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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족한 부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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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자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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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착한 자녀로 키우는 것이 대부분 부모들의 제1의 바램이며, 자녀양육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일반적인 잣대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크리스천 가정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부모중심적인 이런 믿음(?)이 어느 날 갑자기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부모는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해 7월, 발행된 지 20일 만에 뉴욕 타임스(NYT)의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른 ‘화제의 책’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의 제목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A mother’s Reckoning: 어머니의 벌)>이다. 이 책의 저자는 1999년 4월 20일, 자신들이 다니던 컬럼바인 고등학교(리틀턴, 콜로라도 주)에 권총, 반 자동 소통, 사제폭탄으로 무장하고 난입하여 학생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한 뒤(이 사고로 13명이 목숨을 잃었고, 24명이 부상을 당함)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두 명의 가해자(에릭 해리스과 딜런 클리볼드)중 하나인 딜런 클리볼드(Dylan Klebold)의 엄마 수 클리볼드(Sue Klebold, 68세)이다. “평범하고 사랑스런 내 아들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살인자가 되었을까?” 17년 동안 사랑으로 키웠던 아들을 잃고, 끊임없이 아들의 죽음에 의문을 가졌던 그녀가 그 후 17년간의 노력 끝에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을 이 책에 담아 용기 있게 세상에 내 놓은 것이다.
 
사고 당시, 장애아들을 위한 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던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신은 아들 딜런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끔찍한 일을 겪고 나서야, 그렇게 소중했던 작은 아들이 무고한 생명들을 해친 가해자가 된 후에야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인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들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딜런이 가족 몰래 술을 마셨고, 친구와 무기들을 사 모았으며, 지독한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는 것, 우울증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그 동안 그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스마트한 엄마가 있었다. 그녀에겐 자신을 닮은(?) 똑똑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주변에 있는 어떤 엄마들보다 그녀는 딸을 야무지게 키웠다. 유년기까지 아이는 엄마의 지도와 바람대로 잘 자라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의 자부심도 나날이 커갔다. 아마 그 엄마는 자녀양육에 있어서 만큼은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자부했을 지 모른다. 어느덧 아이는 사춘기에 들어섰고, 겉으로는 여전히 엄마의 가르침에 순응하는 것 같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어느 날, 아이에게 자신이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큰 충격을 받았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딸의 문제 ? 자살 충동 - 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데서 엄마에게 순종하던 아이는 보이지 않는 데서 외로이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딸은 잘 자라고 있음에 틀림없어!” 라고 확신하던 엄마의 일방적인 믿음(?)은 그 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2014년 12월 14일 아침, 커네티컷 뉴 타운 샌디 훅에 있는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했던 참극을 기억하는가? 아스퍼거스 신드롬(자폐 스팩트럼)을 앓고 있던 아담 랜자(20세)는 그날 아침,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자기 어머니에게 먼저 총격을 가한 후 자동차로 샌디 훅 초등학교에 도착, 건물에 난입하여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어린 아이 20명과 교사 6명을 무차별 공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어머니 낸시는 남편 피터와 이혼 후, 작은 아들인 아담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 형 라이언은 독립해서 살고 있었다 ? 아들에게 발달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도 불법으로 총기를 사 모았고, 사회성이 없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던 아담에게 사격을 가르쳐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날의 비극을 통하여 아담 랜자가 엄마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007년 4월 16일,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버지니아 텍 조승희 사건’ 또한 가히 충격적이었다. 초등학교(7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던 조승희(23세)는 대학 4학년 생으로 공부는 잘 했지만 말을 더듬었던 탓인지 평소 말을 잘 안 했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도 없었다. 그 역시 부모에겐 소중한 아들이었겠지만 부모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끔찍한 일 ? 사망 32명, 부상 29명 - 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아침에 범죄자가 된 아들로 인해 ‘가해자의 부모’가 된 그들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아들 또한 얼마나 두렵고 힘든 시간들을 지내야 했을까!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아담 랜자의 부모가, 조승희의 부모가, 딜런 클리볼드의 부모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철두철미했더라면, ‘아들만의 고통스런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진작 알아차리고 그곳에서부터 아들을 구조해 냈더라면, 무고한 생명들을 희생시키는 일도, 그로 인해  ‘가해자의 부모’ 라는 부끄러운 이름표를 달아야 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다시 말해서, 부부가 화목하고, 부모와 자녀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한 건강한 가정이라면, 그런 환경에서 별 탈 없이 자란 아이들이라면 결코 그런 끔찍한 사고를 저지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기 아이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파악하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겠는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아들에 대한 해석이 좀 달랐다. 그녀는 500페이지(번역본)가까이 되는 자신의 책에서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딜런은 어려서부터 가족을 힘들게 해 온 아이가 아니었고, 우리 가정 또한 부부가 불화하거나 자녀에게 무관심한 문제 가정이나 문제 부모가 아닌,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가정으로서 건강한 가정이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딜런이, 우리가 키운 딜런이 그럴 수가 있었는가? 톰과 나는 텔레비전 시청과 설탕이 많이 든 시리얼 섭취를 제한하는 적극적인 부모였다. 아이들이 볼 영화를 골라주고, 책을 읽어주고, 기도를 하고 안아주면서 아이들을 재웠다. 파국이 있기 전 해에 일으킨 문제를 제외하고는 딜런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착한 아이였다. 키우기도 쉬웠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언제나 대견한 아들이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아들 딜런에 대한 평가가 전적으로 자기 중심, 즉 엄마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바라 본 주관적 판단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은 엄마로서 아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딜런의 내면의 생각, 마음 상태, 가치관 등이 어떠했는지를 알려고 한 흔적은 별로 찾아 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보았을 때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비극의 가해자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그녀에겐 당연한 것일 수 있었다.

자신이 딜런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회한(悔恨)을 품고 그녀는 아들을 잃은 후 17년 동안이나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매진해 왔다. 착한 아들이라고 믿어 왔던 딜런으로 하여금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만든 괴물(?)이 무엇인지를 어떻게든 밝히고 싶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엄마로서 완벽하게(?)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값을 치르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얻은 결론은, 딜런에게는 자신(부모)이 미처 알지 못했던 ‘깊은 우울증과 뇌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딜런은 정서적으로 미숙하고, 우울했고, 더 심각한 기분장애나 인격장애에 시달리고 있었을 수 있다. 톰(남편)과 나는 이런 취약점을 알아보고 폭력적 오락, 에릭과 어울리는 것 등 문제를 악화시키는 나쁜 영향을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치아관리, 영양균형, 용돈 관리의 중요성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자기 뇌의 건강을 잘 살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뇌 건강을 건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몰랐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후회는 딜런에게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훈계하기보다는 딜런의 말을 더 들어주고,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둘이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 있는 게 좋았으며, 딜런을 설득하기보다는 그냥 그 아이의 기분을 알아줬어야 했다.” 그녀의 회한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칠 줄 몰랐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렵다는 말이다. 물론이다. 자녀를 건강하고 성숙한 하나의 인격체로 양육해 내는 일은 부모의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중차대한 일이다. 부모는 수퍼 맨도 아니고 수퍼 우먼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육신적 부모는 태생적으로 자격 없는 부모다.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온전히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녀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완전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며 도와주셔야 안전하다. 수 클리볼드가 놓치고 있었던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은 유한한 인간이라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전능자의 도움 없이는’ 부모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에게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으니까. 어떤 부모가 아이들이 자라가는 동안,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또, 다 가르칠 수 있겠는가? 또, 부모의 이 엄청난 가르침을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순종하며 배워 낼 아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아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수(Sue)의 비탄에 젖은 자책감이 필자의 가슴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함으로 몰려왔다.
 
부모에게 주어진 책임이 이다지도 큰 것이라면 창조주께서는 부모에게 왜 이렇게 엄청난 짐을 지워주신 주신 것일까?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잔뜩 화가 나셨던 하나님께서 그 분노를 삭이지 못하셔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죄의 대가(벌)로 부모들에게 자녀양육의 고통을 겪게 하신 것일까? 그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 죄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자기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 온전함을 이룰 수 없는 부족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렇듯 온전하지 못한 부모이기에 자녀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올바로 양육하는 일이 버겁고 힘겨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모로서의 고달픈(?) 직임을 감당해 가는 동안 부모 역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성장하고 성숙해 간다. 여기에 속 깊은 아버지의 뜻이 있다.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부모들은 위해 ‘자녀 양육 매뉴얼’을 이미 주셨고,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 중에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기도)’ 언제든지 함께 하시며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부모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 아무리 지혜 있고 능력 있는 부모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 엄청난 혜택을 이미 받아 누리는 지혜로운 부모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느라 끙끙대다가 견디다 못해 쓰러져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리석은 부모들이 많다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있다.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여러분은 자녀 양육을 위해 얼마나 힘쓰는가?  “주여,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맡겨주신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리이까?”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라고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자녀를 통하여 부모의 뜻을 이루려 하기 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전적으로 맡겨 보았는가? 어릴 때는 부모 뜻대로 되는 것 같으니까 주일에 한 번 교회에 데리고 나와 교회학교에 들여보내는 것으로 신앙교육 다 했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6일 동안은 그저 ‘공부 잘 하는 학생’으로 키우는 데 전력하진 않았는가? 말랑말랑한 찰흙과 같은 영아기부터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인 ‘신앙 교육의 황금기’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과 ‘성경적 가치관’을 심어주고, 각자의 적성과 재능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비전’을 품도록 가르쳐주고, 본을 보이는 것이 부모가 해 주어야 할 마땅한 책임이요 의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초등학교 시절까지 부모의 생각대로 밀어 붙이는 것이 통했는데 사춘기에 들어 선 어느 날부터 인가 부쩍 커버린 아이가 서먹서먹하게 느껴진다면 어떻겠는가? 더 이상 부모의 요구대로 하지 않겠다고 ‘독립선언’을 한 아이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언성을 높이는 부모들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날이 갈수록 눈에 거슬리는 사춘기 자녀로 인해 가슴을 치고, 한숨을 쉬면서도 하나님께 엎드려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방식을 고집하며 자녀와 대립하는 부모들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러다가 궁지에 몰리게 되면 맥없이 손을 놓고 만다. “네 인생이니까 네 맘대로 해!”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역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극이지만 칠흑 같은 어둠 뒤에 한줄기 빛이 비치듯 위로가 되어주고 희망이 되어준 일화가 있다. 목숨을 잃었던 13명의 희생자 중에 있었던 두 명의 크리스천 여학생 레이첼 조이 스캇(Rachel Joy Scott)과 캐시 버널(Cassie Bernall)의 ‘죽음을 불사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사건 당일, 가해자들은 레이첼의 팔과 다리에 총을 쏜 후, “넌 아직도 하나님을 믿니?” 라고 물었고, “그렇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그래, 그럼 네 하나님이랑 같이 있어!”라는 말을 하고 레이첼의 머리에 총격을 가했고(이 이야기는 영화 ‘I’m not shamed, 나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로 제작됨), 캐시 버넬에게도 총을 들이 대며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고 했을 때 그녀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셔!” 라고 대답하자 총을 난사했다고 한다. 무엇이 두 여학생들로 하여금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했던 것일까? 비록 그들은 희생자가 되어 너무 일찍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곁을 떠나야 했지만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경건한 영향력’을 끼치고 갔다. 크리스천 가정의 자녀들이 레이첼이나 캐시 같은 믿음을 갖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너무 무리한 기대일까?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너무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부모 혼자의 힘으로만 이 역할을 감당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부모의 아버지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양육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지혜를 구하라. “어디를 가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공부 잘하여 명문학교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아이 되게 해 주세요” 등의 상투적이고 이기적인 내용으로 기도하지 말라.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아이가 어떻게 자라가는 지를 관찰하고, 아이 속에 있는 죄성을 이해하여 죄의 길로 달려 가는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라.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이듯이 아이들도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도록 이끌어 주라.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 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며 사는 모범을 보임으로 배우게 하라.
 
스스로에게 속지 말라. 자녀교육의 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녀가 부모의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아무리 봐도 악한 면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재롱둥이라고, 자녀의 모든 필요를 채워 줄 만큼 경제력과 배경을 갖춘 헬리콥터 맘이라고, 공부를 잘 하여 명문학교 입학이 보장되어 있는 자녀의 부모라고, 그래서 자신은 별다른 도움이 필요 없는 ‘이만하면 괜찮은 부모’ 라고 자부하지 말라. ‘부모’ 라는 고귀한 특권과 책임을 주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 또한 예외가 아니다. 유한한 부모가 자녀를 온전하게 양육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부모는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꼭 붙어 있는 가지와 같아야 한다.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저는 부족한 부모입니다. 저에겐 맡겨주신 자녀를 온전하게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이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합니다” 라고 겸손히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라. 그러면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부모와 자녀 안에서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계자(뉴욕가정사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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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희님의 댓글

임선희

부모의 청지기적 삶에 대해 깨닫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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