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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없는 기독교가 종교가 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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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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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판테온(Panthenon)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입니다. 그리스어 판테온(Πάνθειον)은 "모든 신들"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말로, 범신전(汎神殿), 또는 만신전(萬神殿)으로도 번역되며, 모든 신을 모시는 신전을 의미합니다. 판(Πάν)은 모든, 테오(θεο)는 신, 온( ον)은 집을 뜻하니까 판테온은 모든 신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판테온은 주로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등장했습니다. 로마나 그리스에는 수많은 신이 존재하였기에 판테온은 그리스 로마가 종교 박람회장(Expo)이었음을 암시합니다. 건국신 로물로루스, 가정 수호신 라레스, 벽난로 여신 베스타,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 건강과 복지의 여신 살루스 등 수많은 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들에게는 집이 있었습니다. 신의 집을 템플(Temple)이라고 합니다. 메종 카레 신전, 포르투나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 유피테르-유노-미네르바 신전, 헤라클레스 신전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그들이 섬기는 신이 있고 그 신이 거하는 신전이 있었으며 그 신전은 그 종교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시대 신전의 특징은 양식이 비슷해서 누구라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대가 높거나 도시 주요 장소에 위치하여 랜드마크 기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여 보는 이를 압도하였습니다. 신전은 건물과 구역 전체가 신성해서 원칙적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었습니다. 신전 외부에 제단이 있었고 내부에는 신전의 주인인 신이 신상의 모습으로 모셔져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신전에 들어가려면 먼저 제단을 지나야 하고 포티코 라는 현관을 통과하여 신의 처소인 셀라에 이르는데, 안쪽 중앙 엡스에는 신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셀라에는 신상 외에도 분향을 위한 제단이나 등불 그리고 신에게 바쳐진 봉헌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셀라는 지극히 신성한 곳이어서 사제 등 소수의 사람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 신전을 중심으로 성/속이 나뉘었습니다. 신전 안은 신성한 공간이고 밖은 세속적 공간입니다. 세속의 다른 말은 '일상'입니다. 신전은 세속이나 일상과 구별된 곳입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신성함이란 일상의 반대입니다. 이는 일상을 분리 또는 금지함으로써 신성함을 유지하는 종교의 기본 원리입니다. 따라서 성속의 변증법은 모든 종교의 공통 원리입니다.

그런데 2천년 전 예루살렘에서 신전 없는 종교가 탄생하였습니다. 1세기 기독교는 신전 없는 종교였습니다. 적어도 주후 4세기 라테란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기독교는 신전(Temple)이 없었습니다. 1세기 기독교의 형편을 기록한 사도행전에 의하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집에서 모였습니다. 집은 신전이 아닌 일상의 공간입니다. 모여서 떡을 떼는 식사를 하였는데 음식을 먹는 식사 역시 일상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특별한 날이 아닌 날마다 모였습니다. 일상의 시간에 모였다는 뜻입니다. 그 모임에서 성찬을 나누었는데 이는 예배 행위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일상과 예배가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았고 성과 속이 통합된 일반 종교와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종교는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주 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성전 대신 회당에 모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도시에서나 남자 10명 이상이 모이면 회당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집에서 모였습니다. 그들이 유대인들처럼 회당이나 예배당을 짓지 않은 이유는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핍박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 중에는 부자들도 꽤 많았고, 핍박이 늘 계속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신전을 못 지은 것이 아니라 안 지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초대교회가 왜 신전이나 예배당을 짓지 않았는지를 사려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고전 3장 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신전은 너희들 자신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전 즉 성전 안에 신상이 아니라 실제 신이 현존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교회) 안에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건물이 아닌 그들 모임(교회)이 신전 곧 성전입니다. 교인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은 성도가 곧 교회이고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 안에 수 많은 신이 존재하였고 그 신마다 집이 있었는데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가 등장하면서 신전으로서의 판테온은 그 본연의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은 회당을 지었지만, 초기 기독교는 예배당을 짓지 않았습니다.

내가 신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한국에는 교회당 건축이 한창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신학교에서 초대교회사를 공부하는데, 사도들이나 교부들이나 내로라하는 장로들이나 기독교로 개종한 부자들이 예배당을 지었다는 기록을 읽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교회사로 보나 세계사로 보나 기독교는 신전 즉 성전이 없는 유일한 종교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이었던 베드로나 야고보가 예배당 건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지중해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교회를 세웠지만, 예배당을 짓지는 않았습니다. 사도 중 예배당을 지었다는 사도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인상적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속사도들이나 교부들도 예배당을 건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도들 자신들이 신전인데 다른 신전을 짓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산에서 승천하셨다는 사실을 신전 없는 기독교와 연장 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과 그들의 후예들은 주 후 3세기까지 거리에서, 저자에서, 산에서, 배 안에서, 무덤에서, 처마 밑에서, 광야에서, 그리고 회심한 사람들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예수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셔서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성전이 되셨다는 것은 산 돌로 만들어진 "손으로 짓지 아니한" 살아 있는 하나님의 집을 완성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새로운 제사장제도를 세우신 제사장이십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는 역사상 최초로 출현한 성전 없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에는, 건축물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로 신성한 공동체를 구성해야 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이 집합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교회나 성전이나 하나님의 집을 건물로 지칭한 적이 없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교회를 건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아내를 아파트라고 부르거나 어머니를 빌딩이라 부르는 것과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 장소를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라고 불렀던 최초의 기록은 19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150-215)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클레멘트는 "교회에 간다." 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 한 사람이었는데, 이것은 1세기 성도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에클레시아는 언제나 장소가 아닌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신약 성경에 114번 나오는 에클레시아는 모두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영어의 church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큐리아콘(κυριακον)에서 유래했는데, 그것은 "주님께 속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후에 그 말에는 "하나님의 집" 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졌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용어가 곧 건물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헬라어의 교회라는 단어의 에클레시아의 정확한 번역은 church가 아니라 congregation입니다. 윌리엄 틴데일은 에클레시아를 congregation으로 번역했는데 킹 제임스 역자들은 에클레시아를 church로 번역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한 이유는 청교도들이 그 번역을 더 선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클레멘트가 말한 "교회에 간다"라는 표현은 예배를 위해 특별한 건물에 간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2세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모임을 위해 사용했던 개인 가정집을 지칭했고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거기에서 모이는 모임을 지칭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4세기에 콘스탄틴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예배를 위해 특별한 건물들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교회로 모였던 가정집이 교회 건물로 개조된 경우가 문서로나 고고학적 자료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틴 이전에는 그 어떤 교회당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주 후 300년까지 교회당으로 지어진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4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서서히 전면에 나선 로마 가톨릭은 이교 사상과 유대교 양쪽의 종교적 관습을 많이 흡수하였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전문 제사장제도를 확립했고 신성한 건물들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의 만찬을 신비스러운 희생 제사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이라고 믿었던 초대교회 역사적 전통을 교회가 여러 역사적 변화의 과정을 통해 건물로 둔갑시켜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몇 번 유대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과격할 정도로 부정적인 표현을 하셨습니다. 유대인을 가장 화나게 했던 것은 만일 성전이 헐린다면 예수님이 사흘 안에 새 성전을 세우겠다고 하신 선언이었습니다(요219-21). 그 당시 예수님은 건물로 존재하던 성전을 지칭하셨지만, 실은 자신의 몸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이 헐리고 자신이 사흘 안에 그것을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성전, 곧 사흘 만에 예수님 자신 안에 일으키신 교회를 가리키셨습니다(엡2:6).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래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셨을 때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15:45).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 안에 거주하심으로써 그들을 자신의 성전 곧 자신의 집으로 만드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신약 성경은 교회라는 말을 항상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하는 것에 국한합니다. 신약 성경은 건물이나 그런 부류의 것을 지칭하는 데에 이 말을 결코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키신 사건은 돈 바꾸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짜 집인 성전을 모독한 것에 대한 분노였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성전 예배가 주님에 의해 대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는 산이나 성전에서 예배를 받으실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로마 제국 안에는 신전들과 유대교 회당들이 많았지만 예수님은 신성한 물건이나 신성한 사람이나 신성한 장소가 없는 지상의 유일한 종교인 기독교를 세우셨습니다. 유대교 회당들과 이교 신전들로 둘러싸여 있는 문화적 상황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위해 신성한 건물을 세우지 않은 지상의 유일한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가정에서, 밖의 뜰에서, 그리고 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기 교회가 건물을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가정집에서 모임을 하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규모가 커지면서,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그들의 집들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고고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는 지금의 시리아에 있는 듀라 유로포스(DURA-Europos)의 집입니다. 이 집은 그리스도인의 모임 장소로 확인된 최초의 것입니다. 그것은 232년경에 그리스도인의 모임 장소로 개조된 단순한 개인 집이었습니다. 듀라 유로포스에 있던 집은 큰 거실을 만들려고 특별히 두 개의 침실 사이에 있던 벽을 터서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변경된 집은 약 70명이 모일 수 있는 크기가 되었습니다. 듀라 유로포스처럼 개조된 집들은 "교회 건물"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더 큰 모임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량된 집이었을 뿐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집들은 이교도들과 유대인들이 그들의 신성한 장소를 일컬었던 말인 성전 또는 신전, temples이라고 불린 적이 결코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15세기까지는 그들의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주 후 3세기에 이르러 신성한 물건과 장소를 중요하게 취급하다가 결국은 예배당을 짓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되자 신전 없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와 같은 종교로 변하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변질하여 온 것입니다. 신전, 성전, 예배당의 역사를 복음의 본질과 관련하여 숙고하므로 기독교가 어떻게 일반 종교와 같이 되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왕상 22:16).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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