 있어야 한다. 타락으로 죄성(罪性)을 가진 인간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요 3:5)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므로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희생(십자가)하려할 때 이기적 분노는 극복될 것이다.

공분을 의분(義憤)이라고도 한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어떤 위기나 위협이나 피해가 올 때는 참으셨으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거나 하나님의 나라에 피해가 온다고 판단될 때는 분노하셨다.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그 안에서 매매하고 돈 바꾸고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들어 엎으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2, 13)하시며 크게 노하신 일이 있었다. 자신을 지켜주는 수제자 베드로에게는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하시며 꾸짖으신 예수님은 교권으로 이권을 챙기는 종교 지도자들의 비행(非行)에는 의분(義憤)으로 크게 진노하셨다.

사사로운 분노(憤怒)는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어둡게 하고 살벌하게 하지만 공익을 위한 공적 분노는 밝게 하고 화평하게 하여 남녀노소 빈부귀천없이 살맛나게 한다. 이기심은 사분을 일으키나 이타심은 공분과 의분을 갖게 하여 사회악(부정부패, 사리사욕)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처럼 사분을 억제하고 공분으로 지상천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동시에 예수님을 몰라 공분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분들에게 본을 보여 사회가 온통 공분, 의분으로 가득하게 하여 신바람나게 하는 주인공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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