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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없는 기독교가 종교가 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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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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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2세기 말부터 3세기에 매우 중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전까지 교회에는 신성한 물건이나 장소가 없었습니다. 이방 종교와 비교할 때 교회는 신성한 물건이나 장소가 없다는 것이 특이하고 이교와 구별되는 점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2세기 말부터 나타나는 교회의 특이한 변화 중 하나는 죽은 성도에 대한 지나친 관심 즉 사자에 대한 이교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원시 종족의 민간 신앙 가운데는 사자 숭배가 있습니다.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생전처럼 생활하며 살아 있는 사람에게 화복을 준다고 믿는 생각이나 의례입니다. 여기에는 공포심과 숭배심이 수반되는데, 넓은 의미에서 조상 숭배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자(死者) 숭배는 죽은 자들의 매장 방법과 죽은 자들에 대한 일체의 제의 행위들을 포함하는데, 고대 근동의 대부분 종교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사자 숭배를 모든 종교의 기원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자 숭배는 모든 종교가 인간의 현재 생활만이 아니라, 본질에서는 인간의 죽음 이후의 존재 양식과 그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과 관련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고대인들은 죽은 자의 혼백이 살아 있는 자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특수한 지식과 우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자가 시신을 함부로 만지거나 방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미래 운명은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고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시신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에 의해 그들의 거주지나 움막에서 정성껏 보관되었습니다. 매장 장소는 고인의 사회적 상황(사회적 신분, 자녀의 수, 부의 정도 등)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시신 앞에서는 애도의식이 행해졌는데, 이것은 가족과 친족들이 탄식과 울음을 통해 고인과의 관계 단절을 슬퍼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도 애도의식을 갖지 못한 죽음은 매우 불행한 죽음으로 간주하였습니다(욥 27:15, 렘 16:4,6). 그 의식에는 애곡, 금식, 옷을 찢는 행위, 신체 일부분을 훼손하는 행위,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는 행동, 머리를 풀어 헤치는 행동, 머리를 깎아 대머리를 만드는 행동, 몸의 일부를 베는 행동, 눈썹 위의 털을 미는 행동, 땅에 앉아 가슴을 치며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는 행동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습들은 이생에서의 인간 삶의 질적인 저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악기들을 이용하여 죽은 자와의 관계 단절로 인한 슬픔의 정도를 증대시켜 표출하기도 하였는데, 이 경우에는 제의적 축제의 형식으로 죽은 자를 위한 무도(舞蹈)와 식사가 동반되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사랑하는 가족, 친족, 친구와의 작별에 대한 단순한 애통의 표현이라고 볼 수 없고 이 세상에서의 삶의 여정을 마감하고 저세상으로 출발하는 고인과의 이별을 애도한다는 제의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애도의식은 애니미즘(Animismus)의 잔재입니다. 죽은 자를 종교적으로 숭배하여 살아 있는 자들이 악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건강과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의식의 반영입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자들은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죽은 자들의 혼백과의 규칙적이고 손쉬운 만남을 통해 화를 멀리하고 이생의 안녕과 번영을 소유하게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죽은 자들의 혼백을 숭배하는 행위는 살아 있는 자들의 일상의 삶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산, 숲, 골짜기, 동굴, 마을 입구, 혹은 자신들의 거주지 등에서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혼백과 만남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복술자들을 매개로 죽은 자의 혼백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체가 어떤 위기 상황이나 한계 상황에 처하게 될 때 그들은 초월적 능력을 지닌 죽은 자의 혼백의 도움을 받아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상황을 극복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교적 차원에서 볼 때 사자 숭배는 여러 세대를 하나로 묶어주는 신비적 일체감의 표현이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생의 사람들과 저생의 사람들의 만남을 유지하는 제의적 수단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죽은 자의 초월적 능력을 인정하고 죽은 자의 혼백을 불러내어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사자 숭배와 관련된 종교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의 많은 본문, 특히 신명기 18:10-11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명기 저자는 신적인 존재와 인간 사이의 중개 역할을 담당했던 자들과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 사이의 교제를 위한 아홉 가지의 주술적인 영매(靈媒) 관습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관습들을 결정적으로 중요한 하나의 통일된 관점하에 열거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주도권에 의해 진행되는 제의적 관습들이라는 점입니다. 신명기 저자는 이 아홉 가지의 영매술을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의와 결합할 수 없는 것으로, 즉 여호와께‘가증한 행위’(9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변함없이 사자 숭배나 사자에 대한 주술적인 관습들을 무섭게 질타합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교제를 시도하는 일체의 행위는 구약이나 신약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제의나 예배와 일체 동일시되거나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관되고 가르칩니다.

2세기 말에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이교도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순교자들을 기리며 높이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은 성인들을 위한 기도가 그들을 향한 기도로 발전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여 음식을 먹는 이교도들의 관습을 받아들였고 교회의 장례식과 장송곡은 둘 다 3세기 때 이교도들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였던 터툴리안은 이교도들의 장례행렬 관습을 가차 없이 없애버리자는 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의 장례 관습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3세기의 교회는 두 개의 모임 장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개인 집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묘지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형제들과 가깝게 있고 싶어서 공동묘지에서 모였습니다. 순교자의 묘지에서 식사를 나누는 것이 그를 기리고 그와 함께 예배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룩하다고 생각하였고 거룩한 시신이 안치된 무덤은 거룩한 곳이라고 여겼습니다. 거룩한 시신이 묻힌 무덤이 거룩하다고 여겼기에 그 무덤에 작은 기념비를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덤에 기념비 같은 것을 세우고 그것을 거룩하다고 생각한 것은 전적으로 이교도의 관습입니다. 이때 로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상징으로 카타콤을 꾸미기 시작하였습니다. 카타콤(catacombs)은 '가운데'라는 카타(cata)와 '무덤들'(tumbas)이라는 단어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무덤들 가운데'(among the tombs)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지하 무덤 카타콤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예술이 신성한 장소와 접목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예배에 시각예술을 도입할 것을 주창한 최초의 그리스도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의미심장한 사실은 오늘날 기독교나 교회를 상징하는 십자가는 콘스탄틴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주후 312년 콘스탄틴이 막센티우스를 물리쳤는데, 꿈에 십자가를 보고 모든 병사의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 넣게 하여 전쟁에 승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후부터 십자가나 투구나 방패나 왕관 등에 부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예수상(十字苦像, crucifix)은 5세기 때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도의 유골을 신성한 것으로 숭상하기 시작한 것은 약 2세기 경입니다. 여기에서부터 후에 유품 수집이 신앙을 고양하는 중요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로마제국에서 집단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교회가 신앙적인 것으로 흡수하였습니다. 2세기 말에 주의 만찬에 대한 다른 견해가 태동하기 시작했는데 주의 만찬이 일상의 식사에서 성만찬(Holy Commuion)이라고 불리는 일정한 양식을 갖춘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게 되자 4세기에 오게 되면 떡과 잔이 위압적이고, 두렵고, 신비한 분위기를 창출해 내는 것으로 발전해 있습니다. 16세기 때는 제단 테이블 위에 가로막을 설치하여 제단 테이블이 거룩한 사람들인 성직자들에 의해서만 다루어져야 하는 거룩한 물건임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2세기와 3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교 사상의 특징인 마술적 사고방식에 동화되기 시작했고 이 모든 요소는 곧 교회 건물들을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한 사람을 위해 기독교계를 준비시킨 격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교회 건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콘스탄틴입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흔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안겨주고 그들의 특권을 확대해 준 위대한 인물로 칭송되지만, 사실 그는 기독교 역사의 어두운 면을 가득 채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 어두운 면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회 건물이 그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멸시받던 소수의 무리에서 벗어날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무시와 핍박만 받아 오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지위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특혜까지 누리게 되자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실로 거부할 수 없는 시험이 되었습니다. 321년 콘스탄틴이 서로마제국의 시저가 되자 그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324년에 로마제국 전체의 황제가 되었고 그 후 얼마 안 가서 교회 건물들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를 종교화시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하였습니다. 교회 건물 건축에 대한 콘스탄틴의 열정은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콘스탄틴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되면서 교회 건물들이 건축되기 시작하였고 교회 건물 장식과 예전과 제도들이 황제의 위상과 웅장한 건물에 어울리게 자리 잡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콘스탄틴의 교회에 대한 이해와 사고방식입니다. 콘스탄틴의 생각은 미신과 이교 마술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황제가 된 이후에도, 그는 로마 안에 옛 이교 기관들을 그대로 보존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교의 신전, 이교 제사장 직무, 고대 로마의 성직 제도, 신성한 독신 제도, 그 자신이 이교 제사장 총수(Pontifex Maximus)라는 타이틀 등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태양신 섬기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전에 태양 상을 새겨 넣었고, 새로 건설한 수도 콘스탄티노플 광장에 그의 형상을 새긴 태양 신상을 세웠습니다. 또한, 키벨레(Cybele)라는 모신(mother goddess)의 여신상도 세웠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상을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모습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가들은 콘스탄틴의 개종이 진정한 개종이었는지 아닌지 지금까지 계속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기독교가 그에 의해 이교화 되고 일반 종교화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고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이교적 요소들을 개혁하거나 제거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진력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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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뉴욕바우님의 댓글

뉴욕바우

1월29일 베이사이드 하크네시아 교회에서는
고국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부터 일찌기 이단으로 규정되고 제명처리까지된 전광훈목사(?)
의 집회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한 긴설명은 생략하고 인터넷 혹은 기사를 참고 하시길 부탁드립니다(이미 알고있지만)
작금의 혼란스러운 고국사정이 하루빨리 안정
되고 다가올 어려움이 극복되기를 기도할 뿐
입니다  이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전광훈씨
의 집회를,이곳의 교회 지도자들 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입장을 분명히 해 주시는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크리스챤의 입장에서 판단해
주시면 된다고 생각됩니다
지도자(목회자)라면,

댓글의 형식 이외는 의견을 게시할 방법이 없어서...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댓글의 댓글

ㅂㄷㄱ: 여기 재미없어서 한동안 안왔었는데 오랫만에 오니 이렇게 좋은 글이 올라왔네요. 전광훈 목사에 대해서는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분명한 객관적인 사실만 보더라도 이 분은 코로나로 나라가 위태로울때 "일부러"(?) 대규모 집회를 열고 광화문 집회에 모든 사람들이 듣는 앞에서 하나님께 "까불면 죽어" 라고 말하고, 그분의 교회는 정부에 수백억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사제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을 바라보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전광훈같은 사람은 어느 곳에나 어느때나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에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대처하는냐에 따라 더 큰 혼란이 올 수도 있고 더 큰 은혜가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문제들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해져서 분란이 되는 것은 그 교회 지도자들의 영적 상태에 따른 "증상"일 뿐인 것입니다. 여기서 지도자들은 목사, 장로, 집사, 팀장, 권사 등 교회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에 대한 간증은 언제 따로 하겠습니다.)

제가 위에 열거한 전목사의 모든 모습은 뉴스를 통해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목사는 아직도 "힘"이 있습니다.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회 다니는 자들"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슴아픈 예이지만 이곳에서 예전에 오랫동안 활동하시던 별동별 사모님도 "교회 다니는 자"로 전락하셨습니다. 그분의 블로그에는 아직도 "하나님 까불면 죽어" 발언 후에 그분이 올리신 두 편의 글과 동영상이 있습니다. 모두 전광훈 목사의 간증과 영적인 모습을 선전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게 가슴아파서 종종 거기 들러서 확인도 하고 댓글도 올렸습니다. 그분에게는 제가 그저 "악플러" 중 하나이겠지요...

믿음이 정치에 오염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는 제가 여기 십여년 전부터 줄기차게 글을 쓰고 싸웠지만 이곳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욕만 먹었습니다.

글도 길어지고 마음도 안좋아서 이만 쓰렵니다. 이런 시대에 모두 영적으로 깨어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뉴욕바우님의 댓글

뉴욕바우

지난29일(주일)10시'바른행동 미주 크리스챤 모임'회원들 15명이 모여서 하크네시아 교회앞에서 전광훈집회 규탄시위를 2시간 했습니다(추종자들과 몸싸움도 있어서 경찰 출동함)
아울러 전광훈은 지난12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광화문집회)로 1차공판에서 현정부검찰로부터 4년징역형을 구형 받았습니다
수구 기득권이 낳은 정치꾼괴물 전광훈,무엇보다도
침묵으로 이런자를 바라만 보고있는 보수(?)
기독교 의 지도자들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목사님 장로님들 입장이 무엇입니까?
이 자 들의 광고를 실어준 '아멘넷'의 입장도
묻습니다  광고료만 지불하면 다 실어주는
크리스챤 사이트 입니까?
잘 쌓아올린 성 밑의 모래기초를 보는듯합니다
'아멘넷'을 빌어서 글을 올리는마음 무겁습니다

성도님의 댓글

성도

완전 수준 떨어지는 사람이죠. 이사람떄문에 건전한 성도들 마저 도매급으로  저질이 되는게 속상합니다

말주변님의 댓글

말주변

자칭 성도라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할점은 바로...
"나는 안그런데 넌 왜 그래"입니다.
무슨 말인지 지금위에 글 오리신 전부는 아실겁니다.
전목사나 우리나 뭐가 다릅니까?그 양반은 그저 전면에 나섰을뿐 우리와
뭐가 다릅니까? 다 그렇게 나 자랑하고 내믿음은 아버지꼐서 받으셔야만되고, 내 기도는 들어져야되고, 교회에 가면 다 신령한척하고, 나 자신에게 마저도 스스로 거룩한척하고...
다 이렇게 생활하지 않나요? 내가 죄인이라고 입으론 말하지만 진짜 죄인인지 모르는 일만달란트 빚진자 이라구요.

아니라고 말할수 있나요? 간음한 여자 앞에서 죄없다고 돌던지고 남아 있을 수 있나구요? 참으로 작금의 자칭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보면(목사도 똑같음) 구역질납니다.
다 자기자랑하는데 혈안이 되서...

전목사의 믿음이나 내믿음이나 오십보백보란 말이에요.
그런 전목사나 당신과 나 나 다 그 덮으심이 없으면 끝이라구요.
그걸모르니 남들 손가락질 하는데 열심일 수 밖에요 ㅠㅠ
내 열심이아니라 아버지의 열심이란걸 모르니 그럴수 밖에...
아니 성경에서 배운게 내가 해야될것들만 배웠고 아버지꼐서 내게 뭘 해주셨는지 대해서 모르니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전제를 세워 남에게 손가락질 하는거겠죠. 우리는 남을 손가락질 할수 있는 존재들이 못됩니다.
창녀가 바로 나 이고 바리새인이 나며, 십자가에서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가 나라구요. 그러한자들이 누구를 정죄하나요.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자구요, 그거 말고는 뭐를 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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