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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반유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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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201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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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c82eafeab4548f8cf1452afaa8d8b2_1487394874_13.jpg독일음식 중에 학세(Haxe)란 게 있다. 종교개혁 발상지 여행단과 함께 나는 지난주 ‘개신교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비텐베르크에 도착하여 또 학세를 시켜먹었다. 

 

본래는 슈바인학세(Schweinshaxe)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그냥 “학세, 학세”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먹는 돼지족발이라고 보면 된다. 학세는 피클, 맥주와 함께 독일식 삼합(三合)요리로 알려진 음식이다.

 

학세로 점심을 들고 비텐베르크의 그 유명한 시 교회를 방문했다. 성 마리아교회라고도 불리는 이 시 교회는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성교회와 함께 비텐베르크의 상징이자 ‘루터의도시’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 교회에서 “내주는 강한 성이요”란 루터의 찬송가를 부르며 짧은 기도회를 가졌다. 함께 교회당을 둘러보던 모든 외국인들도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함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었다.

 

이 교회당은 루터가 수녀원에서 환속한 카탈리나 폰 보라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라틴어 미사를 폐지하고 독일어로 예배를 드린 최초의 교회이기도 하다. 부겐하겐이란 루터의 고해사제가 담임하던 이 교회에서 루터가 설교목사로 사역했던 곳이다. 루터와 그의 절친 멜랑히톤의 개혁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해 온 크라나흐의 유명한 제단화가 걸려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시교회야 말로 개신교 1호 목사사모님이 탄생한 교회요, 최초로 개신교 예배가 시작된 곳이요, 비텐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이니 기념비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비텐베르크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시 교회를 나서면 루터와 멜랑히톤의 동상이 서 있는 마르크트 광장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이 도시를 찾아온 수많은 방문객들 틈으로 조용히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서명운동? 눈 여겨 보니 돼지가 문제였다.

 

우리가 기도회를 마치고 나온 시 교회당 건물에는 유대인을 돼지로 묘사하여 기분 나쁘게 풍자해 놓은 조각이 붙어 있으니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화해의 차원에서 이 돼지를 제거하자는 서명운동이었다. 교회당 건물에 돼지가 붙어 있는 줄은 나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독일에는 수십 개가 있다고 들었다. 이 교회당은 루터시대 훨씬 이전인 1300년대에 지어진 캐톨릭 성당이었으니 루터와 돼지는 사실 상관도 없다.

 

돼지는 어떻게 교회당 건물에 붙어 있게 되었을까? 캐톨릭 교회가 왕성했던 중세의 프랑스, 스페인을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유대인들을 원수로 보았다. 그래서 유대인의 학대와 추방이 끊이지 않았다. 도시마다 유대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조차 꺼려해 게토란 곳에 잡아넣기도 했다. 특히 11세기가 시작되면서 교황 우르반 2세가 총대를 메고 시작한 십자군 전쟁은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한 모슬렘들이 공격 타겟이었지만 무수한 유대인들도 함께 죽었다. 십자군에 의해 유대인들의 죽음도 피바다를 이뤘다. 14세기-16세기에 이르러 독일에서도 본격적인 유대인 학대와 추방이 시작되었다. 유럽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발붙일 곳을 찾아 나선 곳은 동유럽. 특히 유대인 학대가 느슨했던 폴란드에 몰려든 것이다. 인류최대의 범죄자로 낙인찍힌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학살 홀로코스트의 무대가 폴랜드 아우슈비츠가 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유대인을 증오하던 캐톨릭교회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예배당의 돼지 조각이다. 이 암퇘지 조각은 우선 새끼 돼지들과 유대인들이 암퇘지 밑에서 젖을 빨며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암퇘지 뒤에는, 돼지의 오른 다리를 들고, 꼬리를 잡고는, 자신들의 쉠함포라스(유대인들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을 비꼬기 위해 쓰는 표현, Shemhamphoras)를 발견하기 위해 어떤 중요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읽는 것처럼 꼬리 밑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랍비를 조각해 놓은 것이다.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나눠준 안내문에는 “이 조형물은 유대인들에게 모욕이 될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돼지의 젖을 먹고 그 엉덩이에 손을 대는 것같이 음란하게 묘사함으로 상식적인 예의에도 어긋난다. 이것은 음란하고 충격적인 반유대적 형상이며 위엄과 예의로 장식되어야 할 기독교 예배 장소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유대적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것은 비단 그 돼지조각뿐 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주연배우’ 마르틴 루터도 마찬가지다.

 

루터는 기독교가 같은 종교를 가진 유대인 형제들에게 너무 악한 모습을 보이며 핍박하는 것을 반성하고 1523년 ‘예수는 유대인으로 나셨다’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기독교인들의 사악함을 비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180도 돌변한 것이다.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을 통해 유대인 탄압을 선동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유대인 회당을 무너트리고 탈무드를 불태우라고 선동까지 했다는 루터는 결국 두 얼굴을 가진 배신자였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다. 루터가 세상을 떠난 지 약 200년이 지난 19세기 초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알고 보니 캐톨릭 교회의 농간으로 밝혀졌다. 루터에게 배반의 칼을 맞은 캐톨릭 교회는 종교개혁이후 자체적인 내부 개혁운동에 착수했고 이때 등장한 급진적 ‘예수회’가 루터를 반유대주의자로 몰아가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뿌리는 다름 아닌 루터였다는 음모론 때문에 죽은 몸이긴 했어도 살아 있을 때의 명예에 먹칠을 당한 억울한 루터. . .

 

광장을 지나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들의 서명운동으로 드디어 시 교회의 돼지 조각은 철거될 수 있을까? 그리고 루터는 언제 반유대주의자란 누명을 벗게 될까?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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